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가가 말했다. “오사무. 시시한 거짓말을 하는구나.” 미쿠모 오사무는 사이드 이펙트를 발현하기엔 턱없이 적은 트리온을 보유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확히는 그 직전에 이르렀을 때만큼은 직후 쿠가가 자신에게 할 말을 미래라도 내다본 양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진 유이치가 가진 미래시 없이도 그 정도 ‘다음’은 또렷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키쿠치하라 시로
* 1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최초에 보더가 있었고, 경계구역이 있었다. 경계구역 밖에는 미카도시의 나머지가 있었고, 제3차 대규모 침공의 피해는 경계구역과 미카도시의 경계가 아닌 미카도시와 그 외부의 경계를 넘어 확산되었다. 진원지인 미카도시의 피해가 어느 정도였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리다. 피해는 제1차 대침공 때를 방불케 했고, 일부는 넘어섰으며,
‘등을 다치는 건 검사의 수치래.’ 또 무슨 만화책을 들여다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을 보면 그다지 친하지 않은 동급생―자신―의 눈에 비치는 소년의 평소 이미지가 어떤지는 구태여 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만하리다. 굳이 편견으로 대하려고 하지 않아도 손에는 이미 교과서 대신 만화책 한 권이 덜렁 들려 있는 소년이기도 했다. 예의
죽음과, 그리고 그 죽음이 트리거에 얽혀 있을수록 깨닫는 것이 빨랐다. 트리거와 관련이 없는 죽음이라면 처음은 무리여도 도중에는 반드시 이 백일몽에서 깨어났으며,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시엔 모든 반복을 기억하며 백일몽과 함께했다. 간혹 그런 것 없이도 반복을 기억하는 예외 개체들이 존재하긴 했으나 수는 많지 않았고, 타치카와 케이는 위의 일례에서 벗어나지
어쩌면 이미 맛보았기 때문에 좀 더 알기 쉬웠던 건지도 모르겠어. 마지막 순간 생이 부유하는 느낌 말야. 그대로 끝인 줄만 알았기에 이질감을 크게 느끼는지도. 신기해, 조금. 레이. 미안. 나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이해하지 못하겠어. 그러나 그 말에 나스는 고개를 저을 뿐 쿠마가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한다는 듯이 입가
도저히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 만에 본부 건물 내부로 침투하는 데 성공한 적인 만큼 아무리 베어내고 또 찔러대도 아무렇지 않게 막아내는 단단한 장갑과 요리조리 모두 피해내는 민첩성을 당해낼 수 없었다. B급 중위 부대 마츠노 부대의 대장 마츠노는 이제 막 첫 번째 랭크전을 끝낸 B급 정규 요원으로서 풋내기 루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 배드 엔딩 루트에서 이어지는 키쿠치하라 이야기 그는 사람에게서 수많은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중에 어떤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게 건강에 이롭지만, 어떤 소리는 반드시 들려야만 한다. 귀에 닿아야만 한다. 주기적으로,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그래, 숨……. 숨소리도 이에 해당하였다.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는 숨소리, 바람
오늘도 결국 이 자리에. 이코마는 자신을 가로막은 미즈카미를 바라보며 섰다. 미즈카미. 어디 가세요. 진에게. 시기가 이때쯤 오면 미즈카미는 숨기는 게 없어졌다. 끝이 다가오기 때문일까? 그래서 풀어진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절대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이것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진. 너의 눈에도 보일 거야. 아라시야마는 그렇게 말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 말대로 진의 눈에도 보이고 있었다. 아라시야마와, 그와 겹쳐 무너지는, 그보다는 부서지는 세상이 보이고 있었고, 조금 후 미래의 그들에게 그 미래가 닥쳐올 것이, 진의 눈, 시야, 또 다른 ‘스크린’, 다시 말해 미래시의 화면에 선명하게 상연되고 있었다. 이 세상은 참 따
마더 트리거를 가지고 망명했다. 게이트 너머로. 몰락한 왕가―다시 말해 그들의 가족은 그들의 별을 유지했던 마더 트리거를 어린 공주와 아직 갓난아기에 불과한 왕자에게 계승한 후 두 사람을 도주시켰다. 마더 트리거와 동화하여 아리스테라를 유지하던 ‘신’은 어떻게 되었는지, 마더 트리거를 잃은 아리스테라의 대지와 창공은 어떻게 되었는지, 돌아볼 새도 없게 게이
그는 오래전 ――에서 미덴 병사와 혼자 맞닥뜨린 적이 있다고 말한다. 맞닥뜨린 순간 사생결단을 각오하고 트리거를 손에 쥔 그였지만, 그가 그러든 말든 편법으로 만든 티가 난 낚싯대와 낚시찌에나 관심을 쏟던 미덴의 병사는 이틀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던 그에게 그가 가진 식량―방금 잡은 물고기를 선뜻 나눠줄 만큼 선량했다고 한다. 해가 저물었을 땐
미덴에는 신이 없다면서요. 부럽네요. 우리는 신이 있어야 살 수 있는데. 그러며 툴툴거리는 후배에게, 그러는 너는 툴툴거리는 것 말고 한 게 무엇이냐고 면박을 주려다 생각을 고쳐먹고 그만두었다. 자신은 지금 괜한 데 성질을 부리며 화를, 정확히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고 있고, 후배 놈 또한 가벼운 입과는 다르게 손은 착실히 움직이는 편이기도 했다. 몇백 년
밤의 바다를 부유하는 나라의 별―별의 나라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중심부에는 트리거가 핵으로 존재했으니, 마더 트리거 또는 퀸 트리거라 불리는 트리거와 동화하여 수백 년 동안 별을 돌보며 살아가는 인간 제물을 그들은 ‘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렇게 바쳐진 제물이 진정 ‘신’으로서 전능한 권력을 누렸다고는 보기 어렵다. 제물로 ‘내던져진다’라는 표현에서
* ‘우리 모두를 죽여도’는 마비노기 영웅전 에피소드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우리 모두를 죽여도 그들은 오지 않아.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렇다고 장담하는 진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제 앞에 선 자를 올려다보았다.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이래 암약은 그의 장기였고 그 눈에 보이는 미래에도 그들이 오는 모습은 아직 비치지 않았으니 실로 이번에도 그의 계획은 잘
* 이어지는 이야기 “오키는 착각하고 있어요.” 미즈카미는 그것이 착각이라고 말한다.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왜곡해서 해석하고 있죠, 많은 것을요.” 그는 예시를 하나 들고자 한다. 오키가 자신의 행동과 의도를 오해석한 사례를. 입을 여는 그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다. 그러나 신경질적이지는 않고, 착잡한 것에 가깝다. “먼저 저는 그 애를
추천은 보증이었다. 추천인이 자신의 면을 걸고 하는 보증이었고, 무언가 어떠한 일에 임할 때 먼저 보증을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사람의 심리였다. 니노미야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소리다. 그는 자신이 새로이 영입할 부대원을 추천 받고 싶었고 추천인의 이름으로 그를 보증 받길 원했다. 아즈마 부대가 해체된 이후에, 아즈마의 이름으로. 미와와 함께하기로 한 츠키미
* 이어지지 않는, 과거편 임무는 실패했고 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너는 돌아왔다. 우리는 여기서 ‘돌아오다’란 동사와 ‘너’란 명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임무는 실패했으나 유능하기론 버금을 허용치 않는 너의 부대는 너를 두고 올 생각 따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너’는 돌아왔고, 다만 거기에 너의 의지는 없었다. 너의 의지 없는
* 지인이 풀어주신 이야기를 빌려 썼습니다 왜 바다였을까? 왜 바다를 입에 담았을까, 너는? 내가 죽으면 바다에 뿌려 줘. 너는 그 말이 그대로 너의 유언이 될 줄 알았을까? 물론, 그 말은 그 자체로 훌륭한 유언이긴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게 그대로 마지막 말이 될 줄 너는 알았을까? 몰랐겠지. 사이드 이펙트를 가진 이는 아라시야마 쥰이 아니
* 이어지지 않는, 과거편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던 건 너잖아, 스와.’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스와 씨, 그게…….” “그게 뭐?” “그게…….” 왜 다들 나한테 사실을 알려주길 망설였을까? “카자마 씨가…….” “카자마? 걔가 왜?” “그만…….” 그만……. 왜 마지막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못했는지. 그만. 그만해. 그만 말해. 말하지 마
* 이어지는 이야기 웃지는 말지. 웃지나 말지. 총성이 울리매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당신을 보았으니 나는 명령권을 다시 당신에게 반납했고, 회수한 당신은 나를 보며 명령했다. 웃지 않고. 쏘라고. 저격은 나의 역할이었으므로 나는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꿈에서는. 그럴 수 있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을 땐 휴학생 주제에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