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연성

이웃집 치토로 ~ 메이가 있다 ~

2017 / 테니스의 왕자 - 치토세 센리 드림

 1

메이는 뽑을 생각도 없었던 자판기 옆으로 다가가 자판기를 등지고 선 남학생을 몰래 쳐다보았다.

테니스에 큰 흥미는 없지만,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의 시합이 있다고 해서 덩달아 시합을 본 터라 메이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자판기에 들려 마실 것을 뽑아오겠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진짜 크다. 토토로만큼 크려나.’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웃집 토토로는 메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래서 토토로가 2m라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는 2m쯤 되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토토로의 키를 가늠해보고는 했다. 그런 버릇 아닌 버릇 탓에 궁금증이 일었다.

‘토토로, 2m이었으니깐 조금 더 크려나.’

멀리서 봤을 때도 제법 커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컸다. 자신의 키와 남학생의 키를 가늠해보던 메이는 40cm는 차이가 나겠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토토로 같아.’

살짝 발꿈치를 들어도 가슴팍 정도밖에 오지 않아, 괜히 더 시선이 갔다.

“앗…!”

쟁그랑 소리와 함께 우수수 떨어져 내린 동전에 메이는 당황 하며 얼른 몸을 숙였다. 계속 힐끔힐끔 몰래 보다가 동전을 잘못 집은 탓이었다.

“여기.”

“아, 감사합니다.”

키가 큰 남학생과 그 주변에 같이 있던 남학생들이 같이 동전을 주워준 터라, 메이의 뺨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동전을 떨어트린 것은 실수이긴 했지만, 그 실수가 동전을 주워준 남학생을 보다 생긴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 부끄러워!’

그는 손도 큰 모양인지 커다란 손에 메이의 동전지갑을 집어 들었다. 메이가 쥐면 다 쥐지도 못하는 동전 지갑이 그의 손안에서는 작게만 느껴졌다.

“토토로, 좋아하능갑네.”

“네? 네, 좋아해요.”

메이의 동전 지갑은 실용성보다는 디자인을 추구한 것으로, 동전 지갑의 용도보다는 토토로의 귀여움이 더 부각되는 아이템이었다. 촉감도 좋고 안에 솜이 들어있어서 말랑말랑했다. 대신 동전을 넣는 것도 꺼내는 것도 불편했다.

“궙지.”

“네?”

메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잠시 생각했다. 남학생도 따로 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지, 웃는 낯으로 메이의 손에 동전지갑을 올려주었다.

‘만지면 부드러울까. 토토로 같을까.’

메이의 시선이 남학생의 머리카락에 닿았다.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은 만지면 느낌이 좋을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 같았다. 초면에 만져보고 싶다고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을 텐데 만지고 싶어져서 큰일이었다.

“키가 토토로처럼 크시네요.”

“토토로보다야 작제.”

“아…, 그렇군요.”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메이의 귓가가 다시금 빨갛게 달아올랐다. 뒤에서 남학생과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남학생 일행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얼른 목적을 달성하고 여기서 사라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괜히 동전 지갑만 만지작거렸다.

‘가도 되겠지.’

살짝 남학생의 눈치를 살핀 메이는 천천히 숨을 내뱉고, 그만 가보겠다고 말을 꺼내려고 했다. 자판기야 여기 말고도 또 있고, 정말로 목이 말라서 자판기를 찾아온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뭐 마실겨?”

“아, 그, 음, 물을 뽑으려고요.”

“복숭아?”

“아, 네.”

달그락, 동전이 들어가는 소리가 이어지고, 복숭아 물의 버튼을 누른 남학생이 허리를 굽혀 나온 페트병을 메이에게 건네왔다. 건네진 페트병을 받아든 메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마시랑게.”

“아, 네, 어, 감사합니다.”

메이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선 냉큼 친구를 찾아 테니스 코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뛰어가면 너무 티가 날까 봐 조금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2

  

 

메이가 다시 남학생을 만난 것은 합동 학원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였다. 효테이에 다니고 있는 메이는 아토베와 사카키 그룹 주체로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합동 학원제를 준비하게 되었다.

“메이 쨩은 학원제 기대해줘!”

다른 사람들은 학원제 실행위원으로 다른 학교 사람들과 교류를 하거나, 자신의 학교의 학원제를 준비하느라 바쁘겠지만, 메이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실행위원에 이름은 올리고 있지만, 실행위원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 아토베도 메이에게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며 쿠키나 먹으라고 했을 정도였다.

“…너무한 거 아닌가.”

“놀면 좋은 거지.”

실행위원인 메이의 친구는 세이가쿠에 가봐야 한다며 자리를 떠났고, 쿠키를 집어 먹던 메이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있어봤자 도움도 안 될 테고, 심심하기까지 했다.

“어, 그때 그, 음료…!”

“토토로 좋아허던. 효테이 다니는갑네.”

“네, 맞아요. 그쪽은, 학원제 때문에?”

“마아, 그랗제.”

메이는 그제야 눈앞에 있는 이게 자신과 동갑 혹은 연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면, 아니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이니 말을 놓기로 한 것도 아니니 존댓말을 하는 편이 나았다.

“준비물 사러 가세요?”

“아니.”

“에, 그럼요?”

메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그는 산책이라는 짧은 대답을 내놓았다. 다들 한 참 바쁜데 산책이라니, 그러는 메이 자신도 학원제에 무언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산책, 저도 같이 가도 돼요?”

“하먼.”

도쿄 토박이인 메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사투리에 잠시 혼이 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좀 못 알아들으면 뭐 어때. 긍정의 의미인 것 같으니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긴 메이는 그를 따랐다.

“저기,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이름도 안 알려줬나. 치토세 센리구마.”

“저는 메이에요. 다나카 메이.”

“그래서 토토로 좋아하능갑네.”

치토세의 말에 매이는 짧게 고개를 끄덕여서 긍정했다. 그것 때문에 토토로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쪽, 아니 치토세 상은.”

“치토세면 되제.”

“저도 음, 다나카, 메이 편한 쪽으로 부르세요.”

원래 성보다는 이름으로 불리길 좋아하는 편인 메이여서 어느 쪽이든 좋았다. 치토세랑 같이 시내를 걷다 보니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말라던 당부의 말이 잠시 생각났지만, 같이 학원제를 준비하는 타교 학생이라고 신분도 확실히 알고, 저번에 마실 것도 사줬으니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당부의 말을 멀리 치워버렸다.

“메이 쨩, 저기 들렀다가제.”

치토세의 손가락 끝에 지브리의 관련 물건들을 팔고 있는 가게가 있었다. 메이는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용돈을 받았을 때 들리고는 해서 신이 났다.

“아, 너무 귀여워.”

“니가 더 궙다.”

무슨 뜻이냐고 올려다보는 메이에 치토세가 웃는 낯으로 그녀에게 토토로를 건넸다. 니가 더, 라는 말이 들어갔으니 자신이 뭔가 더, 뭔가 더 했다는 뜻일 텐데. 골똘히 생각하던 메이는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사투리 너무 어려워요.”

“내 사투리 어렵지 안헌디.”

“엄청 어려워요. 무슨 말인지 반 밖에 못 알아들었다고요.”

“계속 들음 늘품있제.”

계속 들으면 늘 것이라는 뜻이냐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치토세에 메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반 정도는 알아듣고, 나머지는 이런 뉘앙스니 이런 말이려나, 하는 것도 힘들었다.

“큐슈에 가면 자물씨겠네.”

“…와, 큐슈 가면 다 사투리 써요?”

“하먼이라.”

“언어를 두 개 아시는 것 같네요. 표준어랑 큐슈방언….”

치토세는 어쩐지 메이의 어깨가 처져있는 것 같아 뺨을 긁적였다. 큐슈에야 다들 알아들으니 문제가 없었고, 오사카에서도 서로 다르긴 했지만, 사투리를 쓰는 지역이라 그런지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사투리 되도록 안 쓰도록, 노력, 해볼게.”

“불편하잖아요.”

“말이 안 통하는 것보다야 낫제.”

치토세의 대답에 메이가 말갛게 웃자, 치토세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자신보다 훨씬 작고,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메이의 이름을 가진 여자애여서일까. 어쩐지 귀여웠다.

 

  3

 학원제의 준비가 이어지는 동안 메이와 치토세는 잦은 만남을 가졌다. 주로 치토세가 학원제의 준비를 땡땡이 치고 메이와 놀아주었다. 원래도 방랑벽이 심해 자주 산책을 하고, 땡땡이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하니 놀아주는 건 고맙지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놀아도 돼?”

“하먼.”

“…나중에 혼나도 난 몰라.”

메이는 달콤한 아이스티의 스트로를 이리저리 휘저었다. 이제는 말도 편하게 하고 메이도 치토세가 편해졌다. 원래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편이 아닌데도 친해진 것은 토토로 덕분인 것이 틀림없었다.

“달치근한거 좋아하능갑네.”

“응, 단 게 맛있잖아.”

치토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좋다니 좋은 게 좋은 거지. 곧 있으면 학원제도 끝나고, 개학도 하고, 치토세는 오사카로 돌아가야만 했다.

“학원제 끝남 오사카로 돌아가야제.”

“아, 맞아…. 시텐호지는 오사카에 있었지.”

도쿄에서 오사카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었다. 지금이야 매일 같이 만나서 같이 놀기도 했다지만, 오사카로 돌아가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메이는 어쩐지 서운해져서 눈꼬리가 쳐졌다.

“효테이로 전학 오면 안 돼?”

“…내도 그러고 싶제.”

메이만 생각한다면야 그렇지만, 자신에게 오라고 손을 내밀어준 테니스 부도 있고,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 메이도 전학이 그렇게 간단하게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투정을 부려본 것뿐이었지만, 서운한 것은 서운한 것이었다.

“핸드폰도 안 들고 다니니까, 핸드폰으로 연락할 수도 없잖아.”

“…잘 들고 다님돼제.”

“진짜?”

메이는 치토세의 말에 불신하는 눈빛을 내보였다. 그 동안 파악한 치토세의 성향으로 그는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출석률이 반 토막이라더니, 홀라당 사라져서 홀연히 나타나니 만약 사귀기라도 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 나쁜 남자친구잖아.”

“내랑 사귈 생각은 있능갑네.”

“그야, 뭐, 없지는 않지만….”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하는 메이에 치토세는 살짝 메이의 손을 잡았다. 치토세는 원래 어디에도 묶이지 않은 존재였다. 일찍이 혼자서 멀리까지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는 이었다.

“연락 안 되면, 다른 사람이랑 사귈 거야.”

“그런 일은 없을 기라. 약속하제.”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하자 메이가 웃는 낯으로 치토세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기더니 치토세를 끌어안았다. 냉큼 허리를 끌어안아오는 메이에 치토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뜽금없이 보둠아 부요.”

“응?”

“좋아서 그른다. 내가 잘 할게.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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