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렀다. 아마 며칠, 아니 몇주가, 혹은 몇달이, 아마 수년이 지났을 것이다.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예민해도 나를 조금 꺼리는게 다일 뿐, 헤메이던 꿈속에서 굳이 숨어있는 엑스트라에게 집중하는 사람은 없었고, 여느 괴담이 그렇듯 아무리 오싹한 미스테리라도 회자되고 나이를 먹으면 점차 가벼워지기 마련이었다. 나의 밤산책 루틴은
지훈의 하루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다. 평균적으로 6~7시에 기상하는 이들과 달리 지훈의 아침은 보통 10~11시였고, 아무리 일러도 9시였다. 오늘은 별일 없는 날이라 보통 때와 비슷하게 일어나야 했으나 오늘은 난데없는 기상 알람이 울렸다. “지후니~ 그만 자고 일어나야지!” “어….” “해가 중천이다~ 일어나야지!” 바로 윤정한. 갑자기
밴드는 원래 해체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다. 농담과도 같은 이 말은 사실 락덕들이 눈물로 새긴 문장이다. 힙합하는 사람들이 SNS로 저격하고 디스곡 써낼 때 밴드맨들은 면전에서 손가락 날리고 주먹질하고 팀 나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을 그보다 더 착실하게 지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 누구도 남아있고 싶지 않게 되면 팀은 끝난다. 그리
정한의 하루는 때때로 해도 뜨지 않아 풀벌레도 조용한 시간에 시작되곤 했다. 오늘도 그런 날 중에 하나로 새벽 시장을 도는 날이었다. 겨울은 이미 한참 지나 거리마다 색색의 꽃이 잔뜩 핀 4월이지만 아직 새벽 공기는 쌀쌀했다. 대충 씻고 뭐라도 욱여넣으려 주방에 가니 식탁 위에 커다란 보온병이 놓여있었다. 같이 놓인 쪽지엔 예쁜 글씨로 ‘나갈 때
최한솔이 궁금해하곤 했던 것은 인류는 어떤 식으로 멸망할 것인가였다. 이것은 한솔만이 가진 의문은 아니라 인류는 오랜 시간 지구 멸망 시나리오를 써내려왔다. 한솔은 그 모든 것을 섭렵한 수준은 아니었대도 꽤 많은 것을 상상해낼 수 있었다. 진부하게는 운석 충돌이나 화산 폭발, AI 반란부터 현실적으로는 지구온난화와 꿀벌의 멸종, 제재없는 전쟁까지. 그
오전 6시.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도 없이 일어난 명호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몸을 깨우려 기지개를 켜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오늘 해야 할 일정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스트레칭을 짧게 끝낸 명호는 우선 방을 나가 제가 자려고 들어갈 때까지도 불이 켜져 있던 원우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원우는 자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책상 위에만 그가 늦게까지 일했단
‘가족’이란 뭘까? 사전적 의미론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며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뤄진다고 되어 있으나 사회적으론 남성과 여성이 결혼하여 이룬 구성원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다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다양성이 대두되며 가족의 개념도 조금씩 달라져 갔다. 굳이 결혼으로 이루어진 구성원이 아니어도,
카페에 손님이라곤 꼴랑 10명인데 개바쁜 거 말이 됨? ・ 사장님퇴근시켜줘요 아니 여기가 무슨 자기네 냉장고인 줄 아나봐…ㅠㅠ나 카페 알바생인데 건물 1층에 있어서 걍 그 건물에 사는? 근무하는? 사람들만 이용함ㅇㅇ 구석인 데 있어가지구 사람 많이 오지도 않아…… 그러니까 그 10명이 손님의 전부인 셈이지. 근데ㅋㅋㅋㅋ 야 하루 매출이 몇십만원은 껌으
Look, if you had one shot, one opportunity 이봐, 네가 단 한 번, 단 한 번의 기회로 To seize everything you ever wanted-One moment 원했던 모든 걸 얻을 수 있게 된다면 Would you capture it or just let it slip? 그 기회를 잡겠어, 아니면
3일간의 기록 w. 주인장 '팟' 하는 부싯돌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울리고 이내 손톱 만한 불꽃이 인다. 기현은 입에 문 기다란 하얀색 담배 끝에 불을 가져다 대고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다. 입 안으로 스멀스멀 퍼지는 매캐한 연기를 속 안으로 삼키고서 남은 희뿌연 연기를 대기 중으로 길게 내뱉는다. 한여름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재난 상황에서 라디오는 다른 전자기기가 사용되기 어려운 환경에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써 중요하게 여겨졌다. 특정 주파수에 맞춰놓으면 송신되는 재난 상황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라디오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곤 했다. 물론, 구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도 쓰지 않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저 어딘가에
* 제멋대로 그리스 로마 신화 기반 글이 죽지도 않고 또 왔습니다. 13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정말 아주 매우 많이 짧은 글입니다. 가볍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래를 아는 것은 좋은 일인가? 아마 백 명의 인간에게 묻는다면 구십구 명의 인간들이 긍정의 답을 내놓을 것이다. 어쩌면 백 명의 신에게 물어도 같은 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들
* 빵 님과 연성교환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신화 기반인 것처럼 보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과 제멋대로 설정이 가득합니다. 재미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전쟁의 신은 제 형의 머리를 가르고 세상에 나왔다. 그의 영향력을 온 세상이 알고 두려움에 떨기라도 하는 듯 산이 흔들리고, 땅이 흔들렸다. 바다는 선혈이 넘치기라도 한 듯 붉게 물들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