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모음

땅을 위하여 | 개인 연습작

“우리의 손에서 푸른 싹을 틔울 땅을 위하여!”

지구가 ’푸른 행성‘이라는 것도 모두 옛날 옛적 동화 속 이야기였다. 과거의 사람이 미래였던 지금을 경험한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게 틀림없었다. 푸른 대지가 사라진 지금, 세상은 미약한 숨을 뱉으며 간신히 살아있는 땅을 찾아 다녔다. 간신히 땅을 찾아도 상황은 희망적이지 않았다. 갓난아기처럼 숨을 뱉고 있지만 실상은 잔뜩 썩어있는 땅이거나 무너진 건물에 깔려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땅이었다. 땅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덕분에 전 세계가 약속한 평화 협약도 깨진 지 오래였다. 아주 오래 전 기록된 역사서의 이야기처럼 땅을 위한 전쟁은 인간의 숙명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교실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바깥도 마찬가지였다. 귓가에 들리는 비명은 학교에서 들리는 건지, 저기 저 바깥에서 들리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한 가지 기억나는 건 이리로 오라는 담임의 말을 무시한 채 도망갔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 가속화로 인해 발생한 동시다발적 지진. 학자들의 결론이었다. 그야말로 대재앙에 가까웠던 그 지진이 이 전쟁의 시발점이었다. 고아가 된 나는 친척도, 지인도, 돈도 없었다. 구색만 갖춘 보육원을 전전하다 어른이 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도시 재건을 위한 막노동이나 땅을 차지하기 위한 군대에 입대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나마 돈을 더 얹어주는 군인이 되었다. 그것이 목숨 값이라면 좀 더 받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알비는 고아가 된 이후 처음 만든 친구이자 전우였다. 나와 달리 알비는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땅을 위해 군인이 되었다. 나와 알비는 반드시 푸른 땅을 보자며 의기를 다졌다.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었다. 병장을 넘어 간부 자리를 꿰찬 우리는 벌써 수많은 땅을 차지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대통령은 대륙 통일이 목표인지 푸른 땅이 목표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도 그럴게 살아있는 땅의 5분의 3을 우리나라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 전쟁도 승전이라면 앞으로 5분의 1정도의 땅만 차지하면 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저 멀리 총을 든 적군을 향해 진격하지 않았다. 대신 폭탄을 던졌다. 그 편이 더 쉬웠다. 괜히 아군을 희생하지 않고, 이번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일순간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더니 사람의 인영이라 할 것 하나 보이지 않았다. 간단한 승리였다. 승리다! 이번에도 해냈다! 하는 환호성이 들렸다. 어떤 농작물을 심을 수 있을까, 어떤 동물을 키울 수 있을까, 건물도 가능할까, 기대하는 목소리를 묻으며 폭발음과 다른 굉음이 들렸다.

익숙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 날의 진동과 비슷했지만 사뭇 달랐다. 더욱 흉악하고 빠르게 우리를 잡아먹으려 들었다. 뼈대만 겨우 살아있던 건물이 쩍 벌어진 땅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도망치는 나의 전우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나는 땅을 막을 수 없었다. 알비의 비명 소리를 들었을 땐 더욱이 무력감을 느꼈다. 뒤쫓아오던 알비가 답지 않게 발을 헛디딘 것이다.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알비에게 손을 뻗었지만 내 손 끝을 맴돌 뿐 잡히지 않았다. 그대로 땅이 일비마저 잡아먹었을 때, 그제야 배가 찼는지 땅은 진동이 멈췄다.

모두가 사라진 황폐한 땅 위에 오롯이 나 혼자 발을 딛고 있었다. 다리의 힘이 풀린 나는 무력하게 풀썩 주저앉았다. 알비의 손이 스쳤던 손끝은 아직 진동하고 있었다. 방금 전 지진은, 아마 폭발의 여파로 인해 생긴 지진임이 분명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웃음을 뱉었다. 늦은 깨달음이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인간의 욕심이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원인이었다. 그날 내가 고아가 된 것도, 군인이 된 것도, 오늘 알비를 비롯한 전우를 잃은 것도 모두.

땅은 알고 있었다. 인간이 어떤 마음으로 땅을 딛고 있는지. 땅을 위한다는 핑계로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 한다는 것을. 땅은 자신이 몸이 인간의 욕심으로 채워지기 전에 먼저 인간을 삼킨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유언장을 남겼다.

나는 흙을 움켜쥐었다. 손에는 흙투성이의 ‘땅 재건 사업 계획서’가 그러쥐어졌다. 멱살을 잡은 것 마냥 세차게 흔들어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알비를, 전우들을, 가족을 돌려달라고 차마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먼저 땅의 모든 걸 빼앗은 건 우리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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