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후회하는 날이 있다. 이 기차에 올라타서 떠돌아다니는 긴 시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후회한 시간이 있다. 그날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날 내가 너에게 부탁하지 않았다면 내가 조금 더 주변을 살피고 사람을 살폈다면 내가, 내가... '...대신 죽었어야 했는데.' "벌을 내려주십시오." 이것은 과거의 기억, 조각난 시간들의 모임이
나무바닥을 밟는 구두소리 신기한 울림을 내었다. 잠뜰은 건물의 문양과 이음새를 신기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여러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이런 목조건물의 형태를 보는 것은 드물었다. 곡선과 직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형태가 자신이 살던 세계의 건축물과는 또 다른 멋을 내었다. 건물 구경을 끝낸 잠뜰은 어느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나자
푸른색의 고급진 무늬로 장식된 벽에 붉은 융단이 깔린 방, 이곳은 에투알의 왕비 엘레나가 지내던 방이다. 그녀가 세상을 뜬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방의 모습은 그녀가 떠난 그 날로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시간을 멈추어 둔 것 같은 그 방의 한 벽면에는, 벽 전부를 덮을 만큼 커다란 그림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갈색 머
각별의 집에는 오래된 장롱이 하나 있다. 그의 할아버지가 아끼던 장롱은 오래된 만큼 아귀가 다 맞지 않았고, 그랬기에 다 닫히지 않아 좁은 틈이 있었다. 언젠가 고쳐야지 생각은 했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았기에 그 장롱은 오랫동안 그렇게 아귀가 맞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그 장롱을 진작 고쳤어야 했는데. '각별아, 여기 꼭 숨어 있거라. 할아버지가 나가보
빗방울이 우산에 투둑 떨어진다. 각별은 검은 우산을 펴고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작은 골목에 있는 곳이라 비가림막도 없었다. 전광판에 적혀있는 버스 예상 도착 시간은 십 사 분. 걸어서 십 오 분 거리인 곳이긴 하다만, 비가 많이 오니 각별은 버스를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십 사 분 동안 각별은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기
조건: 외국어와 외래어 없이, 잠뜰과 각별이 등장하는 조직물 작성하기 비가 내리는 차가운 밤이다.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들 하루의 불을 끄고 이제는 어둠에 들어가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주택가의 불이 하나둘씩 꺼지고, 밝게 빛나던 도시의 불빛은 다음날을 약속하며 사라진다. 모두 불을 끄고 쉬러 들어간 거리, 어느 가게만이 그
인간에게 너무 정을 주지 마십시오. 사람은, 쉽게 죽으니까요. 날이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봄은 계절신의 전당에 앉아 지나가는 계절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붙잡으려 하지도 않고, 소중히 추억하려 하지도 않은 채, 단지 흘러가게 두었을 뿐이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려보니 겨울이 급히 전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품속엔 한 어린
흑색 발걸음이 백색 계단을 밟았다. 흑색 퀸의 검은 머리칼이 그가 계단을 밟을 때마다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의 호박색 눈은, 오직 단 한 사람을 찾고 있는 듯 집요한 빛을 띠었다. 그는 지금 백색 킹을 찾고 있었다. 왕국에서 지내던 이들을, 언젠가부터 내다 버릴 장기말 정도로만 여기는 왕을 죽이러 가고 있던 것이다. 스러져가는 왕국을 과거의 행복했던 그
“코드 B, 코드 B. 연구소의 전 인원은-” 그날. 나는, 보았다 당신의 주변에서는 사이렌이 귀를 찢는 소리를 내뱉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놀라지 않았더라도 당신은 당신의 앞에 혼란스럽게 뛰어다니는 사람들과 고함들, 듣기 싫은 비명들 때문에 당황함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당신의 마지막 기억은 뾰족한 바늘이 당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어느 겨울밤이었다. 제법 차가워진 공기가 그의 코 끝을 스쳤고, 매서운 바람은 힘이 죽어 가벼운 산들바람만이 거리를 활보하던 어느 겨울밤이었다. 조용한 골목길을 타박타박 혼자 걸어가는 그는 날씨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 무표정을 지은 채 앞으로 나아간다. 적막이 흐르는 골목길에는 그의 발걸음만이 남아있다. 그는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