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
기온이 떨어져 얼음이 피어난다.
하늘연달 스무사흘
지수가 창 앞에 앉아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단풍이 절정에 이른 늦가을의 아침은 언제 느껴도 기분이 좋았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정한이 갑자기 도술을 써서 어딘가 사라지더니, 곧장 병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뭐냐고 물으니 국화주라 답했다.
“...아침부터 술이 들어가?”
“밤새웠으니까 아침 아니야.”
소매에 잔까지 알차게 담아왔다. 투박하게 꺼낸 잔을 내려놓고 국화주를 부었다. 시원하게 한 잔 마시며 찡긋 웃었다.
“…….”
“너도 나랑 같이 샜잖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병을 짤랑짤랑 흔들어 보였다. 마실래?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생원들의 가을 시험을 채점하느라 날밤을 새운 둘은 어디 하나가 고장 난 사람처럼 행동했다.
승철은 새벽녘에 준휘를 보러 침소에 갈 것이라며 미친 듯이 몰아붙이더니, 시험이 시작되기 전까지 잠시 자고 오겠다며 침소로 갔다. 나머지 황룡들도 과제와 생원들의 답안지를 한 아름 들고 각자의 침소로 돌아갔기에 누각에는 온전히 둘 뿐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으응……. 1년 생원만 치잖아.”
“웅. 애들도 저기 있네.”
1년 나비들이 명륜당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한솔과 승관은 빈손이었고, 찬조차도 한 권만 들고나온 상태였다. 찬이 펼친 서책을 셋이서 함께 보기 시작했다.
“...들고 나온 서책이 평소보다 적네?”
“성적에 안 들어가는 시험이니까.”
승철이었다.
“언제 왔어?”
“방금. ...여기 있네. 성적 산출에 사용하지 않을 것이니 시험이 끝나는 즉시 제게로 달라고.”
논제가 적힌 두루마기를 보여주었다.
“무슨 과목인데?”
“마법의 역사.”
승철의 답을 듣자마자 지수가 벌떡 일어났다. 정한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았다. 한 입 남은 국화주를 제 입에 털어넣고 고개를 까딱거렸다. 채점할 것이 없으니, 자러 가자는 소리였다. 정한도 탕 소리 나게 책상을 치고 일어났다.
“시험 끝나면 깨워줘.”
“성적 산출은?”
“그건 좀 있다가 우지가.”
“공고는 누가 하는데.”
“황룡이 우리밖에 없냐? 원우가 한댔어.”
원하는 답을 다 들은 승철이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잘 자라. 한마디를 하자마자 서당에는 비늘과 흰 털이 휘날렸다. 작은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진 둘의 자리를 본 승철이 픽 웃고는, 문제지를 챙겨 명륜당으로 나섰다.
황룡이 훈장들 대신 시험의 감독을 맡는다. 1년 가을 시험의 마지막 과목인 마법의 역사는 승철이 맡기로 했다. 명륜당 앞에 앉아 서책을 보던 1년 나비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따라 들어온 다른 생원들도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을 보고, 백지를 배부해주었다.
“시험은 한 시진동안 진행됩니다. 사전에 공지가 되었으나 한 번 더 알리겠습니다. 이 시험은 성적을 내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생원의 의견을 묻고자 하여 출제한 것이니, 제시된 단어에 대한 생각을 부담 없이 작성해주시길 바랍니다. 다 작성하신 생원은 언제든지 나가셔도 좋습니다. ...그럼, 1년 가을 시험 마지막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승철이 박수를 한 번 치니 각자에게 배부된 백지의 오른쪽 한쪽에 논제가 검은 먹으로 새겨졌다. 제가 걸어둔 마법은 아니었으나, 언제나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편히 해도 되는 과목이다. 그럼에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승관이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붓을 잡았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붓이 종이에 닿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낙화대전에 대해 논하라.
나빌레라
霜降, 기온이 떨어져 얼음이 피어난다.
일각 정도 남았습니다. 승철의 말과 동시에 한솔이 붓을 내려놓았다. 두어 장 정도 빼곡히 썼다. 한솔이 제출하자, 승철이 고생했다고 작게 말해주었다. 명륜당에서 나서기 위해 슬쩍 뒤를 돌아보니 저와 승관만이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 마룻바닥에서 발을 떼지도 못하고 승관의 정수리만 보았다. 다시 흘긋 승철을 보니,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한솔은 눈치껏 명륜당에서 나왔다. 찬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아서 졸고 있었다. 시험이 죄다 끝이 나니 졸음이 밀려온 모양이었다. 나름 얌전히 다가가겠다고 했는데, 한솔의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찬이 고개를 들어 누구인지 확인했다.
“고생했어.”
“......응. 너도. 승관이는 아직이야?”
먼저 가자. 한솔의 말에 찬이 느릿느릿 일어섰다. 어디 갈까? 하는 말에, 한솔은 뭘 묻냐는 듯 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꽃밭에 가 있어야지.”
“응. 승관이가 우리 찾으려면 거기만큼 안전하고 편한 곳이 없으니까.”
승관의 답안지에는 눈물이 한두 방울 종이 위에 떨어져 있었다. 먹이 번지지 않게 하려고 그런 것인지, 한 손으로 눈 아래 얼굴을 죄 감싸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쓰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울더라.”
한솔의 말에도 찬은 예상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럴 것 같았어. 왜 하필 그런 문제를 내셔서…….”
넌 뭘 적었어? 승관을 걱정하던 찬이 대뜸 한솔에게 물었다. 한솔은 먼 산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찬이 채근하자, 가서 말을 해줄 테니 얼른 꽃밭에나 가자고 답했다.
일각을 딱 맞춘 후에야 승철이 눈물 젖은 답안지를 받아냈다. 승관이 억지로 승철의 눈을 피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평소였으면 약과를 쥐여주고 돌려보냈을 승철이지만, 오늘따라 마음이 더 쓰였다. 유독 부풀어 있는 볼을 잡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잔뜩 젖어 울망거리는 얼굴이 너무나도 여려 보여서, 순간 할 말을 잊을뻔 했다.
“고생했어.”
“...네.”
“이제 어디 갈 거야?”
“모르겠습니다. 애들이 꽃밭에 있을 것 같은데…….”
이 상태로는 못 갈 것 같아요. 부러 밝게 웃으면서 답했다. 승철은 종이들을 하나둘 정리하며 승관에게 물었다.
“나랑 반촌에 갈까? 둘이서.”
“...좋아요.”
이 모습을 친우들한테 보이는 것보다는 둘이 나가서 마음을 식히고 오는 것이 나으리라 생각했다.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지르는 승관의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면서, 손에 있던 것들을 마저 정리하고 사유서를 써 올 테니 잠시 이곳에 있으라고 했다. 얌전한 수선화는 물기를 털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점심을 먹을 즈음에 준휘에게서 승철과 승관이 나갔다는 것을 들었고, 저녁을 먹을 때까지 민규와 명호의 그림을 구경했다.
누각 아래에 성적 붙었어.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좀 전에 들어온 원우가 남령초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솔과 찬은 추격전을 하듯 버드나무 밖으로 뛰쳐나갔다. 누워있던 준휘도 벌떡 일어나 민규를 데리고 후다닥 따라 나갔다. 넌 안 봐도 돼? ...민규가 알려줄걸요. 똑똑하네. 사형한테 배운 거죠. 현무 막내는 그 자리에서 꿋꿋이 그림을 그렸다. 가장 먼저 도착한 준휘가 성적이 줄줄 적힌 종이 앞에 떡하니 섰다. 뒤따라온 셋이 숨을 헐떡이며 각자의 이름을 찾았다.
“여름 시험이랑 같이 올라왔네.”
“우와….”
정한이 승관에게 했던 말처럼, 여름 시험에는 황룡이 아닌 모든 나비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가을에는 준휘, 명호와 찬까지 재차 이름을 올렸다. 넷이서 각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찾아냈다. 평소에 순영이 작성하던 것을 원우가 한 탓에, 언문이 아닌 한문투성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정도는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준휘 사형은 뭡니까? 맨날 저랑 놀았잖아요. 어떻게 매번 이름이 걸려요?”
“네 이름도 걸려있잖아.”
“...저는 그러고 나서 새벽까지 책방에서 공부했습니다! 사형은 승철 사형이랑 매일…,”
응. 장하다, 장해. 준휘가 장난스레 웃으며 찬의 얼굴을 손으로 부비적대고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한솔과 민규도 꽤 만족스러운 듯했다. 이곳에 이름을 한 번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기에 더욱 그러했다. 민규는 명호의 이름이 있는 것을 얼른 알려두어야 한다며 꽃밭에 가자고 했다. 저벅저벅 다시 돌아가던 길에 민규가 무언갈 떠올린듯 그들을 멈춰세웠다.
“아, 간식 먹을래? 얼마 전에 독각께서 옥춘당을 보내주셨는데.”
“엊그제 받은 그 큰 상자가 죄다 옥춘당이었습니까?”
“전병도 있고 메밀 강정도 있어.”
민규의 말에 준휘와 한솔의 눈이 반짝였다. 꽃밭과 정 반대편이긴 하지만 그만큼 갈 가치가 있는 간식거리였다. 빨리 가서 가져오자며 찬이 폴짝폴짝 뛰었다.
황룡들은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정한과 지훈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멀리서 서찰을 정리하던 지수가 의문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정한아. 찬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정한이 지수를 보았다.
“환자의 상태를 글로만 보고, 진단과 처방을 내려줄 수 있어?”
“당연히 안되지……. 우리는 아직 배우는 단계니까.”
“곧 실습 나간다며.”
약초학을 듣는 4년 생원들이 곧 활인서活人署에 실습을 나가기는 하지만, 정말 기초적인 것을 보러 나가는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왜?”
“통역해주실 분, 지병이 심해지셔서 못 오신대.”
“...그럼 어떡해? 그분도 반궁에서 겨우 구해서 알려주신 건데.”
지훈도 그제야 심각성을 느끼곤 지수의 곁으로 갔다. 그의 손에 들린 서찰을 한 자씩 읽어내렸다. 웬만해서는 회복 후 보내겠다고 쓰일 서찰에 이리도 구구절절 내려쓴 것을 보니 정말 많이 위급한 분인 것 같았다.
“명호 써요.”
“와씨, 깜짝아.”
문 바로 앞에 준휘가 서 있었다.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는 것을 알기에, 항상 이 앞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것이라 했다. 정한이 들어오라고 했음에도 준휘는 꿋꿋이 고개를 저었다.
“명호?”
“청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알지 않습니까.”
“...승철이 대신 온 것으로 쳐줄 테니 제발 들어와서 말하지 않겠니.”
“네. 좋아요!”
그제야 불쑥 들어왔다. 승철의 자리를 알기에, 곧바로 그곳에 가서 앉았다. 장난스런 얼굴로 승철의 도포를 어깨에 걸치고는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명호에게 부탁하면 안 됩니까? 청에서 온 아이인데다가, 조선의 말도 잘하니까요. 계절 시험마다 이름을 올리는 몇 없는 생원임을 사형들이 증명해주면 됩니다. 그의 호위는 제가 할게요.”
“…….”
“저는 황룡보다는 하는 일이 적고 무예를 명호와 함께 할 테니, 영조례 기간만 붙어있으면 되지 않아요?”
확실히 솔깃한 소리였다. 지훈이 원우와 명호를 불러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의 의사를 물었다. 명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서신을 적을게요. 준휘의 말에, 지훈이 홀린 듯 지필묵을 가져다주었다. 빼곡히 써 내려간 후에 제 마법을 이용하여 바싹 말렸다. 다섯 나비는 그런 준휘를 가만히 보기만 했다.
“...정한아. 네 인장을 쓸래?”
“최승철의 것을 찍는 편이 낫지 않으려나.”
그 대화를 들은 준휘가 소매에서 승철의 인장을 꺼냈다. ...찍을까요? 커다란 눈동자에 그들이 가득 담겼다.
“네가 왜 들고 있어.”
“주길래 받았어요. ...쓸까요?”
정한이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준휘가 받고 나서 한 번도 써본 적 없었다며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는 안 쓰는 종이 위에 시험 삼아 승철의 인장을 살짝 찍어보았다. 인장이 떨어지자마자 안개꽃 모양이 걷잡을 수 없이 새겨져 종이를 빼곡히 채웠다. 준휘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황룡들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인장 못 쓰겠네.”
“그러게. 큰일 날 뻔했다.”
원래 힘을 조절하지 못하면 종종 이런 반응이 생겨. 민규가 어릴 적에 이런 적이 많았거든. 원우가 종이를 가져가서 잘게 찢었다. 결국 준휘가 쓴 서찰에는 지수의 인장이 찍혔다. 지훈과 원우에게 서찰을 쥐여주고 명호와 함께 내보냈다.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셋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있었다.
정한이 준휘에게 감사의 의미로 꽃을 다루는 법을 알려줬다. 무언가를 새로 배울때 곧잘 습득하는 편이라, 아까같은 불상사는 더 생기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밥은. 먹었지?”
“네. 애들이랑 꽃밭에서 먹었어요.”
“승철이 나간거 알아?”
한나절이 지났는데도 승철과 승관이 돌아오지 않았다. 정한은 그 둘을 찾을 겸 나갈 생각 없냐고 물었다. 텅 빈 주작에서 홀로 있을 바에는 같이 나갔다 오는 것이 즐겁겠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가 승관의 사유서 위에 준휘의 사유서를 써 올리고 누각의 모든 불을 껐다.
지수가 승철에게로 지비를 날렸고, 정한은 서당 문을 지나서 반촌까지 가는 동안 승철이 왜 승관을 데리고 나갔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약하네요. 수선화가 서당 안에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리하면 어찌합니까?”
“어쩔 수 없지. 뭐.”
그 과목에 대한 것은 그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아무리 황룡이 동등한 권한을 가진다 해도 쉽게 범할 수 없음을 알기에 조용히 승관을 데리고 나가서 달래준 것이었다. 같은 생원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반촌에서 얼마 걷지 않았을 때, 준휘는 멀지 않은 곳에서 승철을 발견했다. 상전과 세물전 사이 넓은 마당에서 산대놀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얌전히 발소리를 죽이고 뒤로 다가가서 품에 안았다. 승철도 익숙한 듯 고개를 돌려 준휘임을 확인했다. 제 허리를 감싼 준휘의 손을 토닥여주었다.
정한은 승관을 데리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지수도 준휘의 등을 두어 번 쓸어내려 주고 그들을 따라갔다.
“미안. 다방에서 승관이 좀 달랜다는게…….”
“...들었어요. 무슨 일 때문에 데리고 나왔는지.”
“응….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어. 미안해.”
승철의 말에도 준휘는 가만히 끌어안고 서 있었다. 화가 난 것이냐 물으려고 했으나 감투를 씌우는 준휘 때문에 잠시 입을 닫았다. 평소에 나비들이 사용하던 입을 가리는 감투가 아니었다. 이마부터 광대까지 도드라진 탈 모양이었다. 곁눈질로 둘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보다가, 탈을 단단히 고정해주고 나서 다시 눈을 맞추었다.
“아까 낮에 민규가 줬어요. 내가 지나가는 말로 감투를 쓰면 입이 답답하다고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제 독각이 만들어주신 것인데, 그걸 기억해서 따로 받아왔다고 했습니다.”
“민규는 이거 안 쓴대?”
“우리가 원래 쓰던 감투를 줬어요. 민규는 그게 더 편하대.”
구멍 사이로 보이는 눈을 빤히 바라봤다. 허리에 둘러진 손을 깍지 껴 잡았다. 그 상태로 살짝 힘을 주어 벽이 있는 곳으로 밀쳤다. 다른 한 손으로는 준휘의 뒷목을 잡아 당겨 얼굴을 더 가까이했다. 주변이 온통 밝은 탓에 새까만 동공에 더 시선이 쏠렸다. 온전히 감투를 쓴 제 모습만을 담는 눈동자가 좋았다. 준휘는 당황한 듯하면서도 고개를 빼지는 않았다. 어떡하지. 너무 좋은데.
“이러려고 받아온 것은 아닐 테지만….”
“응?”
“달빛을 담은 네가 너무 곱다.”
준휘가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벽과 제 몸 사이에 딱 가두고는 입술을 맞붙였다. 얼마 못가서 호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승철이 소리내며 예쁘게 웃었다.
“왜 눈을 안 감아.”
“형도 예뻐서. 좋아서요.”
그래도 한 살 어린 사제라고, 경합 이후로 여태 저와 혀를 섞을 때면 눈을 감았다. 항상 아닌 척하면서도 거듭 할 때마다 긴장한 탓에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을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좋아? 네. 많이요. 준휘가 솔직한 답을 내놓으며 승철의 턱을 잡았다. 탈이 거칠게 부딪히며 덜그럭거렸다. 달빛 때문에 탈 아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괜한 욕심이 생겨 평소와 달리 준휘와 눈을 마주쳤다. 눈을 감는 법조차 잊은 것마냥 저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더 깊이 닿고 싶은데…. 계속해서 부풀어 오르는 심장과 끓는 피가 온몸을 타고 흘러 팽팽하게 바짝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혹여나 감투가 벗겨지지 않게 서로의 얼굴을 꼭 붙들고 있었다. 겨우 입술이 떨어지고 난 후에, 준휘가 낮게 웃으며 승철을 품에 안았다. 형 심장 터지겠어요. 왜 이렇게 빨리 뛰어? 승철은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고 준휘의 얇은 허리만 더 끌어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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