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보존림, 셔우드

3. 안부 전해주세요!

- 숲 내부, 공방 내부.

평범한 총의 외양만 따온 것이라 내부에서 탄환이 쏘아지는 것이 아닌데도. 저런 모양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던 것은 오로지 저 자세를 위해서일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아직 열일곱 살이라 공식적인 작전에서 제대로 된 총기를 다룰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방아쇠 대신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집게손가락을 대고, 한쪽 눈을 감고, 반대쪽은 뜬 채로. 파란 눈빛은 옆면에 달아둔 푸르게 빛나는 청록색 마나석보다 더 밝게. 보통은 몇 마디 주문을 속삭이기도 한다지만 이것에 아주 익숙해진 그에게는 굳이 필요가 없었다. 몇 마디 말이 아닌 지금 이 자세가 주문을 대체한 것이 아닐까. 공중에 날리는 나뭇잎, 보다 격렬하게 휘날리는 옷자락. 그리고 제 주변의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이 맴도는 돌풍. 얼굴을 후려치는 머리카락을 녹색 후드 안으로 밀어 넣으며 셔우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력 약간 뭉치는 수준의 일이 이리도 소란스러워야 하나.

그 소란 속에서 묵묵히 선 자세를 유지한 그의 모습에 파란 불빛만이 반짝였고, 바람은 찬찬히 잦아들고, 푸른 빛 조각이 청록색 광물의 속에서 튀어 오르다 전체적으로 퍼져 아주 파랗게 물들어가고.

그러다 문득 스쳐 지나간 모양이다. ‘굳이 남들끼리 연애질하는 이야기따위 기억해 두어도 어디다 써먹을 만한 것도 아니고. 어디서 본 것에 얄팍하게 꽂혀서 그대로 따라 했다가는 어설프다고 욕만 먹고 말 테고.’- 라는 조금 전의 말과 임시로 짜집어 붙여놓았던 살짝 갈라진 손잡이, 더해서 이때 방해를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싶은 생각이. 이런 건 보통 성질 급한 모르가나나 충동적이고 탐구열 강한 아담이나 할 법한 생각이고, 또 그녀씩이나 되어야 실천으로 옮길 행동인 동시에 비록 그만큼 충동적인 면모는 없었다지만, 그래도. 셔우드는 남들의 생각보다는 짖궂을 사람이다.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

“그런데 조금 전 말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쉘비랑은 잘 안되었다는 이야기지?”

그렇게 번져가다가 찬찬히 잦아드는 것도 없이 그저 확 꺼져버렸다. 요란하고도 느리게 뭉쳐진 서슬 퍼런 탄환 일곱 발은 제자리에서 천천히 맴돌다가 차례로 과녁을 향해 활공했다. 이른 밤중에 잠깐의 날벼락. 시스는 잠시 유지하던 자세를 풀고 앞을 바라보았다. 검은 옆머리 뒤편에 언뜻 보인 귓바퀴는 새빨간 장밋빛이었나.

지팡이 끝을 땅으로 향하도록 내리자마자 잽싸게 뒤돌며 억울함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고백도 안 했는데 차이긴 뭘 차여요. 안 차였고 고백도 안 했고. 이해하셨습니까? -라고 외치며 이를 악무는 모습은 둘째치고, 손잡이가 산산조각이 나지 않은 것을 보면 그가 행했던 실험은 일단 통했던 모양이다. 방해받는다고 어디 한 군데가 터지지는 않는 것을 확인한 셔우드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탄환은 빗나가지 않았고, 막 수리된 지팡이도 전혀 부서지지 않았다. 무엇 하나 잘못된 것이 없으니, 오늘 작업도 성공적이었다. 아마도.

셔우드는 정중앙이 뚫린 과녁 일곱 개를 잽싸게 수확해, 오늘따라 요상하시다고 중얼거리는 시스에게 들려주었다. 가서 보름치한테 자랑이라도 하라는 말을 덧붙이며. 당연히 시스는 펄쩍 뛰었다. 전 요절하기 싫은데요? 성의 없이 대강 맞장구치던 셔우드의 눈에 새까만 옆머리 사이로 드러난, 여전히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귓바퀴가 들어왔다. 방금 그 말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던 건지, 지금 이 말이 성질을 건드린 건지. 전에 아이들이 여러 번 성질을 긁었을 때는 이러지 않았으니 당연히 전자이리라. 아직 어설픈 시스는 전혀 모르는 듯하니, 셔우드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기념품인 셈 치고 챙겨가라.”

“저것들은… 그냥 여기 두고 가렵니다. 가져갔다가 방금 부숴 먹은 지팡이 고친답시고 늑장 부리다 와서 일거리 다 밀리게 했다는 식으로 꼬투리 잡혀서 들들 볶이긴 또 싫으니까.”

“그러렴.”

“무슨 반응이 그렇게 미적지근하십니까. 아니다, 원래 저런 분이시지.”

그래,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셔우드는 미적지근하게 대답하며 구멍 난 나무판을 머리 위에다 죽 쌓아주었다. 시스는 고개를 앞으로 살짝 기울이는 동시에 손을 뻗어 올려진 것들을 받아냈다. 아니, 안 가져간다니까요? 그는 웃으면서 그것들을 바닥에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셔우드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나무뿌리 하나가 갑자기 솟아올라 나무판 더미를 저 멀리 날려버렸다. 빙 돌며 지붕 위로 시끄럽게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도로시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요란하다고 소리치게끔 했던 한 개는 빼고. 도로시와 눈이 마주친 시스는 웃으며 셔우드를 가리키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창문이 다시 쾅 소리를 내며 닫히는 바람에 지붕 위 나무판이 조금 더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래봐야 결국 긴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야 손에 잡힐 높이였지만. 셔우드는 떨떠름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올라가서 내려야겠다.”

“아담한테 맡기시죠. 내일이면 돌아올 텐데. 그때 지시하셔도 늦진 않겠지요. 그동안은 장식품이다, 생각하고 내버려 두시고.”

“또 허튼소리.”

직접 할 수 있는 일에 굳이 남의 손을 빌려야 하나? 그는 그리 덧붙이며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나무판 아래에서 자라난 가시 돋힌 덩굴이 하느작거리더니, 곧이어 나무판이 그것을 타고 미끄러졌다. 잘 봐두었냐고 묻듯이 뒤를 돌아보며 손을 휘저었다. 금세 시들어 바람 한 점에도 잘게 바스러져 날아가는 덩굴을 빼면 조금도 변함없는 공방을 배경 삼아서.

"이렇게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일 텐데. 굳이 더 번거롭게 처리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겠죠. 셔우드 씨 멋지다. 문제란 문제는 다 신속하게 해결하신다."

과장된 밝은 말투와 살짝 늘어지는 말꼬리. 또 허튼소리를… 아니다. 그리 대꾸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오늘만 허튼소리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던가. 아마 이것으로 세 번째? 셔우드는 옆에서 설치는 시스를 곁눈질하며 옆으로 세 걸음 물러났다. 또 장난기가 도진 건가. 애써 눈을 돌려 저 멀리 보이는 나무 꼭대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주변이 다시금 조용해졌다. 셔우드는 다시 옆으로 눈을 돌렸다. 시스는 한 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섭섭하다는 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맞장구쳐주지 않으면 다시금 저렇게 조용해지는 것이 다행이다 싶은 것도 잠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것이 눈에 띄어 다시 먼 나무로 눈을 돌려버렸다.

또 저러신다. 요즘 젊은이들 감성이 좀 이상하다 생각하고 맞장구 좀 쳐주십쇼. 사람이 이렇게 재미없이 살아서야……. 시스는 쉼 없이 재잘거리며 셔우드의 눈앞에서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조금 전의 조용함은 속임수였던 모양이다. 셔우드는 손이 한번 오르내릴 때마다 더 먼 곳에 있는 나무로 눈을 계속 돌렸다. 너른 숲임을 이 순간 몇 배는 더 강하게 실감하며.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상대 성격 뻔히 다 알면서 또 장난기가 도져서는…. 제가 잘못한 게 맞네요.”

“알긴 아는군.”

“전 자기성찰이 확실한 편이라서.”

“그런데 왜 항상 똑같이 구는 거지?”

“성찰은 하되 제대로 된 반성을 안 해서 아닐까요?”

그럼 하는 의미가 뭔데. 셔우드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제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드리는 시늉을 하는 그에게 건조하게 대꾸했다. 시스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답했다. 글쎄요. 아마도 자기만족? 그러면 의미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그런데 언제 돌아갈 생각이지? 답하는 것에 이어 질문 하나를 덧붙였다. 그 말을 들은 시스는 잠시 미동도 없다가, 미묘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 진짜로 가야죠. 진짜로."

"어련하겠어. 그 전에 뭐 하나만 좀 확인해보지."

“왜 갑자기 안 하던 말을 하고 그러십니까. 불길하게. 저도 그 전에 뭐 하나 드려야겠습니다.”

“쉘비…”

“안 차였다고요, 고백도 아직 안 했고! 원래 이런 건 묻지도 않던 분이 갑자기 왜…….”

할 생각은 있었고? 깊게 심호흡하는 시스에게 셔우드가 평소대로의 말투로 물어왔다. 때가 중요하다고요. 전 뭐, 나름 열심히 계산 중이고. 이 얘기는 이제 좀 그만하시면 안 될까요? 거절한다면? 거절을 왜 합니까, 짓궂은 짓 좀 하지 마세요. 됐고, 이거나 받으시죠. 내밀어지는 손에, 어떻게 집어넣었던 것인지 좁은 소매에서 툭 튀어나온 흰색 서류철 하나가 놓였다. 정자로 된 붓글씨가 귀퉁이를 차지한 걸 보아하니, 저쪽 대장- 보름치인가 하는 도깨비가 전달하라 시킨 모양이다.

그러더니 지팡이를 쥐고 허공을 열심히 휘저었다. 처음에는 비뚤어진 원을 그리더니, 안을 온갖 방향의 선으로 채워 넣는 모양새로. 지팡이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푸른 선은 정석과는 많이 동떨어진 방식이었지만, 지금의 허둥대는 그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듯하다. 사실 평소에도 저랬고. 정중앙에서 조금 윗부분에 총구를 닮은 끝부분을 찔러넣고는 손목을 힘껏 비틀며 내리그었다. 평소에는 저런 번거로운 절차 없이 냅다 뚫고 들어가는 식으로, 아주 잘만 오가더니. 셔우드는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하나 한번 보자는 심정이었을까. 머지않아 비틀린 원 한가운데가 회오리치듯 찢겨나가 어둑한 산길이 드러났다. 짜잔, 세상에 이런 진기명기도 없죠! 시스는 왼쪽 어깨에 지팡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쳐놓은 뒤, 너스레를 떨며 양손을 쫙 펼쳐 내밀었다. 드문드문 매달린 청사초롱과 먼발치에 보이는 인가를 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한번 눈짓한 셔우드는 성의 없는 박수를 두어번 쳐주었다. 시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 번 저은 뒤 찢어진 틈새로 뛰어들었다가, 다시 급하게 뛰어나왔다.

“이 말을 깜빡했군요. 모르가나랑 아담한테 안부 좀 전해주세요!”

“어차피 내일 다시 만날 것 아닌가.”

“그래도 좀 전해주시죠. 일단 오늘 제가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부터가… 아니, 어쨌든 전 진짜로 갑니다? 안녕!”

그래, 조심해서 가라. 슬쩍 손을 흔드는 셔우드를 본체만체하며 그는 다시 틈새로 뛰어들었다. 뛰어든 뒤에는, 아까와 같이 지팡이를 틈새의 가장 아래쪽부터 위까지 올려쳐 다시 닫아버렸다. 그리고 저기 적힌 것들은 다음주 목요일까지 부탁드립니다- 그리 말하고는 정말로 가버렸다. 저렇게까지 안 해도 대신 다 닫아줄 텐데. 셔우드는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일까지 멀쩡히 남아나기는 할까. 모르겠다. 내일까지 살아있으면 제 발로 걸어서 오겠지. 그는 방금 떠난 시스에게 신경을 쓰지 말기로 마음먹었다. 오히려 위층에서 제 할 일을 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면 가졌지, 오늘따라 유독 희한하게 행동하는 녀석까지 종일 생각하는 것은 그에게는 벅찬 일인 듯하다. 나중에 모르가나가 물어보면 대답할 것 같으니 그때 엿들으면 되기도 하고. 셔우드는 여전히 닫힌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내킨다면 이 자리에서 나무 하나를 길러내서 바로 창문으로 타고 들어가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그럴 이유가 전혀 없기에 다시 안으로 들어가 작업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탁자 위에 널브러진 복잡한 모양새의 공구들을 천천히 주워 모아 다시 병 안에 차례로 꽂고, 거치대를 다시 접어 마찬가지로 공구 사이에 꽂으려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서랍에 집어넣고, 아무렇게나 놓인 병 중에서 뚜껑이 열린 것들은 다시 닫아서 찬장 빈 곳에 적당히 놓아둔 뒤, 시스가 가져다 둔 의자를 원래 있던 자리에 되돌려두니 겨우 정리가 끝났다.

그는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몇몇 계단이 삐걱거리는 것을 보니 나중에 한 번 손볼 필요가 있을 듯했다. 이럴 때마다 차라리 긴 사다리를 놓아둘 걸 그랬다는 듯한 눈빛을 짓기는 하지만, 그리 큰 후회도 아닌지라 금방 평소처럼 돌아오곤 한다. 몇몇 계단 끝자락에 금이 간 것이 눈에 띈다. 아직은 부서지지 않았지만. 공중에 조금도 뜨지 못하는 아이들과 몇 년 동안 동거하는 것은 제법 번거로운 법일까. 금가고 삐걱대는 계단의 수를 헤아리며 오르다 보니 그는 어느덧 2층 층계참까지 올라와 있었다. 3층까지 올라오니 애꿎은 책상을 연달아 치는 소리가 더욱 크고 선명하게 들려온다. 아스터는 대부분의 경우에 얌전히 구는 편이니 아마도 도로시의 짓이겠지. 이미 어느 정도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문을 열어본다. 역시나 일정한 간격으로 책상을 내리치는 도로시와, 그 옆에서 종이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아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셔우드는 아무 말 없이 그 둘이 하는 행동을 묵묵히 관찰했다. 얼핏 보니 종이 맨 위에 ‘마법과 과학의 기술 결합 사례’라고 적힌 것이 보인다. 아무래도 학교 숙제인 듯한데, 물어봐도 숲 밖의 것에는 문외한인 셔우드가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는 것이 없다면 차라리 무시하는 것이 나으니, 아이들의 눈에 띄기 전에 그는 먼저 조심히 문을 닫으며 뒤로 물러났다. 차피 묻지도 않을 모양새였는데 설레발치는 재주가 제법이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기에 굳이 그것을 뛰어넘으려 하지 않았다. 주변에 적당한 너비의 원 하나를 그려, 그 안에만 머무르는 것. 그게 끝이었다.

셔우드는 웬일인지, 삐걱거리는 계단을 이용하는 대신 난간을 잡고 뒤로 몸을 젖혀 가볍게 훌쩍 뛰어내린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작업실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평소보다 더 미묘해진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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