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선택해줄래?

쟈밀 바이퍼 & 플로이드 리치 드림

모든 물건은 기본적으로 외형의 그럴싸함과 유용함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법이었다. 보기엔 그럴싸해 보여도 자세히 살펴보면 실속이라곤 없는 물건이 있나 하면, 보기엔 투박하고 유행과 멀어 보여도 튼튼하고 사용하기 편해서 망가질 때까지 버릴 수 없는 물건도 있었지.

전자는 장식품은 되어도 실생활 속 일부분은 될 수 없고, 후자는 현실에 그 가치를 증명하며 계속 살아남는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인간도 물건과 썩 다를 부분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쟈밀 바이퍼는 그리 생각했다.

 

“흐음. 이 찻주전자는 생긴 건 예쁜데, 손잡이가 너무 약하고 주둥이가 내용물을 제대로 못 뱉어내게 생겼네요.”

 

아이렌은 새하얀 바탕에 옅은 베이지색으로 점무늬가 그려놓은 찻주전자 세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몸통을 제대로 지지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얇은 손잡이 부분과 출구 부분에 과도한 장식을 붙인 그 주전자는, 후배의 말대로 실용성 같은 건 없어 보였다.

 

“확실히. 모양새만 고급품을 그럴싸하게 흉내 냈을 뿐, 써먹을 물건은 못 되겠군.”

“헤에, 이렇게 생긴 찻주전자 중 유명한 제품이 있는 건가요?”

“그래. 비록 그 원본 주전자는 손잡이도 훨씬 튼튼하고, 주둥이 부분의 장식도 이렇게 요란하지 않지만. 몸통 부분 디자인이 비슷한 유명 제품이 있어. 참고로 무늬도 다르지.”

“그러면…… 별로 닮은 게 없는 거 아녜요?”

“아니. 그 브랜드는 주전자 몸통 부분의 독특한 형태가 정체성이거든. 가장 중요한 것만 베껴와서, 나머지만 자기 입맛대로 고친 거지.”

 

‘아하.’ 아이렌은 이해했다는 듯 작게 탄성을 내뱉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질은 간파하지 못하고, 그럴싸하게 흉내만 냈다가 이도 저도 아닌 제품이 된 거군요.”

“그래. 솔직히 장식용이라면 몰라도, 실제 차를 내릴 때 쓰긴 힘들지.”

“그럼……, 흠. 어떤 게 좋으려나.”

 

아이렌은 겉보기만 그럴싸한 제품에서 등을 돌리고 다른 매대로 향한다. 처음에는 그저 쟈밀을 따라 식기를 구경하러 왔을 뿐이었지만, 어느새 진지하게 제가 사용할 물건을 고르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보물찾기하는 어린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엔 무던해 보이는 녀석이지만, 이런 쪽으로는 취향이 까다롭다니까.’

 

쟈밀은 기숙사 연회에서 쓸 제품을 이미 골라둔 채, 아이렌의 쇼핑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현실보다는 추상의 세계에서 살며, 물건은 싸고 튼튼하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이 학교의 유일한 감독생인 아이렌은 평소 생필품을 고를 때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찻주전자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모양에 ‘예술성’이라도 느낀 것인지, 오늘의 쇼핑만큼은 그 형태가 조금 달랐다.

어차피 오래 쓸 물건, 심지어 비싼 것이니 완벽히 제 취향에 들어맞는 걸 고르고자 하는 걸까. 진지하게 진열된 제품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평가하는 아이렌은 마치 비평가를 떠올리게 했다.

 

‘얼마나 오래 걸리려나.’

 

자신이 추구하는 미학을 본인의 능력으로 표현해내고, 제 미학과 결이 맞는 걸 찾는다면 단순히 흉내 내거나 훔치지 않고 철저하게 학습하여 제 것으로 만들고 마는 아이렌의 취향은 참으로 까다로웠다. 일정 정도 이상 좋다고 느끼고 가까이하는 건 많아도,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건 고르기 힘들어하는 타입이라고 할까.

분명 가장 완벽한 자신의 이상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아이이니 기성품이나 타인의 손으로 만든 건 쉽게 성에 차지 않는 거겠지. 예술은 몰라도, 장인 정신 같은 느낌으로 상대의 성미를 이해한 쟈밀은 재촉하지 않고 상대를 기다려주었다.

 

“어라, 바다뱀 군? 게다가 아기새우도 있네?”

“어?”

 

그때. 평화로운 기다림에 아주 커다란 변수가 나타났다.

쟈밀은 제 뒤에서 고개를 쑥 내미는 커다란 그림자에, 반사적으로 ‘윽!’ 하고 싫은 소리를 내뱉었다.

 

“플로이드? 네가 왜 여기에?”

“아줄이 ‘며칠 전 당신이 모스트로 라운지에서 깨 먹은 찻주전자를 주문해 두었으니, 가서 찾아오십시오!’라고 해서 말이야. 그거 가지러 왔지.”

“아.”

 

참으로 기묘하고 반갑지 않은 우연이다. 쟈밀은 이미 계산까지 마친 찻주전자 세트를 들고 있는 플로이드를 훑어보고 한숨 쉬었다. 모처럼 아이렌과 단둘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나 했는데, 하필 상대가 가장 신경 쓰는 녀석이 나타나다니. 이 무슨 불운인가.

 

“플로이드 선배, 안녕하세요.”

“안녕, 아기새우야~ 뭐 하고 있어? 찻주전자 골라?”

“예. 하나 살까 해서요. 그런데 마음에 쏙 드는 게 없네요.”

“그래?”

 

‘흐음.’ 재미있는 놀잇거리라도 찾았다는 듯 히죽 웃은 플로이드는 진열된 제품을 쓱 둘러보더니, 연보라색 몸통에 물결무늬가 그려진 제품을 가리켰다.

 

“이건 어때? 아기새우랑 잘 어울리는데.”

“……그래요?”

“응. 뭐랄까, 분위기 같은 게? 비슷하지 않나 싶은데.”

“흐음.”

 

아이렌은 그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추천받은 제품을 자세히 살폈다.

상대가 내세운 건 상당히 논리가 부족한 추상적인 이유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이렌의 마음은 충분히 기운 모양이었다. 오로지 ‘플로이드가 자신을 떠올리며 골랐다’라는 것만으로 이유는 충분하다, 이거겠지.

하지만, 쟈밀은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어쩐지 옥타비넬의 기숙사 색을 떠올리게 하는 저 찻주전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아까 전 제가 봐두었던 제품을 가리켰다.

 

“아이렌, 이건 어때? 크기도 적당하고, 손잡이도 튼튼해서 실용성도 있어 보이는데.”

“네? 어어…….”

 

쟈밀이 가리킨 건 짙은 붉은 색 배경에 금색 장식이 새겨진 제품이었다. 구름 같은 구불구불한 무늬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견고한 손잡이와 쥐기 쉬운 모양의 뚜껑 손잡이가 인상적인 제품이었다.

플로이드는 쟈밀이 추천한 제품을 힐끗 보더니, 대놓고 어깨를 으쓱였다.

 

“에, 아기새우랑 별로 안 어울리는데.”

“그건 네 주관 아냐? 그런 식이면, 네가 고른 것도…….”

“하? 바다뱀 군, 눈이 삐었고? 누가 봐도 내가 고른 게 낫다만?”

 

어라, 이건. 분위기가 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아이렌은 본능적으로 제게 시련이 닥쳐 올 것을 감지하고 무슨 말이든 해서 상황을 중재하려 해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기새우야! 내가 고른 게 더 마음에 들지?”

“아이렌, 솔직하게 답해도 돼. 내가 고른 게 더 낫지 않아?”

“…….”

 

둘 다 완전히 제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썩 괜찮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난감해진 아이렌은 그저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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