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연가_#002

: 작은 의사, 시타라 엘모(2)

전쟁이 지속 되며 부모님의 부재가 5년이 지나고 6년으로 이어질 때, 시타라와 붙어 다니던 친구들 중 '아샤 프레닐'이 마을에 들어오는 상인들의 안내 심부름을 하고 마을에 돌아오다 전날에 온 비로 지반이 쓸려나가 일어난 낙하사고에 다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안내 심부름을 위해 앞에서 앞서던 아샤와 몇 가지 물품이 휩쓸렸고, 외부인은 무사하다는 소식과 함께, 오직 아샤와 다친 동물들만이 병원에 오게 되었다.

 

큰 사고가 없다시피 한 마을이었기에 갑자기 일어난 자연재해와 인명피해 소식에 마을과 마을에 위치한 병원은 소란스러워졌고 혼란 속에서 시타라는 들것이 실려 오는 아샤를 마주하였다.

 

"…아샤?"

“시타라! 움직여! 아니다. 거기! 붕대랑 소독할 거, 마취약이랑 수면약도!”

“지혈제 있습니다! 시타라! 미리 처치 할 부목 할 지지대와 따뜻한 물 좀 준비해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시타라가 눈앞의 참상에 반사적으로 정신을 차리며 발걸음을 옮겨 지시받은 내용물들을 챙겨 아샤의 옆으로 다가갔다.

 

시타라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이송된 아샤는 걱정 할 게 뻔한 시타라에게 자신이 의식이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함인지 감기는 눈을 버티며 힘겹게 눈을 뜨고 있다가 마주한 시타라를 향해 손을 뻗었고 시타라의 손을 붙잡은 채 눈을 감았다.

다행히 큰 사고에 비해 아샤는 빠르게 회복해갔고 시타라는 앉아서 말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된 아샤에게 말을 걸었다.

 

"너 실려 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다친 와중에 내 쪽에 손 뻗길래 잡아줬더니 정신이나 잃고."

"…네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길래 그랬지~"

 

아샤는 천연덕스럽게 웃고는 이제 자기 괜찮아 보이지 않냐며 많이 회복돼 붕대를 감은 팔과 아직 부러져 부목과 함께 감싼 다리를 휘적거리더니 앓는 소리를 냈다.

 

“내가 움직이지 말라는 말을 아까 병실에 오자마자 했는데!”

 

아샤의 앓는 소리에 시타라는 환자인 아샤를 혼내고는 아샤보고 다시 누우라는 듯이 아샤가 배정받은 침대의 베개를 몇 번 치며 억지로라도 아샤를 눕히고는 불편하지 않도록 자세를 고쳐줬다.

 

그리고 할 말이 있었는지 부목을 하고있는 다리를 한번, 아샤의 얼굴을 한번 보고는 한숨을 한번 내뱉고 주저하다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있잖아, 너 모험가…한다고 했었잖아. 괜찮겠어?”

"나? 나 많이 다친 거야? 이렇게 괜찮은 거 같은데?!"

"아니 방금 말 안 듣고 움직이다가 아프다 한 사람이…괜찮다니깐 뭐…너 움직이는 거 보면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아샤의 상태를 보고 놀랐던 시타라는 의사이자 친구로서 아샤의 장래희망에 대해 아샤가 절망하지 않을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몸이 괜찮다는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어릴 때부터 마을에 들른 모험가와 이야기하고, 책을 보며 자신은 모험가가 될 거라 말하던 야샤는 시타라의 걱정이 무색하게 별거 아니었다는 듯 빠르게 회복해서 나중엔 아샤보다 덜한 경상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다른 사람보다 짧은 기간 안에 완전히 회복하여 검을 다시 휘두를 수 있는 만큼 털고 일어났다.

 

"오, 괜찮은데? 전보다 더 움직이기 쉬운 거 같아!"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뻗어보고 몇 번의 칼을 휘둘러보던 아샤는 도약하여 공중에 칼을 사선으로 베어보더니 발을 쓸며 낮은 자세로 착지해보고는 자신의 상처를 살펴준 시타라에게 멀쩡해진 자신을 보라는 듯 팔을 벌려 보았다.

 

하지만 아샤의 움직임에 대한 시타라의 감상은 전혀 안심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괜찮을 리가 없었는데…."

"응?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좋고 유능한 의사 친구 둬서 이렇게 쌩쌩해졌네~"

“유능하긴…나는 그때 정신도 못 차려서 손을 떠는 바람에 대부분 선배님들이 하셨는데….”

 

아샤의 움직임에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과 친구가 회복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충돌하며 멍한 시선으로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회복한 야샤에게 의문을 가졌다.

 

친구가 걱정됐던 시타라지만 야샤의 괜찮다는 말과 행동에 계속해서 이질감이 들기 시작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시타라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아샤는 시타라에게 연신 걱정하지 말라 하고 슬슬 환자 짐을 정리하고 다시 일할 준비를 해야겠다 말했다.

 

아샤가 퇴원하고 정체모를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가려던 시타라는 며칠 후,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조금 늦게 일어나 늦게 준비하고 마을의 병원으로 쓰이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어두운 하늘과 어울린다고 해야되는 세차게 부는 우는 바람에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확인하고 저 멀리 마을 입구 근처에 보이는 ‘어릴 때 기억 속에 남아있는 행렬’을 발견하고 달려나갔다.

상대에게 자신들이 누군지 알리기 위한 소속을 알리는 길고 높은 깃발, 에드윈의 깃발을 들고 전쟁에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행렬이었다.

 

나갔던 이들이 돌아옴을 확인하고 행렬로 접근하는 사람들 틈을 행렬을 발견한 다른 마을 사람들과 섞여 이리저리 살피며 지나치고, 시타라는 보고 싶었던 얼굴들을 떠올리며 어느새 길게 자란 긴 머리를 흩날리며 사이를 지나다녔다.

 

“아아아아…테르사님.”

“다행히 돌아왔어, 돌아와줬구나.”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몰라요….”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이 보고 싶었던 자신의 아들, 연인,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의 얼굴을 확인하며 껴안고 온기를 나누며 말을 나누는 동안, 시타라만이 행렬 끝, 관 앞에 도달했다.

 

"……이거,…이건……누구의 관이에요?"

 

시타라의 물음에 일순, 공기가 얼어붙었고 돌아왔지만 자신들의 가족을 만났음에도 웃음기 하나 없고 슬퍼하기만 하는 돌아온 이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다가 시타라의 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시타라의 등을 두드리는가 하면, 안아주는 사람이 있고, 무릎을 꿇는 자들도 있었다.

 

돌아온 사람들은 돌아왔음에도 기뻐하지 못했고 관의 주인‘들’을, 그 의미를 아는 마을 사람들은 기쁨도 잠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전쟁에 같이 나갔던 이들이 하나둘씩 시타라 주변에 떠나지 않고 시타라를 계속 위로했고, 위로를 받으며 의미를 알아챈 시타라는 사람들을 옆으로 밀어내며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비틀거렸다.

 

“…아니야.”

 

시타라는 관 앞에 서서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고 행렬에 보이지 않는 부모님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돌아온 행렬에는 시타라의 부모님 시올프와 테리의 얼굴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고 있던 바람에 실려 밴시의 노래처럼 울려 퍼지자 가만히 관 앞에 도착해 소리를 흘려 듣던 시타라는 손을 뻗어 뚜껑을 열었다.

 

아직 완전히 봉하지 않은 관의 뚜껑을 힘을 주어 밀어 열자 그 안에는 목에 똑같이 상처가 난 부모님 두 분이 누워있었다.

 

막 도착했음에도 기뻐하지 못하고 있던 병사들도 시타라의 확인에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흐흑.”

“…미안합니다.”

“돌아오면서도…네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얼굴을 손으로 더듬어 만질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간 시타라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쓸으며 깔끔하게 잘려버린 목을 확인하고 시신에 차마 손을 대진 못한 채 관을 붙잡고 앉아 말을 내뱉었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어요. 엄마랑 아빠가 마을을 맡기고 갔고, 돌아오면 당연히 내 머릴 쓰다듬어 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관을 붙잡은 손으로 부모님을 끌어안고 싶지만 잘린 목으로 인해 반듯한 형체가 무너질까 봐 몇 번이나 손을 거둔 시타라가 아예 관을 몸으로 덮듯이 엎어졌다.

 

“제국은 강하니깐, 에드윈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보낸 보여주기식 지원병이니깐, 아무 일도 없을 거로 생각하고…엄마랑 아빠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그냥…그냥……어린아이처럼 굴지 않으려고…저는…….”

 

부모님이 돌아오면 보여드려야지, 이만큼 자랐다며 두 사람이 없는 동안 기른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겠지, 어릴 때처럼 머리를 말려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정식으로 의사가 되어 얻은 증표를 보고 자랑스러워하시겠지- 하고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상상했던 생각이 깨진 순간이었다.

 

시타라는 그저 주저앉아 관을 붙잡고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전쟁터에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왔음에도, 날씨가 진정되어도 마을은 기뻐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떠나기 전, 지원병으로 가는 마을 청년들을 무사히 돌려보내겠다며 각 집을 돌며 남은 가족들을 안심시켰고, 의사는 전쟁에 꼭 차출되어야 한다는 말에 연로하신 분들은 더 위험할 거고 제자들은 아직 더 배워야 한다며 시타라에게 허락을 구했었다.

 

엄마와 아빠를 보내줄 수 있겠냐며 동의를 구하는 말에 대답을 미룬 채, 이웃의 손을 잡고 몰래 울며 배웅하던 시타라는 아른거리는 생각에 잠기며 어느새 밤, 두 사람의 화장을 위해 장작더미 위에 모셔진 부모님의 시신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엄마랑 아빠를 붙잡고 싶었지만 보내드리고 울었었어요."

 

처음에 마주했을 당시보단 좀 더 긴말을 내뱉을 수 있게 된 시타라가 말했다.

 

"하루빨리 제 몫을 하는 게 멀리서 지내는 엄마랑 아빠가 걱정을 덜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소식을 듣고 싶어도 편지 하나 보내지 않고 참았었어요."

 

장례를 대신 준비해주는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하나 전할 수 없는 채로 시타라는 최대한 마지막까지 부모님의 모습을 담고자 시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편지라도 써볼걸."

 

후회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고백과 함께 눈물이 방울방울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엄마랑 아빠 생각하면 보고 싶어질 거 같아서, 울 것 같아서 일부러 일만 하고…날 두고 간 두 사람이 한편으론 미워서 어린 마음에 기도도 안 드렸어요.”

 

이내 커오면서 자신을 보여주지 못한 아이의 울음이 떠나는 부모님을 마지막을 향해 떨어졌다.

 

"이건 변명이죠, 변명일 거예요. 그래서…엄마랑 아빠가 다쳤나 봐요. 나…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자리에 없는 부모님을 떠올리며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왔던 기억은 모두 부질없었고, 시타라는 오랜만의 재회에 사과만을 내뱉었다.

 

 

-

 

 

어느 정도 상황이 수습되고,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을 떠나보낼 화장을 준비하며 여전히 그 자리에서 관을 놓지 못하고 있는 시타라가 걱정돼 배회하던 이들이 시타라에게 화장 소식을 알리자, 시타라가 마지못해 스스로 몸을 일으키다 비틀거렸다. 쓰러질 듯이 보여 곁에 다가왔던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뻗어 시타라를 부축했다.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자, 느껴지는 온기에 참았던 눈물을 다시 토할 듯이 울면서 뒤로 물러선 뒤, 시타라가 자신을 부축해주기 위해 다가온 아샤에게 겨우겨우 말을 내뱉으며 진행을 대신 부탁했다.

 

“부…탁해….”

“……알았어.”

 

시타라의 부탁으로 짧은 기도문을 내뱉고, 아샤가 어른들에게 받은 횃불을 준비된 장작더미에 던졌다. 불이 던져지고, 울면서 타오르는 불을 향해 연신 사과하던 시타라는 한참을 울다가 지쳤는지 그제야 울음을 멈추고, 길게 길러 부모님께 보여주려던 머리카락을 잘라 던져 불과 같이 부모님께 작별을 고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불을 확인하려던 시타라가 근처에 앉아있던 병사들을 발견하고, 인사하기 위해 발을 옮기자 다가오는 발소리에 병사들은 시타라를 확인하고 웃음을 억지로라도 지어 보이며 휴식을 취하길 권했다.

 

돌아온 사람들은 전쟁에서 두 사람이 시타라에 대해 자랑하고 보고 싶어 했다며 이야기를 풀었고 어느덧, 화장이 끝나가자 테리의 친구였던 사람들이 일어나 기도를 낭송했다.

 

“흙으로 빚어져, 바람을 맞아 숨을 내쉬던 작은 생명이 오늘 땅으로 돌아가 오래된 그대의 품으로 돌아가니, 부디 다시 사랑하는 이를 만나게 해주시옵소서. 저 하늘의 태양과 같이, 빛나는 당신의 자애로 반짝였던 이가 당신의 품으로 돌아가 옆에 누우니 그리운 이를 다시 만나게 해주시옵소서.”

"이 땅을 빛낸 듣고 있는 우리의 신이시여, 당신의 넝쿨과 같은 인연을 소중히 여겨주시어, 다시….”

 

가만히 기도를 들으며 기억 속에 남은 엄마가 떠난 환자를 위해 묵념하며 다른 손을 손목에 감싸던 자세가 생각났는지 기억을 더듬어 따라 하곤 고개를 숙여 멀리서 기도하는 이들에게 목례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

 

 

다음날, 두 사람을 보낸 마을은 기뻐하지 않고 조용히 가볍게 돌아온 이들을 위해 좋은 음식을 먹이고 환영하자며 준비가 한창이었고 시타라는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왜 지금 가야 돼? 떠날 거면, 좋은 음식이라도 먹고 떠나주면 안 돼? 너도 많이 힘들잖아."

 

가방을 챙기며 짐을 정리하던 시타라의 손을 붙잡은 갈색 머리 소녀가 부탁했지만 힘없는 웃음과 함께 힘을 푼 손으로 슬쩍 손을 뺀 시타라는 다시 짐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돼. 그 사람들은 돌아왔으니 기뻐해야지. 나를 위해 언제까지 슬퍼하게 둘 수는 없어."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 네가 지금 제일 위태로워 보여."

 

단호하게 의견을 내비치고 고개를 저어 거절을 표한 시타라의 말에 답답하다는 듯이 언성까지 높이며 검은 머리 소년이 시타라를 향해 걱정 가득한 말을 내뱉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으며 시타라는 짐을 싸는 손을 멈추지 않았고 짧은 침묵을 유지했다.

 

"…내가 남아있으면 저 사람들은 힘든 몸에 정신까지 병에 걸릴지도 몰라. 이건 의사로서의 소견도 있어."

"나는 네가 안 떠났으면 좋겠는데…."

 

누가 봐도 마을을 떠나려는 시타라의 행동에 울먹이고 있던 금발 머리 소녀가 아쉬워하자 시타라는 자신에게 한마디씩 하는 친구들을 끌어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비야, 나는 영영 떠나겠다는 게 아니야. 다시 할 일을 마치고 돌아올 거니깐 그때까지 이제 좀 더 조심히 행동하고 다치지 말아줘."

"네가 의사 소견까지 말해가며 가겠다면 나는 안 말리겠는데…마을을 떠나서 계획은 있어?"

 

시타라의 친구들은 괜찮겠냐는 생각과 걱정 그리고 감정에 휩쓸린 게 아닌지 계획이 있는지 물었고 시타라는 조용히 엄마의 유품인 귀걸이와 아빠의 유품인 팔찌, 그리고 두 사람의 의학적 지식이 적힌 수첩을 집어 들고 친구들에게 당당히 계획을 말하며 억지로라도 웃어 보였다.

 

"전에 마을 밖 세상이 궁금해 여행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 내가 모르는 약초나 증상, 그리고 이곳에서 비싼 약초가 저기에선 싸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해 생각한 적도 있었고.“

 

수첩 안의 내용을 확인하며 수첩 겉에 쓰인 수첩의 주인임을 나타내는 이름들을 한 번씩 쓸고 가방 옆쪽에 챙긴 시타라가 짐을 묶은 끈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걸 해결하려면 마을을 떠나 여행을 가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적이 있는데, 다만…내가 이렇게 빨리…허락도 안 받고 떠나게 될 줄은 몰랐네."

 

일부러라도 안 받고 떠난다고 내뱉은 시타라의 말에 가지각색으로 숙연해지자 시타라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포옹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진짜로…적어도 내일, 떠나면 안 돼?"

"안돼. 나 한번 마음먹으면 그때 해야 하는 성격 알잖아."

 

외투를 입고, 가방을 메며 문밖에 대기 중이던 의사 선배들에게는 자신의 집과 부모님이 남긴 자료는 꼭 병원에 보탬이 되도록 써달라며 당부하고 한창 환영식을 준비 중이던 사람들을 피해 일부러 돌아가며 마을 입구로 향했다.

 

마을 밖에 다다르자 익숙한 사람이 입구 기둥에 기대고 서 있었고 시타라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 저놈…."

"아샤! 아침부터 어디 갔었나 했더니 여기 있었어?"

마을 입구의 기둥에 서서 손을 흔들던 이는 아샤였고, 시타라처럼 온갖 짐을 챙긴 채로, 말을 걸어 왔다.

 

"네가 왜 여기에…."

"아니이, 묘하게 눈도 안 마주치면서 곧 떠날 것처럼 계속 그러니까-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해주고 쌩~ 지나가 버리는데, 당연히 반응도 없이 그러면 서프라이즈로 반겨줘야지."

"…네가 실없는 소리 하며 반대할까 봐 그랬지."

 

아샤의 인사를 무시하며 기둥 앞에 선 시타라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배웅하러 뒤따라 오던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곤 동의했다.

 

"하긴 아샤가 좀 그렇지. 걱정이 아니라 장난을 거는 느낌?"

"아니 근데 왜 여기에 서 있어? 이건 다 뭐 하는 거고?"

 

갈색 머리 소녀가 아샤의 짐을 가르키자 아샤는 내려뒀던 짐을 등에 메며 허리춤에 매고 있는 자신의 칼을 툭툭 쳐보았다.

 

"나도 시타라랑 같이 여행하고 오려고!"

"뭐?"

"누구 마음대로?!"

 

처음 듣는 소리에 시타라까지 언성을 높이며 난색을 보였고, 마주쳐 오는 아샤의 시선에 다시 눈을 회피했다. 아샤는 시타라의 표정을 확인하다가 시타라 뒤의 친구들에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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