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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당하다

유리가 있는 세계의 소고가 유리가 없는 세계의 소고의 몸에서 눈을 뜬다면

総心 by 천파복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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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어요. 오늘도 컨디션이 괜찮네요. 일어나서 씻어요. 아침 조례를 하고, 히지카타를 갈구고, 순찰을 나서요. 아차, 순찰 나가기 전에 마실 걸 사야죠. 유리에게 아침 인사도 해야 하고요. 카미야마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유리의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울테지만요.

곧 나타날 편의점을 생각하고 창문을 내려요. 어라? 그냥 지나가요. 하지만 카미야마에게 뭐라고 하지 못했어요. 시선 담긴 것은...사람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역력한 빈 2층 건물이었으니까요. 그제야 소고는 느껴요. 커플링을 꿰어놓은 목걸이가 없어요.

"차 돌려."

"오키타 대장?"

"차 돌리라고."

2층짜리 건물 앞에 내렸어요. 1층이 편의점으로 리모델링 되어 있지도 않고, 건물 옆에 나무도 없고, 평상도, 테이블도, 빗자루를 든 유리도 없어요.

소고는 2층에 올라가서 문을 열었어요. 잠겨있네요. 부쉈어요. 먼지가 잔뜩 쌓인 텅 빈 방.

차에 타고 있는 카미야마의 멱살을 잡아요. 이 존재가 '카미야마'가 맞는지 질문을 던져요. 롯카쿠의 일.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증거를 감췄는지. 카미야마는 곧이곧대로 대답해요. '카미야마'가 맞아요. 핸드폰을 뒤져요. 유리의 번호가 없어요. 미츠바의 번호도.

히지카타.

"뭐냐, 소고."

당신, 유리가 담배 연기에 콜록대서, 누님 때문에, 담배 끊었잖아. 왜 뻑뻑 피고 자빠졌어?

"…잠 덜 깼군. 가서 세수나 하고 와라."

칙. 라이터의 소리.

"-당신이 왜 담배를 피워!!!"

소고가 달려들었어요. 검도 뽑지 않고, 주먹질을 날렸어요. 히지카타는 갑자기 이게 뭔가 싶었지만, 쉽게 당할 사람은 아니었죠. 둘은 피터지게 싸웠어요.

아무도.

아무도 유리를 몰랐어요. 누님은 돌아가셨대요.

병원 기록이 남아 있어요. 유리야 원래 과거가 불투명하지만, 아무 행적도 파지지 않는 것은 이상해요.

소고는 마지막으로 롯텐 마이조를 찾아왔어요. 외팔이 아니에요. 양팔 다 없네요.

"카나에 가문을 아십니까?"

"음…. 귀족가 중에는 카나에라는 가문이 없습니다만, 무슨 일인지요. 과격 양이당과 무슨 연관이라도."

"아니, 아닙니다."

어지러워요.

어디 갔어?

두고 가지 말라며.

그런데 왜 사라져버린거야.

부슈, 어릴 적 살던 집에도 내려가요. 미츠바의 묘를 찾았어요.

이바라키현의, 유리의 옛 집이 있던 곳으로도 가요.

숲을 헤매다가 약초꾼에게 구조됐어요.

넋이 나간 소고를 곤도가, 히지카타가 데려왔어요.

무기한 근신이 내려졌어요. 소고는 그러든 말든 온 에도를, 일본을 뒤지고 다녔어요.

없어.

없어.

없어.

유리의 손끝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어떤 향기가 났는지 잊어버렸어요. 자세가, 버릇이, 웃음소리가,

희미해져가요.

오키타 소고는 그래도 굴복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의 평화가 없는 세계를 용납할 수 없었죠. 아, 하지만, 미츠바의 기일이 다가올수록 약해졌어요.

나의 망상인 걸까.

그럴 리가.

아무 흔적도 없는데.

내 기억이 있잖아.

호접지몽.

제발 닥쳐.

소고는 방 밖으로 나왔어요. 날이 좋네요. 저벅. 저벅. 저벅. 곤도와 히지카타를 만나러 가요.

제가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지금은 좀 어떠냐."

그럭저럭, 괜찮아요.

"병원 가보는 건 어때."

아뇨, 그정도까진 아니에요.

"…."

히지카타가 소고의 멱살을 잡고 일으켰어요. 그대로 질질 끌고 도장으로 데려가요. 죽도를 소고 앞에 내동댕이쳐요.

"들어라."

왜요?

"닥치고 들어, 오키타 소고. 내가 먼저 갈까?"

소고는 검을 들고 달려들었어요.

결과는 소고의 패배. 히지카타는 피를 퉤 뱉고는 말했어요.

"근신은 연장이다, 소고."

소고는 허한 눈으로, 고개를 쳐들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유리를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어떻게 정신을 차리라는 거예요.

그 애가 내 세계를 전부 뒤엎었는데.

이제 와서 유리 없이 살라고요?

그래도 시간은 흘렀어요. 소고는 근신을 이어갔어요. 남들이 보기엔 나아지는 것 같았어요. 그저 속이 곪아가는 거지만요.

유리를 입밖으로 내는 때가 줄었어요.

뭐, 생각이란 건 밖으로 내보여지지 않으니까요.

미츠바의 무덤에 찾아갔어요.

뭐, 참배 같은 건 안 했지만요.

소고는 서적을 뒤졌어요. 세계, 워프, 차원 등등등…. 온갖 저명한 학자들을 만났어요. 뒷골목의 주술사를 찾았어요. 겐가이에게도 찾아갔어요. 그 전쟁으로 알게 됐으니까요, 겐가이의 어마어마한 능력을.

겐가이는 말했어요. 차원을 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고. 하지만 원하는 차원이 있다면, 매개체가 필요하다고요.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요. 소고는 이 몸에서 '깨어난' 건데요. 어떻게 알았냐고요? 원래의 몸보다 흉터가 많았거든요. 특히 손을 쿠나이로 꿰뚫린 흉터. 이것은 유리가 깨끗하게 치료해준 상처였어요. 하지만 '이 몸'은 흉터가 너무나 적나라했어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유리의 존재를 긍정하지 않았어요.

소고는 곤도와 히지카타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히지카타에게 패배하는 짓을 반복했어요. 거의 미쳐가고 있었죠. 히지카타는 그걸 알아차렸지만, 대련을 계속했어요.  대신 검으로 말했어요.

정신 차려라.

내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일걸요?

미츠바는 죽었어.

당신이 그러면 안되지.

'유리'라는 사람은 없다.

닥쳐.

셀 수 없는 설득과 기억이 부딪혔어요. 소고는 결코 꺾이지 않았어요. 무슨 말이냐면, 끝내 히지카타를 이겼다는 말이었어요. 쉽게 볼 수 없는, 불타는 눈빛.

유리는 내 안에 살아 있어.

그 미소가 흐려져도, 향기를 잊어버려도, 내가 유리를, 유리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결국 소고는 긴 칩거를 끝냈어요. 다시 임무를 나가기 위해 일어났어요. 눈을 떴어요. 오늘 컨디션은 나쁘지 않네요. 일어나서 씻어요. 아침 조례를 하고, 히지카타를 갈구고, 순찰을 나서요. 다른 편의점에서 물을 샀어요. 순찰동안 다 마셨어요. 점심은 유리가 좋아하던 음식점에서 먹었어요. 둔영으로 돌아와서 카미야마에게 보고서를 떠넘기고 잠을 자요. 저녁에는 임무가 있어요. 불법 무기 거래 현장으로 가요. 실력은 녹슬지 않았어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끝났어요. 복귀해요.

유리. 말도 안되지만, 네가 없어도 세상이 멀쩡하게 돌아가.

그 사실 탓인지, 소고는 그날 잠에 들지 못했어요. 그런 소고에게 곤도가 찾아왔어요. 술잔 두 개를 들고요.

한 잔.

"이제 진짜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은거 안다."

두 잔.

"히지카타 씨도 밟아줬고, 오늘 임무도 잘만 끝내고 왔는데 또 뭐가요?"

"됐어. '유리' 이야기나 해 봐."

세 잔.

"…망상일 뿐이에요."

"그녀석, 이 근처에서 편의점을 했다며."

네 잔.

"꿈이 너무 생생했던 거죠."

"이 근처에 있는 그 빈 2층짜리 건물 말하는 거지? 하긴, 거기에 편의점이라도 있으면 편하겠네."

다섯 잔.

"그만하세요, 곤도 씨."

"아니. 난 듣고 싶다. 넌 내가 아는 소고가 아니야."

여섯 잔 째는 넘기지 못했어요. 둘은 시선을 마주쳤어요.

유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를 좋아했어요.

곤도 씨랑은 금방 친해졌어요. 히지카타 씨랑도요.

저요? 저랑 평범하게 친해졌겠어요? 아-. 그래도 좀 봐주긴 했죠. 민간인이니까.

대원들이랑도 잘만 농담따먹기 하더라고요. 무섭지도 않나.

아아…. 그리고 매운 걸 좋아해요. 네, 누님이랑 똑같죠. 그래서 불새볶음면이라는 걸 나눠받았어요. 대신 매운 센베를 줬죠. 네, 아무도 안 먹는거 알아요.

감기 걸려도 멍청하게 장사했어요. 곤도 씨가 계란술을 갖다 줬고요, 야마자키는 둔영에 있는 감기약을 줬대요. 히지카타는… 뭐, 당연히 마요네즈를 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서비스도 잔뜩 뿌렸고. 아, 이래서 대원들이 좋아한건가.

누님은….

유리가 두번째 삶을 쥐여줬어요.

그래놓고 한 소리가 뭔지 알아요? 단골이라서 서비스 해준거래요. 돈도 안 받았어요. 호구죠?

알아요. 그만큼 우리를 사랑한다는 뜻인거겠죠.

누님을 치료하는 기간 중에…… 저를 정말 사랑스럽게 보더라고요. 뭐, 인정할게요. 그때 홀렸어요.

유리 곁을 맴돌았어요. 혹시나 나를 돌아봤으면 해서. 돌아보지 말았으면 해서.

돌아보더라고요.

도망쳤어요. 젠장, 왜 웃어요, 곤도 씨.

그런데… 죽도록 쫓아오더라고요. 기백이 장난 아니었다고요. 기백 포함해서 키가 이미터인 수준이었다고요.

꼼짝없이 붙잡혀서… 뭐, 사귀게 됐어요.

정신없이 행복했어요….

그런데… 그게 전부 사라졌어요.

누님은 돌아가셨어요. 알던 대원들도 많이 죽었네요. 유리가 살렸었는데. 성망교의 테러? 그런 건 조기에 진압됐었다고요.

여긴 제 에도가 아니에요.

"돌아갈 수 있을거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너의 에도에서 너를 찾고 있을 테니까."

그 말이 열쇠라도 됐던 걸까요?

챙강-! 하는 소리가 울렸어요. 어디에서? 공중에서.

쾅.

쾅.

쾅.

소란스러움에 진선조가 비상이 걸렸어요.

달이, 초목이, 공간 자체가. 깨져가고 있었죠.

소고는. 심장이 뛰었어요.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유리.

너야?

챙강-!!! 소리가 한번 더 울리고, 비산하는 세계의 조각 사이로. 유리가, 아아,

"소고-!!!"

C. 자스츠님

뛰어드는 유리를 소고가 받아들었어요.

그래, 너는 풀향기가 났어. 짭짤한 과자 냄새도.

그래, 너는 내게 파고드는 버릇이 있지.

목소리를 들려줘.

"데리러 왔어!"

웃는 얼굴을 보여줘.

"아하하, 뭐야. 못생긴 얼굴."

울지마.

"많이 늦었지? 미안해. 그러니까 그만 울어."

"응."

볼이 맞닿아서 눈물이 섞였어요.

그 긴 재회를, 누구도 딱히 막지 않았어요.

뭐, 이후에는 일사천리였어요. 겐가이에게 가서 두 소고의 영혼을 바꾸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부서진 세계의 조각은 일일이 주워서 순간접착제로 붙였고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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