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생일 연성

돌멩이도 이왕이면 예쁜 것이 최고다

빌 셴하이트 드림

* 24년도 빌 생일 기념 글

“에펠, 혹시 빌 선배 생일 선물 준비했어?”

 

4월 8일 저녁.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하늘의 어둠이 짙게 퍼진 때. 고물 기숙사에 꾸며놓은 파티장에서 생일을 기념하던 아이렌은 제 옆에서 음료를 홀짝거리는 에펠에게 다가서서 그리 물었다.

 

“빌 씨가 마음에 들어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나름 준비하긴 했어. 네 선물 살 때 함께 준비했지.”

“역시 그렇구나.”

 

대답을 들은 아이렌은 조용히 한숨 쉰다. 오늘이 생일임에도 마음 편히 즐기지 못하는 듯 보이는 그는, 거침없이 나아가는 벽시계의 바늘을 가만히 응시했다.

근심 걱정이 가득한 상대의 표정에 자신까지 덩달아 진지해진 에펠은 목소리를 낮추고 아이렌의 귀에 속닥거렸다.

 

“아이렌 군, 혹시 선물 준비 못 했어?”

 

지금 이 자리에 빌은 없지만, 루크도 있고 다른 기숙사생들도 있으니 최대한 말조심하는 게 좋겠지. 에펠의 현명한 태도에 동의하듯, 아이렌또한 목소리를 죽이고 귓속말로 화답했다.

 

“그건 아닌데, 막상 드리려니까 자신이 없어서.”

“그 마음 알 거 같아. 빌 씨는 여러모로 까다로우니까 말이야.”

“그렇지?”

 

자신만 이런 어려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게 위로가 되는 건지, 아이렌이 허탈하게 웃는다.

어딘가 득도한 듯한 웃음을 가만히 바라보던 에펠은 문득 얼굴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상태가 아닌가 하여, 급히 고개를 뒤로 빼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렌은 빌 씨에게 선물 받았어? 뭐 받았어?”

“뭐더라……. 엄청 어려운 이름의 화장품.”

“푸핫, 그게 뭐야!”

“하지만 난 그런 거 정말 관심 없으니까. 어쨌든 립스틱 같은 거였어.”

 

어떻게 선물 받은 게 뭔지도 잘 모를 수 있나, 라고 하기에는……. 에펠 또한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입학하기 전까진 꾸밈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으니 뭐라 할 게 되지 못했지.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져도 언제나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아이렌이, 이럴 때면 그야말로 ‘동지’같이 느껴지는 게 얼마나 좋은지. 에펠은 괜히 멋쩍어져,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새삼스럽지만 신기하네, 두 사람 생일이 하루 차이라니. 덕분에 폼피오레 사람들은 다들 네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니까?”

 

나란히 있는 생일이 기억하기 편해서 잊지 않고 챙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덕분에’라는 단어를 고른 에펠이었지만, 아이렌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걸까.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던 아이렌은 엉뚱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차라리 내 생일이 하루 늦는 거였다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야?”

“아니, 원래 큰 행사 뒤 작은 행사는 잊히곤 하잖아. 반대로 큰 행사 앞에 작은 행사가 있으면 뭔가 전야제 같은 느낌이 되니까…….”

 

아니, 보통은 자기 생일이 덤 취급 받거나 잊히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텐데.

오늘 자신을 축하해 주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쑥스러워하던 아이렌의 모습을 다시 떠올린 에펠은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었다.

 

“하지만 아이렌은 여러모로 눈에 띄니까, 10일이 생일이었어도 시끌벅적했을걸?”

“……그런가.”

 

허탈하게 웃은 아이렌은 볼을 긁적이더니, 제 이야기를 들어준 에펠의 어깨를 가볍게 한쪽 팔로만 끌어안았다.

 

“새삼스럽긴 한데, 오늘 축하해줘서 고마워.”

“뭘. 앞으로 계속 축하해 줄 거니까,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그거 든든하네.”

 

마침 그와는 같은 학년이니, 졸업 때까지는 정말 저 약속이 이뤄지겠지. 에펠이 환심을 사려고 공수표를 남발하는 사람이 아님을 아는 아이렌은 그제야 안도한 듯 편하게 웃어 보인다.

‘아, 웃었다.’ 한결 가벼워진 상대의 표정에 에펠이 속으로만 감탄한 사이. 어느새 9시를 넘은 시간을 눈치 챈 루크가, 제 후배를 직접 챙기기 위해 다가왔다.

 

“에펠 군, 슬슬 돌아가자꾸나.”

“앗, 네! 내일 보자, 아이렌 군!”

 

급히 자리를 뜨는 에펠은 몇 번이고 손을 흔들고, 슬그머니 파티장을 빠져나간다.

‘이런.’ 늦게 돌아가서 빌에게 혼나지 않을까 서두르는 에펠의 모습에 작게 감탄사를 흘린 루크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제비꽃색 눈동자에 또다시 축하의 말을 전했다.

 

“생일 축하한단다, 몽 르나르. 오늘 하루 즐거웠니?”

“예. 선배 덕분에 어제도 오늘도 아주 즐거웠어요.”

“그거 다행이구나, 후후. 모쪼록, 아이렌 군이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지.”

 

어제 아이렌의 생일을 미리 축하할 겸 종일 함께 극장을 오갔었던 루크는 객석에서 감동하여 울던 상대의 모습을 떠올리고 가슴을 폈다. 추상 속에 사는 자신의 르나르라면 그 어떤 선물보다도 제 선물을 좋아했으리라는 자신이 있는 루크였으니, 이토록 뿌듯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저, 선배.”

“응?”

“혹시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을까요?”

 

아쉽지만 이젠 정말 돌아가야지. 그리 생각하던 루크가 밤 인사를 도로 삼킨 것은, 부탁과는 거리가 먼 이가 제게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었다.

남에게 도와달라는 소리를 할 줄 모르는 이가, 생일에 이런 말을 꺼내다니. 얼마나 자기가 의지가 되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흘러간 루크는 잎사귀를 닮은 선명한 녹안을 반짝 빛내었다.

 

“물론이지. 아이렌 군의 부탁이라면 가능하면 다 들어주고 싶으니까, 편하게 말하렴.”

 

‘아, 세상에 부탁받은 걸 이렇게 기뻐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샛별처럼 빛나는 선배의 눈에 저도 모르게 실소 지은 아이렌은 살짝 까치발을 들어 루크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혹시 내일 아침에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으실까요?”

 


 

4월 9일 아침.

본격적인 파티와는 별개로 아침 일찍부터 빌을 축하하기 위해 담화실에 모인 기숙사생들은 등교 준비를 마치고 나타난 빌을 향해, 일제히 폭죽을 터뜨리고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사감, 생일 축하드립니다!”

 

깜짝 축하라고 하기에는 다소 뻔한 이벤트였지만, 이런 것에서 중요한 건 행사 자체의 기발함이 아닌 거기 담긴 마음이다.

누구 하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제대로 옷과 화장을 갖추고 파티 준비까지 마친 기숙사생들을 둘러본 빌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고맙구나, 모두. 아침부터 이런 걸 준비한 거야?”

“그럼요! 다른 누구도 아닌, 사감의 생일인데 이정도 정성은 당연하죠!”

 

이 와중에도 아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는 걸까. 1학년 무리 중 가장 앞에 있던 로랑은 잽싸게 빌의 말에 답한다.

오늘도 여전한 후배의 아첨에 저도 모르게 웃어버린 모건은 2학년을 대표하여 축하 인사를 건넸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사감.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그래. 고맙구나, 모건.”

“빌 씨, 생일 축하드려요! 나중에 방에 선물을 전해드리러 가도 될까요?”

“물론이지, 에펠. 기다릴게.”

 

한 마디씩 이어지는 학생들의 축하는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빌은 그걸 귀찮아하지 않고 모두 답해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꾸하고 있자니, 어쩐지 가장 요란을 떨어야 할 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챈 그가 담화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루크는?”

 

원래라면 이런 때에 가장 앞장서서 자신을 축하하고 아름다움을 찬미해야 할 그가 보이지 않는다니. 루크 헌트라는 남자가 게으름을 피울 사람도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건 명백하게 이상한 일이었다.

문제는 다른 이들도 어째서 루크가 보이지 않는지 모르는지, 어리둥절하며 주변을 살필 뿐이라는 거였다.

 

“그러게요, 부사감은 어디 갔지?”

“아까 이른 아침엔 보이셨는데.”

“한 10분 전 나가는 걸 보긴 했지만, 금방 오신다고 했는데…….”

 

10분 전까지 있었다면, 잠깐 자리를 비웠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빌은 그 조차도 이치에 맞지 않다 생각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기울였다.

루크는 사냥꾼이다. 어딘가에 매복하여 인내하는 것에 능한 사람이란 말이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급해, 자신을 기다리다 말고 사라진단 말인가. 설마 선물을 두고 왔다거나 하는 거라면……. 그거야말로 이상하지. 루크가 언행이 조금 붕 뜨긴 해도, 준비성 하나는 이 기숙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란 말이다.

모두가 이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때. 웅성거리는 이들을 잠재우듯, 루크가 급히 담화실로 들어왔다.

 

“부사감!”

“이런, 우리가 늦어버린 모양이구나. 평소 생활 패턴을 생각하면, 10분 정도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도착한 빌을 보며 놀라는 루크의 뒤에는 작은 그림자가 따라붙어 있다.

빌은 드디어 나타난 루크에게 한마디 하려다가, 곧 그의 뒤에 있는 인기척으로 시선을 돌렸다.

 

“루크, 어딜 다녀온…….”

 

그리고 그렇게, 빌의 물음은 그대로 끊겨버리고 만다.

제 부사감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이가 누군지 알아보곤, 저도 모르게 그대로 숨을 삼켜버렸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선배.”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렌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언제나 선크림에 색이 있는 립밤만 바르고 다니는 얼굴이, 오늘은 누구의 손을 거친 것인지 피부부터 입술까지 무언가 발라져 있었던 것이었다.

자수정을 박아놓은 듯 아름다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제게 다가와 인사하는 아이렌을 감상했다.

 

“그, 어쩌다 보니 폼피오레에서 같이 축하해 드리게 되었네요. 생일 축하드려요.”

 

평소보다 더 풍성한 속눈썹. 선명한 눈매와 피부색과 잘 어우러지는 색으로 칠해진 반짝이는 눈가. 잡티 따위는 보이지 않는 피부는 쉐딩으로 음영을 살려두었고, 희미하게 풍기는 낯선 향은 아이렌과 퍽 잘 어울린다.

‘루크의 솜씨군.’ 색 선택부터 화장법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도 완벽하며,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난 점으로 상황을 금방 파악한 빌은 손끝만 사용해 아이렌의 턱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제 쪽을 향해 더 가까워진 얼굴은, 볼화장 때문인지 부끄러워서인지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가 선물한 립 라커를 사용했구나.”

“바로 알아보시네요.”

“딱 보면 알지. 내가 고른 건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니.”

 

두껍지도 가늘지도 않은 산호색 입술을 가만히 바라보는 빌의 얼굴에선 어느새 놀라움이 사라진 후였다. 대신 뿌듯함과 기쁨, 혹은 만족감 같은 감정으로 벅차오른 그는 더 말을 잇지도 않고 찬찬히 아이렌을 살펴볼 뿐이었다.

 

“빌 선배?”

“역시 잘 어울리네. 내 안목은 틀리는 일이 없지만, 생각한 것 이상이야.”

 

상대 손에 든 선물은 보이지도 않는 걸까. 빌은 이리저리 아이렌의 얼굴을 손끝으로 움직여 보며,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웃었다.

 

“다 쓰면 또 사줄 테니, 항상 바르고 다니렴. 알겠니?”

“그, 그럴게요. 그것보다, 이거 선물…….”

“알겠어. 알겠으니까 가만히 있어 보렴.”

 

요란한 반응은 아니지만, 모두는 알고 있었다. 오늘 가장 그의 마음에 든 선물은, 지금 빌의 손 끝에 있는 저것이라는 걸 말이다.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름다운 얼굴에 점점 민망해지는 아이렌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한숨 쉬었다.

 

‘루크 선배에게 부탁하길 잘했네.’

 

자신은 그저 최상의 모습으로 축하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한 행동일 뿐, 이렇게까지 기뻐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더는 선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렌은 그렇게 한참이나 가만히 서서 빌의 시선을 받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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