by 시그
역몽 逆夢 실제 사실과는 반대인 꿈 가라르에서 짧은 만남을 가진 둘은 첫사랑을 했을 때와 같이 서로에게 열정적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시간만 맞으면 수시로 화상 통화가 가능했다. 나누가 밤에 쉬고 있을 때, 순무는 다음 날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휴대 전화 조작이 서툰 순무는 사용이 편리한 스마트 로토무를 사용해 나누에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기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와일드 에리어에 도착한 나누는 드넓은 벌판을 보고 감탄했다. 여기저기서 트레이너들이 풀숲을 헤맸고, 포켓몬이 지나가는 트레이너들을 먼저 공격하기도 했다. 빨간 불빛의 기둥이 새어 나오는 구덩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낯선 사람이 다가와서 쓸 거냐고 물었다. 빛의 정체가 뭔지 몰라서 고개를 저으면 자기가 쓰겠다고 하며 구덩이 안으로
나누는 다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옹들의 밥그릇에 사료를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간식을 줄 시간은 몇 시인지, 놀아 달라고 하면 장난감들이 어디 있는지. 여태 파출소를 오랫동안 비운 적이 없었기에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옛 동료 둘이 여전히 알로라에 머물고 있었고 그들이 파출소를 봐준다고 한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였던 나옹들 걱정은
호연 지방을 떠난 나누는 기차를 타고 반나절을 달려 저녁 늦게 집에 도착했다. 부모는 한 달 만에 보는 아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검회색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머리가 좀 길었네, 라는 어머니의 말에 깔끔히 잘라야겠다고 생각했다. 뙤약볕 아래를 누볐더니 피부도 보기 좋게 잘 탔다. 아버지는 항상 비실비실해 보이는 아들이 건강해 보여서 좋다며 농담을 했다.
안정을 찾은 순무가 안 그래도 피곤할 텐데 또 힘을 뺐다며 사과하자 나누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팔팔한 걸 보니 젊음이란 게 무섭긴 무섭다고 생각한다. 몸을 씻은 뒤 옷을 가지런히 차려입은 후에는 순무를 도와 방에서 버릴 것들을 정리했다. 낡은 책들을 들고 창고 옆 쓰레기를 분리하는 곳으로 향했다. 종이류를 모으는 큰 플라스틱 박스에
오후에는 둘만의 비밀을 위해 산으로 향하는 뒷길을 올랐다.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해가 지는 길을 올라 몸이 근질근질했을 포켓몬들을 내보낸다. 확실히 진화를 했기 때문인지 이제 나인테일은 눈빛에 의욕이 가득했다. 순무는 그 마음을 몰랐던 것에 다시 미안함이 떠올랐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포켓몬들을 위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훌륭한 트레이너가
가까이 달라붙어 사랑스럽다는 듯이 어루만지고 잡담을 나누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흘렀다. 즐거운 때는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다. 낮과 저녁 사이에 별채로 온 것 같은데 벌써 저녁이 되었다. 둘은 저녁을 먹으러 길을 내려가면서 손을 잡고 갔다. 손바닥 사이로 땀이 스며 나왔지만 차분한 여름 바람이 그것을 말려 주었다. 주인장은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고 또 고생
여전히 다정하게 구는 나누를 보며 순무는 약간 걱정이 가셨다. 그래, 사랑을 하면 다 그런 것 아니겠어. 상대방을 지독히도 원하는 것은 순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나누의 손을 먼저 잡았던 것이다. 나누는 시간이 있는 동안 책을 보기로 했고 순무는 나인테일과 함께 별채 밖으로 나가 아름다운 자태를 다듬어 주었다. 백금빛
밤이 깊어 갈수록 태풍의 위력도 강해졌으나 둘은 태풍이 별로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생활 리듬이 깨져 두려울 만한 일이긴 했다. 저녁에 잠깐 잠들었던 탓에 자정이 되었어도 깨어 있다. 나누는 책을 보며 드디어 공부에 집중했고 순무도 좌식 책상에 앉아 훈련 일지에 글을 써 내려갔다. 나누는 이따금 그 모습을 보았다. 멍하니 보기만
이래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누는 별 꿍꿍이 없이 순무와 방 안에서 비바람 부는 날의 정취를 즐길 생각이었는데 순무의 돌발 행동에 그만 저도 모르게 손을 잡아 버렸다. 아니,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잡지 않으면 다시는 못 잡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순무의 간절함이 담긴 눈빛을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나누의
일주일째를 맞이하는 아침이 되었다. 저절로 평소와 같은 기상 시간에 눈이 떠진 나누는 인기척을 느꼈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 뒤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나누가 아는 한 순무는 잠버릇이 고약하지 않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잘도 자는 중이었다. 끔뻑거리던 눈을 내리깔고 순무의 속눈썹을 보며 무슨 일 때문에 나누의 곁에서 잠을 청했을지 생각해 본다. 밤
순무는 그것이 벌이라 느껴졌고 나누는 그것이 죄라고 느껴졌다. 본인의 주제도 모르고 나누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관심을 가진 벌일까. 하지만 이래도 쉽게 눈을 돌릴 수 없다. 본인은 곧 떠날 몸인데 누구보다 순무와 가까워진 죄일까. 이제는 순무를 놓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놀란 순무는 나누가 왜 이러는지 궁금해서 가만히 있었다. 그 침착하던 나누가
순무가 태어나기 전에는 호연 지방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 탓에 관광객도 줄어서 굴뚝산과 용암마을은 행여나 놀러 온 사람이 있으면 극진하게 대접을 해 주었다. 순무가 태어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여관이 대성하길 바라며 여관 이름을 따서 태어난 손자의 이름을 지었다. 순무는 어릴 때 어머니의 본가가 있는 잔디마을에서 조부모와 어머니와 넷이서
벌써 일을 한 지 6일째가 되었다. 순무가 돌아오는 소리에 잠에서 깬 나누는 일어나서 첫 휴일을 맞이하여 그동안 필요했던 것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우산은 순무와 큰 우산을 같이 쓰면 되니까 사지 않는다. 옷도 딱히. 가져온 것들은 한 번도 안 입었다. 담배.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즘 자주 피우게 되는 것 같다. 순무가 샤워하는 동안 또 뭐가 필요
나누는 당황한 것을 감추기 위해 일어서서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고 했다. 비가 와서 창문을 열지 못하자 재떨이를 손에 들고 별채 입구로 향한다. 고무 재질의 슬리퍼를 신고 입구에 서서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어둠에 잠긴 채 비를 맞는 용암마을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되자 나누는 아까 들었던 순무의 목소리를
순무는 나누가 변명하기도 전에 잽싸게 방을 나가 버렸다. 나누는 그 뒤를 쫓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째서 말주변도 없는 자신이 그런 잔인한 말을 위로라고 꺼낸 건지 도통 이해되지 않아서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창문을 열어 담배만 두 개비를 태웠다. 스스로가 한심해서 절로 욕이 나오며 한숨이 삐져나왔다. 그리고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오해해 버
다음날, 나누는 여전히 피곤했지만 그래도 일찍 일어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자 옆에 누워 있던 순무도 일어나 앉는다. 어쩐 일로 일찍 일어났냐 묻길래 나누는 이유를 둘러대기 위해 턱을 매만진다. 어제 자기 전, 순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비록 이틀이 지났지만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니 순무를 생각하는 마음이 변한 것
순무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나누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마치 처음부터 자기 것인 것처럼 방에 있던 밥상을 펴놓고서 연필을 굴리며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누가 고개를 들었고 자신을 쳐다봐서인지 순무는 깜짝 놀라버린다. 아직 다른 사람이 방에 있는 것이 낯선 모양이다. 그러고는 무슨 책을 읽냐고 물으며 이불 위에 털썩 앉는다. "
면접을 본 다음 날, 나누는 신세를 진 친척 집에서 도망치듯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부모는 당연히 기나긴 잔소리를 했고 친척들은 나누의 진짜 속마음도 모르고 그를 응원했다. 또다시 용암마을로 가는 길이 벅차긴 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짐이 든 보스턴백과 친척들이 챙겨준 것들이 너무 무거워 어깨뼈가 으스러질 것만 같았지만 이 고통만 참으면…… 이라는 생
친척네에는 외아들이 한 명 있긴 했으나 나누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데다 사회생활을 하러 다른 지방에 간 지 오래였기에 지금은 친척 아저씨와 아주머니, 에나비만 살고 있었다. 명절마다 사촌 형이 본가로 오기 때문에 방과 물건들은 그대로 둔 상태다. 사촌이 입던 옷을 받아 그걸로 갈아입고, 집 안에 걸린 가족사진들을 보며 기억 속의 사촌을 떠올려 본다.
* 이야기의 기반이 되는 썰의 일부 : https://radiyyo.postype.com/post/5712334 미몽 迷夢 무엇에 홀린 듯 똑똑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정신 상태, 혹은 헛된 꿈 꿈, 그것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사그라드는 것. 꿈, 그것은 감은 눈 속에선 선명하지만 뜬 눈 속에선 잊히는 것. 꿈, 그것은……. 관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