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의 별
제이드 리치 드림
고물 기숙사의 불은 언제나 늦게 꺼진다. 보통은 새벽 1시, 늦게는 새벽 4시까지도 불이 켜져 있을 때가 있었지.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칭 잠이 없는 감독생은 밤이 깊어질수록 집중력이 좋아지는 편이었고, 공부 외에 잡다한 할 거리가 있는 탓에 일찍 잠드는 일이 없었다.
덕분에 늦은 시간이 되어도 고물 기숙사에는 이따금 손님이 찾아오곤 했으니. 오늘 낡은 울타리를 넘어 기숙사 안뜰로 발을 내디딘 것은 옥타비넬 기숙사의 부사감이었다.
“아이렌 씨, 아직 깨어있으셨습니까?”
제이드는 기숙사 건물 밖에 앉아서 하늘만 올려다 보고 있는 아이렌에게 말을 걸었다.
고개는 위로 고정하고 있었어도 상대가 다가오는 건 알고 있던 아이렌은 졸음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로 눈인사했다.
“저는 원래 늦게 자는걸요.”
“하지만 지금은 꽤 늦은 시간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치면 선배도 아직 안 주무시고 계시잖아요.”
“그건 그렇지요.”
사실 자신은 잠깐 자고 일어난 거지만, 그런 것까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제이드는 비어있는 옆자리에 당연하다는 듯 앉아 아이렌의 곁을 지켰다.
“뭘 하고 계셨습니까?”
“별자리를 찾아보고 있었어요.”
“별자리를?”
“예. 아무래도 제가 살던 곳이랑 별 구성이 완전히 같은 건 아닌 듯해서, 차이점을 찾아보고 있었어요. 애초에 다른 세계니까 같다는 게 말이 안 되겠지만…….”
과연. 그래서 불을 켜놓고 밖으로 나온 건가. 아이렌의 무릎 위에 있는 천문학 서적을 확인한 그는 자연스럽게 상대의 관심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도 공통점은 있나 보군요.”
“같은 별자리도 있고, 처음 보는 별자리도 있더라고요. 원래 저희 세계에는 있었지만 여기엔 없는 별도 있고요.”
“과연. 흥미롭네요.”
정확하게는 그 차이 자체보다는 아이렌이 이런 것에 흥미를 보이는 태도가 흥미롭다. 그리고 아이렌이 원래 있었던 세계는 이곳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하지만 제이드는 섣불리 이것저것 캐묻는 대신 아이렌이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하늘이 다르다는 걸 실감하니 여기가 확실히 다른 세계 같네요.”
그건, 확실히 이상한 소리다. 아이렌이 이 세계에 온 지 벌써 몇 달이나 지났고, 고향과의 차이점은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이런 소리를 하는 건 좀 별나지 않나.
그러나 그런 엉뚱한 점마저도 재미있는지, 제이드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새삼스럽군요.”
“그렇죠? 하지만, 옛날 고대인들은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고 농사 시기를 맞추기도 했으니, 위화감이 느껴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별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살아온 사람은 아니지만……. 원래 고대 시대 때 인간과 현대를 사는 인간의 뇌는 큰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말하자면 본능 같은 거군요.”
“그렇죠. DNA가 기억하는 정보라고 할까.”
증거가 명확한 과학과 추상적인 감상이 섞인 이론은 학계에선 먹히지 않겠지만, 늦은 밤 잡담으로 소비하기엔 참으로 흥미로웠다. 제이드는 저 조그마한 머리통에서 나오는 기발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느라 피곤함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인어는 별을 기준으로 살아가진 않았겠네요. 굳이 수면 위까지 올라와 별을 확인하는 건 비효율적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지요. 저희는 별보다는 해류로 계절 변화를 느끼곤 하니까요.”
“헤에. 저는 과학 시간에 배운 걸로밖에 알지 못하지만, 바다라는 건 하나의 커다란 물 같아도 밀도나 온도 차이가 커서 물고기에게는 완전 다른 세계라고 하더라고요. 이쪽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저쪽 바다에 안 사는 건 다 이유가 있다나…….”
“잘 알고 계시는군요. 사람도 온도차가 극심한 곳에선 살기 힘들 듯, 물고기도 비슷하지요. 난류와 한류는 온도뿐만이 아니라 염도 같은 것도 다르니까요.”
낭만적이기보다는 지적인 대화지만, 두 사람은 꼭 밀어라도 속삭이듯 들뜬 얼굴로 속삭이고 있다.
제이드의 설명을 귀담아듣던 아이렌은 고개를 반사적으로 끄덕거리다가, 갑자기 뜬금없는 의견을 내놓았다.
“역시 인간은 비효율적이네요.”
“예?”
“해수는 가만히 있어도, 심지어 눈을 감아도 느낄 수 있는데 별은 이렇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쳐다봐야 하잖아요. 닿지도 않을 것을 올려다보며 미래를 점치고 변화를 눈치채야 한다니. 효율적으로 느껴지진 않네요.”
그게 그렇게 되는가. 안타깝지만, 뭍에 올라온 지 겨우 2달 되는 자신으로선 동의도 반박도 못 하겠다. 자신도 야간 산행을 할 때 별로 방향을 찾기보다는 준비한 나침반을 사용하긴 하지만, 아무 도구도 없는 상황이라면 분명 별은 길잡이가 되어 줄 터.
하지만 여전히 별이라는 것은 일상보다는 개념적으로 느껴지는 그는, 지극히 인어다운 대답을 해주었다.
“인어 중에서도 육지나 하늘에 동경이 있는 개체가 있으니, 마냥 그렇게 보실 것도 없을 겁니다.”
“그렇게 치면 인간들도 해저에 로망이 있는 사람이……. 물론, 심해 공포증이 있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요.”
제 이야기에서 금방 반박할 점을 찾아낸 아이렌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의견을 고치고 헛웃음을 짓는다.
상대와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즐겁지만, 이런 분위기는 원치 않는다. 제이드는 조용해진 아이렌의 얼굴에 미소를 되찾아주기 위해 먼저 화제를 돌렸다.
“아이렌 씨가 살던 세계의 밤하늘에는 어떤 별이 떴습니까?”
참고로 이건 상대의 기분 전환만을 위해 묻는 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상대의 머리를 열어서라도 그가 태어난 세계를 구경하고 싶은 게 제이드의 속내였으니까.
아무리 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아이렌이라도, 제이드에게라면 괜찮다는 걸까. 잠깐 눈만 깜빡이며 침묵을 유지하던 그는 아주 단편적인 정보만 입에 올렸다.
“겨울에 오리온자리가 예쁜 곳이었죠.”
“오리온자리?”
“예. 이렇게 사람 모양으로 생긴 별자리인데, 가운데 별 셋이 특징적이라 찾기 쉬운 별자리예요. 하지만 오리온자리는 극지방이 아니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별자리니, 제가 살던 세계의 특징이라고 볼 수는 있어도 지역적 특징이라고 볼 수는 없겠네요.”
잠깐 책을 덮은 아이렌은 손으로 별자리의 모양을 표지 위에 그렸다. 망설임 없는 손동작을 보아하니, 정말로 자주 별을 올려다보긴 한 모양이었다.
“선배가 살던 곳의 바다는 어떤 곳인가요?”
제이드가 상대의 세계를 궁금해하듯, 아이렌 또한 그의 세계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한결 얼굴이 밝아진 아이렌은 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제이드를 바라본다.
그 눈부신 제비꽃색 눈동자를 외면할 수 없는 제이드는 느리게 숨을 내뱉고, 쉽게 알려줄 순 없다는 듯 시간을 끌었다.
“글쎄요.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할지.”
“제가 살던 나라의 바다는 한류랑 난류가 만나는 곳이라 물고기가 잔뜩 잡혔어요.”
“후후, 그렇습니까.”
귀엽기도 하지. 그런 걸 말해주지 않아도 결국 대답해 줄 생각이었는데.
제이드는 자신을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눈과 시선을 맞춘 채 나긋나긋하게 대꾸했다.
“어둡고, 조용하고, 물의 흐름도 아주 느리고……. 정말 추운 곳이었지요. 계절이 바뀌는 걸 알기 위해서는 위쪽으로 조금 헤엄쳐 올라가야 했을 정도입니다.”
육지의 겨울은 우습게 느껴지는 차가운 수온. 느리게 흩날리는 바다눈. 숨을 쉴 때마다 보글보글 올라가는 물방울이 시끄럽게 느껴지는 정적. 생물에게 친절하지 않은. 그런 곳. 거기가 제 고향이다.
아마 산호의 바다라고는 박물관이 있는 구역만 가본 아이렌은 이런 심해는 잘 상상하지 못할 테지만, 제이드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제 여자는 뭍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빛나는 별보다는 검푸른 해구를 더 좋아할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선배랑 잘 어울리네요.”
“그렇습니까.”
“예. 추운 건 싫지만, 꼭 가보고 싶어요.”
“별은커녕 달도 안 보이는 곳인데, 괜찮겠습니까?”
“선배가 더 눈부시니 괜찮아요.”
“이런, 아이렌 씨에겐 정말 이길 수가 없군요.”
소리 죽여 웃은 제이드는 제게 기대어 오는 몸을 한쪽 팔로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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