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드레] 너를 위해서.
Happy Christmas!
"너 그거 알아?"
"뭐."
"요즘 호그와트에서 말포이랑 한 번도 안 자본 슬리데린 여학생이 없대."
"걔가, 뭐 그렇겠지. 슬리데린이잖아."
"그래서, 말포이네 아빠가 지금 노발대발하고 있다나."
"근데 그게 왜?"
"그런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맨날 놀러 다니다가, 몇 달 전부터 끊었다잖아."
"뭐? 뭐 때문에."
"요즘, 말포이랑 포터랑 같이 있는 걸 본 사람이 한 둘이 아니야."
"헐,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대- 진짜일 수도 있지."
요즘 호그와트 학생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말포이었다. 그가 안았던 여자는 한 둘이 아닐 정도로 거의 매일 밤을 같이 보냈지만, 최근 들어 줄어들었는데. 추측하건대, 그 이유가 바로 엄청나게 서로를 증오하는 해리라서이다. 그거 이외에는 정말 이유가 없다며 거의 반 확신하는 분위기였는데...
해리는 요즘 고민이 있다. 시험도 끝났고, 이제 곧 크리스마스인데 무슨 고민이냐고? 바로, 드레이코가 자신을 더는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이다. 예전엔 살갑게는 아니어도 하루에 몇번씩이나 찾았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볼까말까로 텀이 길어졌다. 오늘도 드레이코를 몰래 찾았지만 바쁘다며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해리는 내심 서운해져 괜히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화풀이를 하곤 풀리지 않는 숙제를 쳐다만 보았다. 숙제를 보다 보니 또 공부한다던 드레이코가 생각나 가슴 속에서 화가 날랑 말랑 끓어올랐다.
'젠장'
해리는 머릿속으로-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욕을 한마디 내뱉고는 들어오지도 않는 룬 문자를 계속 쳐다만 보았다. 제 가장 친한 친구들이 도와주겠다며 다가와도 밀어내기만 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
드레이코는 요즘 고민이 있다. 이제 해리를 더는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아서이다. 뭘 해도 마냥 괜찮아 보였던 번개 대가리가, 이제는 뭐든지 단점만 보이는 거 같았다. 전에는 장점 리스트를 쓰라면 지구 끝까지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 안 나고 오히려 단점 리스트만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드레이코는 그런 해리를 계속 보다간 뭐라도 실수할 것 같아-사실 핑계고 그냥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요 근래 해리의 연락을 건성건성 대답해줬는데, 그런 제가 해리도 지겨워졌는지 더 이상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드레이코는 복잡한 가슴속을 던져두고 지금 당장의 쾌락을 좇아 나섰다. 해리 같은 머저리는 던져두고, 보기에 좀 좋은 여자 몇이나 만나서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어휴, 뭐 어때. 이제 걘 신경도 안 쓰는데."
드레이코는 기숙사 방 밖으로 나갔다. 이게 맞아? 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무시하고 쾌락을 좇아 나섰다.
그래, 처음엔 좀 괜찮았던 거 같기도 하다. 번개 대가리가 좀 예뻐 보여야지. 맨날 같이 다니는 위즐리나 잡종은 제쳐두고 해리의 얼굴만 눈에 보였던 게 시작이었다. 깊은 녹안도 계속 아른거리고, 그의 콧대도 신이 빛은 듯 매끄러운 게 눈에 보였던 게 시작이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붉은 입술이 예뻐서 계속 골든 트리오를 따라다녔다. 주변에서는 드레이코가 드디어 미쳤다며 잡종까지 따먹으려 한다고 수군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해리를 몰래 끌어들이기 일쑤였다. 그래, 그 잘난 드레이코가 남자애 하나 가지려고 별 짓을 다 하고 다녔다니까?
"포터."
점술 수업이 끝나고 난 후 드레이코가 여느 때처럼 해리를 또 불렀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던 해리는 드레이코에 목소리에 그를 쳐다봤다.
"네, 네- 또 부르시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예상과 다르게 비꼬는 투로 말하는 해리에 당황한 드레이코는 횡설수설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곤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이 시간이나 때우다가-"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포터, 들어."
조금 비꼬던 해리가 드레이코를 똑바로 쳐다봤다. 드레이코는 그 눈빛에 순간 정신을 놓을 뻔했지만 침착히 말을 이어갔다.
"역시 멍청한 포터는 들으라고 말을 해야 집중이라도 좀 해주네."
드레이코의 무시하는 태도에 심기가 불편해진 해리가 뒤돌아 골든 트리오에게로 발을 떼려는 순간 드레이코가 말했다.
"포ㅌ..."
아니, 정확히는 입을 뗐다고 해야 하려나. 드레이코가 겨우 입을 뗀 걸 해리는 눈치채지 못 한 듯 제 친구들에게로 다가가 뭐라 떠들기 시작했다. 드레이코는 자신에 관한 말일 것이라 확신하며 그들에게서 멀어져 자신의 기숙사로 걸어갔다.
"해리! 드레이코가 또 뭔 짓 했어?"
"날마다 똑같겠지, 부모도 없는 번개 대가리가 어쩌구, 잡종이랑 위즐리는 어쩌구"
론이 드레이코를 따라 하자 주변 아이들이 똑같다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론은 조금 들뜬 듯 더 신나서 따라 했고, 헤르미온느는 그런 론을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냐, 그냥 아무 말도 안 했어."
해리의 조금 차가운 태도에 론과 헤르미온느는 의아하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둘은 눈짓을 주고받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말포이가 진짜... 아무 것도 안 했어?"
"안 했다면 좀 안 했다는 줄 알아."
해리는 요즘 자꾸 드레이코가 불러서 그런지 조금은 짜증이 나 있었다.-화가 난다고 해야 하려나- 쉬는 시간, 수업 시간 할 거 없이 급한 일이 있다며 오지 않으면 죽어버릴 태세로 불러 놓고는, 하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이 시답잖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었다.-방금처럼 말이다!-아무튼 해리는 그런 드레이코가 싫어서 자꾸 밀어내려 하지만, 드레이코는 끊임없이 해리에게 집착했다.
-
"내가 그렇게까지 부족하다고 생각해?"
드레이코는 슬리데린 커먼룸 한 가운데 앉아 제 양옆에 앉아있는 크래브와 고일에게 물었다. 지하라 그런지 살짝은 차가운 공기와 축축한 분위기가 몸을 짓누르는 듯했다. 물 속 지하라 꿉꿉한 습도에 드레이코의 짜증이 더욱 심해졌다. 고일과 크래브는 어떤 걸 말하는지 몰라 그저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드레이코는 답답한지 둘은 한 대 쥐어박고는 말했다.
"연애 상대로써 말이야."
"네가 부족할 게 뭐가 있어."
크래브가 먼저 입을 떼자 고일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한 손에는 드레이코에게 온 선물인 초콜릿 도넛 세트를 들고 말이다.
"지금 이것도 여자애한테서 받은 거잖아."
드레이코는 답답한지 그저 한숨을 한 번 쉬고 소파에서 일어나 자신의 기숙사 방 쪽으로 걸어갔다. 아까보다 더 추운 복도에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곤 로브를 더욱 더 동여매 온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두 손으로 양 어깨와 팔을 비비며 몸을 움츠려 제 기숙사 방으로 들어갔다. 조금 따듯한 이불에 드레이코는 앉았다.
'정말 말이 안 통하네, 저런 애들에게 조언을 구하려는 내가 바보지.'
-
해리는 기숙사에 혼자 앉아 있었다. 붉은 이불로 제 몸을 감싸 쌀쌀한 가을의 추위를 피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점심을 먹으러 사라진 거 같았고, 해리는 속이 안 좋다는 뻔한 거짓말로 빠진 상태였다.
"하..."
요즘따라 드레이코의 호출-을 빙자한 구애-을 적잖이 많이 받은 터라, 피곤해 죽을 맛이었다. 드레이코가 와서 하는 일이라곤 빤히 쳐다보다가 고백하곤 사라지기-이젠 그냥 '너 혼자 사랑하세요-' 따위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방금처럼 정말 아무 말도 안 하기와 같이 시간만 버리기 일쑤였다. 처음엔 해리도 당황하곤 무슨 소리냐며 난 네가 싫다고 밀어냈지만, 현재는 그냥 비꼬면서 넘길 수도 있게 되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이다.
괜히 머리가 복잡해진 해리는 비척비척 이불을 들고 소파에서 일어나 제 침대로 풀썩 뛰어들어 잠을 청할 뿐이었다.
-
그 해 늦은 봄에서 초여름쯤이었던 거 같다. 평소대로라면 해가 졌을 시기이지만 여름이라고 점점 길어지는 해에 해리와 드레이코는 아직 실외 정원에 남아 있었다. 드레이코가 몇 번째일지 모를 고백을 내뱉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평소와 달랐다.
"그리고... 포터. 나 너 맘에 들어."
"응, 나도."
드레이코는 방금의 고백에 돌아올 대답을 혼자서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1번, 너 혼자 열심히 사귀어- 하며 비꼬기 2번, 무시하기. 3번, 어쩌라고. 하지만 해리가 내뱉은 말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잠시 굳은 듯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잠시만, 진심으로?"
"응, 진심으로."
"..."
드레이코는 너무 좋은 나머지 말이 안 나오는 것일까 당황한 나머지 말이 안 나오는 것일까 고민하다 결론을 내길 포기했다. 드레이코는 해리의 반응을 조심스레 살피며 대화를 이어가려 애썼다.
"갑자기, 이렇게... 말하면."
"취소할까?"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횡설수설하는 말포이에 해리는 재미있다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말포이는 얼굴이 새빨개져선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왜, 항상 먼저 고백하던 건 너였잖아. 왜 네가 더 부끄러워 해, 드레이코."
"그러니까... 그게, 어, 음..."
조용히 드레이코는 사랑에 빠진 달콤함과 성공했다는 성취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드레이코의 눈을 마주치곤 살짝 웃어 보였다. 손을 잡으려 주머니 속으로 손을 찾으려 애쓰는 드레이코의 손가락질을 해리는 마주 잡았다.
행복의 시작이었다.
-
6개월 뒤
"저... 해리."
주뼛거리며 다가오는 드레이코를 웃으며 바라보는 해리였다. 드레이코는 할 말이 있는 듯 안절부절못하며 해리의 눈치만 살폈다.
"응, 왜?"
"그... 나, 오늘 밤에는 못 만날 거 같아."
항상 만나던 밤에 못 만난다니, 해리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10분 정도는 꼭 보고 가던 드레이코가 이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조금 불친절한 말투로 이유를 물었다.
"왜."
"친... 구우... 랑 약속이, 있어서."
왠지 어색해 보이는 드레이코의 말투에 해리가 드레이코의 고개를 바로 해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드레이코는 그마저도 시선을 피해버렸지만.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누구랑."
"그... 냥, 친구! 하... 하하..."
"그러니까, 그냥 친구 누구."
"시어도어일... 걸?"
아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해리는 재차 물어봤다.
"확실한 거 맞아? 내가 물어보기 전에 말해."
"음... 아마도?"
계속 뜸을 들이는 드레이코에 마음이 조급해진 해리는 드레이코를 계속해서 추궁할 뿐이었다. 드레이코는 그런 해리가 부담스러워 자꾸 밀어내려 했지만 해리가 계속 드레이코의 눈을 좇으며 하도 물어보는 탓에 불편해 죽을 지경이었다. 드레이코의 주변 공기만 달라진 듯 제 몸을 짓누르는 탓에 얼른 여기를 탈출하고 싶어졌다.
"그, 그럼... 난 다음, 수업이 있어서...!"
빠르게 해리의 곁을 탈출한 드레이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필요의 방으로 직진했다. 왜인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
필요의 방에 들어온 드레이코는 해리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뭘까 고민했다. 이런 걸 잘 챙기지 않는 드레이코지만, 올해에는 해리에게 한 번쯤은 선물해보고 싶어졌다. 아직 11월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해리에게 완벽한 선물을 주고 싶은 드레이코는 벌써 준비를 하며 다섯 살 어린애처럼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마음 같아서는 세상에 모든 좋은 것이란 다 모아서 선물해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말 포라고 해도 그렇게 하면 해리가 부담스러워할 까 그저 생각만 해놓은 계획이었다.
"해리에게 직접 물어볼까..."
드레이코라 한들, 머글 집안에서 자란 부모 없는-취소하겠다-혼혈 남자애는 처음 사귀어 보는 거라 대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조차 모르겠어 머리를 쥐어뜯을 뿐이었다. 망할 필요의 방은 이럴 때 해결책을 주지도 않는다.
아무리 고민해도 도저히 확신이 안 서는 탓에 드레이코는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몇십 분 정도를 더 필요의 방에만 처박혀 있던 드레이코는 오늘도 포기하고 자신의 기숙사로 향했다.
-
해리는 아까 전 어색하게 헤어진 드레이코를 의심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사라진 드레이코의 빈자리만 바라보고 있던 해리는 저에게 다가오는 론과 헤르미온느에 생각을 다 마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해리!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한참 찾았잖아!"
헤르미온느가 해리에게 말했다. 해리는 차마 드레이코 때문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머리 속이 하얘졌다. 드레이코 이외에는 생각나는 다른 마땅한 이유가 단 한 개도 없어 그저 뇌의 모든 부분이 굳어버린 거 같았다. 눈동자가 점점 흔들리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해리를 보며 론이 입을 열었다.
"그게... 어, 음..."
"또 교장 선생님이랑 만나고 왔나 보지."
극적으로 자신을 도와준 론에게 고마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진짜 구원자라는 표현을 이럴 때 쓰나 보다. 아직 제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말포이 도련님과의 연애 사실이었기 때문에 놀란 가슴을 달래려던 순간, 론의 손가락이 제 손바닥에 닿아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좀... 이... 따기...숙사... 에서... 봐?'
젠장, 구원자라는 말 취소다. 이미 다 들킨 거 같은 싸한 느낌에 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
따듯한 기숙사 방 안이다. 살짝은 쌀쌀했던 복도를 지나 뚱뚱한 초상화에 암호를 외치고 들어오는 순간 살이 모두 녹는 느낌이 들었다. 다들 춥다며 문을 빨리 닫으라는 부탁이 들려왔다. 활활 타오르는 기숙사 벽난로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던 순간 론이 제 팔을 잡아끌었다.
"헤르미온느, 우린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
헤르미온느는 알겠다는 듯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여자 기숙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저기 깔린 카펫에 나는 발자국을 보고 있으니 론이 정신팔지 말고 빨리 가자며 날 끌어당겼다. 벽난로의 따듯한 온기가 멀어졌다.
"해리, 너 우리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제 기숙사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대뜸 론이 말했다. 물론 문단속을 단단히 한 채로. 해리는 뜨끔해 살짝 놀라 아주 잠깐 표정 관리에 실패할 뻔했지만 금세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오곤 태연히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숨길 게 뭐가 있겠어. 너희는 내 소중한 친구인데."
"요즘 밤마다 나가는 것도 알아, 처음엔 교장 선생님이 알리지 말라고 하는 비밀 업무라도 있나 싶었는데 오늘 보니까 그런 것도 아닌 거 같더라, 대체 뭔데?"
"교장 선생님이 부르셔서 나간 거 맞아. 왜 그래."
해리는 론의 추리에 당황해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말을 이었다. 물론 말투는 누구보다 태연하게 했지만. 더 이상 교장 선생님 업무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거 같아 보이자 조용히 론의 말을 기다리는 척 다른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그렇게 나가서 늦게 들어오면 항상 숨은 가득 차 있고 옷차림은 엉망에 다른 사람 향이 난다고.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아냐?"
향까지 추리하는 론의 행보에 당황한 해리는 되려 론에게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넌 변태야? 왜 남의 향까지 관찰해."
"그럼, 말을 해 주던가!"
되려 론에게 성내는 해리에 기분이 나빠진 론이 더욱 언성을 높였다. 론의 목소리가 다른 방까지 들릴까 걱정한 해리는 포기한 척 론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어휴, 됐어. 그냥 그런 일이 있어서 그래."
"하... 넌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너 지금 연애하냐고 묻는 거잖아."
론의 말에 해리는 또 다시 세상이 멈춘 듯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추리가 점점 진실과 가까워지자 불안해진 해리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투로 되물었다.
"뭐? 연애?"
"그러지 말고 빨리 말해봐, 누군데 그래. 기숙사는 어디야? 레번클로? 아니면 우리 기숙사?"
이미 망한 거 같은 느낌에 해리는 불안감을 느끼곤 자꾸 시선을 딴 곳으로 던졌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해리에 론은 확신한 듯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예뻐? 공부는 잘해?"
"그만 물어봐. 내일 헤르미온느랑 같이 있으면 말해 줄게."
끊임없이 물어보는 론에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던 해리는 내일 말해주겠다는 핑계로 은근슬쩍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내일 론이 이 주제를 꺼내면 모르겠다며 반박을 해야지. 자신의 계획이 완벽하다고 생각한 해리는 승리의 안도감을 느끼며 그냥 침대에 누워버리려고 했다.
"지금 말해도 되잖아. 헤르미온느 불러올까?"
"아니,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부르지 마. 나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해."
아뿔싸. "내일"이 아닌 "헤르미온느"에 포인트가 꽂혀버린 론은 당장 헤르미온느를 불러오겠다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론의 뒤를 따르며 해리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는-맞긴 했다-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며 부르지 말라고 말렸다.
"마음의 준비는 개뿔, 코먼 룸으로 오라고 한다? 이제 시간도 늦어서 사람 얼마 있지도 않을 거야."
"그게 무슨..."
젠장. 망했다. 해리는 생각했다.
-
"아까 둘이 할 얘기 있다며."
"아니, 그게, 왜 이렇게 빨리 왔어. 헤르미온느."
"얘가 아까 좀 이상하길래.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거든? 근데 얘가 당황하면서 말을 안 하는 거야, 그리곤 내일 너랑 같이 있으면 말해주겠다고 해서. 데려왔어!"
아까 있었던 일을 거의 완벽하게 요약해주는 론에 해리는 어쩔 줄 모르며 식은땀이 났다. 사실 아까부터 등줄기에 축축이 땀이 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양이 세 배는 늘어난 거 같았다. 6개월간 거의 완벽하게 숨겨오던 비밀이 들킬 거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아니... 나는... 그냥..."
"그러지 말고, 너 진짜 만나는 애 있지?"
"만나는 애라니?"
뜬금없이 나온 단어에 헤르미온느가 되물었다. 아까 론이 말 할 때는 몰랐는데, 헤르미온느가 만나는 애. 라고 말하니까 더더욱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하... 그래. 나 데이트 하는 애 있어."
"뭐? 이게 진짜네...?"
잠시 동안 론을 아바다 케다브라로 죽일까 크루시오로 고통스럽게 할까 고민하던 해리가 그냥 인정해버렸다. 더 이상 진절머리 나게 싸우고 싶지도 않고, 론이랑 헤르미온느인데. 이해해 주겠지로 눈 딱 감고 질러버렸다. 뭐, 상대가 누군지만 안 밝히면 되는 거 아닌가?
"우리... 기숙사는 아니고."
"공부 잘 해?"
"조금?"
"예뻐?"
"그것도 조금."
"착해?"
"글쎄."
"설마 슬리데린이야?"
"아이, 그러지 말고 누군데?"
계속해서 질문을 내뱉는 론과 헤르미온느에 넌더리가 난 해리가 그만하라고 말하려던 순간 론이 누구냐고 물어왔다. 사실 아까까지만 해도 누구인지 밝힐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막상 궁금해하는 둘의 얼굴을 보니 알려줄 수 없다고 하기에도 모호해진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드레이코라고 밝히면 이 망할 질문 세례가 끝나겠지, 하지만 그만큼 욕도 엄청 많이 먹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밝히지 않는다면, 며칠 동안 진짜 누구냐고 계속해서 물어올 것이 뻔했고, 심하면 우리 사이에 그런 것도 말 안 해 주냐며 토라져 버릴 것이 뻔했다.
"...드... 레이코"
결국 작은 소리로 애의 이름을 꺼냈다. 거의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로 내뱉었기에 잘 듣지 못한 헤르미온느와 론이 재차 물어봤다.
"뭐라고?"
"드레이코."
"...ㅈ, 잠시만. 내가 잘 들은 게 맞아?"
"맞는 거 같아... 헤르미온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둘에 저도 부끄러워져 얼굴이 붉어졌다. 해리는 둘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보다가 곧 거의 눈으로 욕하는 수준으로 노려보는 해르미온느와 이게 대체 무슨...? 이라는 눈으로 쳐다보는 론의 눈빛에 기세가 눌린 척 다시 얌전해졌다.
"ㄷ... 드레이코 말포이?"
언성이 높아진 론에 코먼 룸 다른 한 쪽에 있던 아이들이 이쪽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해리는 놀라 눈이 커진 채로 론의 입을 막으며 그만하라고 막았다.
"조용히 해!"
"진짜 이해가 안 되는데, 왜 그런 애랑..."
"...귀찮게 자꾸 고백하니까 그렇지."
"헉, 그럼 그때 계속 불렀던 이유가...!"
그제서야 말포이의 잦은 호출을 이해한 론이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는 모든 걸-아직 하나가 남아 있었지만-말해 조금은 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말포이가 왜 너한테 고백을 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걔는 너 어디가 좋아서 만나, 그냥 지독한 혐오 관계 아니었나?"
"...내가 잘생겼대."
"뭐? 아니 잠시만 그거 좀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냐? 드레이코는 매일 다른 여자애들이랑 자고 다니는데 너 같은 남자애가 뭐가 이쁘다고 사귀어?"
"나 멕이는 거지, 론."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로 객관적으로 생각을 좀 해봐. 말포이가 널 좋아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헉, 설마."
론이 뭔가를 깨달은 듯 놀란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헤르미온느는 둘의 대화를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보다 론의 감탄사에 고개를 돌려 론 쪽을 바라보았다.
"또 뭐가."
"사실 '그 사람'이 말포이한테 비밀 미션 같은 걸 준 게 아닐까? 막, 막 널 죽이라고 한다던가 그런 식으로?!"
"그렇다고 하기엔... 좀 너무 진심인 거 같지 않아? 6개월 동안 질질 끌었겠어? 말포이 성격에?"
거의 론이 말을 마치자마자 헤르미온느가 반박했다. 해리는 동의한다는 듯 아무 말 없이 론을 바라보았다.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리고 말포이는 지금 거의 진심이야. 나도 그렇고."
"네가? 진심이라고? 진짜 내 제일 친한 친구가 그러다니 믿을 수 없다. 어떻게 말포이랑 사귈 생각을 하냐. 고백을 계속했으면 계속 철벽을 쳤어야지!"
론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헤르미온느도 비슷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지 해리를 보았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진짜 진지하게 대체 어디가 좋은 거야, 해리?"
"...예쁘잖아."
"예쁘긴... 우리한테 했던 짓을 생각해 봐."
"..."
-
"이게 맞아?"
아직 12월도 채 되지 않았는데 쏟아지는 선물들을 보며 드레이코는 생각했다. 부엉이장에 제 이름으로 쌓여가는 선물들이 너무 많아 잠시 버리고 갈까 고민했다. 여자애들의 시답잖은 선물들에 지루해져 떠나려던 순간, 익숙한 필체가 하나 눈에 띄었다.
"해리?"
해리의 이름이 떡하니 적혀있는 것을 보고 궁금해진 말포이가 편지의 포장을 뜯었다.
"드레이코에게, 미... 안? 말... 해버렸어? 뭘?"
급하게 썼는지 완성되지도 않은 문장에 의아해하기도 잠시, 뒤에 나타난 해리에 드레이코는 말을 걸었다.
"해리, 이 편지 뭐야?"
"...말했어."
"누구한테? 뭘?"
"론이랑 헤르미온느한테, 우리 사이."
"뭐? 우리 그건 서로 준비될 때까지 말하지 말자고 했잖아."
이어지는 해리의 말에 가슴이 철렁한 드레이코는 짐짓 딱딱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 눈치를 살피던 해리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어쩔 수가 없었..."
"어쩔 수가 없어? 난 너랑 비밀 때문에 포기한 게 몇 개인지 알아? 친한 친구면 애인이랑 한 약속 막 그렇게 깨도 되는 거야?!"
변명 같아 보이는 해리에 말에 성이 난 드레이코는 언성을 높였다. 그런 드레이코에 심기가 불편해진 해리도 적반하장으로 언성을 높일까 하다 그저 화를 억누르며 상황 설명을 시도했다.
"그럼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보는데 어떡해, 언제까지고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끝까지 숨겼어야지."
한 음절 한 음절 힘 주어 말하며 어금니를 꽉 깨무는 드레이코에 해리는 기분이 상했다. 아무리 드레이코라고 한들, 제 친구들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태도에 서운해 미칠 지경이었다.
"...넌 론이랑 헤르미온느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르잖아"
"애인보다 소중해?! 애인보다 소중하냐고!"
드레이코가 아까보다 언성을 높여 해리에게 거의 소리 지르듯 말했다. 언제는 자신밖에 없다더니, 이젠 또 친구 탓을 하며 비밀을 불어버리는 행태에 점점 감정이 과격해져만 갔다.
"넌, 매일 밤에 만나지도 않고 다른 데로 사라져 버리잖아."
"ㄱ... 그건, 이유가 있어서 그래."
"무슨 이유? 새로운 여자애나 몇 만나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
"됐어. 그만하자"
해리가 말싸움의 끝을 알렸다.
-
"아이 씨, 그만하라지."
부엉이장에서 내려와 다시 성으로 들어가는 길에 론과 헤르미온느를 만났다. 11월의 쌀쌀한 바람이 볼을 스쳐왔다. 해리는 괜히 화풀이하듯 신발 앞코로 땅을 헤집으며 거친 말을 내뱉었다.
"오늘도 도련님?"
연애 사실을 알게 된 지 며칠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익숙하다는 듯이 맞받아치는 론이었다. 둘이 싸우는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일이 적잖게 포착되었던-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터라 헤르미온느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오우. 싸웠나 본데?"
"걔 언급하지 마."
"망했네."
"너희들한테 말한 게 이렇게 화낼 일이야?"
"뭘?"
"우리 사귄다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헤르미온느가 되묻자 해리는 괜히 둘에게 짜증을 냈다. 가만히 있다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된 헤르미온느와 롬은 적반하장으로 해리에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우리는 너희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거밖에 모르는데."
"내가 너희들에게 무슨 조언을 구하려고 한 거냐... 말을 말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둘에 그저 포기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둘 다 연애 경험이 거의 없었던 터라 조언을 구하기는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어 해리는 빠르게 복도를 빠져나갔다.
"아니 잠시만, 해리! 해리!!"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해리는 눈을 질끈 감고 무시한 채 뛰어갔다. 우정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
부엉이장에 홀로 남은 드레이코는 부엉이들의 울음소리와 쌓여가는 선물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도저히 혼자 가져가기에는 힘에 부칠 거 같아 크래브와 고일을 부른 참이었다. 드레이코는 생각했다. 차마 자기가 어떤 말을 내뱉었는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처음엔 정말로 서운해서 언성을 높였지만 그다음부터는 해리도 같이 언성을 높이니 어쩔 수 없이 말이 세게 나간 것이라고 자기합리화를 시도했다. 드레이코는 익숙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항상 죽음을 먹는 자들 일을 할 때마다 느꼈던 기분이 가슴을 찔렀다. 이 기분이 소름 끼치게 싫어 빠져나가려고 다른 생각을 시도해 봤지만 빠져나가긴 커녕 더욱이 그 생각만 날 뿐이었다. 마치 하나의 덫과 같이 탈출을 시도하면 제 숨통을 더욱 더 조여 매는 거 같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진짜로 숨통이 조여오는 듯 가슴이 답답해진 드레이코는 넥타이를 조금 더 풀어 편하게 유지하려고 했다. 때마침 고일과 크래브가 도착해 왜 불렀냐고 묻기 시작했다. 드레이코는 여느 때와 같이 한쪽 구석에 삐뚜름하게 서 들고 가라고 지시할 뿐이었다.
-
고일과 크래브를 선물을 들고 가게 시킨 후 드레이코는 둘과 갈라져 필요의 방으로 들어갔다. 요즈음 자주 찾아서 그런지 낯익어진 향과 분위기에 기분이 조금 풀어졌다. 드레이코의 필요의 방은, 깨끗하고, 냄새나지도 않았으며, 단지 드레이코만을 위한 공간 같이 그에 걸맞은 가구들이 배치되어있는 모습이었다. 소파에 걸터앉은 드레이코는 언제나 그랬듯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선물을 줄지 알아야 내가 뭐라도 해주지."
오직 몸만을 위한 만남이 아니고서야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았던 드레이코는 정보가 하나도 없는 머리에서 뭐라도 쥐어짜 내려 애썼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 드레이코는 골똘히 생각하다 뭐가 기억난 듯 고개를 들었다.
"뭐... 꽃이라도 줘야 하나?"
주변 친구들이 꽃 선물을 주는 걸 자주 보았기 때문에 드레이코는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꽃이 좋을까 생각하던 차에 필요의 방 한쪽에 꽃이 나타났다.
"새로운 시작?"
흰 튤립과 함께 나타난 메모지에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꽃말과 함께 다발로 묶여 있었다. 아름답게 엮인 꽃들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던 드레이코는 또 다시 제 옆에 서서히 나타난 꽃들을 발견하곤 그 쪽으로 걸어갔다.
"나를 용서해주세요?"
보라색 히아신스가 몇 송이 놓여 있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리본으로 대충 묶여 있었지만, 그마저도 아름다웠다. 여러 개의 꽃들이 모여서 한 송이를 만들어 내는 히아신스를 보니 다시 고민이 생기는 드레이코였다. 이번엔 뒤쪽에서 나는 소리에 드레이코는 고민을 멈추고 다가갔다.
"미안해."
이번엔 차분히 꽃말을 읽은 드레이코는 장미들을 빤히 보았다. 딱 15송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만 전해 달라는 것인가. 자주 보았던 장미이지만 이렇게 보니 또 예뻐 보여서 고민하는 드레이코였다.
-
12월의 중순이었다. 눈이 아직 오진 않았지만 추워지는 날씨에 로브를 더 단단히 껴입는 호그와트 학생들이었다. 아직도 화해하지 못한 해리와 헤르미온느 그리고 론은 어색해져 둘만 다니고 해리 혼자 다니는 일이 허다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고백했다 차였다느니 론과 헤르미온느가 사귄다느니 하는 소문은 돌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하아..."
순식간에 론과 헤르미온느 그리고 드레이코와 모두 멀어진 해리는 어찌할 줄 몰라 방치만 몇 주째였다. 먼저 다가가 사과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라 고민하던 해리에게 론이 먼저 말을 걸었다.
"그... 저 해리."
"응."
"..."
한참의 정적. 어색한 공기만이 어깨를 짓눌렀다. 해리는 이런 공기를 전에도 느껴본 적 있었다. 드레이코가 말도 없이 사라졌을 때. 해리는 이 분위기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터라, 결국 먼저 사과를 건넸다.
"...미안."
"아냐, 네가 뭐가 미안해."
"너무 나만 생각한 거 같아서. 진짜 미안해."
"아니라니까. 네가 아니라 우리가 사과해야지."
"나는 너희가 그렇게 진지하게 만나는지 몰랐어. 사과할게. 그냥 홧김에 만난 사이인 줄 알았지."
진심으로 사과하는 헤르미온느와 론에 조금 받아줄 마음이 생긴 해리가 입을 열었다.
"...곧 300일이야."
"벌써?"
"근데 아직도 화해 못했고. 맞지?"
예상보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며 놀라는 론과 해리가 미묘하게 슬픈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눈치챈 헤르미온느의 반응이 엇갈렸다.
"...귀신같네."
별로 뭔갈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아낸 헤르미온느에 조금 놀란 해리가 덧붙였다. 셋은 화해와 동시에 해리와 드레이코의 연애 상담을 하게 되었다.
-
2주 뒤였다. 결국 크리스마스는 돌아왔고, 해리는 드레이코에게 용기 내 먼저 만나자고 연락한 참이었다. 눈 쌓인 안뜰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서 있던 해리는 오랜만에-지나가면서 몇 번 스치긴 했지만-보이는 백금발에 반갑게 손을 흔들려다 둘의 사이를 깨닫곤 다시 손을 내렸다.
"해리."
"드레이코."
"해피 크리스마스."
"너도. 해피 크리스마스."
형식적인 인사말만 건네고 다시 서먹해진 분위기에 멋쩍어진 드레이코는 해리에게 먼저 선물을 건넸다. 추운 겨울날에도 보존 마법을 걸어놔 생생한 꽃다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물."
"......푸흣"
아까 걸어올 때 엉거주춤 뒤에 숨기고 걸어오는 폼이 다 보였던 드레이코라 해리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동시에 드레이코도 고삐가 풀렸는지 따라 웃기 시작했다. 안뜰이 웃음소리로 시끄러워질 무렵, 해리가 드레이코에게 선물을 주었다.
"우리... 그래도 300일 됐는데, 커플링이 없는 거 같아서."
말을 하면서 해리는 드레이코의 손을 잡았다. 추워서 로브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니 아직 따듯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희고 가느다란 드레이코의 약지에 반지를 끼우는 순간, 드레이코는 해리의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해리는 그대로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돌려 드레이코에게 버드키스를 하고 떼어내려던 순간, 드레이코는 아쉬웠는지 다시 해리의 목을 잡고 더 깊게 키스했다.
97년의 크리스마스였다.
-
해리는 드레이코에게 여러모로 처음이었다.
악수를 건넸지만 무참히 무시당한 것도.
예쁘다고 느껴 거의 몇 달을 쫓아다녔던 것도.
이렇게까지 신경 써봤던 것도.
남에게 관심을 기울여 선물을 골라봤던 것도.
하지만 단언컨대 제일 좋았던 것은 사랑해본 것이 아니었을까.
-2023. 12. 25. Copyright 림림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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