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작업물

글이 간절할 때 열리는 타입

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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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은 늘 잔혹한 법이라. 저 멀리 작열하는 태양에 눈이 시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내리쬐는 일광을 외면하지 못했다. 항성의 형체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광명은 언젠가 제 시야를 집어삼켜 저를 암영에 빠뜨릴 터였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창공을 올려다본다. 이글거리는 희망을 그저 바라만 본다. 그것이 우리의, 나의. 여름이었다.

 

 

 

사계의 순환이 반복되기에 우리는 다음 계절을 기대할 수 있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여름은 끝을 맞이할 줄 몰랐기에 무수히 되풀이된다.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끝나지 않는 미로나 다름없음을. 사계의 두 번째 계절이자, 이 도시, 여름. 장맛비에 오한이 온몸을 뒤덮는다고 하더라도 계절을 이어나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곳이 우리의 종착지가 될 것인가. 그리고 너는 말했다. 이 여름이 끝나면, 함께. 바다를 보러 가자고. 그것이 너와 나의 약속이었다. 신하리와 레몬에게 다가올 세 번째 계절의 시작이자, 끝없는 여름에게 작별을 고할 수 있는. 약속이란 그랬다. 이 여름에서, 이 여름에서. 도망치고, 탈출해서, 가을을 맞이할 기대를 심어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약속이었다. 낙엽이 길거리를 메울 시간이 오기 전에 여름의 마지막 바다를 보러 가자. 같이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한 거야, 신하리. 바다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거다. 함께, 이 여름에서……

 

 

 

그러나 여름 아래 맺어진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나의 여름은 순환 속으로 사라졌거늘, 너의 여름은 끝나지 않았던가. 제가 기다리는 이는 단 한 번도 이 장소에 자리하지 않았으며, 저를 반기는 것은 언제나의 해도가 전부였다. 밀려오는 파도에 다리가 젖어간다. 뒤를 돌아보면 한 명의 것으로 보이는 모래사장의 발자국. 앞을 응시하면 닿을 수 없을 수평선이 저를 반기듯 파랑을 넘실댄다. 저 여름의 태양이 바스러뜨리는 잔물결을 본다. 너의 여름에 종막이란 없었음을 은연중에 알려주는 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기다린다.

 

내일도, 모레도.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기다리고, 또 기다리리라. 우리의 약속이 이행될 날을. 신하리의 여름이 끝날 때까지. 바다를 보러 가자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우리는, 함께. 바다를 보고 말 것이므로.

 

 

 

나의 여름은 참으로 잔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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