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세문대] 첫 고백 (2)
큰문의 첫 고백을 응원합니다
* AU입니다. 테스타 멤버 이세진, 박문대가 아닌, 그냥 이세진, 박문대로 봐주세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온 것이었는데, 정말 네가 있었다.
"...이세진."
반가운 마음과 함께 저릿함이 몰려왔다.
"그, 내가. ...그땐 말 못 했는데. ...정말 잘 어울려. 축하해, 박문대."
그렇게 말하는 너를 보며 입술만 달싹일 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막상 너를 만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네가 건넨 축하로 인해.
***
"우리 반에 새로운 친구가 왔다. 음, 인사할까?"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전학생 소식에 반 아이들은 금세 나를 사고 쳐서 강전 온 놈으로 만들어댔다.
"박문대입니다."
"...음, 큼. 다들 문대 잘 대해주고. 문대는, 어디 보자- 아. 세진이가 당분간 문대 짝 좀 할까?"
담임 선생님의 시선이 떨어진 곳을 보자 살짝 놀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놈이 보였다.
'아. 어제 교무실.'
교무실 그놈은 곧 빙긋 웃으며 '네.' 하고 답했다. 그 옆에 앉아있던 놈은 아니라고 하고 싶은 듯했지만.
자리로 가 앉자, 짝이 된 교무실 그놈이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문대라고 불러도 되지? 난 이세진이야. 반장. 필요한 거나 모르는 거 있으면-"
역시 반장이었구나. 얘도 피곤하겠네 싶었다. 반장이란 이유로 괜히 신경 쓰는 것 같길래 대충 답했다.
"됐어. 알아서 해."
나를 보며 입꼬리가 살짝 들썩이는 게 기분 나빴나 싶긴 했다만. 뭐, 아무렴.
이세진은 그 뒤로 특별히 말을 걸거나 하진 않았다. 말을 걸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힐끔거렸다. 그 힐끔거리던 시선이 고정된 채 돌아가지 않았다.
'음...'
고개를 돌리자 이세진과 시선이 맞닿았다. 그에 놀란 것인지 이세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다시 고개를 돌려 펜을 들어 포스트잇에 글씨를 썼다. 팔을 살짝 뻗어 이세진의 교과서 위에 살짝 붙이자 이세진이 팔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얼핏 보이는 목덜미가 붉었다.
'아직 봄인데.'
이세진은 그때부터 조금씩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웬 시답잖은 얘기들만 해대는 통에 '아, 그래.', '음. 그렇네.', '아니.' 같은 답만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엿먹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얘기만 하는 건지 진짜로 대화를 하고 싶어서 말을 거는 건지 헷갈릴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책을 읽고 있는 내 옆자리의 의자를 조용히 빼 앉기도 했다.
"문대, 그 책 좋아해?"
이번에도 역시 '응', '아니' 같은 단답형 대답만 내놓을 질문이었다. 고개를 들어 이세진을 보자, 이세진은 그 책이 좋은 이유와 가장 좋았던 부분을 떠들어댔다.
"나는 그 책 좋아해. 그 책 내용이... 매일 악몽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책을 읽고 자면 그 책의 등장인물이 나와서 밤새 곁을 지켜준다는 미신을 듣고, 잠들기 전에 매일 책을 읽는 거였지? 어떤 날은 하늘을 나는 히어로가 나오는 책을 읽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마법사가 나오는 책을 읽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따스한 할머니가 나오는 책을 읽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또, 다정한 선생님과 부모님이 나오는 책을 읽기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도 빼지 않고 자신을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음에도 주인공은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잖아? 그 이유는, 잠들기 전 매일 쓰던 일기 때문이었고. 난 그 부분이 제일 좋더라. 그 부분을 읽고 나니까, ...주인공이 왜 히어로물보다 점점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나오는 책을 읽었는지 알겠고. 음, 그래서 좋더라고, 나는."
'이거 스포 아닌가. 아무렇지도 않게 스포를 해대네.'
하지만 그 조잘거림이 나쁘진 않았다. 어쩐지, 가만 집중해서 듣게 됐다. 그 말을 하는 표정이 정말 천진난만하고 신나 보였으니까.
"나 반절 읽었는데 이제."
"하하! 미안~ 세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스포를 해버렸네? 좋아하는 책이라 들떠서 그만~"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던 듯, 이세진은 머쓱하게 웃어 보이다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 읽으면, 다시 얘기해. 그래야 대화가 될 거 아니야."
이세진은 잠시 멍하게 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이세진과의 대화는 점점 횟수도 늘고 길어지기 시작했다.
"나 다 읽었는데."
의자를 빼내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이세진은 눈을 빛내며
"문대는 어떤 부분이 좋았어?"
물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같이 신나서 떠들어댔다. 종이 치는 것도 모른 채 떠들다, 담임 선생님께서 조용히 하라는 말에 그제야 우리의 대화는 멈췄다. 그게 며칠이 되고, 그 며칠이 반복되고, 그 반복되던 날들이 일상이 되었다. 일상이 되었을 땐 다른 시답잖은 주제로도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묘했다. 장난치고 투닥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친구 같다가도. 엎드린 채 눈을 감고 있던 나를 빤히 바라보는 이세진의 시선이 간지러웠다. 계절이 두어 번 바뀌고, 학년이 바뀌고, 반이 바뀌고, 또 계절이 한 번 바뀌는 동안, 그 간질거리는 시선은 여전했다. 아니, 내 속 어딘가를 간지럽히기까지 했다. 이걸,
친구라 할 수 있을까.
친구라는 말에 의구심을 느낄 때였다. 나와 이세진을 '친한 친구'로 귀결시키는 다른 이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이세진의 표정은 어딘가 묘하게 굳어있었다. 이세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친구, 하기 싫은데."
"...나도. 나도 친구 하기 싫어."
이세진은 아무 말도 없었다.
"이세진."
그 순간이었다.
"잠깐, 잠깐만 문대야...!"
이세진이 내 입을 손으로 꾹 눌러 막았다. 그리곤 '어, 그러니까... 그게.' 하며 별다른 말은 잇지 못했다. 내가 이세진의 말을 잘못 이해했나 보다 그의 손을 잡아 내렸다.
"우리, 종쳐서 들어가야 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로 향했다. 교실로 향하는 내내 뒤에서 따라오는 이세진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지금 당장 내 표정조차 어떨지 알 수 없어서.
그 뒤 계절이 다시 두어 번 바뀌고, 우린 다른 반이 되었다. 하지만 늘 찾아오는 이세진으로 인해 우린 그렇게 함께였다. 함께였었다.
대체 어디서 이상한 소문을 듣고 온 것인지 반엔 각 반에서 몰려온 애들로 가득했다. 정확히는, 내 짝 주변에. 그 인파에 피곤해져 미간을 꾹 눌렀다.
"...야. 다들 얼른 좀 돌려보내지?"
"하하, 미안... 문대. 아, 글쎄! 대체 어디서 이상한 소문 듣고 온 거냐고."
고개를 젓다 이세진이 보인 것만 같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세진은 없었다. 그저 더 에워싸는 아이들뿐이었다.
그 뒤부터였을까. 이세진은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교실로 찾아가도 이세진은 애써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갑자기 나를 피하는 시선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 어긋나는 시선을 더는 볼 수 없었다. 우리의 시선은 공중에서 어긋나다 다시는 마주치지 않게 되었다.
***
몇 년이 지나서야 마주친 시선은 곧 이상한 축하만을 건넸다.
'대체 뭘 축하한다는 건데.'
너는 이상한 축하만을 건넨 채 어깨를 툭툭 치고 술집을 빠져나갔다.
"문대야. 들어가자. 나 춥다."
친구의 말에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지만, 계속해서 이세진의 표정이 맴돌았다.
"...미안. 나 가봐야겠다."
술집을 빠져나와 어두운 길을 내달렸다. 어두운 적막에 내가 옳게 가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울음소리 하나가 그 적막을 뚫고 귀를 울려댔다. 처절한 울음이었다. 그 처절한 소리를 따라가자
"...이세진."
주저앉아있는 이세진이 보였다. 너를 만나자 사박거리는 발소리가 살아나는 듯했다. 고요한 적막에 귀를 먼 것 같았는데 하나둘 귀를 울려댔다.
그 책에서, 이세진이 놓치고 있던 부분이 있었다. 그 주인공의 악몽의 주인은, 다름 아닌 그의 일기. 즉, 주인공 본인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주인공은, 이후 일기를 쓰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날의 일기를. 그는 그날부터 매일 일기를 썼다. 이미 아득히 멀어진 옛 기억을 끌어와 일기를 썼다. 정말 자신의 악몽이 일기 때문이고, 피할 수 없는 악몽이라면, 그 미신을 믿고 싶었다. 수년 전 죽어버린 자신의 부모님을 다시 보고 싶었다. 모든 문장들이 지나가고 주인공은 일기장을 덮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그날 밤, 주인공은 악몽을 꿨다. 과거, 그가 가족과 쌓은 추억의 한 장면이라는 정말 지독히도 슬픈 악몽을.
나 또한 그랬다. 너의 기억을 한 자 한 자 일기로 적어 내려갔다. 마지막 온점을 찍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너라는 악몽을 꾸고 싶어서. 하지만 나는 책 속의 주인공이 아니었고, 악몽을 꿀 수 없었다.
악몽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내게 다시 나타나 준 너를 놓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긋나버린 건지조차 모를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바보 같이 눈물만 흘려보냈다. 그런 내게 네가 다가와 눈물이 흘러내린 뺨을 살살 어루만져주었다.
"뭐야. 문대 왜 울어~"
'...지는.'
속에서 말이 뱉어지지 않았다. 입을 조금이라도 벌리는 순간, 소리 내 울어버릴 것 같아서. 전할 말이 많은데 그 말을 다 전하지 못하고 울음소리만 들려줄 수는 없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데 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남친은 어쩌고 왔어."
"...?"
나오던 눈물이 쏙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남친? 나한테? 그런 게 있던 적이 없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로 과거의 기억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설마 싶었다.
"그, 친구... 계속 만나는 거 아니었어?"
"...미친 새끼. 병신... 와."
"문대...? 그 갑자기 왜 욕을..."
이 바보 같은 이세진이 대체 뭘 어떻게 생각을 해서 그런 결과를 도출해낸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피차 이상한 결과를 도출해낸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세진."
"어...?"
"나, 키스할 거야."
"나는 바람엔 취미가 없..."
또 바보 같은 소리를 내뱉는 이세진의 옷깃을 손에 쥐고 당겼다.
"키스부터 할래. 얘기부터 할래."
눈만 깜빡이던 이세진이 침을 한 번 삼키고 두 볼을 감쌌다. 나는 얌전히 눈을 감았고, 이세진의 입술이 내 입술 위로 포개어졌다. 포개진 입술이 차가웠다.
가까운 놀이터로 가 그네에 나란히 앉았다. 삐걱대는 소리만 울렸다. 아무래도 이세진 또한 할 말을 정리하고 있는 듯했다. 정리할 게 뭐 있어. 심플하지.
"바보 같은 이세진이 오해한 거다. 그리고 더 바보 같았던 나도... 오해한 거다."
"...그니까, 우리 둘 다..."
"...뻘짓, 한 거지."
이세진과 나는 누구랄 것 없이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감쌌다.
"푸흡. 푸하하."
"?"
뭐가 웃긴지 이세진이 웃기 시작했다. 아니, 웃기긴 하지...
"세진이가 바보 같았네~ ...그래도, 다행이다. 나만 그 관계에 진심이었던 건 아니라서."
"...하나 더 있잖아."
"응? 아. 푸흐- 그치. 아! 다행이다! 문대가 날 좋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소중해서, 그 관계가 중요해서, 잃고 싶지도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 마음이 서로를 잃게 하고, 그 관계를 망친 것도 모른 채. 조금 아니, 아주 먼 길을 돌아 다시 찾은 서로에 너무 욕심을 내진 않기로 했다.
+
그 뒤 1년이 지난 지금, 이세진과 나는 같이 동창회에 왔다. 꼭 손을 잡고 들어가자는 이세진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손을 잡고 술집에 들어선 우리 둘을 보며 그 안은 잠시 조용하다 단숨에 시끄러워졌다.
"어? 뭐야!? 문대 사귄다는 사람이 이세진이었어? 뭐야 왜 말 안 했는데!"
"아 미안~ 얘기가 좀 길다."
자리에 앉은 우리에게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고, 이세진은 그에 신나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서로 삽질한 게 뭐 자랑이라고...
"그때 우리 문대문대가 아주 열정적으로~...!"
이게 진짜 미쳤나. 나는 앞에 놓인 오징어를 들어 이세진의 입에 처넣었다. 입 좀 다물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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