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별은 왜 새벽별인가

TM ; 작은 목소리

톨비밀레/G25까지의 스포일러 주의.

※ G25까지의 강력한 스포일러 주의.

※ 컷 로그 콘티 삼아 써내려가던 것이라 기존 글과는 다소 형식이 다릅니다.

톨비쉬는 자신의 손안에 작은 영혼이 놓인 걸 본다.

그 속에서 휘몰아치는 폭풍과 영겁을 지난 듯한 흔적들과 이제 본래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오래된 본능과 생생했었을 호기심을 본다.

'육체가 없어도 알아봐 주는구나.'

미약한 목소리가 긴 꼬리를 끌며 닿았을 때 그는 양손으로 조심스레 영혼을 감쌌다.

"그릇이 없다 해서 당신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빛나는 영혼에는 이상할 만큼 온도가 없었다. 그토록 많은 것들을 담았음에도. 영혼은 조용히 타올랐다. 초월자는 그것이 아주 거대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작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네가 너를 이해할 수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지.'

"그랬지요."

'아주 솔직하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던 적은 없었어.'

톨비쉬는 제 손안에 영혼이 기대어 누운 듯한 감촉을 느꼈다. 환상일까?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환상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렇습니까."

영혼은 그의 손안에서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는 손가락 새로 스며 나오는 빛을 보며 아주 잠시, 별을 잡았다고 착각했다.

'나는 주신이 직접 창조하고, 예비한 존재는 아니니까.'

'너도 알잖아. 내가 걸어온 시간이 어땠는지...'

그 목소리는 잠깐 슬프게 들렸다. 잘 들어보니 머나먼 과거를 되새기는 목소리 같기도 했다.

'지금의 날 만든 건 어떤 노력 같은 거였지.'

'내 앞에 선 벽을 넘고, 또 넘고, 또다시 넘고.'

'불멸에 가까운 몸으로 태어나서 한 거라곤 단지 포기를 몰랐을 뿐이야.'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너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성스러운 의무나 대단한 책임을 진 건 아니지. 덧붙이며, 영혼은 작게 반짝였다.

'어쩌면 말이야. 하이미라크가 옳았던 걸지도 몰라. 적어도 아주 틀린 건 아닐지도. 그가 세상을 성장시키려고 취했던 방법 말이야.'

들려오는 소리가 정말로 힘이 없었는지 아니면 작았기 때문에 그렇게 들렸는지는 그도 몰랐지만, 피로에 찌들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톨비쉬는 자신이 들었던 삼 주신의 이야기를 가만히 더듬었다.

"시련을 이겨내어 더 큰 시련에 대한 힘을 기른다, 말입니까."

'상처 위에 단단한 살이 올라오는 이치와 같으니까.'

영혼의 감촉은 이제 아주 희미했다. 그러나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별들이 수 놓인 검푸른 융단 위에서, 초월자는 손안의 영혼이 아주 지쳐 보인다고 느꼈다.

그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언젠가부터 바라 왔던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신도 그의 방법을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세상의 시련이 되는 건 꽤 유감스러웠거든.'

"당신다운 말이군요."

'그렇지만 나는 그의 방법이 옳았다는... 증거나 다름없다고도 생각해.'

시련을 거듭하여 강고해지는, 거대한 위기를 뛰어넘고 위대한 존재가 되는... 톨비쉬는 손가락을 움직여 영혼을 살짝 만져 보았다. 손끝을 간질이며 사라지는 가벼운 감촉은 생각만큼 차갑지 않았다.

'너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비슷한 계획을 품고 있었지요. 압도적인 위협을 앞에 둔 세계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또 나 때문에 다 어그러졌고.'

"제법 기꺼운 일이었습니다."

'그땐 혼란스러워 보였는데.'

그는 미소를 지었다. 영혼도 웃고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는 다시금 손가락을 움직여 영혼의 불빛을 만져 보았다. 여전히 온기는 없었지만, 어딘가 따스한 기분이 손끝을 나직이 타고 올라왔다.

"V."

"시련은 분명 어떠한 존재를 강인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당신과 나로서 증명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것이 어떤 위로로 닿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닿는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일 것이다.

"당신이 겪은 시련은 오롯이 당신의 성장만을 돕고 사라지지는 않았을 테지요."

"그것들은 제각기 세계에 상흔을 남겼을 겁니다."

그 자신이 아주 긴 시간을 견디며 금이 갔던 것처럼, 완전히 부서지고 나서야 새로운 길을 깨달았던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기사단에는 하나의 상흔으로 남은 것처럼, 어떤 일은 상처를 남긴다. 별똥별의 꼬리처럼 길고, 거기 매달린 소원처럼 사라지지 않는 상처가 생긴다.

"단지 흔적이 남았기 때문에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보듬고, 메꾸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가 비로소 세상을 한 걸음 나아가게 합니다."

"내가 마침내 그 긴 방황의 의미를 찾고, 당신을 만나 재구성된 나의 삶을 인정했듯이."

의지를 품은 자들의 행동으로 세계는 조금씩 나아간다. 상처를 벌어진 채 두지 않는 자들의 용기와 자비와 손길로 세계는 위기를 디뎌 일어난다. 하지만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 흐려지더라도 늘 그곳에 있을 뿐이다. 타인의 기억 속에서 영생을 얻은 자들과 같이, 거대한 흉터는 역사로서 끊임없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당신은 그러한 의지를 깊게 품은 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 자를 희생하여 넘어선 세계는 분명히 언젠가는 한 발자국을 딛겠지요. 그러나 상처는 계속해서 남을 것입니다."

톨비쉬는 부드러운 미소를 다시 얼굴에 걸었다. 영혼은 대답이 없었지만, 그의 손안에서 조용히 호흡하고 있음을 알았다.

"나 또한 상처를 입고,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겠죠. 내가 당신을 붙잡은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습니다, V."

이방인의 시간이 쌓아올린 세계와 주신의 검이 쌓아올린 세계는 같은 것이다. 그는 그 세계를 잃고 싶지 않았다.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전의 세계를, 겨우 결론 내릴 수 있었던 길고 긴 종착지로의 여정을 과거의 흐름으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것을 기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 응.'

영혼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충분히 선명했다. 톨비쉬는 고요히 만족했다.

"그럼 이제 당신이 왜 이런 모습으로 나에게 나타났는지 이야기해 볼까요."

'아, 이건... 강에서 튕겨 나온 물방울 같은 거야. ... 정말 별거 아니야. 그냥 잠깐 육체 없이 떠돌고 싶었어. 조만간 돌아갈 거야.'

"하하... 그럼 이제 물방울을 하나 잃어버린 강으로 돌려보내 드려야겠군요."

그는 감싸고 있던 손을 느슨하게 폈다. 영혼은 잠시 흔들거렸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응. 가장 먼저 만나러 갈게.'

별에서 온 자가 속삭인 말은 더없이 기꺼웠다. 저 멀리 부옇게 흐르는 영혼의 강으로 꼬리를 끌며 비행하는 궤적을 바라보며, 톨비쉬는 천천히 성소로 발길을 돌렸다. 어느 때보다 기대로 가득 찬 기다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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