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아델하이트 에이아르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그가 물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청회색 눈동자가 언젠가, 오래전 보았던 하늘의 색을 떠올리게 했다. 이제는 먼지와 오염으로 가득해 본래 무슨 색이었는지 알아볼 수도 없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염려하는 눈을 마주 보았다.
나와 함께 신전으로 가지 않겠느냐. 두말할 것 없는 호의고, 어쩌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였다. 숙식과 안전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험난한 세상에서 이 축복을 대신 받아 가고자 하는 사람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을 설 터였다.
다만 쉽게 입이 열리지 않는 건 내가 철이 없는 탓일까. 아직도 사치나 다름없는 꿈을 버리지 못한 까닭일까.
카렌 선생님은 내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것이 못내 고마우면서도 부끄러웠다. 이상을 별처럼 가슴에 품은 어린아이일지라도 눈앞에 닥쳐온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 세상. 보이는 건 어둠 속에서 나를 향해 내민 상냥한 손 하나.
아주 먼 옛날, 어릴 적 들었던 질문. 13살의 아델하이트는 순응했다. 꿈은 잠시 접어두고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겠노라고.
*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그가 물었다.
나와 똑같은 색의 저 하늘색 눈동자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오랫동안 그의 존재를 기억하지도 못했건만, 그리 깊은 감정은 잊히지 않고 그저 잠들어있던 것뿐이었는지. 잊었었다는 미안함, 재회의 기쁨, 그 이상의 모든 애정이 우리의 눈에 담겨있다.
나와 같이 살지 않겠느냐. 그곳에는 나를 기다리는 부모님과 안정적인 삶이 나를 반겨줄 터였다. 과거가 전부 지워진 채 홀로 떠돌던 외로운 나날도 더는 겪지 않겠지. 내 소중한 사람들과 보낸 행복한 추억이 다시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그러나 언젠가 포기해야 했던 꿈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다시 찾아온 기회는 하나만이 아니었다. 작은 소망이 반짝이며 눈앞에 아른거렸다.
세오르데인 오빠는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는 내가 선택한 길을 응원해 주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많고, 꼭 옆에서 걷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변함없이 가족일 거라며.
멸망한 과거를 딛고 새롭게 탄생한 세상. 내 앞에 놓인 수많은 반짝이는 길.
과거의 인연과 낯선 시작 사이에 서서 들었던 질문. 22살의 아델하이트는 결심했다. 늘 꿈에만 그리던 길을 직접 걸어보겠다고.
*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그가 물었다.
날카로운 붉은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지만, 그가 화가 난 게 아닌 걸 알고 있다. 정확히는 내게 화내는 게 아님을 확신하기에 두렵지 않았다. 내 친구는 매사 걱정이 많기에 위험의 조짐이 보일라치면 바로 가시를 곤두세웠다.
나와 여기에서 탈출하지 않겠느냐. 나를 걱정해서 하는 제의가 분명했다. 그 혼자였다면 어떤 사고가 일어나든 여유롭게 빠져나올 수 있을 테니까. 연약한 인간의 몸을 가졌으면 사리라는 염려 어린 경고를 벌써 수천 번은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물러서고픈 마음이 없었다. 어디 위험한 장소에, 위험천만한 연구에 발 들인 게 한두 번이었던가. 호기심은 내 목을 졸라매는 밧줄이 아닌, 내 손에 들린 무기였다.
이스는 땅이 꺼질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내 머리를 꾹 누르는 손에 힘이 실려있다. 길게 내쉬는 숨에서 답답함이 느껴지지만, 그가 나를 버리고 가지 않을 것을 믿고 있다.
모르는 것투성이, 위험한 것투성이, 궁금한 것투성이인 세상. 그 끝이 없어 언제나 설레는 하루하루.
언제였는지 이제는 특정할 수도 없는, 많은 위기를 앞두고 들었던 질문. 34살의 아델하이트는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그가 물었다.
검은 천으로 가린 눈동자가 무슨 색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세월, 잠시 스쳐 지나간 이의 눈을 기억하고 있을 리도 없다. 그래도 저 쓸쓸한 상냥함은 낯익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도서관에 찾아온 손님을 반길 수 있었다.
나를 따라 머나먼 미지의 길로 떠나지 않겠느냐. 사실 선택권이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생명을 선물 받아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생물 중 누가 그 부름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언제, 어디서 떠나더라도 아쉬움은 남을 테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한치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기에, 작은 아쉬움을 품고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다. 어떤 이들이 먼저 밟아본 길을, 어떤 이들은 나중에 따라올 길을.
레유스티테 레텐시아는 그저 작게 미소 지었다. 별의 인도자가 앞장서서 등불로 밤길을 밝혔다. 어릴 적 별을 앞두고 설레던 마음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이것은 내 최후의 모험이 되리라.
밝게 반짝이는 별이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 이곳을 떠나 새로이 도달하는 곳엔 무슨 풍경이 펼쳐져 있을까?
어느 고요한 밤,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던 이에게서 들었던 질문. 82세의 아델하이트는 마지막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한평생 꿈에 그리던 별이 수놓은 하늘로.
Written 2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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