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요한
초대 집행자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어떤 것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유복자였고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혼자 숲속에서 울고 있던 아이를 어떤 부부가 데려가 키웠다. 요한은 자신이 데려온 자식이라는 것을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었다. 그의 눈과 머리카락은 짙은 검은색이었지만 부모님의 눈과 머리의 색은 아주 밝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부는 요한을 부족함 없이 키워냈기에 요한은 그런 부모를 믿고 따랐다.
화목하게 잘 지내던 요한의 가족에게 재앙이 찾아왔다. 부부는 갑작스레 병으로 사망했고 요한은 세상에 처음 났을 때처럼 홀로 남았다. 안 그래도 근래, 부모님의 몸이 좋지 않아 다방면으로 해결방안을 구하고 있던 요한에게 이런 일은 머리가 쪼개질 만큼 고통스러운 소식이었으나 요한은 눈물을 흘리며 겨우겨우 부모의 시신을 수습했다.
요한에게 부모의 얼굴이란 항상 따뜻하게 웃는 것이었다 그런 이들이 차게 식은, 말 없는 시신이 되어 땅에 묻혔고 요한은 그들의 시신에 흙을 덮어 주며 말했다.
“신이시여, 생판 모르는, 나 같은 이를 이렇게 따뜻하게 키워 준 부모님을 어찌할 방도도 없이 떠나보내는 고통을 왜 제게 주셨습니까. 나를 건강히 태어나게 해 주신 것과 이런 부모를 만나게 해 주신 것에는 감사하나, 어째서 그런 것을 주고 다시 빼앗아 가시는지요. 우매한 나로서는 감히 당신의 뜻을 추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요한은 삽을 집으로 들고 왔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요한은 혼자 앉아 있었다. 그는 침대 머리맡의 작은 조각상을 하염없이 보았다. 그를 키워 준 부모님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 조각상에다가 기도했고, 요한은 시키지 않아도 그들을 따라서 매일 아침 그것을 따라 했다.
얼굴이 명확하게 새겨지지 않은 그 조각상은 두꺼운 천으로 온몸을 감고 있었기에 성별을 구분할 수도 나이를 예측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었으니, 그 조각상은 이 세계를 만든 이를 존경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것이었다. 요한은 오늘 아침 그 조각상에 기도를 올리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던 요한이 자리에서 일어선 날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이었다. 오랫동안 앉아 있어 굳어버린 무릎을 피고 요한은 자기도 모르게 일어섰다. 햇살이 잘 다듬어진 흙바닥을 타고 그가 앉아 있는 방안으로 슬금슬금 걸어 들어왔다. 요한은 그것을 보고 일어났다.
그는 무작정 며칠 분의 식량을 챙기고 옷을 갖추어 입은 후 지팡이를 든 채 길을 나섰다. 목적지 따위는 없었다. 그는 그저 알고 싶었다. 신께서 왜 이런 세상을 만들었는지 고통은 도대체 왜 주신 것인지 인간의 살아가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모든 것을 태어날 때처럼 다시 잃고 나서 요한은 여행을 떠났다.
가지고 온 식량이 다 떨어졌을 즘 요한은 길에서 누군가를 구해주고 그를 근처 마을까지 데려다준 뒤에 그에게서 식량을 얻고 여정을 이어 나갔다. 그가 처음 들고 나왔던 지팡이는 길가의 노파에게 건네준 지 오래였다.
길에서 거대한 야생 동물을 마주쳤을 때는 그 주변에 무기로 쓸만한 돌이나 누군가가 버려둔 무기가 있었고, 요한은 그것들을 이용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요한은 계속 걸었다.
그는 가끔 굶주리기도 했고 가끔 목이 말라서 비틀릴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죽을 수는 없었다. 아니, 그가 죽지 않도록 무언가가 그를 도와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돌을 부식시킬 수 있을 것처럼 반짝이는 바닷물이 요한의 앞을 가로막았다. 멀리서 볼 때는 지극히 잔잔해 보였던 바다가 가까이 다가가니 그를 집어삼킬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요한은 평생 내지에서만 살았던 터라 바다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모래에 발을 디뎠다. 한낮의 미지근한 바닷물이 그의 허리춤까지 왔을 즈음에 누군가가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은 죽을 생각으로 거기에 들어간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나에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요한을 부른 이는 순하게 생긴 사내였다. 사내는 요한의 대답에 그곳에선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지 말고 죽을 것인지 아닌지만 말해 달라고 말했다. 요한은 잠시 고민했다. 그가 바다에 들어온 것에는 목적이 없었으므로. 하지만 죽고자 들어간 것도 아니고 살고자 들어간 것도 아니었으니 뭐라 답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요한은 죽으려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반쪽짜리 대답만 내놓았고, 사내는 안심한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사내 또한 바다에 들어왔다. 하지만 옷이 젖는 것이 싫었는지 사내는 바지를 줄줄 걷어서 들어왔다. 그는 요한의 차림새를 위아래로 살피더니 혹시 방랑자라면 손을 빌려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식량을 주겠다고도 덧붙였다. 그때 요한이 물었다.
“이곳에서는 고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더니 어떻게 식량을 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염분 기로 가득한 땅 때문에 곡식도 잘 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자 사내가 말했다. 고개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고, 그저 요한이 고민이 많아 보였기 때문에 헛소리를 잠시 지껄인 것이라고. 요한은 제 손을 잡아 이끄는 사내를 따라서 해변으로 나갔다.
“그 옷은 벗어서 말려두십시오. 바다에서 몸이 무거우면 얼마 움직이지도 못하고 물에 집어 삼켜질 겁니다.”
사내의 말에 요한은 물에 젖은 긴 망토를 벗어 던지고 바지를 걷어 올렸다. 어느새 사내는 그물을 손에 들고 있었다. 요한은 그물의 반대편을 건네받았고 두 사람은 저녁까지 고기를 잡았다. 요한이 사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매일 고기를 먹습니까?”
사내가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나에게는 고기만 한 것이 없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이곳은 곡식이 나지 않고, 생선을 가지고 이웃 마을까지 가기에 그곳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가는 동안 고기가 다 상해 버릴 것이 뻔하니 고기만을 먹고 살 수밖에요.”
저녁 해가 바다를 태울 것처럼 붉게 빛났다. 사내는 익숙하게 고기를 그물에 꽁꽁 싸매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요한은 그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기만 했다. 해변에 우뚝 솟은 돌처럼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는 요한에게, 사내가 말했다.
“당신은 고기를 드시지 않으렵니까? 당신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내가 평소에 먹던 것보다 두 배 넘는 양의 고기를 잡았습니다. 내가 생선은 매일매일 먹어서 그것을 다듬고 굽는 솜씨만은 최고라고 할 수 있으니 거절하지 마시고 나를 따라오십시오.”
요한은 뱃가죽과 등가죽이 들러붙기 직전이었으므로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사내는 익숙하게 고기의 배 부분을 갈라서 내장을 버린 뒤 불 위에 고기를 얹었다. 꼬치에 꿰인 고기는 노릇노릇 잘 익어갔다. 노을보다 붉은 빛이 생선을 골고루 익혀 주었다.
사내는 개중에서 가장 잘 익은 것을 하나 뽑아 요한에게 건넸다.
“손님이 먼저 드셔야지요.”
거절하려는 요한에게 사내는 그렇게 말했다. 요한은 잠시 망설이다가 생선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것은 그가 여태까지 먹어온 생선 중 가장 맛있다고 할 수 있었다. 요한이 눈을 크게 뜨자 사내는 그것 보라는 듯, 예상했다는 반응이라는 듯 껄껄 웃으면서 다른 꼬치를 하나 빼 입에 물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생선을 배부르게 먹었고 사내는 요한에게 잘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요한은 아까 해변에 말려둔 망토를 집어 들며 말했다.
“난 항상 이것을 몸에 감고 잡니다. 이것이 있으면 어디든 내 집이고 어디든 내 침대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피해서 나무 아래에서 이것을 둘둘 말고 잡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하늘이 우리의 지붕이라지만, 그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오늘은 내가 지붕이 있는 집을 제공해 주겠습니다마는 나는 솔직히 그대가 방랑자 생활을 끝내고 한 곳에 정착했으면 하는군요.”
요한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나를 알고 계십니까, 내가 방랑자 생활을 오래 했다는 것을 어찌 당신이 알 수 있습니까?”
사내는 말실수를 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요한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요한은 집요하게 다시 물었다.
“나를 알고 있습니까, 나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나를 아는 이들은 이미 신의 품으로 돌아간 지 꽤 되었는데 그대는 어떻게 나를 알고 있습니까.”
그러자 사내는 한숨을 푹 쉬더니 하늘을 한번 보았다가 땅을 한번 보았다가 눈을 꼭 감고 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어디에도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하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귀인이 올 것이니 그를 단 하루만이라도 살려 두라고. 그가 바다에 오는 것을 막지는 말되,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만은 막으라고.”
요한이 물었다.
“그러면 그대는 내가 여기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되는군요. 그래서 바다에 나왔던 것입니까?”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내의 뒤에는 조각상이 있었다. 요한의 집에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문득 요한은 궁금해졌다. 자신이 여행길을 걷는 동안 살아 있었던 이유, 죽으려고 찾아간 바다에서조차 죽지 못하고 누군가의 호의로 배를 불린 이유를.
신께서는 자신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하게 막는다. 그렇다면 그가 살아서 무언가 해야 할 것이 있다는 말이다. 무심코 요한은 사내 어깨를 잡았다.
“더 들은 것이 없습니까? 신께서는 그저 나를 살려 두시기만 한 것입니까.”
사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자신이 들은 것은 그것이 전부라는 듯 약간은 억울한 눈을 하고서 사내는 요한을 보기만 할 뿐이었다.
“…생선 잘 먹었습니다.”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는 그를 붙잡았다.
“오늘 밤은 비가 올 것입니다. 이 집은 지붕이 있으니 비만 잠깐이라도 피하고 내일 아침에 비가 그저 하늘이 맑게 개면 그때 가시지요.”
요한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분께서 거기까지 말씀하셨습니까?”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요한은 사내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그렇다면 나는 가겠습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방금 다 충족한 거 같으니까요. 나는 내가 필요한 곳이 있을 수도 있으니 떠나겠습니다. 당신의 호의에 감사하고, 오늘 밤만이라도 당신이 편하게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요한은 정말 그렇게 말하고 그 집을 떠났다 사내는 더 요한을 붙잡지 않았다.
요한은 어두운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달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바다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숲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자주 다닌 길을 발견하고 요한은 그 길을 따라서 걸었다. 투덕투덕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이내 사내가 말했던 것처럼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요한은 커다란 잎을 가진 나무 아래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아침이 될 때까지 비가 그치지 않을 것 같아, 그는 조금 더 높은 지대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는 걷고 또 걸어서 어느 언덕에 도착했다. 이곳이라면 비가 내일 점심까지 와도 잠겨 죽지는 않을 것이다. 요한은 그 언덕의 나무 아래에 자리 잡았다. 그는 두꺼운 모포를 감고 쭈그려 앉았다.
이럴 거였으면 사내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 게 맞았나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요한은 계속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 아니라고 느꼈다.
빗소리를 벗 삼아서 요한이 잠에 들렸던 찰나에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잠에서 깬 요한은 소리의 방향을 찾았다. 단 한 번으로 그친 비명이 어디서 들려왔는지 추론하는 것은 요한에게 어려운 일이었지만 어떻게든 그는 소리의 근원을 찾아서 그쪽으로 걸어갔다.
비는 아까보다 더 거세게 내렸다. 먹구름 때문에 달빛이 가려져 시야는 명확하지 않았고 빗방울이 계속 눈을 때려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요한은 누군가를 발견했다. 아마 그 비명의 주인일 것이다.
“당신이 왜 여기 있습니까.”
익숙한 사내였다. 요한에게 고기를 잡아 준 그 사내였다. 사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는 말을 잃은 사람 같았다. 요한은 계속 그에게 물었다. 왜 자신을 쫓아왔느냐고,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비명을 질렀냐고. 사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요한이 그를 두고 떠나려 하자 그의 망토 자락만은 꼭 붙잡는 것으로 보아 사내는 겁을 먹은 거 같았다. 요한은 어쩔 수 없이 사내를 질질 끌고 가 함께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아침을 맞이했다.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을 보고 나서야 사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숲속에서 악마를 보았습니다. 악마가 나에게 당신을 죽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께서는 당신을 살려 두라고 하셨기 때문이고 나 또한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요한은 멀지 않은 곳에서 낫을 찾을 수 있었다. 사내는 그것을 쥔 손을 등 뒤로 감추고 있었다. 억지로 그것을 빼앗아 든 요한이 물었다.
“이 낫은 당신의 것입니까?”
“아니요.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것을 하나 주어 왔지요.”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거냐고 물었다. 요한은 바닥에 낫을 버리며 대답했다.
“믿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 낫은 농사를 짓지 않는 당신에게 불필요한 것이고 나는 당신의 집에서도 이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를 정녕 죽이고 싶었다면 낫이 아니라 그물을 들었을 테니까요.”
사내는 무서운 소리를 한다며 펄쩍 뛰었다.
“나는 그물로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없습니다. 그물로 잡는 것은 물고기가 전부입니다. 아무리 익숙한 도구라고 해도 그것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항변은 끝났다. 요한은 사내에게 물었다.
“악마를 본 곳이 어디입니까?”
사내는 긴가민가한 눈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저곳입니다. 저곳의 나무 틈 사이에서 악마가 나에게 당신을 쫓아가서 죽이라고 속삭였습니다. 나는 그것을 세 번 거절했고 악마가 화가 났는지 그러지 않으면 나를 죽여 버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랬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더군요. 분명 당신이 오는 것을 알고 악마가 도망친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라면 악마를 퇴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요한은 악마가 도망친 방향도 그곳이냐고 물었다. 사내는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요한이 재차 물었다.
“근처에 마을이 있습니까.”
잠시 뜸을 들인 사내가 말했다.
“내가 자고 나란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어떤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자고 나란 마을이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사내는 해변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 사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요한은 구태여 그런 것을 캐묻지 않고 사내에게 마을을 안내해 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오래 걷지 않아 마을에 도착했다. 그 마을은 여느 마을과 다름없이 평범한 마을이었고, 사람들은 적당히 자기 할 일을 하며 잘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요한이 사내와 함께 마을에 들어서자 그들은 두 사람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피한 채 무언가를 서로 속삭였다.
사내는 이것을 예상했는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요한은 사내에게 말했다.
“우리는 잠시 따로 떨어져서 악마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지요. 그것이 당신도 편할 것 같으니.”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와 멀어지고 나서야 요한에게 말을 걸어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에게 요한은 주변에서 수상한 이를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어떤 아이가 말했다.
“수상한 이라고 하면은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요한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나와 같은, 척 봐도 이상한 이를 본 적이 있냐고 묻는 것입니다. 꼭 이렇게 누더기 같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도 그냥 무언가가 이상한 이들을 말입니다.”
“무언가가 이상한 이라….”
아이는 고민하더니 당신의 곁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이는 나와 함께 온 동료입니다. 그와 나를 제외한 나와 비슷한 이상한 일을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아이는 그러면 그런 사랑을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라며, 요한을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허탕을 친 요한은 다른 이들에게 수상한 이에 관해 물으러 돌아다녔다.
하지만 하나같이 수상한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며, 아니면 종종 요한 자신을 가리키며, 아니면 요한과 함께 온 그 사내를 들먹이며 이상한 이를 보았다고 말했다.
아무런 소득 없이 요한과 사내가 다시 마을의 동상 앞에서 만났다. 그런데 두 사람이 돌아다니며 물어봤던 것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악마가 나타났다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렸고, 요한에게 악마를 퇴치해 달라고 말했다.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애초에 성직자도 아니고 당신들과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나는 악마를 무찌를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위대하신 분께서는 제게 그러한 힘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이 쑥덕거렸다. 아무래도 요한의 뒤에 있는 사내가 의심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사내를 가리켰다.
“너는 옛날에 마을에서 쫓겨난 이가 아니냐? 무슨 염치로 이곳에 돌아온 것이냐!”
그러자 사내는 당황하며 요한의 눈치를 보았다.
“아닙니다. 내가 이 마을에서 쫓겨난 것은 맞지만, 그때 내가 쫓겨난 것은 나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나는 억울합니다. 그것은 정말로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닙니다.”
사내는 말이 점점 끝나갈수록 울먹였고, 요한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대신에 그를 추궁한 마을 주민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대답했다.
“당신 뒤에 있는 그 사내는 예전에 이 마을에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불을 질렀지요. 자신이 죽였다는 증거가 없으니 마을 사람들이 그를 정식으로 고발을 할 순 없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부와 그들의 아이를 죽인 건 저 사내가 분명하다고.”
요한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노인은 어떤 공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집에 살던 부부가 떠돌이인 저 사내를 거두어서 키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친자가 있는데도 그런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착한 가족들만 홀랑 타 죽고 저 아이만 살아남은 것이겠습니까? 키워 준 은혜도 모르고 그런 짓을 벌이다니 뻔뻔하게도 짝이 없구나!”
노인의 호통에 사내는 머리를 감쌌다. 그는 계속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심상치 않은 반응에 요한이 그의 어깨를 또 잡았다.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요한의 말에 사내는 몸을 떨던 것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당신은 낫으로도 그물로도 나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지요. 나는 당신을 거둬 준 부모님만큼의 은혜를 당신에게 베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먹을 수 있었던 고기까지 가져간 셈이었는데도 당신은 그런 나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부모를 죽였을 리는 없지요. 나는 그렇게 믿겠습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해주십시오. 당신이 악마를 본 것은 진실입니까?”
“진실입니다, 진실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한 모든 것은 진실입니다. 나는 사람을 죽여 본 적도 없고 죽이려고 마음먹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나는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 말에 사람들이 놀라서 사내에게 두 발짝씩 멀어졌다. 하지만 요한은 여전히 사내의 곁에 있었다.
사내는 버린 줄 알았던 낫을 다시 손에 들고 있었다. 그의 손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으며, 요한은 그 낫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사내의 몸 주변이 검게 물들어 갔다. 요한이 말했다.
“당신은 내리는 빗속에서 악마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악마는 자신이었고 당신은 빗방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던 것이겠지요. 그래도 당신이 아직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면 당신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아무도 죽이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입으로 말한 것처럼 당신은 나에게 진실만을 말한 것이 맞습니까?”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저는 거짓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고기가 잡히지 않는 바다라고 말했던 그것만이 거짓이었습니다.”
말장난 같은 대화였지만 요한은 사내의 뜻을 알았다. 사내는 무언가 참는듯한 얼굴로 낫의 자루를 꼭 붙잡았다. 낫은 사내의 몸을 따라 떨리고 있었다.
“나를 멈춰 주십시오.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도록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악마는 여전히 나에게 당신을 죽이라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검게 변하는 사내를 두고 도대체 어찌해야 저것을 막을 수 있는지 호들갑을 떨었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요한은 급기야 꿇어앉기까지 하는 사내를 안타까운 눈으로 보다가 동상 옆의 나무로 다가갔다.
나무의 아래에는 어제의 비 때문에 꺾인 것인지 수명이 다해 꺾인 것인지 모를 나뭇가지들이 한가득 떨어져 있었다. 요한은 개중에서 아무거나 하나를 골라 손에 쥐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요한이 말했다.
“형상 또한 의지에 달렸으니 행하는 자에게 답하라.”
그러자 나뭇가지는 거대한 창으로 변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놀라서 나자빠졌고, 사내는 그 창을 보자마자 기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요한은 사내를 신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까맣게 물들어 가던 사내의 몸도 인간의 것으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요한에게 어떻게 악마를 처치하였냐고 물었고, 악마를 퇴치해주어 감사하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지만, 요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마을을 떠났다. 아니, 단 한마디의 말을 하기는 했다.
사내의 시신을 잘 수습해 주어라는 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요한은 나뭇가지에서 비롯된 창을 들고 다시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그는 자신을 처단해 달라는 악마와 자신에게 죽어 달라고 말한 악마를 만났다. 물론 요한은 죽지 않았다. 그는 악마들을 차례차례 신의 품으로 돌려보내면서 이것이 자신이 할 일임을 깨달았다.
많은 이들을 구원하고, 매번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요한은 인간의 모든 것이 위대한 그분에게서 비롯되었노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호흡의 기쁨과 상실의 아픔에는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단지 운명일 뿐이었고, 그 모든 감정에는 인간의 죄가 없었다. 요한은 제 손에 들린 창을 보며 말했다.
“이 창이 나의 나뭇가지에서 비롯된 것처럼, 나의 감정과 행동조차 당신에게서 나왔을 테니… 나는 당신께서 내게 주신 운명을 따르고자 이 세상에 났겠군요. 하지만 슬슬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해치운 것 같으니, 당신의 곁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마침내 떠돌이 요한은 어느 마을에 정착했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 요한이 처음으로 신의 뜻에 따라 악마를 눈감게 해 주었던 그곳이었다. 요한을 기억하는 이는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요한에게 이상한 이가 그라고 말했던 아이도 자라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요한을 반갑게 맞이했다.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정하셨습니까, 집행자 시여.”
요한은 어느 순간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그런 과분한 호칭을 붙이지 말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어느새 아버지가 된 아이는 당신의 존재만으로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며, 당신에게 그 호칭은 절대로 과분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따스한 경애에 요한은 미소지였다.
“나의 길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나의 길은 나 혼자 걸은 것이 아닙니다. 길을 내어준 이는 위대하신 그분이고 내가 계속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 이는 당신과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내가 한 것은 그저 주어진 길을 걷는 것뿐. 나는 조만간 그 여정을 마치고 신께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요한은 입을 다물었다.
어느 날 아침 요한은 짤막한 편지 한 장을 남겨두고 자신의 집에서 영면에 든 채로 발견됐다. 그 종에 적힌 내용이란 아주 간단했으니, 나의 동상을 만들지 말라라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 있으나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자신을 온전히 신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둘 것.
실제로 요한은 초대 집행자임에도 동상이 남아 있지 않은 유일한 이였다. 요한의 일화를 그려둔 삽화들은 남아 있었지만, 동상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대하신 분의 삽화를 그릴 때 항상 요한을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 둔다. 요한은 이 땅에 발조차 디디지 않을 정도로 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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