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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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서로를 지나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헤어질 수 있을까? 지금의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 앞으로 나아가는 뜀박질이 가볍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사람의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다. 흐트러지지 않도록 숨을 쉬던 이명헌이 얼마 가지 않아 온전히 땅을 딛고 섰다. 지치지 않았음에도 허리가 굽어지고, 손은 허벅지와 무릎 어딘가를
정우성이 발톱을 꺼내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가 없는 산왕의 땅은 전례 없이 바빴다. 지구라는 새장에 가둬놓고 키우는 새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세계 최정상의 지지가 필요했고, 그 도움 아닌 도움을 얻기 위해서 산왕은 ‘정우성’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보고서 서류를 몇백 장이고 써서 내야 했다. 산왕의 학생들이라고 예외는 아
쫓겨나고 1년 만에 다시 들어온 산왕의 풍경은 언제나와 같다. 이명헌은 제 앞에서 걷는 교사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대신에 복도 밖 창문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고, 산왕에 다시 입학하며 빡빡 밀린 머리가 어쩐지 낯설다. 신이 마구간에 태어나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은 뒤로부터 몇천 년이 지난 세상은 꽤 우스운 꼴로 돌아가게 되었다. 신의 실수
림에 튕겨 나온 공이 자연스럽게 포인트 가드의 손으로 들어가고, 코트 위 하얀색은 그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그를 에워싼다. 3학년이 떠난 뒤에도 문제없이 존프레스 전략을 써먹기 위해 2학년과 1학년을 주축으로 새롭게 세워진 장벽은 바람을 탄 거센 파도처럼 상대 팀 포인트 가드를 집어삼킨다. 틈을 내주지 않기 위해 부딪치는 9번과 13번이 상대의
림을 쫓아 하늘로 뛰는 사람이 별을 사랑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 지구가 평평하든 말든 오직 농구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정우성의 세상에도 믿지 못 할 일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나이가 비슷한 고교생에게 지는 것. 아버지가 갑자기 자신을 축구 선수로 키우겠다든가 하는 것. 그리고 정우성에게는 앞선 두 가지만큼, 어쩌면 두 가지보다 믿기
일생일대의 고백이 차여본 적 있는가? 강백호는 많다. 아주 무지하게 많다. 그러면서 별꼴도 다 당해봤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로 차였을 때는 솔직히 백호 군단이고 뭐고 자시고 눈물을 짤 뻔했다. 아니다, 백호 군단이 있는데도 눈물을 짜낸 적이 있다. 그것도 아주 무지하게 많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우연한 만남으로 새 사랑을 찾고, 고백할 때마다
두상이 보일 정도로 머리를 짧게 민 선수들의 구보 소리가 체육관을 울린다. 항상 맨 앞에서 대열을 이끌며 산왕의 구호를 외쳤던 이명헌은 체육관 문틀에 기대선 채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는 차기 주장으로 점찍어 놓은 2학년이 뛰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끝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이명헌에게는 주장 일이 그랬다. 1학년으로
“한나는 부럽다, 그런 잘생긴 남친도 있고.” 자습은 선생님 방해 없이 잘 수 있는 시간 정도로 알고 있던 송태섭이 눈을 번쩍 떴다. 그다음에는 상반신을 벌떡 세우려는 걸 초인적인 인내로 참았다. 떠드는 목소리는 등 뒤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같은 농구부라서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았잖아. 다른 목소리가 달래듯이 말했다. 송태섭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
농구부 입단 후 정식으로 실력 테스트받던 첫날, 정우성은 직접 자신을 스카웃하러 왔던 산왕 공업 고등학교에게 작게 실망했다. 싸우는 상대도 없이 골대를 상대로 원온원을 흉내 내며 뽐내는 개인기에 감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볼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1학년과 2학년이 적절하게 섞인 시합은 평범하게 실망스러웠다. 명문이라던 산왕공고답게 그들은 2군
솔직히 양호열이 예상한 건 끽해야 한 달이었다. 그도 그럴 게 상대는 강백호 아닌가. 왕자라던 산왕전을 쓰러트린 직후,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어 실려 가듯 병원을 향한 강백호는 그날 바로 입원해야만 했다. 등으로 책상을 들이받았다, 정도로 적히고 말 줄 알았던 부상이 정교한 숫자들로 묶여감에 따라 양호열은 뭔가가 잘못되어간다고 생각했다. 간단한 검사에
소금물에 녹아 부서진 햇볕이 떠내려오지 못하는 낮의 심해와 들어올 빛 자체가 없는 밤의 수면은 다를 바 없다. 와노쿠니에 잠입하기 위해 바다 밑바닥인 심해, 능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곳에 숨어 항해를 지속하는 폴라 탱 호에는 낮과 밤을 구분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 소음. 낮의 잠수정은 제법 써니호와 견
영화 메멘토(2000)의 설정을 차용했습니다. 역순행적 구조로 글이 진행되며 처음에는 꼭!! 스크롤을 내리는 방향으로 읽어주세요 9 쏟아질듯한 빗속에서 남자가 손을 잡아온다. 동그란 뒤통수의 초록빛이 낯설다. 남자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붙잡은 손이 뜨거워서, 로우는 막연하게도 그의 손을 놓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 잊는다는 건
나는 가본 적도 없는 그곳의 기후를 사랑했다. 너 때문이었다. “이게 뭐지?” 로우는 자신에게 건네진 하얀 종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용의 비늘 아래에서 벗어난 와노쿠니의 연회가 연일 7일째 이어지던 밤이었다. 축제에 가까운 파티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선의 토니토니 쵸파, 선장 겸 선의 트라팔가 로우, 선의 불사조 마르코가 붙들어 맨 끝에 3일째에
워터 세븐의 자랑인 갈레라 1번 부두의 목수 직공장은 항상 끌을 역수로 쥐었다. 손바닥이 다치기 쉬운 방법에 보다 못한 아이스버그는 몇번이고 교정을 권유했으나 그럴 때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리 잡은 버릇이라며 거절했다. * 바다의 규율을 따르지 않는 해적이라 해도 바다에 지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한 법이다. 누가 돛을 펴고 노
해적 동맹을 맺은 선장과 단둘이 남게 될 때면 조로는 생각했다. 저 새끼, 나를 베고 싶은 건가? * 폴라 탱 호에 승선하고 일주일이 되던 날, 조로의 기분은 심해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첫째로 배의 구조가 심각할 정도로 복잡했다. 조로에게 있어 써니 호가 미로라면 외부보다 내부 공간이 많은 폴라 탱 호는 미궁에 가까웠다. 둘째로 트레이닝을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