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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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천칭의 한쪽 접시 위에다 보석을 올려놓았다. 보석은 투명한 붉은색을 수천 겹 쌓은 것처럼 깊고도 맑은 색이다. 등불의 빛을 입고서 가만히 내려앉는 보석 아래로 불그스레한 그림자가 번져간다. 단단한 광물이 유리 위에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는 경쾌했다. 그것이 잦아들 때쯤 천칭의 접시를 매단 금속 사슬도 보석의 무게에 흔들리다가 멈추었다. 찰그락, 찰그
2023년 11월부터 2024년 05월 19일까지 업로드된 탐카베 포스팅의 후기입니다. 분량이 많으니 한가할 때 킬링타임용으로 읽어주세요. #으로 검색하면 다음 타이틀의 내용으로 넘어갑니다. # 하얀 거울에 비친 죄악의 상자 속 이성의 경계에는 J.S. Bach: The Italian Concerto BWV 971 올리는 링크의 곡은 이것을 읽을
문 너머에 대체 어떤 작자가 사는지는 몰라도, 잘났든 아니든 간에 직접 면상을 보고 주의를 환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겠다고 알하이탐은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그로서는 드물게도 이웃집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명목상은 ‘주의 환기’였다. 제법 잘 지어져 벽이 그다지 얇다고도 할 수 없는 이 고급 맨션에서 어찌 그렇게 매일매일 벽을 뚫고 노이즈캔
하늘에는 금빛을 두른 보름달이, 그 옆에는 총총히 뜬 별이 반짝이거나 말거나 귀갓길을 걷던 알하이탐은 눈앞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지는 것을 언뜻 보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방금 귀에 들린 소리는 분명,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땅에 부딪치며 울린 것이다. 수메르성의 길은 보통 석재로 포장되어 있으므로, 낙하하여 부딪쳤다면 성대한 소리가 나야 한다.
말하자면 이건, 수메르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 중 한 명인 네게 주는 특별 포상이야. 서기관으로서 매일 출퇴근하는 네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인센티브’, ‘보너스’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지. 내가 오늘 너를 이곳으로 부른 건 그런 이유 때문이고, 너는 내가 주는 이 포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해. 다만, 네가 바라는 것을 이루려면 추가로 일을 더 해줘야 해. 현
이 남자가 현관의 벨을 누르기까지 고민한 시간을 문장으로 옮긴다면, 책 한 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많은 분량이 나올 게 틀림없다. 오늘은 그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었을 것이다. 어제 가게를 나서기 전 쪽지를 건넨 순간부터 반짝거리는 기대의 빛이 그의 눈에 떠오르기 시작했으므로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 후로부터 가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할
2023년 6월부터 2023년 10월 31일까지 업로드된 탐카베 포스팅의 후기입니다. 분량이 많으니 한가할 때 킬링타임용으로 읽어주세요. #으로 검색하면 다음 타이틀의 내용으로 넘어갑니다. # 그날, 수면을 채우던 해 질 녘 노을의 온도 그렇게 싸운 후 두 사람의 졸업식은 어떨까에 관한 화제는 아마도 이 cp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일 것이라
선생님처럼 다정하시고 아는 게 많으시고, 또 예술이라는 것에도 조예가 깊은 분의 말씀이라 저로서도 다른 말을 하기가 싫습니다만 선생님, 선생님께서 찾으시는 붉은 장미란 없습니다. 제가 비록 평생 마을 밖으로 멀리 나가지 못하여 견문이 좁은 것은 사실이나,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봐온 장미들은 보통 연한 보랏빛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장미가 아니라
가난한 나그네에게 불행은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깊은 숲속을 정처 없이 걷다가 겨우 발견한 호수였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꿈같은 호수에서 맛볼 휴식을 기대한 나그네가 기뻐하며 달려가는데, 무언가가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탄력 있게 통통 움직이는 동그란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을 때는 숲속에 사는 작은 동물인가 싶어 멈칫하다가,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것은 그를 위한 공양이다. 나는 빈자리 앞에 놓인 빈 술잔에다 병을 기울였다. 유리병 안으로 왈칵 흘러드는 공기의 저항감과 함께 작은 폭포가 부드럽게 쏟아져 내려 잔 속에 부딪치는 소리가 청량하다. 금속에 액체가 부딪치면서 울리던 소리는 점차 둔탁해진다. 단단한 금속의 땅에 쏟아지듯 낙하한 술이 고여서 만들어진 웅덩이 속으로 소리는 가라앉고 가라앉는다.
자극은 신선해야만 효과를 발휘한다. 강한 자극이라 할지라도 여러 번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져 충격이 아닌 일정 패턴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처음 접했을 때 충격적이었더라도 반복되면 그것은 일상이 된다. 사람의 신경은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자극에 무뎌지도록 만들어져 있다. 주어진 자극이 경험으로 바뀌어 기억 속에 쌓이고 쌓여 굳어지는 것이다. 항상
테이블 밑으로 다리 위를 더듬는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한 손톱을 세워 허벅지를 감싼 천 위를 몇 번인가 가볍게 긁어 대다가 손 전체로 다리를 꼭 쥐어 온다. 천 너머로도 상승한 체온과 습기가 전해진다. 다리를 감싸 쥐고 힘을 넣는 손바닥에 촉촉하게 땀이 배었다. 굳이 곁눈질로 확인하지 않아도 옆자리에 앉은 동행인이 극도로 긴장한 상태라
“네게 축하받으러 왔어.” 축하의 꽃다발로 가득해야 할 그의 양손이 비어 있었다. 올해 졸업생들의 대표로서, 주인공으로서 카베는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그들의 축하를 받고 있어야 했다. 축하 세례를 받으며 여기저기 인사하러 다니느라 여기까지 올 시간을 내기 힘들었을 그는 지금, 인적 드문 이곳까지 찾아와 저물어가는 해를 등지고 서서 ‘축하해달라’라는 말을
2022년 11월부터 2023년 5월 16일까지 업로드된 탐카베 포스팅의 후기입니다. 분량이 많으니 한가할 때 킬링타임용으로 읽어주세요. #으로 검색하면 다음 타이틀의 내용으로 넘어갑니다. # 태양 아래, 그늘 속에 숨어버리는 그대를 이해하는 법 Merry Christmas Mr. Lawrence Arabesque 놀랍게도 두 사람이 실장되기
보관 창고에 새 인형이 입고되었다는 업무용 단말기의 알림 소리가 흐릿해져 가던 의식을 둔탁하게 두드렸다. ‘새’ 인형이라고 했지만, 새로 제작된 인형이 아니다. 누군가가 소유 중이던, 혹은 소유했던 기계 인형을 말한다. 이곳은 국가가 운영하는 기계 인형 공방이고, 카베는 이틀간의 밤샘 작업을 견디고 나서 잠시 눈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보관 창고에 들어오는
저 남자는 여태까지 살면서 몇 조각의 케이크를 먹었을까?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와 같은 커피를 주문하고,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자세로 책을 읽는 저 남자에게 케이크를 주면 어떤 반응을 할지 카베는 문득 궁금해졌다. 하루하루 드나들며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단골손님이란 가게 오너의 입장에서 고마운 존재라고 할 수 있지만, 이곳은 디저트 가게이다. 정성스레 만
정원사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아마도 그의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절망일 것입니다. 숲속 한구석에 있는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와 문을 굳게 닫고, 비척비척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서 그는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이렇게 지친 적은 없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드물게도 그렇게 웅크린 채 정원사는 아직도 머릿속을 뒤흔드는 향기의 잔해를
“넌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게 될 거야.” 녹음을 찬란하게 물들이던 낮의 빛이 점차 붉게 물들어가는 해 질 녘이었다. 아직 온전한 황혼이 찾아오지 않았는데도 밀폐된 이 공간에만 황혼이 있는 것 같았다. 눈앞에서 똑바로 이쪽을 응시하는 붉은 시선이 부드럽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빛나는 모습이 당연한 듯 어울리는 그인데도 두 눈만은 황혼의 색이었
눈앞에서 흐드러지며 떨어져 내리는 하얀 꽃잎을, 남자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달이 뜬 밤까지 열심히 일한 남자가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생소한 풍경이 그를 맞이했습니다. 온 바닥에는 하얀 무언가가 군데군데 수북이 쌓여 있고, 그 한가운데서 왼팔에 든 바구니 안의 무언가를 한 움큼씩 집어 공중에 흩뿌려 대는 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