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일출의 낯

주정재, 누구도아닌남자 / 정재누아

자정이 넘은 시간,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쾅쾅! 부술 듯 위협적인 소리에 남자는 늘 품에 넣고 다니던 나이프를 펼쳐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1초, 2초…. 소리 없이 숨을 죽이고 있자 성격 급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린다.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새끼야! 그 목소리가 들리자 남자는 참았던 숨을 몰아 내뱉는다. 빌어먹을 새끼. 나이프를 꽉 쥐고 문을 열었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떡 하게 서선 여, 하고 인사를 건넨다. 

"형님이 오면 재깍재깍 문 열어야지. 아니다, 혼자 즐기고라고 있었나? "

흐흐 웃는 형사의 목소리는 껄렁하고 가볍다. 얼굴을 와작 구긴 남자는 보란 듯이 나이프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의 시선이 남자를 지나 날카로운 날을 향하다 다시 남자로 돌아온다.  

"새끼, 살벌하게 살기는."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열린 문을 벌리고, 앞을 막고 있던 남자마저 밀어낸 채 형사는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 사는 온기 없는 집안을 쭉 둘러본 형사는 자연스럽게 옷장을 연다.

"야, 야, 뭐하냐?"

"있어 봐."

형사의 손은 거침없다. 걸린 옷을 헤집던 그는 죄다 어두침침한 색들에 혀를 차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것을 꺼내 남자에게 던진다. 얼떨결에 옷을 받은 남자는 멍청하게 눈만 껌벅였다.

"안 갈아입고 뭐해?"

"아니, 뭐 설명도 없어?"

"그럼 빤스만 걸치고 가려고? 추워 뒈지다 못해 불알이 쪼그라 떨어지겠네. 내가 네 불알까지 걱정해주고 있을 때 빨리 입으셔."

불만스러운 남자의 목소리에도 형사는 빨리 갈아입으라며 남자를 재촉할 뿐이다. 재앙이다. 늦은 시간 갑자기 남자에게 닥쳐온 재앙. 형사가 고른 옷을 꾸역꾸역 입은 남자는 그렇게 신발까지 구겨 신고 차에 몸을 실었다. 시동을 끄지 않았던 차 안은 겨울의 냉기 대신 갑갑한 히터가 덥다고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틀어져 있었다. 

"... ...."

남자는 익숙하게 자리 앞에 있던 에어컨 바람의 방향을 바꾸고 안전벨트를 맸다. 형사는 옆에서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흘러나오는 가요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핸들을 잡았다.

"자, 그럼 출발해보자고."

바퀴가 부드럽게 굴러간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 위는 고요했다. 차 안엔 유행 지난 여가수의 부드러운 발라드가 흘러나오고, 그 노래를 따라부르는 형사의 콧소리만이 소음이었다. 남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이쪽 방향이면 고속도로 쪽이었다.

"대체 어디 가는지 이야기는 언제 해줄 건데?"

시큰둥한 목소리를 숨길 생각도 없다. 콧노래를 부르던 형사가 옆을 힐끔 바라보더니 으쓱인다. 

"좋은 곳 데려가 준다니까."

"좋은 곳 어디."

"있어 인마."

 남자는 한숨을 푹 쉬었다. 또 휘말렸다.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 위로 올라가자마자 바깥을 움직이던 풍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늦은 시간, 도로 위에 달리는 차량도 없다. 노래가 끝난 라디오에선 진행자의 조곤조곤한 멘트가 이어지고 있는데, 그와 다르게 계기판 위의 속도는 계속 올라간다.

"너무 밟잖아."

"스릴 있고 좋지. 왜 쫄려?"

"쫄긴 새끼야. 이러다가 어디 처박을까 봐 그렇지."

"하여간 겁은 존나게 많아서."

"뒤질래?"

"지금 내가 핸들 꺾으면 누가 먼저 뒈지는지 볼래?"

"...개새끼."

"엉. 물 좀 따줘."

생수병을 툭 툭 치는 손길에 남자는 인상을 팍 구겼다. 문을 열어주지 말 걸, 집에 끝까지 없는 척 할 걸. 갖은 후회를 하며 뚜껑을 따고 형사에게 건네줬다. 형사는 옆을 슬쩍 보고 씩 웃었다. 맨날 말론 투덜거리면서 해달라고 하는 건 다 해주는 녀석의 모습이 웃겼다. 저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더 장난치고 싶은 걸 알까? 평소엔 아무것도 그려 넣지 않은 얼굴 위로 곤란하다는 듯한 감정이 올라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다른 감정의 표정도 궁금해지곤 했다. 

형사는 남자가 궁금했다. 

손가락 끝이 핸들을 두드렸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멜로디를 따라 규칙적으로 두드리며 형사는 차량의 헤드라이트로 겨우 보이는 도로 앞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은 낯익고 익숙하다. 일렁이는 불빛, 좁은 시야. 마치 자신의 앞날과 똑 닮지 않았나. 형사는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한다. 

남자도, 형사도 아무 말 하지 않으면 두사람의 사이엔 라디오 진행자가 열심히 소리를 채웠다. 가끔 오가는 몇 없는 대화들은 전부 의미 없는 것들이었다. 형사가 말을 꺼내지 않으면 남자도 굳이 입을 열지 않고, 두사람 사이 그런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형사는 무심코 옆을 바라보다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허, 잔다고?"

팔짱을 끼고, 유리창에 고개를 기댄 체 잠든 남자의 모습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무방비하게. 정말 자나? 싶어서 남자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꾸 없는 모습에 흐음, 하고 숨을 길게 내뱉었다. 처음 봤다. 남자의 잠든 모습. 

앞을 보고 운전을 해야 하는데도 시선이 계속 옆을 향했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에, 뺨에 남은 희미한 흉터가 불빛이 지나갈 때마다 그늘졌다. 자신 때문에 생긴 흉터는 벌써 많이 흐려지고 새살이 올라와 있었다. 잠든 남자의 얼굴은 온순하고, 얌전하다. 눈을 뜨고 있을 때의 그 날 선 느낌이 싹 감춰진 모습은, 그를 좀 더 어려 보이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형사는 핸들을 톡톡 두드렸다.

"예의 없게, 조수석에 앉아서 잠들어?"

깨기만 해봐라.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작았고, 라디오의 볼륨도 작아졌다. 훨씬 조용해진 차량엔 남자의 숨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바퀴는 계속 굴러가고, 시간은 계속 넘어갔다. 서울에서부터 멀어진 차는 끊임없이 도로를 달리고, 또 달려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도망.

저 어지러운 도시로부터의 도망. 

도망가자. 


"야, 일어나"

형사는 남자를 깨운다. 닫혀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 채 서서히 벌어진다. 눈부신 빛을 피해 찌푸리는 미간이 좁혀지다가 느리게 올라오는 눈은 한참을 흔들리다가 초점을 잡는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이던 초점은 이내 형사를 잡는다. 

"… …뭐야."

새끼, 잠 덜 깼네. 형사가 먼저 차에서 내린다.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고, 주변을 다시 한번 더 불러보고 나서야 남자는 상황을 깨닫는다. 잠들어버린 사실이 믿기질 않았고… …. 뒷머리를 벅벅 긁다가 형사를 쫓아 밖으로 나왔다. 손목에 걸린 시계의 시간은 어느덧 여섯, 아니 일곱 시가 넘어가고 있다. 날카롭고 차가운 바람이 남자의 몸을 감싸 안았다. 춥다. 그리고, 짭짤한 향이 바람에 실려 온다. 

"…여긴."

눈을 비볐다. 풍경이 바뀌는 것은 없었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아직 일출 전, 어둑한 하늘이 서서히 물러가고 그 끝은 서서히 붉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파도치는 소리가 절벽을 깎아내린다. 춥다. 차갑고, 춥다. 남자는 눈을 굴렸다. 절벽의 끝에 걸리는 커다란 우체통이 시선에도 걸렸다. 이곳을 알고 있다. 

"……."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형사는 담배를 물고 그 끝에 불을 붙였다. 작은 불씨가 밝아지려는 어둠 속에서 타올랐다. 길게 뱉어낸 연기는 바람에 빠르게 흩어진다. 

"너는 인마, 운전하는 사람 옆에 앉아선 처자는 게 맞냐?"

형사는 투덜거리며 담뱃재를 털어낸다.

"뭐."

"하여간 예의가 없어요. 예의가."

쯔쯧 혀를 차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남자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바닷바람이 서늘하다. 

"곧 새해인데, 내가 아니면 언제 네가 일출 같은 걸 보겠냐. 감사하셔."

형사가 웃었다. 남자는 시선을 피했다. 

해는 서서히 떠오르고, 세상이 붉게 타오른다. 일렁이는 태양의 붉은 빛이 남자에게 입혀진다. 짧게 다 타들어 간 담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신발 밑장에 무참하게 짓밟히는데도 시선만큼은 타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뻘건 색. 일렁이고 타오르는 것은 사람을 홀린다.

형사는 무심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멈춘다.

이상하다.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눈동자와 표정에 실린 많은 감정들은 형사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지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숨기지 못하고 강제로 벗겨진 남자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어낼 수 없다. 결코 자신을 향해 돌아보지 않는 남자의 그 짙은 눈동자를 훔쳐보며 물어보고 싶다. 서로 묵인했던 보이지 않는 선을 강제로 넘고 뭉개서 그의 멱살을 쥐고, 그 시선을 자신에게 향하게 만들어서 무엇을 그렇게 떠올리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의 옆모습에서 어쩐지 낯익은 얼굴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들어서─.  

형사는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저어 바다를 바라봤다. 착각이고, 기분 탓이다…. 

태양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생각을 모두 뒤로하고 천천히 떠오른다. 수면을 넘어 좀 더 위로, 그 위로. 그렇게 온전히 떠오른 빛을 가만 바라보던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가자."

형사는 겨우 대답했다. 그래. 

이젠 태양의 그림자는 남자를 감싸지도 내려앉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생각의 흐름이 어색하게 삐그덕거린다. 운전대를 다시 잡은 형사는 옆을 바라봤다. 생각에 잠긴 채 창밖을 바라보는 남자를 내려다보다가 괜히 라디오의 볼륨을 키웠다. 시끄러운 팝송이 흘러나오고, 떠오른 태양을 뒤로한 채 자동차는 다시 도시를 향해 올라간다. 부산보다 위, 포항보다는 아래. 그 중간의 울산의 간절곶 끄트머리에서 다시 도시로. 

도망갈 수 없다. 되돌아간다. 태양과 반대로 올라간다. 도시로 되돌아가는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부품처럼 돌아간다.  

형사는 이어지는 고속도로의 아스팔트를 바라보며 불현듯 생각한다.

일출을 바라보던 남자의 표정이, 어쩐지 잊히지 않을 것 같다고. 


이건 그저, 새해가 되기 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형사와 남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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