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의 양식

자…

부제를 보면 알겠지만 그렇다. 그렇게 됐다.

하루만에 1만자를 쓰던 그날의 기백은 어디로 가고, 평소와 같은 작심삼일의 내가 나타났다.

내가 아무리 작심삼일의 인간화, 작심삼일 중의 작심삼일, 작심삼일이 여사친이라면? 같은 사람이라지만 모처럼 좋은 습관을 만들려는 시도를 이렇게 끝낼 순 없어 어떻게든 작심삼일 인간에 맞춘 포맷으로 후기를 써보려고 한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2주 조금 넘는 시간동안 나는 정말 많이 바빴고, 꼭 쓰고 싶은 후기가 있는데 그걸 어중간한 내용으로 대충 채우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마음 잡고 제대로 써보리라 다짐하며 미루고 있었지만 이제는 결심을 했다. 어중간한 내용으로 대충 채울 결심.

후기 작성을 미루게 한 주범들 되시겠다. 순서대로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20240308~20240309), ‘1984’(20240320~20240323), 한병철의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20240323~20240324), 영화 ‘이퀼리브리엄’(20240324)이다. 네 작품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체로 빨갱이 소설, 영화이면서 동시에 반공 소설이자 영화이기도 하다. 독재를 반대하면서도 자본주의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지 오웰의 두 작품은 소설이고, ‘이퀼리브리엄’은 1984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조지 오웰의 두 작품은 실제 사건과 인물을 빗대긴 했으나)허구의 내용이다 보니 감상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한병철 교수의 책은 인문학 내지 사회학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다 보니 분량에 비해 읽는 속도가 꽤 느렸다.

동물 농장과 1984는 명문장을 고르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모든 내용들이 인상적이였고,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에서 인상 깊었던 몇 문장을 남겨놓고 싶다.

무당이 신에 씌듯이, 자본주의는 죽음에 씌어 있다.

우리는 죽기에는 너무 생기가 넘치고 살기에는 너무 죽어 있다.

빅브라더의 자리를 빅데이터가 차지한다.

투명사회는 신뢰가 사라져가기 때문에 통제에 의지하는 불신 사회다.

오직 죽은 것만 투명하다.

사람들은 몸에 거주하는 대신에 몸을 경영한다.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원리로서의 성과다.

노동 중 휴식으로서의 휴식은 노동시간의 한 구간일 따름이다.

휴식도 노동혁의 재생산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노동의 한 양태일 따름이다.

내용은 전체적으로 어려웠지만 여러모로 공감도 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도 다수 있었다. 특히 자본주의(그 중에서도 신자유주의는 더더욱)에 대한 반감이 절정에 달한 최근의 내게 있어서 안성맞춤인 책이 아닐 수 없었다.

독서, 영화 감상 기록을 남기면서 5점 만점의 평점을 간단하게 덧붙여놓고 있는데, 내 나름의 채점 방식은 대개 다음과 같다. 큰 불만 없이 재미있게 감상했다면 기본 점수 3.5점을 갖는다. 생각이 많아지게 하거나 정서적으로 감동받은 지점이 있다면 각각 0.5점을 더한다. 그 정도가 크다면 0.5점을 거듭 더한다. 이런 식으로 보통은 3.5~4.5점 대의 점수가 매겨지고 있고, 위의 네 작품 중 동물 농장은 4.5점, 다른 세 작품은 모두 4점을 매겼다. 엄청난 감동보다는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 많았고, 동물 농장은 아무래도 동물들이 메인 캐릭터라 그런지(복서…벤자민…) 눈물이 찔끔 나는 부분이 있어 조금 더 높은 점수가 되었다.

다음은 임소연의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20240325~20240328)이다. 표지의 문구대로 여성과 과학을 주제로 한다. 과학계에서 어떤 식으로 여성을 배제하고 왜곡해왔는지, 또 그런 기조에 맞선 이들과 그들이 이룬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눈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다는 것은 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고 배움에는 실패와 반복이 동반된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문장이였다. 물론 그런 맥락에서 나온 문장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나에겐 그런 이유로 기억에 남았다. 그 외에도 의학, 생물학, 물리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난 지금 물리학과 꽤나 가까운 분양의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의학이나 생물학과는 다르게 성별의 영향이 없는 분야라는 나의 안일한 생각과는 영 다른 내용이 담겨 있어 적잖게 놀라기도 했다. 12개나 되는 챕터만큼 다양한 분야와 시점에서 여성과 과학을 다루고 있으니 흥미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민음사의 ‘디 에센셜: 다자이 오사무’(20240328~20240331)가 3월의 마지막 양식이다. 우선 마음에 와닿은 문장부터.

여자의 의협심이라니 기묘한 표현입니다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적어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그 의협심이라는 것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대체로 겁 많고, 겉치레만 차리고, 인색했습니다. (인간 실격)

‘인간 실격’을 포함해 9개의 단편이 실려있지만 신기하게도 다른 문장들은 크게 기억에 남진 않았다. 그렇다고 소설이 재미가 없냐면 그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딱히 몰입도 공감도 되지 않았다. 대체로 주인공들은 지식인이면서 변변치 못한 생활을 하는 남자들이였고, 그 곁에는 어리고 아름다운 ✌️야마토나데시코✌️가 묵묵히 뒤치다꺼리를 한다. 아무래도 이 부분이 아니꼬왔나보다. 몰랐는데 지금 쓰면서 깨달았다. 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은 사람에게는 뭔가 특별하고 대단한 작품들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아직 나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별 감흥은 들지 않았다. 고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