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연습의 단편

문득이라는 단어를 문득 떠올린다.

damn by 닉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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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조차 포기한 사람조차 아직 죽지 않았다면 행복을 바라지 않아도 가끔 새어들어오는 미약한 그 향기에 저도 모르게 코를 킁킁대는 일이 있을테다. 그렇지 않을 사람이라면 이미 죽었겠지. 멋대로 단정한 말이 재단 할 수 있는건 자기자신뿐이라는걸 알면서도 많은 사람을 자신으로 끌어들여 내뱉고 새삼 깨닫는다. 피부 한겹 아래가 가려웠다. 어디서 긁힌건지 모를 상처는 피가 흐르지않을만큼은 얕고 하지만 피가 보일만큼은 깊다. 딱 한겹아래를 보이는것마냥.

실수와 운명으로 같은곳을 한겹 한겹 베어들어가다보면 가장 안쪽까지 닿을 수 있을까. 겨우 사람 하나의 몸인데 별만큼 멀게 느껴진다.

이 피부 아래에 근육 아래에 내장안에 뭐가 있는지 이미 모두 해명되었을텐데도 그 외의 것이 있을 것 같다.

특히나 점은, 점은 블랙홀처럼 보였다. 끝없이 깊고 시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나는 그것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곤 했다. 너의 머리카락 아래에 가려진 점에도 눈꺼풀에있어 눈을 감을때에만 보이는 점에도 목 아래에 살며시 숨겨져있는 점에도 귀 뒤쪽에 숨어있는 점에도 대놓고 드러난 목에 야하게 박힌 점에도 몸 전체에 퍼진 자잘한 점들을, 너의 모든 점들을 사랑했다.

그래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점 아래에는 살이 있을 뿐이라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람마냥, 그것이 블랙홀이 아니라는것을 누군가 알려줘버린것처럼, 동심을 파괴당한 아이처럼 궁금하지 않아졌다. 이미 해부하고 해설하고 해명한것처럼 그 점 위를 누르는데에 두려움 망설임 기대감을 품지 못하고 모든 점들을 무의미하게 손끝으로 훑어내린다.

처음에는 점에 손을 대는것 자체가 크나큰 모험이었는데도, 하나 하나 손을 댈 때마다 떨었던 주제에 이제는 무더기로 훑어버린다.

너는 환상의 세계에 있었다.

다만 환상이라는것은 세계와 세계사이의 얄팍한 틈새에 존재했다.

눈을 감고 손을 쥐면 네가 잡혔다. 내 머릿속의 환상속의 네가. 하지만 그것은 너의 시신이었다. 과거의 너의 시신. 나는 그것에 코를 킁킁대고야 만다. 너의 향기를 맡은것같은 기분에 눈을 뜨면 아무도 없다. 나는 살아있는 너를 쫓아보냈다. 눈을 감으며 손을 쥐면 네가 잡힌다. 너의 시신이다. 내가 재단한 단정하고 아름다운 부서진 환상의 조각이다. 그것은 너의 시신이자 나의 시신이다.

멋대로의 생각이 재단 할 수 있는건 자기자신 뿐이었다.

문득이라는 단어를 문득 떠올린다.

사랑이라는것도 그렇지 않던가. 이유없이 갑자기 떠오르고 그것이 긍정적이면 사랑, 그것이 부정적이면 증오던가.

남자는 손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에따라 담배연기도 베이지색 천장에 회색을 뭍히며 휘돈다.

수많은 문득을 겪어온 남자는 다시 돌이켜보면 사랑이 증오였고 증오가 사랑이었던것 같다고 말한다.

감정의 극단인 문득들은 남자를 휘둘러 사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도 모르게 만들었다. 재가 뚝 떨어져 남자의 옷 위로 뒹군다. 다행히 불씨는 묻지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들도 모두 지난일. 혹은 모두 써버린탓인가 한때 열렬하고 격정적이던 남자는 이렇게나 조용하게 모노톤의 세상에서 색채의 과거를 떠올리곤 하는것이다. 마치 색을 보며 태어났다가 색맹이 되어버린듯한 감각이었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재가 또 뚝 떨어졌다. 반쯤 남았던 긴 담배는 이제 필터에 가까이 불씨를 피우고 있다. 오래 생각한 모양이다.

남자는 일어나기전 그 불씨를 엄지로 누르고 아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굳이 손으로 재를 털어내 옷위에 자국을 만든다. 옷을 흔들어 털어내면 그나마 깨끗할텐데도.

이제 남자는 일어나 유리창을 열려다 이미 열려있다는것을 깨닫고 이미 불씨가 꺼져버린 담배꽁초를 창가의 재떨이에 내려놓는다.

창문틀안의 저녁놀은 새빨갛고 보랏빛이고 끝은 거무스름했으며 군데군데 허옇고 노랗다. 그렇게 선명한데도 어딘가 불투명해보여 남자는 유리창을 열려 했었다. 창문틀 안의 빈 공간에 손을 넣어 휘저어보기까지 하지만 그곳엔 어느 막도 없다. 아아.

창틀에 기대어 선다. 고개를 내리면 이제 어스름진 곳에 멀뚱히 선 아이 하나랑 눈을 마주친다. 내가 손을 흔들어 준거라 생각한건지 양 팔을 크게 들어 휘적거린다. 아이의 머리색이 너무나도 검어 선명하다. 웃었다. 빨강보다도 검정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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