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빈문대] 첫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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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김래, 빈.."
박문대가 부르는 소리는 마치 들리지 않기라도 하는 듯 김래빈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김래빈으로 인해 공간 안에는 입술이 질척하게 맞닿았다 떨어지는 소리와 혀를 빠는 소리 또한 멈추지 않았다.
'얘 혀 빠는 거 진짜 좋아한다니까.'
박문대는 약간의 감상을 끝으로 김래빈의 목을 더 힘껏 끌어안았다.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
'쟤 요즘 왜 저러지.'
박문대는 김래빈이 이상하다고 여기고 있다. 벌써 몇 주째. 그도 그럴 것이
"래빈아. 우리 작업 얘기 좀... ???"
평소였으면 먼저 와서 '이런 코드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 이 코드로 하게 된다면 음도 3도 정도 더 높아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형이라면 무난히 소화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는 그 음이 문대 형 목소리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코드를 사용하게 된다면 컨셉은...' 하면서 쉼 없이 작업 얘기를 조잘거렸을 김래빈이
'왜 자꾸 피하지?'
계속 박문대를 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체 왜 피하지?"
분명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별 탈 없이 작업실에서 같이 작업 얘기도 하고, 작업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 바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갑자기 피해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아. 그때부터다.'
박문대는 그날 작업실에서 자신이 무언가 김래빈의 기분을 상하게 한 일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김래빈의 곡을 별로라고 하기라도 했던가, 반응이 시큰둥했었던가, ...정답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래빈의 작곡 능력은 최고였기에 그가 보이는 곡들마다 다 흠잡을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박문대가 이 부분에서 이런 식으로 코드를 급변하면 어떨까 따위의 말을 하더라도 김래빈은 '아...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 문대 형께 여쭤보길 잘한 것 같습니다. 역시, 안목이 있으시니까요.' 하며 두 눈을 반짝였기 때문에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
거실 소파에 앉아 오늘도 어김없이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박문대의 앞에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박문대의 근심의 그림자가 아닌
"문대 형."
비장하게 서 있는, 김래빈의 그림자가.
몇 주째 작업실에만 박혀있는 듯하더니 작업실에서 돌아온 모양이었다.
"어, 래빈아. 우리 얘ㄱ.."
"작업 얘기하셔야죠."
작업실 가서 얘기 좀 나눠봐야겠다 하며 박문대는 그래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김래빈과 함께 작업실로 향했다.
하지만 박문대의 생각과는 다르게 김래빈은, 작업실에 가자마자 작업 얘기를 시작했다.
'..그래, 지금만 때도 아니고, 작업 분위기 망치면 안 되니까... 이따가 다 끝나고 나서 얘기해도 되지.'
"그래, 들어보자."
***
'미치겠다..'
김래빈은 어느 순간부터 그리 좁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크지도 않은, 이 작업실이란 공간 안에 박문대와 단둘이 있다는 것이 미치도록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도 작업 얘기를 꺼내려던 박문대를 피해 혼자 작업실에 왔다.
"분명 오해하실 텐데.."
그렇다. 김래빈은 박문대를 피하고 있지만, 그가 기분 나쁜 것이 제일 신경 쓰였다.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피하지 않으면 될 터였다. 하지만... 그게 되질 않았다.
박문대만 마주하면 머리가 새하얘지고, 심장이 터질 듯 빨리 뛰었으며,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피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나... 문대 형께 뭔가 잘못한 게 있나.'
자신도 모르는 잘못이 어디 있단 말인가. 행여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피할 테지 자신이 피하진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박문대한테 속상한 것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더더욱 아니었다. 제가 감히 박문대에게 속상할 일이 무엇이 있겠단 말인가.
그렇다. 김래빈은 눈치가 없었다. 남들은 이거 사랑이네! 할 눈치채기 쉬운 반응조차 몰랐으니까. 하지만 답답한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머리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보인 것은,
"형!"
박문대의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차유진이었다. 박문대는 차유진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김래빈의 눈에는, 영락없이 다정한 한 컷이었다. 실상은, 간식을 찾는 차유진과 그래그래 하며 지친 표정으로 차유진의 머리를 톡톡 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평소였다면 문대 형 귀찮게 하지 마, 이 바보야! 하며 달려갔을 텐데 김래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왠지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가 감히 박문대에게 속상할 일이 무엇이 있겠냐며 고개를 저었던 김래빈이었는데... 생겼다, 속상한 일이.
'하지만 저게 왜 속상한 일이 되지? 문대 형께서 차유진한테만 간식을 주셔서? 문대 형께서 차유진만 머리를 쓰다듬어주셔서? ...하지만 나는 저 간식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저게 저렇게 탐이 나는 것이지? ...머리.. 형이 쓰다듬어준 머리가 내 머리였으면 싶은 마음은 든다. ...이게 다 차유진 때문이야. 자꾸 나까지 어려지고 유치해지는 것만 같아.'
김래빈은 방으로 들어가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틀었다. 이번 콘서트에서 커버 곡 무대를 하기 위해 편곡 중인 곡이었다. 자신이 편곡하고 있는 곡이 아닌, 원곡. 아까까지도 작업실에서 계속 듣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다시 들으니 사뭇 감상이 달라졌다. 원곡은 굉장히 뭐랄까
"..간질거려."
원곡은 굉장히 간질거렸다. 하지만 무언가 물리적으로 간질이는 느낌이 아니라, ...표현이 되지 않았다.
[ 이게 사랑인가 봐
내 사랑은 너인가 봐
그런가 봐
네가 내 첫사랑인가 봐 ]
그렇다. 첫사랑이었다.
김래빈은 바로 겉옷을 챙겨 들고 작업실로 향했다.
***
숙소에 들어선 김래빈은, 자신을 닮은 강아지 얼굴 모양 쿠션을 꼭 끌어안고 있는 박문대를 발견했다.
'귀엽다..'
잠시 감상에 빠졌으나, 금세 정신을 차리고 박문대에게 말했다.
"작업 얘기하셔야죠."
김래빈은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감과 동시에 작업 얘기를 시작했다. 작업 테이블로 가 박문대가 앉을 수 있게끔 의자를 빼주고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다시 작업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작업 얘기만.
"그래, 들어보자."
박문대의 말이 버튼인 양 노래가 재생됐다.
"?????"
노래는 지금까지 김래빈과 박문대가 작업하고 있던 방향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의 곡이었다. 작업하고 있던 곡이 아닌, 다른 곡. 박문대는 김래빈이 자신이 새로 작업하고 있는 곡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나 보다 하며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다시 물음표를 잔뜩 띄운 상태가 되었다.
평소엔 베이스에 코드만 간단히 찍은 곡을 들고 와 느낌을 봐달라 했었는데,
'이거... 왜 목소리가 나오지?'
가이드 녹음까지 마친 상태였다. 가이드 녹음이라기보단 좀 더... 완성이 된 느낌에 가까웠다. 듣다 보니 김래빈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목소리가 은근 좋단 말이지 하며 박문대는 옆에 앉아있는 김래빈을 쳐다봤다. 김래빈은 평소 진지한 모습이라기보단 어딘가, ...빨갰다. 머리칼에 얼굴이 살짝 가려진 탓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귀와 목이 새빨갰다. 가이드 녹음한 게 민망한 일은 아닐 텐데 따위의 감상을 중얼거리는 박문대의 귀에 가사가 박혀 들어왔다.
[ 내가 감정에 많이 둔해서
알 수 없었어
이게 사랑이란 걸 ]
놀라서 다시 한번 김래빈 쪽을 보자, 김래빈은 고개를 살짝 숙인 것인지 머리칼이 얼굴을 좀 더 가리고 있는 상태가 되어 얼굴을 아예 볼 수 없었다.
[ 감정이 순식간에 휘몰아쳐
나를 짓눌러
사랑이란 감정이 참 버거워
하지만 기분 좋아
이 버거운 설렘이 ]
'이래서... 피했나.'
박문대는 다시 진지하게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 널 보면 온몸이 떨려
목소리까지 떨려와
떨리지만 말해볼게
너를 좋아해 ]
노래가 끝난 자리에는 정적이 흘렀다. 마치 서로에게 양보라도 하는 듯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정적이 힘든 것인지 김래빈이 먼저 그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노래, 어떠셨습니까."
박문대는 뭐라 답해야 할지 한참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의자가 휙 돌아갔다. 김래빈이 박문대의 의자 팔걸이를 잡고 자신을 보게 돌린 것이었다.
'김래빈이... 이런 짓을....?'
이 순간에도 이상한 감상을 떠올린 박문대의 눈에 그제야 온몸이 새빨개져서는 곧 터질 것만 같으면서, 얼굴은 결연한 김래빈이 보였다.
"어떠셨습니까. ...제 마음이."
박문대는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치사하다고 생각해."
"예?"
긍정적인 대답이나 부정적인 대답 같은 것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김래빈은 좀 전까지 진지하고 결연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너만 치사할 수는 없으니까, 나도 좀 치사한 짓을 할까 하는데."
치사한 짓이요? 하는 김래빈의 말은 다 끝마치지도 못하고 흩어졌다. 박문대가 자신의 의자 팔걸이를 잡고 있던 김래빈의 팔을 살짝 잡고는 눈을 감고 그대로 김래빈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게 더 치사한가 하고 중얼거리는 박문대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김래빈은 아까보다 더 눈을 크게 뜬 채 굳어버리고 말았다. 눈만 데굴데굴 굴리다 정신을 차린 건지 박문대를 쳐다봤다.
"알겠어? 대답, 한 건데."
박문대의 말에 김래빈은 자신이 잡고 있던 그의 의자 팔걸이를 놓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문대 형께서도 저를 좋아하고 계신단 겁니까? 그래서 제 고백에 대한 답으로 긍정의 답을 주신 게 맞으실까요? 그렇다면 저희 이제부터 사귀는 사이인 겁니까?"
박문대는 우다다 내뱉는 김래빈의 모습에 피식 웃고 그래 하고 답했다.
"..그럼, 키스해도 되는 건가요?"
"어?"
뭐가 그리 급한지 평소와 다르게 박문대의 대답은 다 듣지도 않은 채 김래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문대의 왼쪽 뺨을 감싸고 입을 맞췄다.
"푸흐-"
되게 무드 있게 할 것 같은 분위기였으면서 말 그대로 입만 맞춘 상태였기에 박문대는 웃음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김래빈의 입맞춤은 굉장히 서툴렀다. 표현하자면 딱딱하다? 이건 뽀뽀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정도의 그런 상태였다.
"래빈아."
박문대는 김래빈의 양쪽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박문대의 목소리에 김래빈은 입술을 떼고 박문대를 바라봤다.
"우선, 입을 벌려. 그리고.."
둘은 잠깐 눈을 맞추더니 누구랄 것 없이 서로의 입술을 찾아갔다. 김래빈은 좀전의 박문대의 말대로 입을 살짝 벌렸고, 그에 따라 박문대의 혀가 섞여 들어왔다. 좀전의 딱딱한 입맞춤을 선보였던 김래빈은 사라지기라도 한 듯, 그는 박문대의 혀를 잘 따라갔다. 그리고 그의 혀끝을 살짝 빨았다. 박문대는 깜짝 놀라 황급히 입술을 뗐다.
입을 오른팔로 가린 박문대는 아까의 김래빈이 옮겨가기라도 한 듯 새빨개져 있었다.
"하아... 왜 그러십니까?"
본인은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인지도 못한 듯, 그저 갈망하는 눈의 김래빈이 말했다. 박문대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김래빈이 박문대의 팔을 잡아 내리고 다시 입을 맞춰왔기 때문에. 그저, 눈을 꾹 감을 뿐이었다.
김래빈 본인은 모르는, 습관이 하나 생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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