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어내는 것은 시간

6월 2주차

by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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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끝이 욱신거린다.

그 근원을 찾아, 부러 헤매이듯이 눈을 서성이다가 결국 외면하지 못하고 스윽 눈을 고정하면 그 끝에는 손가락이 있다. 손, 인간의 가장 유용한 도구.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수단.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는 것. 그곳에…밴드가 붙어있다.

밴드라고 하면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용어이긴 하다만 사람의 피부에 붙는 밴드라고 한다면 역시 가장 대표적으로 반창고라고 할 수 있겠다. 상처와 바깥을 격리해서, 오염된 것 일랑 위험한 것일랑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새 살이 잘 돋을 수 있게 하는 것. 가장 간단한 응급처치의 대상이 지금 왜 욱신거리는 것을 감추어 손가락 끝에 붙어있는가, 하면. 지나친 연습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쓴 웃음이 나왔다. 의욕이 앞서서 결국 예측된 결과를 내려버렸다.

밴드를 잔소리하며 손 끝에 감아주던 자신의 친구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기회를 얻고 말았으니 조급한 마음은 앞서 달려나가 제 능력보다 빨리 시간을 달리더라. 그러니 자연스레 혹사하게 되고, 자연스레 익숙치 않은 것을 잡은 손은 망가지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울적한 기분이 들어 연주를 멈춘 기타를 꼬옥 끌어안았다.

예전부터 기타를, 정확히는 밴드를 아주 동경해왔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빛이 반짝이는 연주장에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사실 과하게 시끄러워, 그 현장의 가사는 담겨져 있지 않다. 그러나 현장의 열기, 신이난 관중들, 그들만큼 들뜬 아버지,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만들어낸 반짝이는 사람들의 사랑에 빠진 눈. 그 눈을 보자 궁금해졌다.

‘밴드라는 것은 무엇이길래 저렇게 사람을 빛나보이게 하는 걸까?’

그 날부터 나의 목표는 명확해졌다. 그보다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아서, 매번 반대에 부딪쳤다. 어머니는 나의 삶이 안정적인 것으로 유지되기를 바랬다. 아버지는 나를 이끌었지만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고 있다, 부모라는 것은 응당 자식의 행복을 바라며 그 행복은 상당히 보편적일 수록 모두에게 변동없이 수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슬펐다. 매번 내 꿈을 위해 달려나가려 할때 반대에 부딪혔고, 싸웠고, 울어야 했다. 아파야 했다.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을 이루기 위해 가는 길이 이토록 고달팠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하기 위해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부딪쳐야 하는 일은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원하는 것을 위해. 하루, 이틀, 삼일…일주일…한 달…손으로 꼽기에도 어려울 만큼 많은 시간들이 지난 후,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밴드부 가입 신청서를 부모님 앞에 밀어넣었다. 어차피 거부될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처음으로 부모님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눈물이 날 듯이 기뻐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그렇지만, 조건은 있었다. 1년이 가기 전에 밴드부에서 공연을 할 것. 어떠한 비중과 어떠한 역할을 하든지 상관 없이 말이다.

버거운 일인 것은 알았다. 하지만 해내야 했다, 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지지를 받아 얻은 기회였다. 그래서 하루도 빠짐 없이, 주변에서 쉬엄쉬엄 여유를 가지는 것이 더 좋다고 했지만 듣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상태다.

뼈 아픈 실책이다. 단어를 실감하는 경험을 굳이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하게 되었다.

이 손이 다 나을 때까지, 내가 더 실력을 쌓고 자리를 확보해서 원하는 무대를 보여줄 수 있을지. 정말이지 미지수이다. 앞을 알 수 없는 막막함.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하는 박탈감은 기회가 찾아오고서야 뒤늦게 찾아왔고, 여파는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선의 노력을 더 하면, 그러면 약간은 미숙하더라도 만족스러운 연주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울먹이는 머리 사이에서도 둥둥 떠다니던 생각이다.

눈을 쓰윽 닦아내었다. 시간을 보았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시간이 준비되어 있다. 아직, 지레짐작해서 겁먹기엔 이르다.

끝까지 해보자. 지금 연습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의견을 피력하는 데에 썼으면서, 고작 이런 상태만으로 물러서기엔 아깝다.

시선에 결연이 담겼다. 아픈 손으로 잡은 기타를 놓고 악보를 들었다. 하나하나 짚어가며 음을 익히고, 눈에 익히고, 마음에 스며들게 한다.

이렇게 또 시간이 쌓이다보면, 이 시간도 나의 연습이 되어줄 것이며 손에는 굳은살이 차오르고, 밴드를 떼어내 밴드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될것이다.

그 날을 머릿속으로 계속 떠올리며 어지러이 피어오르는 노래의 가닥을 잡았다.

아, 벌써. 이르지만 축제의 날이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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