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기다려

레오나 킹스카라, 러기 붓치, 에펠 펠미에 드림

* 전력 드림 60분 신데렐라 [37회 주제: 기다려]

 

 

‘그림 이 녀석, 어딜 간 거야.’

 

제 파트너 마수를 찾아 30분 정도 학교 안을 헤맨 아이렌은 결국 운동장에 도착했을 즈음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거의 뛰는 거나 다름없는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닌 탓일까. 아니면 오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그런 걸까. 그리 오랜 시간 걷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무거워 더는 걷고 싶지 않아진 아이렌이었다.

 

“GPS 추적기라도 달아줘야 하나…….”

 

그건 너무 반려견 취급 같으려나. 하지만, 사람도 위치 추적 어플 같은 걸 깔지 않던가.

시답잖은 상상을 하며 운동장 외곽에 웅크려 앉아있던 아이렌은 두 주먹으로 가볍게 다리를 두드리며 일어나다가, 날카로운 외침을 듣고 몸을 돌렸다.

 

“어이, 에펠! 디스크 받아라!”

 

그렇게 톤이 높은 목소리도 아닌데 하늘을 찢는 듯 울리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짐승의 포효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드는 그 외침 속에서 익숙한 이름을 들은 아이렌은 소리가 들린 쪽을 살펴보다가, 빠르게 날아다니는 몇십 명의 인영을 발견하고 탄식했다.

 

‘오늘이 매지컬 시프트부 부활동 날이었구나.’

 

허공을 날아다니는 학생들 사이, 친밀한 이들의 얼굴이 몇 보인다. 목소리의 주인인 레오나와 그에게 호명되었던 에펠, 그리고 디스크를 빼앗고 빠르게 도망가고 있는 러기까지.

그리 멀리 떨어진 거리가 아니라 손쉽게 아는 얼굴들을 알아본 아이렌은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선수들을 눈으로 좇았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운동 잘하는 사람은 멋있는 것 같다. 제가 몸치라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르지만, 먼 조상부터 수렵 생활을 하며 살아온 호모 사피엔스가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끌리는 건 본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몸을 움직이는 건 싫지만 스포츠 시합을 보는 건 좋아하는 아이렌은 호기심에 이끌려 천천히 연습 경기 현장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거리를 좁혔을까. 한창 경기에 열중하던 러기가 갑자기 아이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응?”

 

부활동 중인 사람들 외엔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갑자기 누가 나타난 거니 역시 눈에 띈 걸까. 아이렌은 분명 눈이 마주친 러기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선 이름도 불러주고 싶었지만, 연습 경기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그로서는 이게 최선의 인사였다.

그러나 이건 다 혼자만의 걱정이었던 걸까. 인사를 받은 러기는 귀를 쫑긋거리더니, 입꼬리만 올려 씩 웃고 공중에서 한 바퀴 도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와아.”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자, 러기는 뿌듯해하며 이가 보일 정도로 활짝 웃고 다시 경기에 집중하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환영에 기분이 들뜬 아이렌은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다가간 후 걸음을 멈추었다.

 

‘다들 대단하다니까. 빗자루를 타 본 적은 없지만, 딱 봐도 힘들어 보이는데.’

 

어찌나 빠르게 날아다니는지, 자신은 구경하는 것뿐인데도 눈이 핑핑 돈다. 물론 대단한 건 속도뿐만이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틀어 디스크를 빼앗거나, 적재적소에 마법을 사용하는 센스 또한 대단했지. 게다가 빗자루 하나에 몸을 싣고 저리도 자유롭게 날아다니다니. 대체 얼마나 균형감각이 좋은 걸까.

 

“앗, 아이렌 군!”

 

특정 선수에 시선을 고정하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 살피고 있던 아이렌은 이윽고 에펠과도 눈이 마주쳤다. 러기와 달리 목소리 내어 반가움을 표한 그는 한 손만 번쩍 들어 인사를 하곤, 얼른 디스크를 쫓아 날아가 버렸다.

 

“아이렌?”

“뭐야, 감독생 왔어?”

 

문제는, 그 행동은 너무나 눈에 띄는 환영이었다는 거겠지. 아이렌은 제게 쏠리는 선수들의 시선에 반사적으로 주춤했다.

힐끔 쳐다보고 다시 디스크로 눈을 돌리는 사람, 시합은 뒷전이고 제게 아는 척을 하려는 사람, 그리고 한층 흐트러진 부원들의 집중력을 눈치채고 자신을 노려보는 레오나 까지.

 

‘이크, 혼나려나.’

 

방해할 생각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분위기를 흐렸다면 이건 제가 잘못한 거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은 이럴 때 쓴다던가. 아이렌은 다가올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그는 이미 독 안에 든 쥐였다.

 

“어이, 기다리라고.”

“흐억!”

 

열심히 걸은 것이 무색하게도, 레오나는 순식간에 제 머리 위로 다가와 고개를 아래로 내민다.

거꾸로 매달려 자신을 보는 선명한 녹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아이렌은 식겁하여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마치 덫에 걸린 초식동물 같은 반응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진 레오나는 빗자루에서 내려와 상대의 앞을 막아섰다.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겠군. 너는 하는 짓은 겁대가리가 없는데 툭하면 놀란단 말이지.”

“갑자기 머리 위에서 사람이 나타나면 놀라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글쎄다? 나는 모르겠는데.”

 

방금까지 사방에서 사람이 날아다니는 스포츠를 한 사람이 그런 거에 놀라면 쓰겠나.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부원들을 힐끔 본 레오나는 대뜸 벤치 쪽을 가리켰다.

 

“너, 저기 가서 앉아있어라.”

“네? 왜, 왜요?”

“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빗자루에 불이 붙은 녀석들이 몇 있으니까. 좋은 동기부여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예……?”

 

지금 자신을 놀리는 건가.

아이렌은 그런 생각부터 들었지만, 연습 시합이 중단된 김에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몇몇 선수의 시선을 본 후엔 생각이 달라졌다.

 

“……저, 그림을 찾는 중이었는데요.”

“그 털 뭉치는 왜?”

“오늘까지 해야 하는 과제가 있는데, 가만 내버려두면 분명 안 할 거 같아서 같이 하려고요.”

“급한 일은 아니라는 거군?”

 

뭘 생각하는지 잠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레오나는 ‘흠’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빗자루 위에 올라탔다.

 

“연습 시합 끝나고 찾아 줄 테니 가서 앉아. 그렇게 걸어서 찾는 것보다는, 날아서 찾는 게 빠를 테니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니지 않나?”

“……정말요?”

“그래.”

 

확실히 걷는 것보다는 날아서 찾는 게 시야 확보에도, 속도 면에서도 유리하겠지. 하지만 제 일도 러기에게 넘기는 레오나가, 정말 찾는 걸 도와줄까? 어차피 이 일도 러기나 에펠에게 넘기는 건 아닐까?

하지만, 어느 쪽이든 도움을 주는 거라면 제가 거절할 이유는 없을 터. 아이렌은 금방 수지타산을 맞춰본 후 물었다.

 

“앉아만 있으면 될까요?”

“왜, 매니저 일이라도 하고 싶나?”

“그림까지 찾아준다고 하셨으니까, 앉아만 있기는 좀.”

“……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라고.”

 

누군 시킨 일도 귀찮다고 안 하는데, 알아서 일을 떠안으려 하다니. 레오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제겐 손해 볼 것 없는 헌신이었다.

미적지근한 허락을 내린 레오나는 빗자루의 고도(高度)를 낮춘 후 슬쩍 비어있는 뒷자리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 신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는 아이렌은 놀랍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타도되나요?”

“왜, 걷게? 저기까지?”

“아뇨, 제발 태워주세요.”

 

안전 장비도 없이 빗자루에 타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 무엇보다, 레오나 킹스카라가 빗자루를 태워준다는 데 거절할 여자가 세상에 있긴 할까. 땀에 젖은 고혹적인 얼굴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있던 아이렌은, 냉큼 빈 자리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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