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불꽃

Stargazing(完)

네가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이우는 밤 by 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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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컾 현대AU

(C)떨리고설레다 2023



Starga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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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여튼 이사도라 세스는 이곳에 있었다.

사람 만나기를 귀찮아하고 여럿이 모이는 술자리는 더욱더 싫어하는 평소 성향을 고려했을 때 극히 드문 일이었다. 확률로 따지자면 일 년에 한 번쯤 겨우 일어날 정도로. 이렇게 취하기까지 한다면 가능성은 훨씬 낮아진다. 아이비 지니어스는 테이블에 형편없이 엎어진 이사도라의 까만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정확한 계산은 번거로우니 대충 삼 년에 한 번이라고 칠까.

이사도라의 옆자리 남자가 술이 덜 깬 목소리로 뭐라고 손을 흔들었다. 아이비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충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도라의 어깨를 - 검은 블라우스는 상당히 신경쓴 옷차림이었다. 아이비는 오 년에 한 번으로 사건의 빈도를 조정했다 - 잡고 흔들다가, 만취해서 의식이 없다시피 한 사람을 혼자서 부축해 집에 데려다 놓기는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잠깐 앉으라니까."

그녀는 마지못해 의자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이런 일에 불러야 할 사람을 단 한 명 알았다. 아이비는 가방에서 반쯤 삐져나온 이사도라의 핸드폰을 꺼냈다. 비밀번호는 쉽게 풀렸다. 이사도라 세스는 치밀한 편이었지만, 가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허술함을 보이곤 했다.

기본 컬러링. 무난하니 나쁘지 않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도 않았는데 바로 받은 점, 이건 좀 괜찮을지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이사도라가 사랑하는 남자를 괜찮게 보려면 아이비는 상당한 노력을 들여 장점을 찾아야 했다.

"도라?"

"아이비 지니어스입니다.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말투가 딱딱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바루가 대답했다.

"아, 기억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언니가 지금 좀 취해서."

아이비는 들어오면서 외워 둔 가게의 이름을 읊었다.

"집에 데려가는 걸 도와 주실 사람이 필요한데요."

핸드폰을 가방 안에 돌려놓으며 아이비는 테이블의 멤버들을 훑었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 - 주인 없는 하얀 가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명 더 있었는데 잠시 나간 듯싶었다. 아는 얼굴은 없었다. 무명의 연예계 사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뭐 하는 사람들일까.

언니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이유가 미치도록 궁금해졌지만 알 도리가 없었다.

"꿋꿋이 거절하더라. 데려다 준댔는데."

옆자리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제법 알아들을 만한 발음이었다. 아이비 - 소개를 하지 않았는데도 남자는 이미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 맞지? 너 혼자 부축하기에는 무리일 텐데, 역시 내가. 반말하지 마세요. 아이비는 목구멍까지 치솟아오른 말을 꾹꾹 눌러 삼켰다. 친절한 얼굴, 친절한 얼굴….

"괜찮아요."

팔을 걷어붙이며 일어나려는 남자를 아이비는 가까스로 앉혔다.

"아는 사람을 불렀어요."

"아는 사람 누구?"

이번에는 맞은편의 여자였다. 

"남자친구 있었어?"

"남자친구?"

"응. 대충 들으니까 남자 목소리던데?"

아이비는 입꼬리를 굳혔다. 불쾌감과 더불어 순간 못된 충동이 일었다. 아이비 지니어스는 바루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눈 앞의 사람들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 정도 호의쯤은, 받을 만한 자격이 있으려나? 아이비는 엉킨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척 남자가 이사도라의 머리에 손 대지 못하게 은근슬쩍 밀어냈다. 

"있죠."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저 말고."

시선이 제게 쏠리는 기분도 가끔은 괜찮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도라 언니요." 

.

.

.

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것이 아니라면, 어느 동네에나 하나씩 있을 법한 평범한 고깃집. 홀과 분리된 식사 공간 - 방? 아이비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몰랐다 - 이 따로 존재하는. 이사도라가 원하는 조건에 완벽히 부합했다.

어머니의 유산과 본인이 벌어 둔 돈을 고려했을 때, 이런 장소는 이사도라에게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아이비는 생각했다. 물론 말 못할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사도라의 '취향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 5년 전 어느 가을이었다는 점에서 아이비는 그런 문제가 아님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이사도라는 소비를 줄였다. 정확하게는 사용하는 돈의 양은 비슷했지만 물건의 질이 달라졌다. 아이비는 이사도라가 산 첫 번째 옷을 기억했다. 지금 입고 있는 것처럼 목이 네모낳게 파이고 조르르 단추가 달린 싸구려 검정 블라우스였다. 초라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사실 뭘 걸쳐도 빛날 얼굴이었다. 아이비는 드물게 진심으로 칭찬했고, 그녀가 마찬가지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큐빅 목걸이를 거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 옷을 입고 이사도라가 어디를 나갔느냐면, 글쎄, 그때는 이사도라가 막 사랑을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아이비 씨?"

머리를 쓸어올리는 모습이 더워 보였다. 급하게 왔나, 아이비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쌀쌀한데 들어가 계시지 그랬어요."

"혹시 못 찾아오실까 봐."

아이비는 고개를 저었다. 이사도라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자리에 오래 있는 건 솔직히 꽤나 고역이었다. 하얀 가방의 여자가 뒤늦게 들어왔을 땐 그나마 괜찮아졌지만, 이미 아이비의 기분은 불쾌할 대로 불쾌해진 상태였다.

"언니 안에 있어요. 깨운다고 일어날지 모르겠네."

아이비는 고깃집의 문을 어깨로 밀었다.

"업고 가야 할지도 몰라요. 괜찮으시겠어요?"

바루가 웃었다.

"그 정도야."

걱정이 무색하게도 이사도라는 일어나 있었다. 등받이에 기댄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 것이 썩 괜찮은 상태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옆자리 남자가 그녀에게 몸을 기울이며 추파를 던졌다.

"데려다 주겠다니까?"

"그러니까, 필요 없다구요."

아이비는 대충대충 대꾸하는 이사도라의 옆얼굴에서 귀찮음과 짜증을 읽었다. 슬쩍 올려다 본 바루는 여전히 감정을 알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보기 민망했던지, 하얀 가방의 여자가 중재했다.

"그만 해. 남자친구 온다잖아."

이사도라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남자친구?"

"봐, 왔잖아."

아이비는 반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두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고, 이사도라의 동공이 옅게 흔들렸다.  

"남자친구-"

"남자친구 아닌데요."

바루가 부인했다. 이사도라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다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비는 얼굴을 굳혔다. 저 빌어먹을 멍청이들. 속으로는 열심히 욕설을 씹어뱉었지만, 입 밖으로 흘려보낸 것은 한숨뿐이었다. 어떻게 된 게 밥상을 다 차려 줘도 못 먹니. 내가 입까지 떠다가 넣어 줘야 하는 거야? 

하늘로 솟구치든, 땅바닥으로 꺼지든. 그냥 다 잊어버리고 집에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아이비는 한 번 더 참았다. 마지막, 정말 마지막으로 한 가지 호의를 더 베풀기로 마음먹었다.

"죄송하지만."

그녀는 바루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것도 못 받아먹으면 당신은 천하에 다신 없을 머저리인 거야. 속으로는 열심히 욕설을 토해내어도 일단 입으로는 웃는 데 성공했다.

"제가- 급하게 마무리할 일을 놓고 와서요."

"아."

다행히 이번에는 제대로 말이 통했다.

"바쁘시면 들어가 보셔야지요. 제가 집에 제대로 돌려놓을게요."

"그럼, 부탁할게요."

.

.

.

"그러니까- 도라 남자친구?"

"다시 말하지만, 아닙니다."

이사도라는 테이블 위로 고개를 푹 숙였다. 바루가 대꾸했다. 아까보다 한층 단호해진 목소리였다.

"아이비가 그렇다던데?"

"그분이 뭔가 잘못 알고 계신가 보네요."

바루는 반쯤 빠져나온 이사도라의 물건들을 제대로 가방에 넣고 잠갔다. 크로스백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반대쪽 손으로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가자.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딱딱하게나마 예의를 차리는 것은 잊지 않았다. 이사도라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기댔다.

"응…. 가야지. 갈게."

한참을 나란히 말도 없이 걸었다. 서늘한 밤 바람만 간혹 불어 머리카락을 흩었다. 술기운도 조금씩 함께 날아갔다. 

일교차가 큰 계절이었다. 공기가 제법 쌀쌀했고, 반면에 그녀의 옷차림은 얇았다. 살짝 한기가 들었지만 생각할 게 너무 많아서 이사도라는 눈치채지 못했다.

남자친구 아닌데요….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아닙니다.

그분이 뭔가 잘못 알고 계신가 보네요.

무언가 특별한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더 나은 답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점을 이사도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서글퍼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 이거인 거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녀는 까닭을 정의하기에 성공했다. 그렇게까지 대놓고 부인할 필요는 없었잖아…. 하는 속상함이다. 그의 어조는 몇 번이고 덧칠한 위에 다시 한 번 선이 그어지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또 다른 말로는, 사실상의 거절이 아닌가.

이사도라는 바루를 사랑했다. 정말 사랑해서, 더는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했다.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꼭 본능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운명이라는 표현을 가장 좋아했다. 수천 번의 생을 거쳐서 나는 너를 사랑했어. 이사도라는 운명처럼, 마치 그럴 수밖에 없게 태어난 것처럼 사랑했다. 보답받지 못함에 비참하게 상처받으면서도.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의 요란한 빛에 가리어 더는 별을 찾아볼 수 없는 밤이었다.

"…아이스크림 먹자."

"춥잖아. 감기 걸려."

바루는 놀이터 너머로 편의점을 흘긋 보았다.

"다른 거 사러 가자."

"그럼 앉아 있을래. 갔다 와."

"혼자 있으면 위험해."

이사도라는 코를 훌쩍였다.

"그냥 안 먹을래."

"…알겠어. 얼른 갔다 올게. 뭐 먹어?"

이사도라는 고등학생이라도 된 것마냥 그네에 앉았다. 턱에 대충 걸쳐 두었던 마스크를 바루가 꼼꼼히 올려 씌웠다. 이사도라는 손을 마스크까지 올렸다가 내렸다. 생각해 보니 화장이 지워져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답답한 편이 차라리 나았다.

"초코우유."

"원래 안 좋아하지 않아?"

순간 울컥해서 이사도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갑자기 먹고 싶어졌어."

"그래."

바루는 아직까지 메고 있던 핸드백을 이사도라의 무릎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어깨에 와닿는 따뜻한 감각. 이사도라는 몸 앞쪽으로 떨어지는 회색 후드집업의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미안. 추웠지."

그제서야 다리를 스치는 바람의 냉기가 느껴졌다. 헉, 하고 이사도라는 공기를 들이켰다. 숨이 막혔다. 견딜 수가 없었다. 코끝이 찡하고 목이 메었다. 꼭 깊은 물 속에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라면 폐에 물이 들어차 정말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사도라는 마스크를 벗었다. 이 와중에도 지워졌을 파운데이션을 신경쓰는 제가 싫었다. 바루가 물었다.

"마스크. 안 쓸 거야?"

"숨 막혀."

"그럼 이거라도."

바루가 손을 뻗었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팔이 뜨듯했다. 이사도라는 얼굴을 붉혔다. 다행히도 감정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후드집업의 큼지막한 모자가 금방 덮인 까닭이었다.

"금방 다녀올게."

"…가지 마."

이사도라는 막 뒤돌던 옷깃을 잡았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다. 단지 본능적으로, 그냥 그러고 있었다. 가지 마…. 반복해서 읊조리는 목소리가 잠겨서 나왔다. 하얀 면 티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바루가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래. 아까 뭔 일 있었어?"

"너 뭐야?"

스스로도 알았다.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멀쩡해지면 분명 후회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럼에도 말을 뱉어내게 하는 건 알코올의 농도요 지나는 이 몇 없는 밤길의 분위기요. 더는 붙잡아 둘 수 없이 부풀어오른 사랑이다.

왜 날 데리러 와? 왜 날 이렇게 대해? 나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나한테… 여지를 줘?

매번 헷갈렸다. 어떤 말은 분명 거절인데 어떤 말은 또 아니었다. 이사도라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제법 눈치가 빠른 편이었는데도 정확하게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아무것도 티가 나지 않는다. 잘 티를 낼 줄 모른다. 타고난 특성은 아니었으나, 살아가면서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바쟈조차도 그 생각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미안하다고, 제 동생이지만 정말 속을 모르겠다고 사과했다. 

이에 오히려 미안해진 쪽은 이사도라였다. 그런 사람인 것을 알았다. 첫 번째 사랑에서부터 줄곧 그랬다. 이사도라는 그런 부분까지 사랑했지만, 가끔씩은 너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감정이 있는 대로 드러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착각할 여지조차 갖지 못하도록 표정으로 솔직히 말해 줬으면 좋겠다….

"…너무 취했다. 금방 택시 부를게."

"왜 안에서 안 부르고 이제 불러?"

그대는 혹시 나를 사랑하나, 하고 대놓고 물어본 생이 있었다. 바루는 몹시 당황했고, 늘 잔잔한 호수 같던 평정이 처음으로 깨졌었다. 이사도라는 그를 곤란하게 하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어질 정도로 바루가 미웠다.

"애매하게 굴지 마."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사도라는 눈가를 문질렀다. 섀도우와 아이라인이 지워지겠지만…. 그런 것 이제는 모르겠다. 울지 마, 바루가 안절부절못했다. 이사도라는 코를 훌쩍였다. 달래려 드는 소리를 들으면 늘 그렇듯 눈물이 터져나왔다.

"날 좋아해?"

우리가 전생에 연인이었다고 말하면, 너는 믿어 줄까. 하지만 궁금해할 필요조차 없는 가정이었다. 이전 삶에 대하여, 셀 수도 없이 반복해 온 모든 생에에 관하여서는 결코 입밖에 낼 수 없는 금기가 걸려 있었으므로. 그래서 이사도라가 매번 할 수 있는 말은 투박한 고백뿐이었다. 전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큰데 표현할 방법은 부족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듯, 한 생에서의 기억만을 토대로 말을 빚어낼 수밖에 없었다.

"난, 널 좋아해…."

"도라, 난…."

"찰 거면 빨리 차. 지금 죽고 싶으니까!"

모든 고백이 무참히 거절당한 생도 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이사도라가 신경질을 부렸다.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던 그때의 비참함은 쉽사리 잊히지가 않았다. 

"…저 사람들은 뭔데 널 도라라고 불러?"

눈물을 훔치다 말고 이사도라는 고개를 들었다. 바루가 눈을 피했다.

"네가 좋아. 하지만 너는 너무 아름다워."

덤덤한 고백이었다. 너는 너무 완벽하고, 모든 것을 다 가졌어. 하지만 나는 아니야. 감히 너를 욕심내기에 나는 턱없이 부족해.

"나는 네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알고 보면 아이비와 바루는 몹시 닮았다. 특히 사랑을 향한 관점이 똑같았다. 아이비는 어쩌면 그래서 더 바루를 싫어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감정은 장난이며 인생은 실전이다. 애정만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오래갈 수 없고 반드시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이사도라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아는데.

세계는 잔혹했다. 신은 악랄했다. 하다못해 그녀가 살아온 시간을 입밖에 낼 수 있게라도 했다면. 어떤 생의 바루든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상관없어."

이사도라는 그네에서 일어났다.

"내가 다 줄게."

소설에서는 늘 이렇게 입을 맞추면 기억이 돌아오던데.

결국 소설은 소설일 뿐인 것이다. 알면서도 이사도라는 매번 기대했고, 또 매번 실망을 맛보았다.

"사랑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바루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도 이사도라를 사랑할 것이다…. 그걸로 되었다.

"계속 내 옆에 있어."

이번만큼은 매듭을 지어야지. 매 생에서 힘을 주어 그를 안으며 같은 생각을 했다. 양팔로 이렇게 꼭 끌어안고, 결코 놓치지 말아야지. 하지만 이사도라는 알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바루는 또 그녀를 두고 사라질 것이고, 이사도라는 또 시대를 건너 그를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늘 그랬듯 그녀는 견뎌낼 것이다. 

대가는 이 순간으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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