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준] 5월의 결혼식 上
-소장용 결제창 있음
-퇴고, 맞춤법 검수 X
-사투리 어설퍼요
-사망 소재 주의
“태성햄! 여기에요!”
“오랜만이다, 상호. 니 사투리 마이 읎어졌네. 서울 살아가 긍가.”
“아무래도 좀……. 인터뷰할 일도 계속 생겨서.”
“님은 변한 게 하나도 없음!”
“니도 좀 변하는 게 좋지 않긋나…….”
시익 웃은 기상호가 미리 마련해둔 자리를 가리키며 몸을 틀었다. 지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가까이 흘렀다. 먼저 졸업했던 선배들은 삼십 줄이 되었고 그 역시 서른이 가까워졌다는 게 실감 나는 나이였다. 각자 하고 싶은 일이든 하기 싫은 일이든 돈을 벌기 시작하니 단체로 만날 때도 탁 트인 곳보다 룸으로 된 자리를 예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와글와글 떠드는 거야 마찬가지지만 타인의 소음이 섞이는 게 별로 달갑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공태성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웅웅 울리며 작게 들리는 외부 소리가 묻힐 만큼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미리 초벌로 구워져서 돌판에 얹어져 들어온 두꺼운 삼겹살을 가장 서열 낮은 기상호와 정희찬이 양쪽 불판에 나눠 올렸다. 고소한 냄새가 풍기며 공기가 달아오르자 오랜만에 다 같이 뭉친 약간의 어색함마저 사라졌다.
술까지 곁들여가며 실없는 농담이 섞인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생긴 잠깐의 공백. 서로를 흘끗거리던 눈들이 슬그머니 한쪽으로 모여들었다. 처음으로 자진해서 이 모임을 주최하더니 정작 와서는 술만 깨작깨작 들이켜고 있는 미형의 남자. 그나마 옆에서 안주도 제대로 챙기라고 잔소리하는 진재유가 아니었다면 술만 마셨을지도 몰랐다.
벌써 혼자 2병 가까이 소주를 비운 성준수를 가만히 보던 시선들이 그 옆으로 도로록 움직였다.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듯 보였던 진재유가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성준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준수.”
“어.”
“슬슬 말을 해야제. 부산 사는 아덜까지 불러 내놓고 입 꾹 닫고 있음 우야노. 뭔가 용건이 있어서 부른 거 아이가?”
“그렇지…….”
탁, 하고 소주잔을 내려놓은 성준수가 길게 한숨을 뱉었다. 평온하기 짝이 없는 표정과 마찬가지로 잔잔한 눈빛이 고기 기름으로 가득한 상을 주욱 훑었다.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린 성준수가 이번에는 한 명 한 명 눈을 맞췄다.
“이 모임은 내가 주최했으니 오늘 식사비는 내가 결제할게.”
“진짜예?!”
“이열. 전하께서 드디어 백성들한테 구휼미를 나눠주는 겁니까?”
“지랄하지 말고. 대신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부탁할 게 있어서.”
“부탁?”
조용해진 룸 안에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음밖에 남지 않았다. 그 소음을 뚫고 탁. 탁. 탁……. 성준수는 손톱을 세워 식탁을 두드렸다. 차분했던 눈빛이 더 깊게 가라앉았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가 놓고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모두가 성준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특히나 관찰력이 좋은 기상호는 그 일련의 행동에서 복잡한 감정을 읽어냈다. 무엇보다도 ‘그’ 성준수에게서 짙은 망설임이 느껴진다는 게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이윽고 천천히 성준수의 입이 열렸다.
“나 결혼해.”
찬물을 맞은 듯 분위기가 식었다. 다들 눈을 크게 뜬 채로 뭐라 말하지 못한 채 덤덤한 성준수의 얼굴만 보았다. 손에 내내 쥐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린 공태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식탁이 통째로 흔들릴 만큼 강하게 식탁을 내리친 공태성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온갖 색으로 변하다가 이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허, 아니, 하……. 와 이리 무게를 잡나 했드니만, 뭐?”
“공태성. 앉아라.”
“여태 니 걱정하믄서 마음 졸인 놈들 생각은 하나도 안 하나! 결혼할라믄 하는 거지, 와? 우덜이 비난이라도 할 줄 알았나?!”
“아이고, 태성햄! 그만하고 앉으소!”
“그, 그래. 어쨌거나 좋은 얘기 하는 긴데…….”
“좋긴 개뿔이! 그래 좋은 일이었으믄 청첩장만 주고 끝낼 일이지 뭐다러 따로 자리까지 만드는데? 쫄아뿐 거 아이믄 와 이러는데!”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쏟아지는 폭언을 듣고만 있는 성준수가 말해주지 않는 이상은 아무것도 모를 뿐이다. 공태성을 말리려 일어났던 진재유가 자리에 털썩 앉아 머리를 벅벅 긁었다.
“준수. 내도… 솔직히 무슨 의도인지 모르긋다. 그 일 있고 나서 잘 지낸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잘 지내는 척하믄서 속으론 곪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데이. 근디 지금은… 만약 진짜로 우리가 니를 비난할 거라 생각해가 이래 따로 불렀다믄, 좀 실망스러울 거 같데이.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그 말에 성준수는 감았던 눈을 떴다. 누구 하나 편한 얼굴이 없었다. 하, 하며 비죽 웃은 성준수가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 사방으로 뿌리듯 던졌다. 반사적으로 봉투를 낚아챈 이들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누가 봐도 청첩장이다.
“씨발 진짜, 지금 이걸 이 타이밍에 주는 게 말이 되냐고!”
“준수햄도 태성햄도 마이 흥분한 거 같은디 좀만 진정을,”
“니 같음 진정하긋나! 점마가 이래 우리 마음을 짓밟는데……!”
“야.”
성준수의 입이 열리자 공태성이 눈을 부라렸다. 어디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한 표정에 성준수가 여분의 봉투를 흔들며 말했다.
“열어나 보고 얘기해. 호들갑 떨지 말고.”
“저게 진짜!”
“이, 일단 준수햄 말대로 해요! 네?”
“씨발…….”
거칠게 앉은 공태성이 봉투를 박박 찢었다. 청첩장이고 뭐고 존중할 생각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흰 봉투에서 흰 카드를 쑥 빼낸 공태성이 도끼눈을 뜬 채로 카드를 열어보았다. 당연히 안쪽에는 결혼하는 신랑 성준수와 신부…….
“…… 신랑… 전영중.”
사방에서 숨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급한 손놀림으로 봉투를 뜯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신랑과 신부의 이름이 적혀야 할 칸에는 둘 다 신랑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신랑 성준수. 신랑 전영중. 모두가 굳어버린 듯 청첩장만 보고 있을 때, 성준수의 입술 사이가 비싯, 비싯, 달싹이다 크게 벌어졌다.
“아하, 아하하하!”
“와, 와 웃는데예?!”
“니 새끼들 병신짓이 웃겨서. 내가 그럼 아무 여자나 잡아서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냐? 왜?”
“그야…….”
혼란스러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정희찬이 조용히 읊조리듯 말했다.
“그야, 영중 형은… 3년 전에 죽었잖아요.”
맞아. 전영중은 죽었어.
성준수는 사실을 말했다. 농구선수의 전성기라고도 할 수 있는 나이. 기술은 완숙해지고 시선은 노련해지고 태도는 여유로워지는 20대 후반. 아시안 게임 승리의 주역이기도 했던, 가장 찬란했던 그때. 전영중은 졸음운전 중이던 덤프트럭에 치여 죽었다. 일순간 목뼈까지 부러지며 즉사했다. 고통은 없었을 거라 했다.
스포츠 스타의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에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 직종 종사자들의 업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장례식은 비공개로 치러졌으나 아직 아시안 게임의 흥분이 다 가라앉기도 전이라 팬들의 요청에 따라 작은 공개 분향소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에 슬퍼했고, 분노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그라들 반응이었으나 그때는 모두가 그 감정 자체에 감사했다.
비공개로 치러진 장례식의 상주는 성준수였다. 비통한 상태에서도 의문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전영중의 부모는 그 이외에는 상주에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며 대답을 일축했다. 다들 나름대로 형제자매도 없고 부모가 상주가 되는 건 패륜이기도 하니 오랜 인연이라 알려진 성준수가 상주가 되었으리라 추측했다. 그러나 그들과 아주 가깝게 지냈던 소수의 사람은 생각했다. 전영중의 마지막을 지킬 사람이 성준수가 아니면 누가 있을까, 하고.
“전영중은 죽었지. 아시안 게임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전신의 뼈가 다 조각났어. 트럭을 몰았던 새끼는 열다섯 시간 넘게 운전하다가 불가항력으로 졸았고, 항소 한 번 하지 않은 채 죗값을 치렀어.”
“준수…….”
“그때 알았거든. 세상엔 생각보다 피해자밖에 없는 사건이 많다는 걸. 그러니까 눈물도 안 나더라.”
애인이 형편없이 뒤져버렸는데.
전영중과 성준수는 같이 걸어갈 수도 있었던 길을 돌고 돌아 프로가 되고 나서야 연인이 되었다. 대학을 다니는 내내 양쪽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유명할 정도로 투닥거렸던 둘이 정식으로 사귄다는 사실을 아는 건 그들의 고등학교 농구부 부원들과 부모님 정도였다. 세상의 편견에 대해 전영중은 두려워했고 성준수는 여차하면 같이 도망치겠다고 생각했으나 다행히도 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그들의 예상보다 상냥했다. 정확히는 ‘너네라면 그럴 줄 알았다’에 가까웠다.
두어 번 침착하게 설득하던 양측 부모님은 흔들림 없는 둘의 태도에 교제를 허락했다. 사실 그분들이 당사자 둘만 모르던 디나이얼 시절의 기류를 진작 눈치채고 체념하고 있었다는 건 교제 후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밝혀진 사실이었다.
연애하는 내내 싸우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들이 전보다 유별나게 서로에게 상냥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안정적이었을 뿐이다. 절대 이 관계를 끝내지 않겠다는 성준수의 선언으로 불안해하던 전영중까지 잠잠해지고 나니 어떤 난장을 부려도 둘의 관계만큼은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이상적일 정도로 안정적인 연애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형태로 끝나고 말았다.
교제 사실을 아는 쪽이었던 지상 고등학교 농구부원들은 성준수의 말이 이어질수록 힘이 빠져 의자 등받이에 늘어지듯 기댈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장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성준수의 냉정한 표정이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저 그는 일찌감치 알았을 뿐이었다. 울어봤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소주를 한 잔 더 마신 성준수가 비슷한 자세로 등받이에 기대 고개를 들었다. 밋밋한 천장과 환풍구를 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 새끼… 죽기 직전에 나한테 프러포즈했거든.”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성준수가 작은 상자를 식탁에 올려뒀다. 누가 봐도 반지 케이스인 게 분명한 형태에 사방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여튼 분위기 못 잡는 새끼들. 키득키득 웃은 성준수가 몸을 바로 했다.
“공태성.”
“우, 왜요…….”
“싹수없는 새끼. 잘도 털더라?”
“아 그라믄 첨부터 좀 제대로 말하시든가! 내는 놀라갖고…….”
“알아, 새꺄. 일찍 결혼하더니 사랑 얘기에 눈이 뒤집혀서는… 열부 났네.”
“아이 씨바 진짜!”
“씨바?”
“…….”
일찍 가정을 꾸린 공태성은 연인을 잃은 성준수를 누구보다 살뜰하게 챙겼다. 서울과 부산의 거리가 가깝지도 않은데 몇 번이나 올라와 쓸데없는 이유로 불러내 시간을 죽이며 곁을 지켰다. 따라 죽지 않을까 걱정했던 거 같지만, 성준수는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도 그 정성이 갸륵해 어울렸다. 누구보다 강하게 화를 낸 것도 저가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는 착각에 복잡한 배신감을 느껴서라고 생각하니 귀엽기까지 했다.
성준수는 슬펐다. 슬프지 않았다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사망 소식에 바닥이 꺼지는 기분도 느꼈고, 처참한 시체를 보고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도 느꼈고, 장례식 내내 비현실적인 현실을 저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성준수의 삶을 좀먹지 않았다. 함께 살았던 집에 남은 흔적이, 함께 다녔던 장소가, 같이 공유했던 시간이 성준수를 감싸 안았다. 외면해야 할 과거가 아니라 지탱해주는 추억이 되었다.
정돈된 분위기를 느낀 성준수가 비죽 웃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전영중이 옆에 서 있었다. 그날부터 전영중은 단 한 순간도 제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성준수는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다. 전영중이 미치도록 그립긴 했지만 잘 살아가고 있다. 주변에서 질린 눈으로 볼 정도로. 그럼 이제 남은 건…….
“다른 사랑을 할 생각은 없어.”
준수야. 나랑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나면 안 돼. 넌 뭔가 결정하면 뒤를 안 돌아보니까 그게 무섭단 말이야.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할 생각도 없어.”
우리 사이를 밝혔다가 억지로 헤어지면 어떡해? 선 자리를 계속 마련하고, 거기에 우리가 굴복해서 결혼하게 되면… 난 그런 꼴은 절대 못 봐…….
“난…….”
넌 진짜 성격이 어디까지 나빠질 생각이야? 내가 꼭 먼저 말하게 만들어야겠어?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 그뿐이야.”
나랑 결혼해. 성준수를 데리고 살아줄 수 있는 건 나뿐이잖아.
“그러니까 좀 도와줘. 혼자 하려니까 씨바 거, 뭐부터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결혼 유경험자인 태성햄 정도잖아요.”
“아이다. 내도 은재가 대부분 골라가 잘은 모르는디.”
“전화해서 물어보셈. 혹시 싸웠음?”
“안 싸웠거든?!”
말싸움을 시작한 공태성과 김다은 사이에서 낑낑대며 말리는 기상호. 진지한 표정으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진재유와 그 옆에서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며 툭툭 화두를 던져대는 정희찬. 그리고 옆에 선 전영중을 올려다보는 성준수. 어설픈 기혼자 하나에 미혼 다섯. 결혼식을 꾸미기에는 전혀 맞지 않은 조합이다. 성준수는 그걸 알면서도 이 정도 어설픔이 딱 좋다고 생각했다. 엉망진창인 결말을 기워 누더기처럼 이어나가려는 참에 치밀함은 필요 없으니까.
다음에 더 자세한 얘기를 해보자 정하고 모임을 파한 성준수는 취기에 둥둥 뜨는 기분을 숨기지 않고 길을 걸었다. 옆으로 따라붙은 전영중을 흘끗 보며 주머니 속 반지 케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영중아.”
네가 죽기 전에 제대로 대답해줬어야 했는데.
“우리 이제 결혼하자.”
용돈 / 소장용 결제창. 아무것도 없어요.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