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성

아이들의 빚

사람들은 이 빽빽한 개미굴에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줄 안다. 비행기가 심히 가까운 이 사각형의 하늘 면적이 커진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새어 들어오는 빛이 아예 없어진 적은 없었는데. 햇빛은 어디서나 평등하게 들어온다. 단지 그만큼의 그림자가 생길 뿐. 때문에 하늘은 적당히 흐린 편이 좋았다.

첨림의 여름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천남성이 이 곳으로 기어들어온 해는 그랬다. 나이를 속이고 식료품을 좁은 골목 여기저기를 누비며 배달하는 일을 하면 여기가 얼마나 햇볕이 뜨겁고 끈질긴지 알게 된다. 갈색 봉투 안에 들어있는 것이 진짜 식료품이 아닌 것 쯤은 진작에 알았다. 그렇지만 이방인이며 어리기까지 한 자신을 받아주는 가게는 없었다.

아니, 아니지.

천남성은 뻔한 변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 돈이 필요했다. 갈곳이 없어 이런 개미굴까지 들어왔지만, 언젠가는 이곳을 함께 나가기로 했으니까. 혼자가 아닌 탓이 컸다. 위험하다는 걸 누가 몰라? 살고 싶어서 한거지. 그때는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뛰어다녔다. 열정은 오만보다는 오기였고 그건 때때로 서투름을 몰고 오는 법이다. 다른 곳이야 아이의 실수에 너그럽다지만, 첨림에서는 달랐다.

배달 갈 집을 틀렸다는 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나? 어차피 잡아갈 경찰도 없는데. 조직이니 구역이니 하는 말을 당시의 천남성은 다 알아듣지 못했다. 그냥 몇대 맞으면 끝나는 일인줄 알았다. 이제까진 그랬으니까. 제게 배달을 시키는 말단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제 머리를 바닥으로 내팽겨치다 씩씩거리며 발로 밟아대다가 갑자기 제 머리를 쥐어싸고 울기 시작했다.

웅웅 울리는 머리를 들고 일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눈 앞의 남자가 식칼을 들고 제게 오고 있다는걸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는데. 지금은 나올 수 없는 간절함이 그때는 있었으나 작은 창문을 통해 비쳐드는 햇살은 너무 밝았다.

나는 내가 죽을 순간도 기억 못하겠구나. 남자의 얼굴이 역광으로 까매지고 보이는건 날카롭게 벼린 칼끝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느끼는 절망이 그런 것이겠거니, 천남성은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격통엔 그나마 어둠이 나을거라 믿으며.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은 그대로였다. 퍽, 쿠당탕! 육중한 남자가 나가 떨어지고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으니 적어도 귓구멍은 아직 제대로 뚫려 있는 것 같았다.

천남성은 멍든 눈을 힘겹게 떴다. 창문 밖은 구름이 지나가던 참이었다. 태양을 가리는 것은 의외로 낮았다. 휠체어라니, 이 곳에서는 잘 못보던 것이다. 사지가 불편하다는 건 여기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반증이었기에.

“꼬맹이가 하나 있는데요.”

뒤따라 들어오는 남자 중 하나가 앉은 자에게 말한다. 천남성은 눈을 깜박여 제 앞에 있는 이를 올려다봤다. 무표정의 늙은 여인. 주름살엔 세월의 흔적보다는 고행이 짙게 묻어 있었다.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면 본래의 나이보다 더 젊게 보았을 테다.

휑한 한쪽 다리에 신경이 쏠리지 않았다면

쓰러진 조직원이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리자 서 있던 다른 남자가 혀를 차며 그를 짓밟았다. 자신이 당한 그대로 맞고 있는 걸 멍하니 보던 천남성은 고개를 돌려 제 운명을 결정 지을 사람을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는 단단한 입가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고, 미약하게 흔들리는 거 같기도 했다. 아니면 흔들리는건 내 시선인가. 안타깝게도 천남성에겐 무언가 빌거나 할 힘이 없었다. 뭔가 말은 해야 착각으로나마 본 동정심이라도 끌어낼텐데.

“저, 저는…”

겨우 다리를 모았다. 빌고 기어야 했다. 아니지 이 여인에게 그런게 통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 저쪽에서 조직원이 울며 불며 살려달라 해도 눈 깜짝 하지도 않고 있지 않나. 얼른 제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숨을 이어 나갈 수 있으리라.

“저는… 뭐, 뭐든지… 시켜만, 주시면…”

“아서라.”

딱 자르는 말에 천남성은 비틀거렸다. 눈앞이 점점 어둑해져 왔다. 안돼. 여기선 안돼. 아직…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첨림에 병원 같은게 있는 줄 천남성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낼 병원비가 없으니 몰래 도망가려던 찰나 아직 회복이 안되었다며 도로 잡혀왔다. 그런 의료윤리를 지킬 곳이었나? 뚱하게 물으니 그분이 잘 보살피라고 했단다.

천남성은 그게 누굴 말하는지 단번에 알았다.

다음 일자리는 수월하게 구해졌다. 같은 일이었으나 저번 같은 폭력은 없었다. ‘그 자식도 참 멍청하지. 망향에 손을 빌렸다면 두 손을 다 잘라낼 각오는 했어야 했는데.’ 지나가는 말로 들은 전 상사의 말로는 생각보다 속 시원하진 않았다.

“그것 또한 업보겠지.”

그 애는 그렇게 말했다.

“동정이나 인연이 아니라?”

“네가 진 빚을 그 사람은 기억하지 않을테니, 결국 업보인거야.”

“누구의?”

“글쎄.”

하지만 천남성은 기억했다.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때 좁은 창가로 들어오던 구름 뒤의 희미한 빛 한줌이 자신을 살렸다는 사실을.

‘뭐… 이제 와선 꺼내기도 사소한 얘기지만.’

갚을 수 없는 빚을 구태여 갚으려 들진 않았다. 천남성은 지금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급급했으니까. 오히려 ‘그때 제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저도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하는게 더 부담이지 않나? 일단 천남성은 그럴 배짱은 없었다. 능력은 둘째 치고서라도.

애당초 저 늙은이가 그걸 기억하고 있는지도 문제였다. 그때와 지금의 자신은 인상이 다르다면 제법 다르니까. 물어보면 백이면 백 기억 안난다고 할거다. 그 많은 채무자는 다 기억하면서. 망할 할망구.

자신도 낯간지러운 인사치례는 익숙하지 않았다. 기억에 없다면 없는대로. 철면피인 자신은 이렇게 조금씩 제 빚을 갚는 수 밖엔 없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카네이션 한 송이가 3위안이라니, 이건 좀 너무 비싸지 않나?

나머지는 애교로 어떻게 때우는 수밖에.

‘당신은 여기 아이들에게 많은 빚을 지웠어.’

이 비좁은 구멍들에도 볕을 내기 위해 노력한 이가 있다면, 그건 당신이겠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죄를 지었던지 간에.

‘자랑스러워 하라고. 이 첨림에서 최고의 고리대금업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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