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지는 이야기 웃지는 말지. 웃지나 말지. 총성이 울리매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당신을 보았으니 나는 명령권을 다시 당신에게 반납했고, 회수한 당신은 나를 보며 명령했다. 웃지 않고. 쏘라고. 저격은 나의 역할이었으므로 나는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꿈에서는. 그럴 수 있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을 땐 휴학생 주제에 복
* 이어지는 이야기 「오키!」 쏴. 총성이 울리매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당신을 보았으니 꿈의 이름은 악몽이 되었다. 악몽에서 나는 명령권을 다시 당신에게 반납하고, 회수한 당신은 나를 보며 명령한다. 웃지 않고. 쏘라고. 저격은 나의 역할이었으므로 나는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긴다. 꿈에서조차도 그날처럼. 그날도 나는 명령에 따랐지만 기록에 남은 명
* 팬아트입니다. https://x.com/epppll00/status/1850872849218838863 무엇이 되었든 블랙 트리거와의 전투가 문제가 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아봤자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것. 그것은 상황이기도 했고, 과거이기도 했고, 망가진 트리온 기관이기도 했고, 다시 말해 모든 것이기도 했지만, 마지막 투
「오키?」 「그 실력을 우리를 구해주기 위해서 쓸 수는 없었어?」 ‘아니―. 그쪽은 저격을 경계 당할 것 같아서.’ 트리온 무전을 통해 호소이가 물었다. ‘방금 그게 무슨 소리야?’ 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호소이는 5인 부대의 오퍼레이터였다. 인원이 늘수록 오퍼레이터에게 가해지는 부하가 커지는 트리온 연결 시스
* 이어지지 않는, 배드 엔딩 루트 “걔는 성격도 나쁘고 짜증 나는 녀석이었지만.” “너처럼 나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거든.” “나를 죽이려고 하진 않았어.” 스피커를 망가뜨리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발성을 의도하고 음원을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의 목울대가 있을 부근에 설치되었던 듯한 스피커는 망가진 것인지 더는
* 이어지지 않음 이 전쟁이 끝나면 고백할 거다. 하마터면 방금 문 돗대를 그냥 땅바닥에 뱉어낼 뻔하였다. 간신히 붙잡아서 망정이지 다시 입에 물 생각은 새까맣게, 또는 새하얗게 잊힌 채 카자마를 돌아본 기억이 났다.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냐? 안다. 그럼 쓸데없는 복선 깔지 마, 망할 자식아. 이것도 복선으로 취급되나? 좋아하는
* 사망 소재 키자키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미카도시를 떠난 지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미카도시에만 영향력을 한정했던 보더가 전국적으로 ‘필요’해지게 된 지도 그쯤 되었으니, 솔직히 말해 좋은 변화, 현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더는 네이버의 게이트를 미카도시 경계 구역으로만 한정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엔 미카도시뿐만이 아니라 전국 전역에
네이버를 처음 갈랐을 때 깨달은 것은 이것들에게선 피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쉬움을 느꼈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미 훈련 단계에서, 보더의 기술로 구현된 가상체인 건 알지만 실제와도 그리 다르지 않을―다르지 않게 설정되었을―굳기를 가졌을 흰 몸체에서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그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쓰러져, 행동을 멈추는 그
시노다가 제자를 들였다고 했다. 그리하여 저보다 한 살 위인 소년과 마주했을 때 진 유이치는 곧 그들이 훈련장도 아닌 맨바닥에서, 트리거도 아닌 맨손으로, 트리온체도 아닌 본래 육신으로 치고받고 싸우는 미래를 볼 수 있었고, 적잖게 당황했다. 아니, 왜? 갑자기? 그 사이를 감히 짐작할 수 없어 더욱더 샅샅이 미래를 뒤지는데, 야, 하고 부름이 들려와 눈을
어린 날의 기억 중 하나이다. 그가 어쩌다 제자를 둘 생각을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었다. 스승을 잃은 아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중에 마음을 동하게 하는 무언가라도 발견했는지. 어쩌면 제가 죽은 뒤로 저 아이―진―처럼 제 죽음을 애도할 대상을 찾은 걸 수도 있었다. 후계를 남겨야겠다는 생각. 후세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 어떤 생각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
“스나이퍼?” ‘건너가 아니고?’ 건너의 총기와는 다르다는 말은 막상 확인한 트리거의 긴 총신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사정거리는? 파괴력은? 훨씬 길지. 한번 맞아볼래? 그러며 자세를 취해 보이길래, 응! 고개를 끄덕인 뒤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걸 또 직접 맞아봐야 성에 찬다는 인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그보다 정확히는 질린다는 얼굴
* 팬아트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어떤 소설에는 양탄자에 가계도를 그린 어느 마법사의 가계가 등장한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으며 혈통에 집착했던 이 고풍스러운 가문은 젊은 이단자들이 가문에 나타날 때면 가계도에 새긴 그들의 이름을 담뱃불 지져 끄듯 지져 없애는 것으로 의절을 선언했는데, 이는 그들과 저희가 절연하였음을 세상에 공고히 공고하고 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 지는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뭐가 됐든 이기는 것이 지는 것보다 훨씬 기분 좋으니까.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이건 제법 많을 것이다. 다치는 것도, 남을 다치게 하는 것도,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엄청 기분 나빠할 테니까. 싫어할 사람은 정말 정말 싫어하겠지. 설령 다치지 않는다고 해도, 그 행위 자체에 거
아즈마 하루아키는 동 대학에서 학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하는 이들이면 으레 그러하듯이 반올림해서 10년이 아니라 진짜로 빈틈없이 채운 10년을 같은 건물에서 보내는 사람―그것을 우리는 대학원생이라고 불렀다―중 한 명이었는데, 절대로 다행은 아니겠으나 그럼에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오래전 학부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던 건물이 현재는 구교사
이상한 미래가 섞여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니, 정말로. 설명하기 미묘한데, 어째서 그런 결말로 치닫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미래라고 할까. 아, 이 말이 지금 굉장히 불친절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 설명하기가 워낙 어려우니 말이다. 저에게도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보이는 한 모든 맥락을 보아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 보
“타치카와 씨가 블랙 트리거가 되는 건 싫어.” 옥상 바닥에 벌렁 등을 대고 누워 있던 진이 그렇게 말했을 때, 그를 돌아본 타치카와도 덩달아 바닥에 함께 누워버렸다. 그렇게 누워 버리면 코트에 온갖 먼지가 다 달라붙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말지만, 그러는 진 역시 제 재킷이나 머리칼 사이로 모래가 들어가는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누워 버린 터였
상대 저격수의 움직임을 봉인하고 저지하는 역할은 아군의 저격수가 맡았다. 타겟을 저격하는 순간 저격수의 위치 또한 노출되기에 그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숨을 죽였다. 그들은 실로 모든 생리 작용이 거세된 육체 안에 거하고 있었으므로 가능한 한 오래, 바란다면 숨조차 죽인 채로 대치 상태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영원히 그럴 수는 없었다. 기대한 사람도 없
* 사망 소재 코나미 키리에는 그해 대학생이 되었다. 보더에 관한 많은 것을 잊은 뒤였다. 수도권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그가 고향인 미카도시로 돌아왔을 때는 미카도시를 떠날 적 짧게 잘랐던 머리카락이 다시 길어져 머리끈 하나로 묶을 수 있게 되었을 때였다. 대학 입시를 1지망 대학 합격이란 경사스러운 소식과 함께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상경했던 코
* 사망 소재 해산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대장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A급을 유지할 순 없으리라고 했다. 사실, 해산의 의미 역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장은 없었고, 저 외엔 오퍼레이터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유이가는 보더를 그만두었다. 유이가가 그만두지 않는다고 해서 떨어지지 않을 순위나 급이 아니었고, 유이가의 결정 역시 이해하지
12시 자정을 넘기기 무섭게 메시지를 보내오는 이들, 대부분 친구인 이들 덕택에 생일을 스스로 잊을 염려는 덜었다. 그는 붙임성 없는 성격임을 스스로 모르지도 않으며 이를 바꿀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기는 하나,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는 뜻과는 같지 않기에 짧게 고맙다는 답신을 메시지 뒤에 꼬리처럼 달아매어 놓는 것으로 예를 다하기로 한다. 그를 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