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달 月
총 19개의 포스트
이리나의 남편에겐 기일이 없었다. 어느날 돌연 사라졌을 뿐 사망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기일로 통용되는 날은 분명 있었고, 그건 무에나 니어가 이리나의 남편을 실종 처리한 날과는 달랐다. 그가 실종된 날이란 기실 무에나 혼자 이리나의 남편을 우연히 만난 다음날이자 그가 광석병 발작으로 인해 사망한 날이었다. 이리나의 남편이 살아생전 스스로 이리나
학교는 지루하고, 따분하고, 쓸모없다. —1학년 A반 아키야마, 맞지? —소문대로 진짜 예쁘다. —아니, 소문이 약한 거 아니야? 매일같이 질리지도 않고 똑같은 일의 반복일 뿐이다. —선배, 2학년 A반이라고 했죠? … 미즈키는 무겁게 내리눌리는 눈꺼풀을 몇 번씩 깜빡거렸다. 커튼을 치지 않았는데도 방 안은 어두웠고, 벽 너머로도 집안의 고요함이
함선은 황야를 향하고 있었고, 갑판은 그 황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전부 끌어안고 있었다. 갑판에 선 리베리 하나는 그 황야를 전부 감당하기에는 모자라 보였다. 리베리의 탓은 아니었다. 세상을 떠안을 수 있는 개인이 있다면 켈시는 카르멘과 대지에 관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일개 오퍼레이터인 리베리는 그들이 우물가에서 나눈 대화를 알지 못했지만
※가내 설정이 존재하는 신청자 분의 박사가 켈시와 어떤 관계일지 서사를 구체적으로 빌딩하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론 트레일>, 켈시 라이브2D 스킨 대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둘 다 한국 서버 인게임에서 열람 가능합니다.) 이 유약한 나머지 대체로는 선하지만 때로는 비겁하고 그래서 악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 박사를 보며, 켈시는 로도스 아일랜
체르니의 방에는 오로지 적막 뿐이었다. 오선지 위에 악상을 그려내느라 사각거리는 만년필 소리와 악곡이 올바르게 새겨졌는지 가늠하기 위해 울리는 피아노 소리를 제외하고는. 체르니에게 그것들은 응당 존재해야 하는 소리였으니 적막의 범주에 끼지도 않았다. 심지어 오늘은 그에게 성화를 부릴 메딕 오퍼레이터들도 없었다. 이번 작곡을 위해 향후 2주간 방 안에 틀어
“컨트롤, 네가 어떻게 좀 해봐!” 들릴 리 없는 이름이 들려왔고, 외침이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일렉트로는 그 이름이 잘못 들려온 이름이 맞다는 걸 깨달았다. 잘못 붙여진, 혹은 누구에게도 붙여져선 안 되는 이름의 주인은 브린디쉬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방류되는 폐수를 닮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뻗치고 꼬
아하스는 무성하게 자라난 고무나무 잎과, 생장의 제한을 잊은 양 뻗어나가는 두꺼운 넝쿨을 응시했다. 흠 없이 단단한 녹색은 살랑거리는 바람에 따라 가볍게 움직였고, 그 아래로 작은 덩치의 창조생물 군체 하나가 줄을 서 움직였다. 번개의 에테르와 얼음의 에테르, 물의 에테르가 극단적으로 부족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식물을 포함한 생명들은 부족한 에테르를 효
질투의 바다에서 A는 눈을 떴다. 별 위이자 별 아래인 세상, 에테르계이자 아이테리스를 관망할 수 있는 우주의 어드메, 간편한 용어로는 꿈 속에서 A가 감각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 질투 뿐이었다. 더하자면 분노, 회의감, 환멸, 울분, 처량함 정도. 아는 게 힘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A는 이 논제의 답을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은 모르는 것이
죽음은 생명 가진 것들이 응당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생사의 경계는 언제나 확고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단 하루, 망자의 날을 제하고. 경계가 그어져 있으면 그 경계 너머와, 너머에 있는 존재를 그리워도 하는 법. 일 년 중 오로지 한 날에 한해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이 생으로 가득찬 세계에 침범하도록 용인했고, 그 덕에 망자들은 경계를 타고 넘어 밀
안녕, 현자님.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된 걸 축하해. 이 말을 가장 먼저 해야겠지. 현자님은 가족을 많이 그리워했으니까. 꿈결 속의 바다로 돌아가는 셈이 된 현자님이 부럽다고 생각하기도 해. 그렇지만 현자님이 이곳의 차가운 바다가 아닌 사랑하는 이들의 온기로 가득한 현자님의 원래 세계의 바다로 가게 된 걸 진심으로 기쁘게 여기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라. 그
흰 분필로 그렸던 마법진의 일부를 손으로 쓸어내 지운 유유코는 분필을 쥔 손을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발짝 떨어져 선과 선의 이음새를 바라보다, 도로 자리에 앉아 다시 그것을 지웠다. 그런 행동이 몇 번씩, 거의 십여 번에 가깝게 반복됐다. 유유코가 원하는 형태의 곡선과 교차점이 만들어질 때까지 쉴 새 없이.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
어느 날, 외면받고 소외되어 무리에 섞이지 못한 한 고독한 인어에게 인어공주가 찾아왔습니다. 비슷한 처지였던 인어공주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인어공주가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육지로 모험하는 꿈을 꾸게 되자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마녀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존재가 되면, 언젠간 공주와 함께 같은 세상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피크타임의 마지막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흔들거리다 곧 완전히 닫혔다. 그랬구나, 라는 걸 메루가 알아차리는 건 그로부터 몇십 분이 더 흐른 뒤였다. 설거지 할 시간도 없이 테이블을 치우고, 사이사이 들어온 테이크아웃 주문을 맞추는 데에도 정신이 없던 탓이었다. “멜쨩!” 함께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빛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S.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거라 생각합니까. 나는 결코 그 양이 많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우리의 생과 우리의 존재가 증명하는 명제이니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리석은 질문이 떠오른 나를 당신은 이해할 거라 믿습니다. 내 꿈과 지옥에 항시 거주하는 당신이라면 그 청년을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