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맛없는 요리

말레우스 드라코니아 드림

사람의 트라우마라는 것은 정말 별것 아닌 것에서 생겨나곤 했다. 과일을 먹다가 나온 작은 벌레에 그 과일 자체를 못 먹게 되는 일도 있고, 폭우가 오는 날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경우엔 비가 조금만 거세게 내려도 불편해하는 이도 있으며, 심지어 꽃향기를 맡다가 벌에 쏘인 사람은 벌만큼 꽃을 무서워하게 되기도 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릴리아의 요리란, 훌륭한 트라우마 제조기였다.

제 아랫것의 요리에 이렇게까지 악평을 하는 건 부도덕한 일이다. 모름지기 군주란 부하의 부족한 면도 감싸줄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이야기하겠지만, 고향의 요정들은 절대 그런 경솔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 릴리아의 요리를 먹어보았기 때문이었다.

 

‘반루즈 님의 요리는, 뭐랄까……. 제가 생전 지은 모든 죄를 떠올리게 하는 맛이에요.’

 

언젠가 제 조모의 측근 시녀 중 하나인 로세우스가 했던 말을 떠올린 말레우스는 상대의 표현력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맛이 없다거나 짜다던가 맵다던가 하는 감각적인 표현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요리. 그것이 바로, 릴리아 반루즈의 요리였으니까.

 

“말레우스 님! 큰일 났습니다!”

 

그리고 제 측근의 파멸적인 요리 실력이 고향 밖,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도 충분히 알려졌을 지금. 평화롭던 디어솜니아 기숙사에 불온한 사건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세벡, 갑자기 무슨 일이지?”

“그게……, 릴리아 님이 갑자기 장바구니 가득 채소나 과일 같은 것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뭐?”

“아마도 실버 녀석과 그 녀석의 룸메이트에게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니, 직접 수프라도 만드시려는 모양입니다!”

 

그건 큰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냥 감기로 좀 앓다 끝날 두 학생이 배탈로 고생할 거 같지 않나. 아무리 맛없는 요리라도 병세를 악화시킬지 모른다는 추측은 너무 나간 게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말레우스는 이게 절대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 범위를 굉장히 축소해 생각한다 여기면 몰라도 말이다.

 

“제가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다’라고 말려보았지만, 도무지 듣지 않으셔서…….”

“알겠다. 내가 막아보지.”

 

사실 제가 말린다 해도 들을지는 모르겠다. 릴리아는 자신의 요리에 자부심이 대단했고, 어린 것들이 걱정되어 이러는 건데 왜 말리냐고 오히려 툴툴거릴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자신은 말려야 한다. 디어솜니아의 사감으로서, 릴리아의 주군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책임감과 함께 방을 나선 말레우스는 급히 기숙사의 주방으로 향하다가, 복도에서 이곳에 있기엔 어색한 이의 얼굴을 발견했다.

 

“아이렌? 어째서 네가 여기 있지?”

“아, 말레우스 선배. 안녕하세요.”

 

고개 숙여 정중하게 인사한 아이렌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알약과 물약, 그리고 이온 음료가 든 봉투를 살짝 들어 보인 그는 제 방문 목적을 가감 없이 설명했다.

 

“실버 선배가 아프다고 하셔서 병문안 왔어요. 약은 드셨을 것 같지만, 혹시나 해서 약도 챙겼고요.”

“잘 됐군, 나랑 같이 가주었으면 한다만.”

“말레우스 선배도 실버 선배에게 가시는 건가요?”

“아니. 릴리아에게.”

“예?”

“릴리아가 수프를 만든다고 하더군.”

 

그 간단한 상황설명에, 아이렌의 얼굴이 금방 희게 질린다. 비록 디어솜니아 소속은 아니며 이 학교에 온 지도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 또한 릴리아의 요리를 맛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단 가죠.”

“음.”

 

그렇게 나란히 부엌으로 간 두 사람이 본 것은, 열심히 재료들을 썰고 있는 릴리아의 즐거운 뒷모습이었다.

아, 다행스럽게도 아직 본격적인 요리는 시작하지 않은 모양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한 말레우스가 릴리아를 설득하기 위해 가까이 가려 하자, 아이렌이 갑자기 그의 팔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선배. 잠깐만요.”

“흠?”

“릴리아 선배는 지금 말리면 더 열심히 하실 거예요. ‘나는 괜찮네! 전혀 무리하는 게 아니야! 그러지 말고 그대들도 먹게!’ 라면서요.”

 

이건, 맞다. 놀랍게도 저런 반응은 요리를 말릴 때마다 나왔으니까.

 

“그럼 어쩔 생각이지?”

“제가 해결해 볼게요. 말을 멈출 수 없다면, 고삐라도 똑바로 쥐면 되는 거겠죠.”

 

무슨 생각이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이렌이라면 잘 해결할 거 같다. 언제나 학교의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해결해 온 그이지 않나.

기본적으로 감독생에 대한 신뢰가 높은 말레우스는, 결국 아이렌이 하는 일을 가만 내버려 두었다.

 

“안녕하세요, 릴리아 선배. 뭐하고 계세요?”

“오! 아이렌 아닌가? 실버의 병문안이라도 온 건가?”

“그렇죠. 선배는……, 요리 중인가요?”

“음! 먹기 좋게 수프를 만들어서, 실버와 아픈 녀석들에게 가져다줘야지! 무려 감자수프라네!”

 

제발 그만둬 주시면 안 될까요.

아이렌은 눈빛으론 그렇게 말하면서도, 태연하게 반대되는 언행을 보였다.

 

“그럼 저도 도와드려도 될까요?”

“좋지! 그럼, 냄비에 물 좀 받아주겠나? 재료를 익혀야…….”

“앗. 하지만 먹기 좋게 하려면, 바로 물에 삶기보단 한번 볶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음? 어째서지?”

“그래야 영양분이 쉽게 빠져나오지 않을까요? 불맛도 나고요. 양파는 볶으면 단맛이 더 나와서 수프가 맛있어질 거예요.”

“호오.”

 

하려는 걸 말리지 않고, 오히려 적절한 조언을 주니 릴리아도 귀가 열린 걸까.

어린 것의 조언을 쉽게 흘려듣지 않는 릴리아는 의외로 순순히 아이렌의 말을 따라주었다.

 

“좋아, 여기에 영양 보충을 할 수 있게 고기도 넣지! 베이컨을 준비했다네!”

“그렇다면 바짝 구워서 토핑으로 올릴까요? 물에 넣으면 흐물흐물한데 완전히 부드럽지 않은 질김이 남아있어서 먹기 힘들 테니, 차라리 과자처럼 수분기가 없게 튀기듯 구워서 장식처럼 뿌려요.”

“오, 그거 재미있겠군! 그럼, 생선도 하나 넣을까?”

“너무 영양소가 많으면 오히려 아픈 몸이 다 흡수하지 못할 테니, 고기만 넣죠? 아니면 생선 말고 치즈는 어떨까요? 그거라면 따뜻한 수프에 녹아 부드럽게 흡수될 거고.”

 

아. 이런 식으로 고삐를 쥐겠다는 거였나. 절대 무작정 안 된다고 하지 않고 이런저런 대안을 내놓아 망하지 않는 길로 이끌다니. 꽤 능숙한 책사같지 않은가.

 

“다 됐다! 음, 냄새가 좋군!”

 

그렇게 완성된 감자수프에선, 놀랍게도 아주 군침 도는 냄새가 풍겨왔다. 맛은 또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냄새만 보았을 때는 절대 맛없는 요리로 보이진 않았다.

이쯤 되자 결과물을 맛보고 싶어진 말레우스는 마치 방금 온 사람처럼 모른 척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흠, 좋은 냄새가 나군. 나도 먹어봐도 되나?”

“아! 말레우스여, 잘 왔네! 어디 시식해 보게!”

“좋지. 그럼…….”

 

이런 말을 하기엔 릴리아에게 미안하지만, 오늘의 수프는 그 빛깔부터가 다르다. 냄비에서 수프를 한 수저 뜬 말레우스는 수상한 건더기는 없는 유백색 액체에 감탄하고 슬쩍 그 맛을 보았다.

 

“……맛있군. 너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고소하고 부드러워. 이거라면 환자에게 먹여도 되겠군.”

“그런가? 후후, 잘 되었군! 역시 나서길 잘했구먼!”

 

뿌듯해하는 릴리아의 미소가 참으로 눈부시다. 말레우스는 너무나도 자신을 대견해하는 릴리아의 모습에 차마 이 모든 건 아이렌 덕분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숨은 공로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허리를 살짝 숙여 아이렌과 눈높이를 맞춘 그는, 달콤하게 속삭였다.

 

“네 덕에 맛있는 요리를 얻어먹게 되었군, 아이렌.”

“과찬이세요, 선배.”

 

방금 만든 수프처럼 희고 따스한 아이렌의 얼굴에선, 안도감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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