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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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거기서 뭐 해?” 현관문을 열고 나오던 정여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웬 이상한 여우 가면이 집 앞에 서 있었다. 좀 허접하더라도 얼굴을 죄다 가리고 있었지만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쓰고 있는 남자의 체형이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고우나 미우나 알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숨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걸 괴상한 가면 하나 뒤집어 썼다고 해도 모를 리가 없다
1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단지 네가 보고 싶기 때문에. 2 달빛이 서늘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직전까지도 들렸던 이름을 생각한다. 그의 이름을 부르던 간절한 목소리를 떠올린다. 아, 우는 것만큼은 정말 보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또 내가 너를 또 울리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느릿느릿한 상념들이 이어졌다. 언젠가 가게에서 만나고, 식사를 대접하
"결혼해 주세요!" 결혼해 주세요! 결혼해 주세요! 결혼해 주세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저택을 울렸다. 복도에 전시된 도자기를 닦고 있던 카렌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돌아보다가 도자기를 깨뜨렸다. 꺅 하는 작은 비명소리에 이어, 열심히 할 일 하려는 하녀를 놀려먹던 고매하신 집 주인님께서도 흥미롭다는 듯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A-이든 B-린다 @M__yun 님 신혼 여행 타로 스프레드를 이용했습니다. 단, 8번 질문은 정확히 무슨 질문인지 알 수 없어서 (신혼 여행 타로 스프레드에 두 사람의 허니문=신혼여행은? 질문이 따로 있으니 해석이 여의치 않아서 ㅠㅠ) 삭제했습니다! 먼저 전체적으로 펜타클(동전) 카드가 많이 나왔습니다. 펜타클이 많이 나왔다는 게 어떤 의미
“화났어?” “아니.” “그럼 삐쳤냐?” “아니거든?” 그런 것치고는 행동이 어울리지 않게 영 뾰족했다. 귀찮아하며 길바닥에 엎어져 자는 건 어울려도 팔짱 낀 채 입 다물고 휘적휘적 걷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게 바로 이든 아닌가. 린다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자 그는 뚱해 보이는 낯으로 시선을 피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제법 시간이 지났다. 막 연
A-단테 B-에이 1. 에이는 어떻게 단테를 피할까? 컵10 역 굉장히 알쏭하고도 묘한 카드가 나왔어요. 우선은 긍정적인 의미의 카드입니다. 평화롭고 평온한 관계이며, 평화롭고 평온한 시대예요. 현재 행복한 관계이자 앞으로도 행복 관계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다만 그들의 결말이 아니라 에이가 어떻게 단테를 피할지에 관한 질문임을 고려해야 하
파도에 밀리듯 꿈을 꿀 때가 있다. 물길이 불길처럼 보이는 꿈이었다. 높게 뻗 숲속 나무들도 버석하게 말라비틀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해가 쨍쨍한 날조차 버석함 하나 없이 시원하고 청량한 숲이었다. 빗줄기가 나무 사이로 쏟아져 내리다가 웅덩이를 만드는 날이면 숲 전체가 서늘해졌다. 불길에 약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화마를 볼 일이 없는 곳이었다. 일부러 불을
1 발치로 야구공이 굴러왔다. 2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날이었다. 여름날의 도쿄 특유의 찝찝하고도 기분 나쁜 날씨였다. 비가 오지 않는데도 목덜미 위에 끈적함이 눅눅하게 눌러붙었다. 히가시야마 유이는 가방을 안고 벤치에 앉아서, 그러잖아도 좋지 않은 날인데 날씨도 별로구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깜빡깜빡 아래를 보다가
A-백천 B-소이현 카드를 뽑을 당시의 관계: 비밀연애 이미 정해져 있는 설정에 대해선 해설을 생략했습니다. (5. 비밀 연애가 밝혀지게 된 계기, 6. 비밀 연애가 밝혀졌을 때 주변인의 반응) 1. A는 비밀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지혜롭고 이성적이며, 포용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카드가 나왔습니다. 카드를 고려하면 백천은 사랑에 대한 의지
일 년에 한 번, 사매가 자리를 비울 때가 있다. 그게 일 년 중 어떤 날을 기점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스무 살이 넘은 시점의 일이었다. 별다른 이유나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니다. 백천은 백자 배의 대제자였고, 검이라곤 한 번 쥐어 본 적도 없을 것처럼 보드라운 손을 해놓고 화산을 올라온 백자 배 막내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
A-쿠로오 테츠로 B-아이하라 아이리 1. 카드를 뽑을 당시의 관계 (=글로 표현할 관계의 시점) 우선 쿠로오가 헌신적입니다. 최소한 아이리를 좋아하게 된 이후(=아이리에 대한 마음을 자각한 상태)라고 해석할 수 있었어요. 이와 별개로 아이리의 감정은 다소 모호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1번 카드만 가지고는 확실하게 관계를 확정할 수 없었어요. 약간
그는 홀린 듯한 기분으로 손바닥 아래의 흰 뺨을 훑었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덮어 살랑거렸다. 그를 똑바로 직시하는 분홍색 눈동자가 꽃의 결을 닮아 달콤하게 휘어진다. 늘 다정히 맞춰 오던 시선이 이번에도 눈가 근처에 머물렀다. 늘 그랬다. 아이리는 어느 상황이 와도 시선을 피한 적은 없었다. 발갛게 열이 오른 얼굴로 눈을 굴리는 순간이 오
"남편에게 초콜릿을 만들어 줄 거야." 발단은 마샤의 그 말이었다. 에이는 사과를 먹다 말고 눈을 깜박였다. "뭘 해?" "초콜릿!" "요리는 남편이 한다며." "에이도 참. 초콜릿이랑 요리는 다르지." 만든다는 점에선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간식부터 식사까지 모두 자신이 만드는 에이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사과를 한 입 더
히가시야마東山는 어디에서나 찾아보기 힘든 드문 성씨였다. 히가시야마 유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껏 가족을 제외하곤 한 번도 겹치는 성씨를 만난 적이 없다. 잊을 만하면 사회에서 한둘쯤 만나게 되는 사토さとう나 스즈키鈴木, 타카하시高橋들은 그런 히가시야마의 성씨를 종종 부러워하곤 했다. 히가시야마 상은 다른 친구들과 성씨가 겹쳐서 이름을 부른다든가 하는
"코타로, 엄마가 보러 오래요." 풉, 타네다 코타로가 탕면을 먹다가 사레에 들렸다. 쿨럭대는 남자에게 예상했다는 듯 히가시야마 유이가 물을 밀었다. 헤드셋을 끼고 있던 왕단이 저럴 줄 알았다는 듯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도 가게 한켠을 차지한 중년 남성 둘이서 시시덕댔다. "나, 를?" 물을 마시고 간신히 진정한 타네다
그대를 내 여름날에 비할까요? 그대는 그보다 더 사랑스럽고 온유합니다. 거친 바람이 오월의 사랑스러운 꽃망울 흔드는 여름 한철 너무나 짧습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네트 18번 (박우수 역) 사람의 심장 소리는 어쩌면 파도치는 소리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애셔는 평생을 그런 낭만적이고 시적인 표현과 연관 없게 살았다. 화자와 음
어둑시니. 수많은 귀신들 중에서 그나마 귀에 익은 이름. 뭐하는 귀신이었더라. 인간의 공포를 먹고 자란다던가 그랬는데. 내가 아는 어둑시니는 오드아이를 가지고 있고 까칠한 척하면서 사실은 다정한 까만 고양이인데* 말이야. 고양이를 주진 못할 망정 이래도 되는 거냐. "아아악, 진짜 이놈의 학교 묻어버려! 메워!" 도망치던 안유정이 벌컥 소리를 질렀다.
너 그거 아냐. 말하지 마. 너 저번에 공부 얘기 했을 때 있잖아. 걔…… 서주호랑. 말하지 말라니까. 너네 둘은 무슨, 고3 얘기 꺼내 놓고 내가 연애 얘기 꺼내니까 질색하더라. ……질색, 까진 안 했거든……. 했잖아. 이 상황에 연애 얘기가 나오냐고 그랬잖아 너. 서주호도 나한테 그런 말을 안 했는데 권소현이 다 하고 진짜. 내가 그때 얼마
‘미래의 하선우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웃던 얼굴을 하선우는 매일같이 그려왔다. 어둠 속에 파묻혀 있던 새하얀 얼굴, 공포와 걱정으로 뒤섞인 감정을 하선우는 어렵지 않게 읽어냈었다. 어렸다지만 그 표정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 매일같이 거울 앞에 서서 보았던 얼굴이니까. 하선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여자의 낯에선 선명한 애정과
동그랗게 뜬 눈이 시선을 맞대 왔을 때부터 알아차려야 했을까?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약간은 당황한 것 같기도 한 그 애의 눈은 들여다보았을 때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지현호는 자신과 완전히 정반대의 그 빛깔을 볼 때마다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도 그렇게 반대인 색은 아니었지만, 사실 곰곰이 생
“서리 언니는 여준 삼촌이 좋아요?” 김나정이 그런 말을 꺼낸 것은 폭포가 만들어지던 도중이었다. 이모나 삼촌 대신 언니라고 부르고 싶다는 김나정의 말을 순순히 들어준 윤서리는 비원의 건물에서 그때 경선산성의 지도를 확인하고 있었다. 비원과 경선산성이 극적으로 ‘화해’한 뒤 경선산성의 사람들은 드디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은 불신했고 불안해했으나
언젠가 빛이 촘촘하게 바닥으로 고였을 때 정여준은 웃고 있었다. 윤서리가 모든 것을 말한 이후였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랬던 적이 있다. 정여준이 왜 나서서 죽음을 자초했을지를 묻는 말에, ‘나를 구하려다 그랬다’는 답을 준 적이 한 번은 있었던 것이다. 바위 조각에서 찢기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공중을 부유하는 돌조각이 심장에 박히는 것도 같았다. 폐
“사숙, 무슨 일 있는 걸까요?” 당소소가 그렇게 운을 뗀 건 이미 하루 종일 백천의 기행을 모르는 제자가 없어졌을 때였다. 아니, 어쩌면 망둥이 같은 한 놈은 아직도 모를지도 모르지만, 사실 청명이 그걸 알았다면 백천은 이미 대가리가 여섯 번쯤 깨지고도 남았을 테니 다행인 일이었다. ‘어디서 사형이 되어 가지고 그런 표정으로 화산을 돌아다녀!’ 나 때는
1 결혼을 한 후에도 단테의 일은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에이는 마법사가 아니었으므로 단테가 읽는 책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에이는 밤마다 종종 등불 아래에서 남편이 낱장 위에 글씨를 끼적이는 모습을 보았다. 단테. 누워서 이름을 부르면 남자는 불리길 기다린 사람처럼 고개를 돌렸다. 그냥
아이하라 아이리는 쿠로오 테츠로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믿어 의심한 적이 없다. 그것은 성애적이거나, 로맨스의 범주에 속하는 의미는 아니었다. 물론 그런 식으로든 그렇지 않은 식으로는 쿠로오 테츠로는 아이하라 아이리를 좋아했고 나아가 사랑한다 해도 모자라다고 홀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아무튼 입 밖에 내지 않았으니 아이하라 아이리는 알 길이 없었다. 단지
안녕, 쿠로. 나는 아이리야. 새삼스러운 자기소개고, 글씨체로도 알아보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소개해 봤어. 편지가 갑작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해. 그러니까 혹시나 싶어 말해 두자면, 편지에 별다른 의미는 없어. 그냥 얼마 전에 책을 읽었는데 말이야, 남자 주인공이랑 여자 주인공이 편지를 주고받더라고. 그게 재미있고 즐거울 것 같다고 말하니까, 미나가
“이건 그냥 물어보는 건데요, 영식. 내 이름 알아요?” 아도라가 대뜸 물었다. 어머니께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같이 골라 줬으면 좋겠다고 아도라를 불러낸 비센테는 뜬금없는 질문에 눈썹을 찌푸렸다. 또 시답잖은 소리를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아도라의 얼굴은 뜻밖에 진지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영애.” “이거 봐요. 모르는 거 아냐?”
나이를 세어 본 지가 오래 되었다. 소설 속에서 몇까지 세다 잊었다는 구절을 볼 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알았다. 그만큼 센 것도 제법 끈기가 있는 행동이다. 의미 없다는 걸 자각한 이후가 아니라, 그 전부터도 사실 에이는 가끔 자신의 나이를 잊었다. 지금처럼 아예 잊은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에이. 집 앞마당에 애들이 뛰어 놀고 있던데.” “아
1 박문대가 이변을 느낀 건 새벽이었다. 그 밤에는 모니터링이 유난히 길었다. 굳이 그러려고 하던 건 아닌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이 꽤 늦어 있었다. 오후에 있을 개인 스케줄에 맞추려면 아슬아슬했다. 앞으로는 인터넷을 좀 줄여야겠다고, 누구도 믿지 않을 생각을 하며 노트북을 정리하던 차였다. 낯선 소리가 들렸다. 그건 바람소리와 흡사해서, 박
“그래도 질릴 때까지 모셔 주겠다고 했잖아, 프라우.” 날 좋은 오후에 로드는 그런 말을 했다. 순진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프라우 레망은 포도사탕을 까먹으며 빙글빙글 제 주군을 놀리다가 그 말을 듣고서 멈춰 섰다. 어쩌다 그런 말이 나왔던가? 방금까지만 해도 휘하 영웅들 이야길 하며 시시덕대고 웃지 않았던가. 주변의 소음이 멀어지고 기억이 어긋났다.
1 루델시아에 정착한 아도라가 신관이 되겠다고 말했을 때, 비센테는 최선을 다했다. 신학자를 두 번이나 권한 건 정말 그 당시의 그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에르셀라는 고작 그 정도로 무슨 최선이냐고 닦달할지 모르지만 정말이지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 없었다. 연애든 결혼이든 사랑이든, 어쨌든 상대방이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현재의 관
시계가 깜박거리고 있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2시 45분이었다. * 백찬영이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천이플은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결말이 그 모양 그 꼴인 이상 별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백찬영이 영영 천이플과 관련된 것들을 잊어버렸어도
77,777,777골드. 깜박거리는 창을 보면서 프라우 레망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원성이 자자할 로드가 눈에 훤하다. 고대 재화로는 얼마쯤 되더라? 이젠 기억이 별로 안 나는데. 여기 화폐 단위에 너무 익숙해져서 말이야~. 프라우 레망은 괜히 기억을 더듬는 척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가 킥킥 웃었다. 맞아, 사실은 고민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잠시 짚어 보자면. 천이플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한다면 그럴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건 비단 곽상현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제 온 삶을 바쳐 어떻게든 그 애와 함께한 시간을 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았다. 시간이 지나도 천이플은 그들의 기억 속에 생생했으므로. 그러니까, 천이플이 자신을 위해, 세계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