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더스게이트3

[아스타브] 그리하여 두 소년은 손을 잡고 모험을 시작했다.

비승천 아스타리온 엔딩 후기 연성

연성창고 by 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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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타브 2호의 설정을 읽고 오시면 더 이해가 쉽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고 싶어?

그리 묻는 다면 아스타리온은 여전히 어찌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다. 지독했던 카자도어를 쓰러뜨리고 그의 노예라는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네더 브레인을 쓰러뜨리고 머릿 속의 올챙이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아스타리온은 문자 그대로 자유의 몸이다.

그는 무엇을 해야할까? 어쩌면, 발더스게이트에 남아 노예시절과 다른 방식으로 사냥을 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좋든 싫든 이 도시에는 죽여도 괜찮은 인간들이 많았으니까. 어쩌면, 그가 놓아준 7천의 스폰들과 마주해야할지도 모른다. 주인의 명령이었으니까, 노예였으니까, 그런 변명으로 쌓아올린 200년치의 죄악들과 마주보아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을 다 재쳐놓고 모험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페이룬은 넓고, 세상 어딘가에는 그가 햇빛을 보고 살 수 있게 해주는 마법 아이템 하나쯤은 존재하지 않을까? 그걸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모든 가능성 속에서 제 연인이 있었으면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스타리온은 세상 곤히 자고 있는 제 연인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라이샌더의 눈. 축복이 아닌 저주라고 하는 것이 어울릴 정도로 강력한 매혹의 힘을 품은 그의 눈은 네더 브레인을 쓰러뜨린 위업을 달성했음에도 무엇하나 해결되지 않았다. 더는 동료들의 호감과 신뢰에, 아스타리온의 사랑에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이 강력한 눈을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아스타리온은 머릿속에 올챙이를 안고 하던 모험 도중의 일을 기억한다. 그림자 저주에 물든 땅에서, 어느날 그들의 야영지에 한무리에 요정들이 나타났었다.

‘불쌍한 리스, 가여운 리스, 우리가 사랑하는 리스! 좋은 소식이 있어! 어쩌면 나쁜 소식일지도? 곧 여름 궁정에서 연회가 개최될거야! 리스! 네가 찾던 히르삼이 연회에 올거야!’

밝고 낭랑하게 소식을 전하는 요정들의 말에 라이샌더의 표정이 허망함으로 무너졌던 것을, 야영지의 누구나가 똑똑히 기억한다. 그 놈의 올챙이만 아니었더라면 그는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페이 와일드로 향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머릿속에는 올챙이가 있었고 라이샌더는 결국 그 초대를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요정들은 그의 결정을 이해 못하고 다시금 자신들의 페이 와일드로 떠났고, 그 날 밤 라이샌더는 제 텐트에서 숨을 죽이고 울었다.

페이 와일드는 어떤 곳일까. 라이샌더의 말로는 지배하는 대요정의 영역에 따라 따르지만, 아무런 지배도 없는 땅이라면 낮도 밤도 없다고 했다. 오로지 저물지 않는 황혼만이 그 땅을 은은하게 빛낼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곳의 태양은 뱀파이어 스폰인 아스타리온이 문제 없이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라이샌더가 해준 이야기 중에서 뱀파이어면서 동시에 대요정인 자도 있다던데. 그럼 아스타리온도 요정계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을까? 뭐 여차하면 다시 돌아오면 되는거고. 돌아왔을 때 며칠일지 몇년일지 혹은 몇백년이 지나있을 지는 불명이지만 어차피 영생을 살아가는 아스타리온에게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스타리온은 라이샌더가 침대 머리맡에 두었던 안경을 그에게 씌운 뒤, 그의 이마를 가린 앞머리를 쓸어 넘긴뒤 입맞추었다.

“일어나, 잠꾸러기 왕자님.”

“으, 음……?”

깨어난 라이샌더는 습관적으로 눈을 뜨지 않은 채 머리맡에 둔 안경을 찾으려다가 곧 제 귀와 코에 걸쳐진 안경의 무게를 깨닫고 눈을 떴다. 핑크빛 눈동자가 아스타리온을 향했다.

“아스타리온……?”

“좋은 아침. 저녁이지만.”

“응, 그럼 좋은 저녁이네.”

배시시 웃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아스타리온은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고 그 모습을 본 라이샌더 역시 몸을 일으켜 마주 앉았다. 그는 가볍게 하품을 하고 무슨일 있냐며 고개를 갸웃거린채 아스타리온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아스타리온은 히죽히죽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잡아 끌어내리느라 고생했다.

“있지, 달링. 내가 달링이 자는 동안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나, 자기랑 같이 페이 와일드에 가보고 싶어. 자기랑 같이 그 히르삼을 찾으러 가고 싶어.”

“…………뭐?”

라이샌더는 그 말에 남아있던 잠기운이 확 달아났다. 그는 휘둥그래진 눈으로 아스타리온을 보며 물었다.

“진심이야?”

“응.”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연인의 모습에 라이샌더는 어떤 혼돈의 물결이 제 안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기쁨이기도 했으며, 걱정이기도 했고, 불안이기도 했고, 고마움이기도 했다. 라이샌더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스타리온, 고맙지만, 정말 고맙지만, 페이 와일드는 위험해. 너도 잠깐이나마 요정들을 봐서 알잖아. 걔들이……많이 무례한거 말이야.”

“응, 잠깐 만났는데 엄청 무례하긴 하더라.”

“그리고 장난도……무척 심하고.”

“음……기왕 장난을 당해서 변해버린다면 개구리가 아니라 박쥐가 좋을거 같은데. 뱀파이어니까.”

“한번 갔다 돌아오면 몇년, 아니 몇백년이 지나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오, 달링. 나 뱀파이어 스폰이야. 내 삶은 앞으로도 토나올 정도로 길다고? 몇백년을 지루하게 사느니 그냥 눈 깜짝할 새에 지나있는게 좋겠는걸.”

“또 그곳의 태양이 너한테 해를 끼치면 어떡하려고?”

“그럼 그때는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겠지……. 아, 네가 언젠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면서 언더다크에서 지내고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그의 대답에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는 라이샌더를 보며, 아스타리온은 그의 손을 마주잡으며 다정히 말했다.

“같이 가고 싶어, 라이샌더. 네가 먼저 날 도왔잖아.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도와야하지 않겠어?”

마주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라이샌더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아스타리온, 네가 선택한거야. 한 번 가면, 되돌릴 수 없어. 그래도 같이 가줄거야?”

“그래, 내가 선택한거야 라이샌더. 그러니, 같이 가자.”

그 대답에 라이샌더가 마치 소년처럼 웃었다. 마주보던 아스타리온도 그와 똑같이 소년처럼 웃어보였다.

그리하여 두 소년은 손을 잡고 모험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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