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오펜

OC3

Sorcerous Stabber Orphen - Orphen/Crio * 키에살히마의 종단 이후

회유기록 by 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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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엄~청 신기하네."

깨달았을 때에는 생각한 바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어 나오고 있었다. 의도치 않은 자신의 솔직함에도 어머나, 별일이네, 하고 마치 개가 풀을 뜯어먹는 것을 본 것 마냥 크리오는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상대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안 그래도 사납게 올라간 눈매 탓에 안 좋은 인상을 불퉁한 표정으로 악화시키며 물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데?"

"뭐가라니, 오펜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잖아."

당연히 이상하지, 하고 무언의 사족을 멀뚱멀뚱한 눈빛으로 덧붙이며 그녀가 대답했다. 안 좋은 인상을 넘어 더더욱 험하게 변해가는 그의 얼굴에서 눈을 돌리자 허술하게 지어진 방 천장이 보였다. 당장 비라도 쏟아지면 물이 새지 않을까 싶은 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소나기 정도라면 모를까 그 이상 비가 쏟아졌다간 빗물이 새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폭풍우가 친다면 지붕이나 벽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었다. 새로운 대륙의 기후가 어떤지 모르는 만큼 기본적인 대비는 해두려 했지만 그들 상황에서는 자재도 뭣도 부족했다. 오펜과 그녀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보잘 것 없어도 나름 최선을 다 한 집이었다. 그래,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잠들 수 있는 장소. 이마저도 세우기 전의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면 이 곳은 그야말로 안식처였다.

허술한 천장을 보며 아주 잠깐 짧은 감회를 느끼고 있는데 "어이, 눈 돌리지 마." 하고 방해가 들어왔다. 크리오는 다시 오펜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검은 눈동자가 무언가를 원하듯이 뚫어지게 그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야 늘 진지한 얼굴하고 있지 않냐?"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오펜."

단호하게 부정한다. 그녀는 그의 헛소리를 사정없이 걷어 차버렸다.

"오펜, 여행하던 때를 생각해봐?"

"그렇게 치면 너는 어떻고, 인마. 자기를 먼저 돌아봐라."

"나는 천진난만했던 거야."

"나도 좀 들떠있었던 거다."

서로 붙일 핑계는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 카드들로는 서로를 납득시킬 수 없을 뿐이었다. 서로는 코웃음을 치듯 코로 숨을 한 번 세게 내쉬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는지 그가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이번에는 어두운 눈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진지하고 싶지 않아도 진지한 얼굴로 있어야 하는 날들뿐이잖냐."

"…그건 그래."

그건 부정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말꼬리에서는 지친 피로가 묻어나고 있었다.

실제로 그랬다. 웃고 떠들며 사고 치던 날들은 그리 먼 과거도 아니건만 멀게만 느껴졌다. 지금에 와서는 줄지어 계속되는 것은 피투성이와 싸움으로 점철된, 웃을 수 없는 일들뿐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가볍게 장난치는 일 자체가 극히 드물어졌고,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주 가끔은 세상에 둘만 남아있는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미 멸망과 여신이 휩쓸고 간 자리에 어쩌다보니 둘만 덩그라니 남겨진 게 아닐까 하는.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만약 그렇다해도, 레키까지 셋이어야 한다.

현재 이 방에 없는 레키의 털 감촉이 문득 그리워져 크리오는 한 손으로 다른 한 손을 감싸 쥐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껴안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눈 앞을 가로지르고 있는 그의 팔이 보였다. 말랐지만 단단하게 근육이 붙어있는 팔. 다부진 손. 몇 개인가 흉터가 가로지르고 있는 것을 보면 험하게 굴러왔다, 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실상 그가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저 흉터들은 새발의 피였다. 도리어 의외로 피부가 깨끗하다고 말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고 크리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또 생각지 못 하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그것과는 또 다른 말이었다.

"그래도 뭔가 기쁜걸."

"어떤 게?"

"오펜이 날 그렇게 진지하게 쳐다봐주고 있는 게."

"…."

이번에도 잇는 데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쑥스럽지 않냐고 하면 그것은 또 다르지만, 어쨌든 크리오는 눈을 피하지 않고 오펜의 눈을 마주보았다. 오펜은 눈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허를 찔린 듯이 혹은 할 말을 찾지 못한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 번 더 카드를 내었다.

"나, 보고 있잖아?"

"…."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이건 판정승인 걸까, 아예 무효타인 걸까. 그녀가 고민에 빠지려는 참에 그가 입을 열었다.

"그거야, 당연하잖냐. 다른 걸 보고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인간 실격이지."

여전히 표정은 불퉁했고 얼굴은 험악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화가 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크리오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눈은 어떠냐면 시선이 묘하게 그녀에게서 빗겨나가고 있었고, 당겨진 입매에서는 이런 말, 몇 번이고 할 수 있을까보냐, 두 번은 말하지 않을 테다, 하는 의지가 엿보이고 있었다. 어쩐지 아주 살짝, 습기가 어린 듯 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크리오는 눈을 깜박였다. 평소라면 이렇게 솔직하게 말이 나오지는 않는데, 오늘따라 뭔가가 달랐다. 비가 올 것 같은 이 특유의 눅눅한 느낌때문일까. 그녀는 이번에는 스스로가 주도하여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까 나, 오펜의 그런 얼굴 좋아하는 것 같아."

"뭐?"

"지금, 이상하지? 오펜은 오펜인데, 그런데 그 오펜한테. 오펜은 오펜인데 말이야. 두근거린다니 진짜, 진짜로 이상하지."

"…태클 걸 만 한 게 연달아 나왔지만 하나만 물어두마. 뭐냐, '그' 오펜이라는 건."

말 그대로의 뜻이야, 하고 그녀가 대답했다. 말은 평소와 같았지만 슬슬 한계였다. 입술 끝은 슬슬 당기고 있었고 뺨에는 은은히 붉은 기가 돌고 있었다. 파란 눈은 슬슬 어쩔 줄 몰라 하기 시작했다. 침대에 흐트러진 금색의 머리카락은 지금의 그녀와 같았다. 가만히 있지만 흐트러져 있다.

말이야 투덜거렸지만 오펜은 대충 그녀의 횡설수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실은 자신도 어쩌다 바로 그 크리오를, 하고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침대에 뻗고 있는 팔을 둥글게 굽혀 그녀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턱 밑으로 둥실둥실하니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뭘 어쩌지 않은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ー

"나도 그래."

"응? 뭐가?"

"나도, 널 보고 있는 게 두근두근 하다는 말이다."

이런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반드시 이걸로 마지막이다. 오펜은 한탄하며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그녀의 머리를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이런 표정, 보여줬다간 앞으로 죽을 때까지 놀림감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팔 안에서 오펜, 답답해ー하고 불평이 들려왔지만 무시해버린다.

그의 셔츠자락을 쥔 채 얼굴을 부비던 그녀가 겨우 숨 쉴 틈을 찾아냈다. 간신히 나온 얼굴은 이제 확연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색함에 계속 좁혀지지 않던 거리는 별안간 0으로 좁아졌다. 순식간에 서로가 맞닿게 되었으니 이정도면 부끄러워할 만도 하지 않은가. 어쨌든 서로에게 필요한 건 카드가 아니라 방아쇠였던 거다. 어느 쪽이 방아쇠를 당긴 건지도 모를 오발사고긴 했지만.

둘 다 얼마간은 아무 말 없이, 그 상태로 있었다. 서로를 놀리는 얄미운 말도, 짓궂은 말도 없었다. 이삼 분이나 지났을까, 셔츠 자락을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이 힘을 풀고는 그의 허리를 둘러왔다. 잘 들리지도 않을 작은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이 들렸다.

"두근두근해."

그에게 한 말인지, 혼자 중얼거린 말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펜은 흐트러진 금발을 손으로 헤치며 그녀의 귀에 대고 대답을 돌려주었다. 들릴 듯 말 듯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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