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인간의 말을 하는 것 중 가장 사랑스러운 것

쟈밀 바이퍼 드림

* 드림 포인트컬러 합작 참여작.

좀 더 예쁘게 편집된 버젼은 합작 홈(https://qorgk06073.wixsite.com/pointcolo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선배, 이건 뭐예요?”

 

마실 걸 가지고 담화실에 돌아온 쟈밀은 제게 묻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대한 빨리 돌아온다고 서두른 것인데, 그 잠깐을 못 참은 걸까. 손님으로 온 아이렌은 어느새 담화실 구석에 쌓여있는 선물더미 앞에 앉아있었다.

그는 마실 걸 원래 아이렌이 앉아있었던 자리 앞에 놔둔 후, 상대가 말한 ‘이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호기심 가득한 제비꽃색 눈동자가 응시하고 있는 건, 손바닥 크기 정도 되는 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장식품이었다.

 

“카림에게 온 선물이야. 곧 창고에 들어갈 예정이지.”

“아짐 가문의 장남은 이런 선물도 받는 거군요.”

“이것보다 더한 것도 받지. 정작 본인은 큰 감흥도 못 느끼는데 말이야.”

 

이런 걸 보낼 거라면 차라리 그의 아버지나 다른 어르신들에게 보내는 게 효과적일 텐데, 다들 왜 거기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걸까. 미래의 아짐가의 주인에게 점수를 따고 싶은 그 간악한 마음은 잘 알겠지만, 당사자가 뭘 좋아하는지 정도는 파악했어야지.

만약 카림이 계산적이고 손익에 민감한 이라면 이걸 기쁘게 받았을지 몰라도, 너무나도 순수한 그 녀석은 이런 장식품에도 예쁘다! 정도의 감상밖에 내놓지 못하는데. 그야말로 돈 낭비다. 쟈밀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카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쟈밀은 이 자리에 없는 이보다, 자신을 보러 온 귀중한 손님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은 털 뭉치 방해꾼도, 시끄러운 1학년 녀석들도 없는 평화로운 시간이지 않나. 이런 시간을 생각으로 흘려보내는 건 낭비니까.

 

“그게 마음에 들어?”

 

사실 이렇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이렌이 이 장식품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말이다. 저렇게 찬찬히, 뚫어지게 살펴보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다만 이 유미주의자 계집애는 이 장식품의 금액적 가치에 흥미가 생긴 게 아니라, 단순히 생긴 게 마음에 드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예쁘네요, 이 장식품.”

 

입꼬리만 살짝 올려 웃는 아이렌은 손을 데는 것도 망설여지는지 얼굴만 가까이한 채 자그마한 장식품을 살폈다.

날개를 접은 수컷 공작 모습을 한 그 장식품은, 장인의 손길이 닿은 만큼 확실히 아름답긴 했다. 깃털의 세세한 묘사나, 실제 공작을 줄여놓은 듯 완벽한 비율. 그리고 각종 보석이 박힌 알록달록한 날개의 표현이 참으로 걸작이었지.

마치 전시회에서 미술품 구경하듯 장식품을 감상하던 아이렌은 한참 뒤에야 쟈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싸겠죠?”

“그거야 당연히 비싸겠지. 순금일 테니까.”

순금이라고요? 도금이 아니라?”

“아짐가에게 도금된 물건을 선물할 사람은 없을걸.”

 

그런 걸 아직 미성년자인 후계자에게, 그것도 학교 쪽으로 보내는 사람이 있다는 건 놀랍지만. 어쨌든, 돈이라면 썩어날 정도로 많은 집에 도금 장식품을 보내는 건 오히려 도발 행위이지 않겠나.

아이렌 또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역시 예술은 부자들의 전유물인가…….”

 

그러니까, 그걸 예술품으로 보는 건 너나 폼피오레의 몇 명 정도뿐일 거다.

쟈밀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고, 금색 공작을 마주한 손님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비스듬하게 앉아 가지런히 모은 두 다리를 한쪽으로 정리해 뻗은 채, 상체만 기울여 자그마한 장식품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렌은 거의 미동이 없어 마치 인형이나 조각상처럼 보였다.

긴 치마 아래 뻗어 나와 모은 다리, 바닥을 짚고 있는 흰 손,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긴 새까만 땋은 머리와 소리 없는 감탄을 토해내는 살짝 벌어진 입술. 그리고, 금빛으로 물든 커다란 눈동자까지.

어떻게 보면, 아이렌까지 합쳐서 하나의 장식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쟈밀은 희미한 미소가 번지는 흰 얼굴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꼭 진짜 공작이라도 보는 것 같군.’

 

아이렌은 동물을 좋아했다. 흔히 귀엽다고 여겨지는 개나 고양이 같은 것들 뿐만이 아니라 코끼리나 기린처럼 커다란 동물도 좋아했고, 도마뱀이나 뱀같이 보통은 혐오생물 취급받는 동물도 좋아했다. 당사자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제가 싫어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라고 하던가. 자기도 인간인 주제에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우습긴 하지만, 쟈밀은 그 말을 농담처럼 듣진 않았다. 세상엔 동족 혐오라는 단어도 있고, 저 자신도 인간보단 동물이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사람 말을 하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한가득 있지 않던가.

말은 통하지 않지만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솔직함이 있는 것들. 아이렌은 그런 것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아마 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그 조건에 부합하기만 하면 아이렌은 무엇이든 좋아하긴 했다. 예를 들어 예술품 또한 그랬지. 조각상이든 그림이든 시든 음악이든. 아이렌은 자신의 탐미주의를 채워줄 수 있는 예술을 좋아했다. 진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머리를 굴려 해석할 필요가 있을지언정, 제게 거짓말은 하지 않는. 그런 예술품들.

그런 의미에서 보니 저 공작 장식품은, 정말 완벽하게 아이렌의 취향에 부합하는 물건이지 않나. 사람의 말을 하지도 않고, 동물의 모습을 한 예술품이라니. 그러니 저렇게나 사랑에 빠진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당연하겠지. 쟈밀은 제 마음속에 은근하게 피어오르는, 무생물을 향한 불합리한 질투를 그렇게 대충 합리화하며 넘겼다. 자신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성질을 갖춘 것들을 질투해 봐야, 제 속만 쓰릴 뿐이니까 말이다.

 

“아이렌! 언제 온 거야?”

 

각자 다른 것을 감상하는 평온한 시간 속에 끼어든 것은 으로 만들어진 공작의 주인이었다.

급히 자세를 고쳐 앉은 아이렌은 제 옆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는 카림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안녕하세요, 카림 선배.”

“응? 내 선물을 구경하고 있었구나! 그게 마음에 들어?”

“예. 크기는 작은데 섬세한 게 예쁘네요.”

“그래?”

 

아이렌의 솔직한 대답을 들은 카림은 잠깐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대뜸 엄청난 소릴 해왔다.

 

“그럼 아이렌에게 줄까?”

“예?!”

 

저 반응은 특별히 이상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말도 안 되게 비싸 보이는 물건을 덥석 준다고 하면, 대부분은 냉큼 좋아하기보다는 깜짝 놀라며 상대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겠나.

얼굴이 희게 질려 눈만 끔뻑이던 아이렌은 지나치게 이타적인 카림의 행동을 어떻게 말릴까 고민하다가,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상대를 설득하려 들었다.

 

“선배, 선물 받은 걸 남에게 주면 안 되죠.”

“음? 그런가?”

“당연하죠. 선물한 사람에게 실례잖아요.”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으면 창고에 계속 넣어둘 테지만, 아이렌에게 주면 잘 관리할 거 아냐? 그럼 후자가 나은 거 아닐까?”

 

카림의 논리는 꽤 그럴듯했다. 만약 이 장식품이 그리 비싸지 않은 물건이라면, ‘그렇네요?’라고 말하고 장식품을 받아 갔을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되면 돈 이야기를 들먹이며 말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겪어본 바에 의하면 카림은 금전 감각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던데, 제가 잘 설득할 수 있을까. 아이렌은 정말로 자신이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버스를 사줄 정도로 통 큰 사람이니, 거절한다고 해도 억지로 넘겨줄지도 모르지 않나. 물론, 그렇게 되면 아예 물건을 놓고 도망칠 사람이 아이렌이었지만 말이다.

제게 베풀고 싶어 하는 카림의 순진무구한 미소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렌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쟈밀의 등 뒤로 숨었다.

 

“쟈밀 선배, 카림 선배 좀 말려봐요. 네?”

 

얼떨결에 부탁받은 쟈밀은 대꾸하려다 말고, 제 모습이 꽉 담은 눈동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참으로 익숙하다. 이 은은한 열기, 탐구욕, 소리 없는 찬탄. 아까 그 순금의 공작을 바라볼 때랑, 똑같은 눈빛이지 않은가.

 

아, 이상한 녀석.

는 사람의 말을 하고, 누군가를 속이는 짓도 서슴지 않는 인간인데. 왜 그렇게 좋아해 주는 거야.

 

제 질투가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선명한 애정에 머리가 어지러워진 쟈밀은, 고개를 획 돌려 상대의 눈길을 피해버렸다.

 

“……넌 가끔 보면 말도 안 되게 엉큼할 때가 있단 말이지.”

“예? 갑자기 왜 기습비난을 하세요?”

“비난은 무슨. 사실 적시일 뿐이지.”

 

아이렌은 상대 속을 살살 긁어 구슬리는 짓을 잘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저 눈빛은 그런 의도를 품고 보여준 게 아닐 거다. 거짓말을 싫어하는 만큼, 제가 거짓말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녀석이니까. 거짓말을 하느니 입을 다물 녀석이, 마음속을 비추는 눈동자로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나.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엉큼하다. 적어도 쟈밀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때로는 진심을 담은 애정이 가장 발칙한 법이라는 걸, 이 나이에 벌써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제 처지를 한탄한 쟈밀은 얼굴의 열기를 지운 후, 부탁받은 일을 행하기 위해 카림을 향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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