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더게 연성] 안쿠닌 성 이야기

[발더게 3] 안쿠닌 성에 놀러오세요

* 승천 아스타리온, 선크어지, 연애루트로 엔딩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 승천 모기가 계획면에서 지능적인 디테일이 좀 떨어져보였기 때문에 도와줘봤습니다.

* 우리 모기 행복해야한다. 힘 있다고 약한 사람 괴롭히지 말고.

* 게일 교수님이 “아스타리온 경”이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카사도어 자르 경이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사망하고 난 후, 자르 성의 새 주인은 아스타리온 안쿠닌이라는 젊은 엘프가 되었다.

발더스 게이트 귀족연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안쿠닌이라는 성씨는 사실 다른 먼 도시의 명망 있는 가문이라고 한다. 성에서 연회는 자주 베풀었지만 카사도어 자르 경 자체는 다른 사람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는 않는 성격으로, 조용하고 내향적이던 그가 그나마 은밀히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것이 이 안쿠닌 가문이라고 한다.

카사도어 경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피가 이어진 자식도 없었기 때문에 카사도어 경이 사망하고 난 지금에는 자르 성의 소유권이 마땅히 자르 가문에게 돌아가야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후계자임을 밝히며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연회를 자주 열던 카사도어 경의 재력을 생각해볼때 그의 직계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방계 혈통으로도 가문이 융성했을법 한데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그러나 성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나타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에게 재산이 돌아갔을지는 의문이다. 카사도어 경이 유언장에 자신의 재산에 대한 모든 권리를 아스타리온 안쿠닌 경에게 양도하겠다고 똑똑히 써두었고 생전에 공증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많은 돈을 자기 핏줄이 아니라 친한 친구에게 넘기다니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지만 생전에 그를 찾아온 피붙이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왕래조차 없던 친척들이 괘씸해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고 해석해볼수도 있겠다.

아스타리온 경이 자르 성에 대한 모든 권리와 카사도어 경의 개인 재산을 물려받고 난 후, 얼마간 성이 폐쇄되었다. 우선 카사도어 경의 생전 바람대로 외부인원이 참석하지 않는 조용한 장례식과 그 후속처리를 진행해야했고, 새 주인인 아스타리온 경의 취향에 맞게 성을 개조하고 재단장 해야했기 때문이다.

몇몇 호사가들이 경직적인 상류사회에 오랜만에 일어난 작은 변화에 호기심을 느끼며 자르 성의 새 주인에 대해 캐보려고 했지만 딱히 이렇다할 이야기는 없었다. 극도로 은둔적이던 카사도어 경과 다르게 아스타리온 경은 제법 활발하게 사교 생활을 즐겼고, 재치 있는 말솜씨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선량하고 친절한 평균적인 귀족이었고 여자와 남자를 모두 홀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외모를 제외하면 딱히 뾰족하게 어떤 특성이 드러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성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해서 성의 방향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며, 재단장 후에는 이전처럼 자주 연회를 열테니 기다려달라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그의 목소리는 외모만큼이나 아름답고, 최면적인데다가,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에 음모론을 꾸며내기 좋아하는 수다쟁이들도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곤 했다.

이런 저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던 자르 성이 안쿠닌 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재개장 하던 날, 아스타리온 경은 새로운 성의 모습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반려자를 소개했다.

귀족에게 감히 이런 말을 하기에는 외람되나, 정말 안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아스타리온 경의 배우자는 3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인간 남성으로 아스타리온 경의 눈부신 외모에 비하면 평범, 아니 인간 기준으로도 평범, 아니 오히려 약간 못생기지 않았나 싶을 정도의 외모였다. 사람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날카로운 사파이어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사람인데 그 눈길 때문에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조금 무서워보이기도 했다. 아스타리온 경의 사근사근함과는 정반대로 굵고, 묵직하고, 투박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는데 사소한 행동거지나 말의 어휘를 보고 있자면 귀족이 맞기는 한건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어쩌면 평민 출신일수도 있겠다. 오랜 세월을 사는 엘프가 짧은 생을 사는 인간을 반려로 삼다니,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다. 남자가 남자와 배우자의 연을 맺는다는 것도 조금 시끌시끌해질 이야기긴 하지만 이것도 아예 성립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물어뜯기기 딱 좋은 그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긍정적인 방향으로 손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황송하게도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레이븐가드 대공이 그와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레이븐가드 대공은 아스타리온 경보다는 오히려 그의 배우자인 더지 안쿠닌과 더 잘 아는 사이 같았다.

한동안 발더스 게이트를 떠나있던 레이븐가드 대공의 아들인 윌 레이븐가드, 변경의 검도 이 자리에 참석해있었다. 도시의 존경받는 귀족과 평민들의 사랑을 받는 영웅이 모두 더지 안쿠닌이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었고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새로 나타난 귀족 커플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발더스 게이트의 상류사회도 이들의 평판이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감지하고 두팔 벌려 안쿠닌 가문을 환영했다.

한참 뒤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아스타리온 경과 그의 배우자인 더지는 일리시드 침공 사건 때 발더스 게이트를 구해낸 영웅들 중 하나라고 한다. 특히 아스타리온 경은 사태 이후에 사재를 털어서 도시 재건에 큰 도움을 주었는데 오만하게 뽐내는 것처럼 보일까 두려워 자신의 업적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한다. 칭송받아야 할 영웅들이 겸손하게 익명을 가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쿠닌 성의 재단장 파티는 소박한듯 하면서도 사치스럽고 화려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것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아서 오히려 고상함이 돋보이는 자리였다. 도시의 모든 사람을 초대할 정도로 성대한 연회는 아니었지만 귀족들이 여흥을 즐기는 동안 도시의 평민과 빈민들에게도 아스타리온 경의 이름으로 작은 선물이 나누어졌다. 4인 가족이 먹을 수 있는 빵과 햄, 결코 질이 떨어지지 않는 괜찮은 포도주 한 병, 포도와 사과, 치즈 한 덩어리.

귀족이 나누어준다기엔 볼품없어보이는 선물일지 몰라도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빈민들에겐 아스타리온 경의 관대함을 한동안 기억하게 되는 자비로운 선물이었다. 높으신 분들이 가난한 사람의 생활거지를 속속들이 알기는 어려운데 다른 귀족들이 자신의 인품을 과시하겠다고 엉뚱하게도 자기가 쓴 자서전 같은 것을 나누어주는 동안 빈민들은 쓸데없는 선물들을 불쏘시개 대용으로 쓰면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곤 했다. 아스타리온 경은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선물을 주었다. 살아있는 존재는 먹어야 산다. 그는 굶주림의 고통을 잘 이해하고 있는 높으신 분이었다.

항상 두껍고 무거운 커튼으로 커다란 창문을 가려두곤 했던 자르 성은 이제 커튼을 활짝 걷고 햇빛이 가득 쏟아지는 밝고 따사로운 공간이 되었다. 아스타리온 경은 햇빛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자르 성의 연회는 대체로 밤에 열리곤 했는데 안쿠닌 성의 연회는 밤낮을 가리지 않기는 해도 대체로 낮에 열렸다. 아스타리온 경의 지나치게 창백한 피부와 좀 어색해보일 정도로 뾰족한 송곳니 때문에 흡혈귀가 아닌가 하는 괴소문이 잠깐 돌기도 했지만, 대낮의 정원에서 햇살을 만끽하며 손님들과 어울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기 때문에 그런 말도 안되는 헛소문은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어떤 흡혈귀가 대낮에 저렇게 햇빛을 즐기며 사람들과 어울린단 말인가?

귀족이니까 고귀한 혈통 중에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창백한 피부도 있을 수 있겠고, 송곳니가 유난히 두드러져보이는 것은 개인의 특성 아닌가. 무엇보다 아스타리온 경은 거울에도 모습이 비쳐보이고, 흐르는 강 따위는 가볍게 건너고, 초대받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집이나 건축물에 들어갈 수 있다. 예절을 중시하는 귀족이기 때문에 체면상 남의 초대를 받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개인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쨌든 허가 없이 남의 건축물에 들어가는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흡혈귀에게는 저것들이 모두 불가능한 행동이다.

아스타리온 경이 흡혈귀라느니,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느니 하는 소리들은 전부 그의 인품과 외모와 재력 따위를 시기해서 그의 평판을 깎아내리고자 만들어낸 흑색선전에 지나지 않았다. 이따금씩 신앙이나 종교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인 태도를 보일때도 있었지만, 솔직히 귀족 중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가?

아스타리온 경은 자신에 대한 이런저런 뒤숭숭한 소문에도 그저 재밌다고만 반응할 뿐 발끈하고 화내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의 의연함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터무니 없는 헛소문에 대신 화를 내줄 정도였다. 발더스 게이트에 혜성같이 등장한 새로운 귀족이었지만 그는 빠른 속도로 친구를 만들어나갔고, 친구의 기준에는 신분의 귀천도, 성별도, 나이도, 종족도 상관 없었다. 그는 조용히 영향력을 늘려갔다.

발더스 게이트를 찾는 여행자여, 안쿠닌 성은 일반인에게도 종종 성문을 열어주곤 하니 이 도시에 방문한다면 한번쯤 안쿠닌 성에 들러보기를 권한다.

성의 아름다운 주인이 따뜻한 미소로 방문객을 환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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