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2024.05.15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선명하게 보이는 감정에 잠깐 고개 숙여 제 허리께에 매달린 가방 본다. 지금은 그도 큰 착각을 하고 있어서, 이 상태를 유지한다면 아집의 행동에 대해 더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게 무슨 상관이 있더라. 그런 건 모르겠다. 아집을 더 알아도 자기혐오만 짙어질 뿐,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아서 이만 카즈이를 깨우기로 한다. 꼭 잠에 든 것처럼 제 앞도 제대로 분별 못 하는 꼴이 방금까지의 자신 같아서, 으득 소리가 나게 이 악문다.) 무쿠하라 씨, 저는 정신 차렸습니다. 추태를 보여버렸네요. ···그가 명한 대로라면, 저는 ‘질서’입니다. 네, 그의 말대로라면요. 이런 무법자가 어디가 질서고, 사명감이 뛰어나다는 건지······. 저는 그저, 과거에 빠져 미련만 가득 더해진 발을 질질 끌며 나아갈 뿐입니다. 아마도, 그것뿐입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정신 차리세요. 저는 아집이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결국은 이렇게 울어버린 당신도 많이 지쳐 보여서, 그만 울라는 핀잔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심호흡하며 제 감정부터 진정시킨 뒤, 손목을 당겨서 억지로 당신 손에 손수건 쥐여준다. 그를 다시 만나고, 겨우 빛이라도 분간할 수 있게 된 자신과 달리 아집은 대놓고 죽을 날만 받아놓으려 하고 있다. 아마 그와 아집이 있는 감옥도 자신이 있는 감옥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무쿠하라 씨, 우선 진정하시고, 심호흡해 보세요. 당신 앞에 있는 게 누구 같습니까? (이거라도 먹힐까 싶어서 핑거스냅 해본다. 둔탁한 듯이 작게 울리는 소리가 주의 끈다. 카즈이는 울고 있다는 것 외엔 괜찮아 보인다.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심리학이나 상담은 특기도 아니고, 가끔은 둔하다는 말도 들어본 터라 자신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광증이 도져서 그를 패닉하게 한 것이니, 깨우는 것도 제 책임일 것이다.) ······무쿠하라 씨의 말대로, 저는 신이 아닙니다. 의술의 신이라 불린 사내도 죽은 이를 되살린 대가로 제 목숨을 지불했고, 신조차 아닌 일개 인간인 저는 그 대가로 모든 걸 잃었습니다. 반드시, 가족들을 되살리겠다는 욕심을 품은 적도 있었습니다. (성공했더라도 제 의사면허 정지와 그들이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을 얻는 것은 면하지 못했겠지만. 그런 중얼거림이 그들의 육신에 붙었던 꼬리표처럼 제 말 뒤로 따라붙는다. 유독 쓴맛이 남는 것은 석류의 뒷맛인가? 잡념 무시하려 일어나 차가운 물 두 잔을 떠온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그게 전부 헛된 시도였다는 걸. 그래서 이젠 속죄하려는 겁니다. 당신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그저 인간일 뿐이니까요. 유한한 생을 견디며 버텨나가는, 그런 인간 말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제 정신이 좀 든 참이거든요. 당신의 걱정대로 늘 미친 아집이 아니랍니다. 질서예요, 당신들이 그리 칭하는 시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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