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텽함] 고양이털 알러지

수인물

※ 캐해는 잘 모르겠고 보고 싶은 걸 씁니다. ※

※※ 본문은 펜슬 내에서만 감상해주세요 🫶 ※※

에, 에, 에-! 에에... 쩝. 또 시작이다. 재채기가 나올 듯 말 듯 간질거리는 게. 나올 거면 시원하게 나올 것이지 찝찝하게 매번 미수에서 그쳤다. 어딘가 간질간질한데 그게 코인지 목인지 그것도 아니면 마음인지 모르겠다. 복도에 붙어있는 거울로 얼굴을 살피면 살짝 붉은 기가 돈다. 그리고 눈동자만 움직여 거울 어딘가로 시선을 돌리면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 벽에 기대어 핸드폰을 하고 있는 그는 함원진의 두 학번 아래 후배, 김태영이다.

  김태영은 요즘 함원진의 최대 관심사였다. 몇 번의 간단한 실험을 통해 특정 증상들이 그 애 앞에서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김태영이 가까이 오면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어딘가 간질거리고 얼굴이 빨개지고.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생각해 본 결과, 함원진은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나... 김태영을 좋아하나 봐. 그렇지 않고서야 그럴 이유가 없었다. 하긴,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성격도 좋고. 안 좋아하는 게 더 힘든 조건을 가지고 있긴 했다. 그래도 조금 더 귀엽게 생긴 얼굴이 취향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말이다.

  자신의 감정을 정의한 함원진은 뚝딱이기 시작했다. 의식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김태영을 좋아해서 그랬다고 생각하니 평소대로 굴 수 없었다. 레이더마냥 간질간질 해서 뒤돌아보면 당연한 듯이 김태영이 가까이 있었다. 자연스레 김태영과 눈이 마주치는 빈도가 늘었다. 크고 맑은 눈이 꼬리가 살짝 올라가 고양이 같았다. 그러고보니 고양이를 닮은 것 같은 건 외모 뿐만이 아니었다.

 

 햇빛 쬐는 걸 좋아하는지 벤치에 앉아 광합성 중인 걸 자주 목격했다. 오늘도 역시나- 하는 순간 김태영과 눈이 마주쳤다. 김태영은 살풋 입꼬리를 올리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 모습에 얼굴이 달아올라 황급히 눈을 피하고 도망쳤다. 뛰어서인지 김태영 때문인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함원진이 생각해도 자신의 행동은 수상쩍기 짝이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갈 텐데 김태영만 보이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안절부절 못 했다. 그러니 주변인들이 이상한 걸 눈치 채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변인들이 알아챌 정도라면, 그 상대인 김태영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그리하여 결국 함원진은 기어코 김태영에게서 그 말을 들어버린 것이다.

  "원진 선배, 저 좋아해요?"

  "......그럴 걸."

  김태영은 함원진의 짝사랑 및 전 애인 목록 중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함원진도 이런 식으로 사랑을 깨닫게 된 건 처음이라 애매하게 긍정했다. 하지만 김태영을 보는 내 몸의 반응이 이런데 좋아하는 게 아니면 뭔데. 이것 봐, 지금도 간질간질. 이미 들켰겠다, 그리고 숨기지도 못 하겠다 싶어 솔직하게 답했다. 김태영이 꺼려하거나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은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야 들었다. 짧은 침묵에 뒤늦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저는 선배 좋아해요."

  김태영의 고백을 들은 순간 함원진은 간지러움을 참지 못 하고 크게 재채기를 했다. 아, 드디어. 속 시원해. 코를 훌쩍이는데 황당하단 표정으로 웃음을 참는 김태영이 보였다. 함원진의 얼굴이 머쓱함에 붉어졌다. 아니, 어쩌면 김태영을 대면한 순간부터 그랬을 지도 몰랐다. 그럼... 우리 사귀는 거예요? 선배도 절 좋아할 줄 몰랐어요. 너무 좋아요. 준비되지 않은 함원진에게 시속 127,322km짜리 돌직구가 쏟아졌다. 함원진은 그냥 토마토가 된 채 응, 응, 얼떨떨하게 같은 대답만 계속 내뱉었다.

 

***

  김태영과 연, 연애.. 한지 이주일이 됐다. 더 가까워진 관계에서 본 김태영은 생각보다 꽤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시간이 맞아 같이 하교하는 길. 걸을 때마다 손등에 스치는 김태영의 손 때문에 또 간질거렸다. 그냥 확 잡아버릴까 고민하는 사이 김태영이 선수쳤다. 뻔뻔하게 덥석 잡은 손이 조금 거칠지만 따뜻했다. 함원진은 무어라 하는 대신 귀끝만 물들였다. 기분 이상해. 간질간질. 할 말이 있는데 망설여지는 것처럼 함원진의 손을 초조하게 문질거리던 김태영이 꼬옥 힘주어 잡았다.

  "형, 고양이 어떻게 생각해요?"

  "어떻긴... 귀엽게 생각하지."

  "그래요?!"

  "근데 난 강아지가 더 좋아. 고양이는 너무 도도하시잖아. 그리고 고양이털 알러지가 심해서."

  "아......"

  함원진의 말에 김태영은 어쩐지 시무룩해졌다. 감정의 변화를 눈치 챈 함원진이 무슨 일 있냐 물으면 잔뜩 서운한 얼굴을 해놓고 없다는 대답만 했다. 그 표정이 신경쓰였지만 본인이 없다는데 함원진도 별 수 없었다. 그냥 잡은 손등만 문질러 줬다. 그게 함원진이 할 수 있는 나름의 표현이었다. 갈림길에 다다라 손을 놓으려고 하자 김태영은 놓아주지 않았다. 

  "데려다 줄게요." 

  "나 남잔데. 괜찮아." 

  그 말에 김태영의 입술이 댓발 튀어나왔다. 이렇게 보면 고양이 닮은 게 아니라 오리 닮은 듯. 아니, 오리 닮은 건 난데. 역시 좋아하면 닮... 함원진은 의식의 흐름으로 흘러간 생각의 결론에 기함을 했다. 우웩. 이거 내가 한 생각 맞아? 누가 조종하는 거 아니야? 속으로 오바이트 하며 자신의 오글거림에 몸부림 치던 함원진은 데려다 준다 괜찮다 옥신각신 하다, 그냥 더 보고 싶어서 그렇다는 함원진으로썬 버틸 수 있는 역치를 넘어선 김태영의 멘트에 한 방에 K.O 되어 흰 손수건 집어 던졌다. 

  둘은 여전히 손을 잡은 채 함원진의 집 앞에 도착했다. 더 보고 싶어서 그렇다고 한 게 사실인 듯 김태영은 오는 내내 말이 없었고, 종종 함원진의 얼굴만 슬쩍슬쩍 쳐다봤다. 그 시선에 함원진이 얼굴을 불태우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싫다는 건 아니지만 도저히 적응이 안 됐다. 해왔던 모든 사랑은 늘 함원진이 다가가는 식이어서 더 그랬다. 주는 건 익숙하지만 받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그럼 개냥이면요? 안 도도하고 막 애교부리는."

  "어? 좋지. 내 알러지만 아니면."

  아직도 그 생각 중이었어? 함원진의 대답에 내내 어둡던 김태영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무엇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졌는지 허리를 숙여 함원진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함원진은 얼굴에 열 오른 채로 입과 코를 손으로 가렸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서인데, 코만 막으면 김태영이 자신에게서 안 좋은 냄새가 나냐며 시무룩해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김태영에게서는 안 좋은 냄새는커녕 향수를 뿌린 건지 은은한 장미향이 났다. 

  자신보다 한뼘은 큰 녀석이 고양이가 애교 부리는 것마냥 머리를 들이대 비비적거리니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귀여웠다. 어느 새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은 김태영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오묘한 게 내기도 힘들겠다 싶은 회색빛 도는 흑색 머리칼이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함원진에게 고백 받기 한참 전부터 함원진을 좋아했던 김태영은 언젠가부터 바뀐 함원진의 행동에 희망 회로를 돌렸더랜다. 눈이 마주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함원진이 얼굴을 붉히며 도망갈수록 그 희망엔 확신이 생겼다. 분명 쌍방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마저 함원진이 너한테만 이상하게 군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더 참지 못하고 고백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고백이 받아들여졌을 때는 마냥 기뻤다. 함원진이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심하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 고양이 수인인데 어떡하지. 도도한 게 별로면 친근하게 굴 수 있었다. 원래 성격도 그쪽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알러지는 김태영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양이털 알레르기 약을 챙겨다니는 것뿐이었다. 김태영은 함원진에게 비타민이라고 속이고 만날 때마다 입에 넣어줬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함원진은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 함원진이 코를 훌쩍일 때면 괜히 뜨끔해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혹시 저도 모르게 귀가 튀어나왔나 싶어서. 이 놈의 망할 고양이 귀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잘 조절이 안 됐다. 함원진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꾸미고 나온 날에도 가방 한쪽에 모자가 필수템이 됐다. 모든 짐이 주머니에 쑤셔넣는 걸로 충분한, 가방 같은 거 들고 다니지도 않는 미니멀리스트였던 김태영은 오직 함원진을 위해 작은 가방 하나를 챙겨다녔다. 

  김태영 가방 속 함원진 지분은 70%였다. 비상시 튀어나온 귀 가릴 모자, 고양이털 알레르기 약이 든 약통, 약과 함께 마실 200ml짜리 생수, 옷에 붙어있을지도 모르는 고양이털 제거를 위한 작은 돌돌이, 형이 잃어버린 것 같다던 에어팟 한 쪽, 유독 더위를 타는 형을 위한 미니 선풍기. 김태영을 위한 짐이라곤 핸드폰, 지갑, 에어팟이 끝이었다.

  김태영은 아무리 알레르기 약을 먹인다 해도 함원진을 죽어도 집에 안 데려갔다. 함원진이 자취방 궁금하다며 은근 오고 싶은 눈치여도 애매하게 말을 돌렸다. 집에서는 편하게 동물화 하고 있을 때가 많아서 청소를 해도 고양이털 천지였으니까. 김태영은 살짝 입술이 불퉁하게 튀어나오려는 함원진 허리를 끌어안고 목에 애교스럽게 머리를 비비적댔다. 많은 고양이의 습성 중 인간 형태일 때에도 유독 김태영에게 잔재하는 건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향을 남기는 것이었다. 동물화 하지 않은 상태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다지만 본능이기도 한 그 행동은 함원진이 껌벅 넘어가는 행동이기도 했다.

  넌 진짜 고양이 같아. 함원진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김태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래서 싫다는 거야 좋다는 거야? 그 말을 하는 함원진의 얼굴이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아서 심장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도 여전히 벌렁거리는 김태영의 심장을 진정시킨 건 이어진 함원진의 말이었다. 햇빛 쬐는 거 좋아하고, 눈 마주칠 때 가끔 천천히 깜박이는 것도 그렇고, 머리 비비는 것도 그렇고. ...귀여워. 

  함원진이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자 김태영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께를 쥐는 대신 제 머리 위에 있는 함원진의 손을 꾹 눌렀다. 혹시라도 고양이 귀가 튀어나오지 못 하게. 금방이라도 꼬리 꺼내들고 함원진의 다리에 감고 싶었지만 김태영은 지금 인간 모습이니까. 꾹 참았다.


  김태영이 꼭꼭 숨겨왔던 고양이 수인이라는 사실은 정말 허무하리만치 어이없게 함원진에게 들켰다. 함원진은 문득 김태영과 사귀기 전 일어났던 증상들이 이제는 나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김태영이 낯부끄러운 짓을 해오면 얼굴이 빨개지는 건 여전했지만 재채기를 하거나 어딘가 간질거리지는 않았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던 찰나였다. 김태영의 또 다른 귀를 본 것은.

  첫 뽀뽀였다. 볼이 아닌 입술. 그게 뭐라고 김태영도 함원진도 얼굴 벌개져서 서로 눈을 피했다. 함원진이 한 번 더의 기회를 노리는데 김태영이 뜬금없는 짓을 했다. 급한 손길로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쓰더니 저, 화장실 좀요! 외치고 도망갔다. 꽁지 빠지는 뒷모습이 그건 말 그대로 도망이 맞았다. 함원진은 멍하니 서 있다가 황당함에 말을 더듬었다. 뭐, 뭐야? 함원진은 곧 뒤따라갔다. 아니, 어이가 없어서. 

  함원진은 김태영을 화장실이 아닌 어느 건물 뒷편에서 발견했다. 김태영은 모자를 벗고 머리 위로 튀어나온 무언가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뭐가 마음대로 안 되는지 머리를 헝클이는 순간 함원진은 정확히 목격하고 말았다. 김태영의 회흑빛 머리칼 사이에 솟아있는 세모난 귀를. 그러니까, 꼭 고양이 귀 같은... 고양이 귀??? 그렇게 크게 외치고 입 틀어막아봤자 이미 뱉은 소리 주워담을 수 없었다. 큰 소리에 문제의 고양이 귀가 쫑긋거렸다. 김태영의 얼굴이 천천히 함원진을 향해 돌아봤다. 마주친 눈빛이 귀신을 마주한 듯 잔뜩 흔들렸다.

  말없이 서로 바라만 보며 굳어있다 먼저 발걸음을 뗀 함원진은 김태영 앞에 멈춰섰다. 당황한 김태영이 급한대로 튀어나온 고양이 귀를 손으로 가렸다. 김태영의 손바닥 밑으로 고양이 귀의 뾰족한 부분이 삐져나왔다. 함원진은 생각했다. 헐, 귀엽다. 근데 잠깐만, 나 고양이털 알러지...인데 왜 재채기 안 나오지? 간지럽지도 않고 얼굴 붉어지지도 않고... 생각하다 보니 고양이털 알러지가 발현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과 김태영이 가까이 있을 때마다 나타났던 증상이 유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너... 고양이 수인이야?"

  "......네..."

  "너만 보면 간지러웠던 것도, 얼굴 열 오르던 것도 그래서였네."

  "그... 인간 형태일 땐 알레르기 증상이 안 나타나거나 아주 약하게 나타나는데... 형은 나타났었구나요..."

  "근데 요즘엔 안 그러던데."

  "제가 비타민이라고 준 거 알러지 약이었어요..."

  그제야 김태영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갔다. 어쩐지 고양이 같다고 하니까 화들짝 놀라더라. 비타민 안 먹으면 큰일 날 것처럼 굴더니 알러지 약이었고? 자취방에 못 오게 한 것도 그렇고. 그럼 그 증상들이, 내가 김태영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다 알러지 반응이었단 말이야..? 함원진의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마냥 온통 혼란스러워졌다. 

  그 와중에 MBTI 두 번째 자리가 N인 함원진의 머릿속엔 엉킨 실타래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가 그려졌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알러지가 있다 뿐이지 고양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귀엽잖아. 그러니까... 고양이도 귀엽고, 김태영도 귀엽고. 함원진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김태영이 볼까 싶어 얼른 표정관리를 했다.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자 김태영의 눈이 온갖 부정적인 감정으로 물들었다.

  "왜 미리 얘기 안 했어?"

  "형이 알레르기 때문에 헤어지자고 할까봐... 헤어지기 싫어서요..."

  "하......"

  "난 정말 형이 좋단 말이에요."

  잘못한 어린애마냥 어깨를 늘어뜨린 김태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장난기 돈 함원진이 일부러 오바스럽게 한숨을 쉬자 울망울망한 눈으로 눈치를 보는데 어느새 자취를 감춰 보이지도 않는 고양이 귀가 축 쳐져있는 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이거 어디서 봤는데... 아, 장화 신은 고양이. 투정부리는 듯한 말투에 벌써 물기가 배어있었다. 

  함원진은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오해로 시작했든 진심으로 시작했든 지금은 너와 같은 마음이라 이런 걸로 헤어질 생각 없는데. 지금까지처럼 약 먹으면 되는데 왜 당연하게 이별 통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연애하는 동안 별로 안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졌나? 다시 생각해보니 좀 남사스러워서 김태영의 애정 표현을 잘 못 받아주긴 한 것 같았다. 그래서 함원진은 김태영의 손을 잡으며 과장된 톤으로 말했다.

  "야, 누가 헤어진대? 약 먹으면 괜찮아."

  "......기분 좋다."

  "뭐가?"

  "형이 그 정도로 날 좋아한다는 거잖아요."

  김태영은 채 마르지 않은 눈물을 매달고 환하게 웃었다. 그 말이 맞았다. 함원진은 김태영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착각으로 시작했을지언정 지금은 얼굴에 열 오른다거나 하는 게 단지 알러지 때문만이 아님을 알았다. 물론 그 시작은 김태영에게 절대 비밀이지만. 

  김태영이 첫 뽀뽀하고 냅다 도망간 황당한 사건 덕분에 함원진은 김태영이 고양이 수인이라는 귀여운 사실과, 자신이 생각보다 김태영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함원진은 어찌 됐든 하다 만 뽀뽀나 더 하고 싶었다. 우리가 아무리 처음이어도 키스도 아니고 뽀뽀인데 겨우 한 번으로 끝내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충분히 아쉬울 법 하지. 암 그렇고 말고.

  "뭐래... 뽀뽀나 다시 해보던가."

  "네 ㅎㅎ"

  "근데 아까 기분 많이 좋았나 봐. 귀도 튀어나오고."

  "아, 형... 또 놀리네."

  또 금세 타오른 얼굴로 뽀뽀한 김태영은 함원진의 놀림 다분한 말투에 창피한지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그래봤자 귀 빨간 거 다 보이는데. 물론 고양이 귀가 아닌 사람 귀가 말이다. 함원진은 자연스럽게 김태영의 동물화한 모습이 궁금해졌다. 아까 튀어나온 귀 보니까 털색은 머리색과 같은 것 같던데. 말랑하다는 젤리 눌러봐도 되나.

  "나중에 고양이일 때 모습도 보여주라."

  "형 알러지..."

  "약 먹으면 괜찮다니까."

  김태영은 함원진의 젤리를 향한 흑심을 모르고 감동 받아 눈을 반짝였다. 함원진은 그런 김태영의 머리를 괜히 흐트려뜨렸다. 찔리게 왜 그런 눈빛으로 본대. 아무것도 모르는 김태영이 형한테는 보여줄 수 있다며 행복한 표정으로 함원진을 품에 안고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이것도 고양이 수인이라서 그런 거겠지? 함원진은 그런 김태영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네가 고양이 수인이 아니게 되는 순간 가차없이 헤어져주지. 김태영이 고양이 수인으로 태어난 이상 아무래도 헤어질 날은 전무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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