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금요일이래.

주정재, 누구도아닌남자

회도2 엔딩 이후 주정재와 어느새 그와 손을 맞춰 일하고 있는 누아남 이야기


씨이팔. 부러워 죽겠네.

금요일, 평소 퇴근 시간보다 조금 더 이르게 밀리기 시작하는 도로에 괜히 핸들을 내려친다. 불금도, 금요일 이른 퇴근도 없는 경찰 나부랭이가 도로에 발이 묶여 혼자 성질을 부리자 옆 좌석에 앉아있던 동료 경찰이 휴대폰을 보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부러우면 뭐해. 오늘 우린 당직인데.

새끼들, 집에나 쳐들어가지. 왜 다 나와 있냐고. 

집에 가고 있는 길 아니시겠냐. 

주정재는 습관처럼 담배를 찾아 하나 입에 물었다. 물론 불도 붙이지 못하고 옆에서 뻗은 손에 그대로 빼앗겼다. 엥? 하고 옆을 보자 그의 손바닥에서 담배가 구겨졌다.

어허. 지금 경찰차다. 경찰차. 전처럼 누가 또 민원 넣으면 어떡하려고. 

담배처럼 주정재의 미간 사이가 구겨졌다. 새끼야 그럼 네가 운전해! 하고 버럭 외치자 즐거운 듯 껄껄 웃는 웃음소리가 들리고 경찰차는 굼벵이처럼 도로를 기어갔다. 한참을 움직이다 멈추길 반복해서야 겨우 성중 경찰서에 차가 멈추어 섰다. 운전석을 닫는 손길이 거칠다. 차체가 흔들릴 만큼 쾅! 하고 닫은 주정재는 팔을 길게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오랫동안 구겨 앉아있었더니 온 몸이 다 뻐근했다. 이 지긋지긋한 경찰노름. 진짜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좆뺑이만 존나게 돌리고 고생만 쳐 해. 내가 진짜, 이번 일만 끝나면… …. 속으로 꿍얼꿍얼 거리며 서로 들어가려던 걸음은 휴대폰 진동 소리에 멈추어 섰다.

주 경사?

걸음을 멈춘 그를 부름에도 주정재는 서서 문자를 확인했다. 자판 하나하나 꾹, 꾹 누르는 모습은 어렴풋이 봐도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아까도 뚱하게 있었지만 훨씬 불편해 보기는 얼굴.

어이, 주 경사. 안 와? 아, 설마 호출?

어. 호출.

캬, 인가 참 많다, 많아.

이런 인기는 쌓아줘도 안 가져. 뒤치다꺼리를 시키는 건데 뭐가 좋냐. 먼저 들어가라. 나는 다시 간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손을 휘적거리는 주정재를 향해 대충 대답하던 형사는 금방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가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주정재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진짜 때려치우고 만다. 죄 없는 땅을 노려보다 성중서의 바깥으로 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막 정문을 나왔을 무렵 근처 벤치에 낯익은 뒤통수가 보였다. 주정재의 손이 서슴없이 그 뒤통수를 향해 휘둘러졌다.

"!!"

퍽, 하는 소리가 참 둔탁했다. 뒤통수를 부여잡고 주변을 휙휙 둘러보던 남자가 주정재를 보자 얼굴이 와작 구겨졌다. 사람의 얼굴 근육이 저렇게까지 움직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얼굴을 구기던 남자는 머리카락을 흩트리곤 벤치에서 일어났다. 

"사람을 봤으면 부를 것이지, 뒤통수를 쳐?"

남자가 말할 때마다 볼에 난 흉터가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오래된 듯 다소 옅은 흉터는 남자의 분위기를 더 험악하게 만들었다. 

"얌마, 너야말로 내 발소리가 들리면 재깍재깍 일어나서 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해야 할 거 아니야?"

"뭐?"

주정재의 손바닥이 남자의 등을 두어번 내려치고 나서야 주머니로 쏙 들어갔다. 뭐라고 하려는 듯 달싹거리던 입을 꾹 닫곤 자기가 봐준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은 남자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그 옆을 주정재가 따라 걸었다.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 일이시더냐."

"─늘 똑같은 일이지. 구린 일 뒤처리."

남자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길지 않은 내용이 적힌 종이는 별 의미 없는 듯하면서도 의미가 담긴 내용들이 뒤섞여있었다. 그중에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악필인 글씨가 섞였다. 남자의 글씨였다. 주정재가 옆에서 힐끔 보더니 혀를 찼다.

"넌 글씨 연습 좀 해라. 나이도 있는 놈이 아주 개발새발."

"시끄러워."

시덥지 않은 소리가 오갔다. 사람들이 많은 골목을 지나가다가도 점점 인파가 뜸해졌다. 의미 없이 걷는 듯싶다가도 길은 점점 으슥해지고 의무적으로 달린 CCTV조차 잘 보이지 않는 길목 안쪽까지 들어왔다. 낡은 문을 남자가 규칙적이게 두드렸다. 대답 없던 문 너머를 한참 기다렸을까 뒤늦게 안쪽에서 똑같은 리듬으로 문을 두드렸다. 남자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똑, 똑.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전기요금을 못 냈나, 어우- 어두워."

주정재가 투덜거리며 먼저 들어갔다. 문을 열어주었던 이는 문 뒤에 서 있다가 그들이 들어오자 다시 문을 닫았다. 끼익 낡은 쇳소리를 내며 닫힌 문은 잠깐 희미하게 들어오던 빛을 다시 막아 삼키고, 안은 어둠 밖에 없다. 남자는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 약간의 시야를 밝혔고 보이는 것은 피 밖에 없었다. 

"일이나 하자고."

"그래, 그래. 높으신 분들은 차마 못 하는 더러운 일들을 해야지."


물기를 탈탈 털어내며 서랍을 열었다. 죄다 검고 무채색의 티셔츠 밖에 없었다. 질린다. 질려. 주정재는 고개를 저어선 아무 옷이나 대충 꺼내 걸쳐 입었다. 얼추 맞으면 자기 옷이었다. 물기를 털던 수건을 목에 걸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맥주는?"

"바지나 좀 입지."

"기집애도 아니고, 맥주는?"

"아래."

남자가 몸을 굽혀 주정재가 바닥에 흘린 물을 닦아냈다. 팬티 바람으로 방안을 돌아다니는 그 꼴이 당연히도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 좁혔지만, 상의라도 입은 게 발전이라면 발전이라 한숨 푹 내쉬고 말았다. 주정재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뺏어서 그의 머리카락을 힘줘서 팍팍 털었다. 야! 악! 아파! 새끼야! 하는 외침을 무시한 채 화풀이를 손으로 탈탈 해주고 나서야 세탁기에 수건을 던져 넣었다. 

"어우, 서방님 머리 말려주고 싶었으면 살살 부드럽게 말려줄 것이지. 부끄러움은 존나 타요."

맥주캔 따는 소리가 시원했다. 창문 밖은 이미 저물고 어두웠다. 좁고 낡은 방 한 칸에 남자 둘이 맥주에 마른안주 바닥에 두고 있는 꼴이 얼마나 웃긴지. 시답지 않은 말만 오가다가 말곤, 대화가 뚝 끊기고 침묵만 돌아도 두사람 다 별 반응 없이 바닥엔 빈 맥주캔이 늘어갔다.

"안가냐."

새벽이 더 깊어지자 남자는 주정재를 발로 툭 쳤다. 입꼬리를 씰룩거리던 주정재가 이불 위로 올라갔다.

"어."

"주정 부려?"

"주정재거든."

시발. 남자는 한숨을 푹 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정재가 그 뒷모습을 보며 웃어 재꼈다. 고개를 저으며 주변을 대충 정리한 남자는 다시 주정재를 발로 툭툭 쳤다.

벽으로 붙어.

오늘 너무 적극적이다.

낄낄 웃는 주정재를 두고 남자는 대답 않고 그를 벽으로 밀어 옆에 누웠다. 장판 위에 매트리스가 겨우 깔린 낡은 이부자리에 성인 남성 둘이 우겨 누운 꼴이 꽤 웃겼다. 주정재가 남자의 허리를 잡고 안쪽으로 끌어 당겼다. 

뭘 내외하고 그러냐.

… ….

어우, 알았다. 알았어. 장난 그만 칠게.

죽는다 진짜.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침묵 사이에서 남자는 가만 뒤에 있는 이의 반응을 살폈다. 가끔 이렇게 뚝 끊기는 분위기가 아슬아슬했다. 뒤가 보이지도 않을 텐데도 눈동자는 굴러갔다. 

죽여봐. 

내뱉은 주정재의 말은 웃음기도 없었고, 장난스럽지도 않았다. 남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주정재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그런 많은 상상. 

순순히 죽어줄 거면.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남자는 대답했다.

망설이지도 않아? 하, 새끼. 

주정재는 혀를 찼다. 호랑이 새끼를 키웠네,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 꿍얼거리는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목소리 톤이 돌아왔다. 한창 못 알아들을 말을 꿍얼거리던 주정재의 말이 점점 느려졌다.

나는, 임마…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쉽게 죽겠냐, 이제 와서…. 

남자는 생각했다. 그렇겠지. 쉽게 죽게 놔둘 생각은 전혀 없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생각이 교차한다. 

"자라."

남자는 그저 그렇게 대꾸했다. 시계 초침 소리가 고요해진 방 안에서 가장 큰 소음을 냈다. 규칙적으로 초침이 원을 그리고 움직이고, 또 주정재의 숨소리가 잠잠해질 무렵 남자는 어둠 속에 내려진 그림자를 내려다봤다. 이미 옛적에 버린 그림자가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이미 퇴색되고 빛을 잃은 감정들이 일렁거리고 흔들린다. 빛 하나 없는 촛불이었다. 

금요일이 끝났네. 자정이 훨씬 지나고 새벽이 물든 시간. 이미 날짜는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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