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사흘, 간수 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원형 복도를 빙글빙글 돌며 종종 가림문 너머로 귀를 기울이던 나는 때가 왔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마음의 각오를 할 시간 정도는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사건사고들을 침음하며 흘려보낼 수 있을 준비를 할 정도의 여유. ……전혀 대비라곤 할 수 없는 그런 안일한 각오.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 대저택. 5월을 맞이해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정원사는 손을 다치지 않게 장미의 가시를 하나씩 톡톡 다듬고 있었고, 많은 하녀들은 머리수건을 뒤집어쓴 채 계절에 맞게끔 집안의 장식을 바꾸고 있었다. “얘, 오늘 새 하인이 온다지 않아?” “아마 지금쯤 집사님이 도련님께 소개해드리고 있을거야. 남자애라 잘됐지.” “안 그래도
240228 240228 240228 240301 240306 240307 240309 230316 240318 240320 240321 240323 240326 240327 240329 240411 240411 240415 240418 240419 240425 240426 240501 240503 240510 240611 240612 240620 240
230804 230806 230807 230808 230809 230814 230814 230815 230816 230817 230817 230818 230818 230818 230819 230821 230822 230823 230826 230826 230905 그 사이 언젠가… 230922 231028 231125 230920 230923 231101
축하할 일도 아닌데 파티를 연다니 조금 웃긴 일이지. 어차피 내일이면 사라질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건 바보처럼도 보일 거야. 그렇지만 말이다, 사람은 원래 비합리적이고 미련한 생물이야. 순간의 기쁨이 하루를 살게 하고 찰나의 추억이 십 년을 버티게도 해. 그러니까 이 촌극도 무의미하진 않을 거야. 모든 게 끝나는 때에 아주 잠깐 스쳐갈 주마등의 일부가 된다
하루카(@haru_0622_001)와의 DM 대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행 로그 카즈이 -> 하루카 (하루카 로그 제발 봐주세요) 이상하지. 녀석에게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을 텐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순수함이라더니. 방에 돌아와 거울을 봤더니 눈가가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운 기억은 없었는데 세 시간 정도 운 것 같은 탈력감이었다. 이
사흘쯤 앓은 감기가 드디어 떨어져서 조금 신이 났는지 평소 잘 시간을 한참 넘기고 말았다. 기분이란 것은 양가적이어서 들떠버리면 반드시 가라앉는 시간이 찾아오는데, 그게 오기 전에 빠르게 자버려야 하는데. 바보같이. 새벽을 넘어가면 빠르게 우울이 밀려온다. 무슨 호르몬의 영향이랬는데 그것까진 잘 모르고. 아무튼 넘겨서 좋을 게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
과거 날조. 날조 함량이 100% 정도입니다. 히나코를 비롯한 카즈이의 주변인물이 다수 등장합니다. 적나라한 우울증/소수자 혐오/고압적인 가풍 묘사가 있습니다. 담배를 태우며 병원 문앞에 멍하니 서 있던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한 건 아버지의 따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처음 맞아보는 것이었으니 거의 이십 년 만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부
투이 수잔 테일러 요한 칼리스 페퍼 마킨 헨리 권 신 류양 이안 길로 모리유키 아키라 류낙화 류낙원 덱시 플로스 테오 루퍼스 장목화 쟝 텐 셰릴 콜 윤청명 가렛 헤일 공예쉔 발렌틴 디아즈 아티 커스 티퍼 발드 알제타 가엘 나사로 린 이천 나인 백엽 셰인
이쪽의 대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죽인 존재를 생각해 봐. 그걸 궁금해할 정도로 결백해? 이후로 몇 번 유즈리하 양의 날선 물음과 자신의 대답을 곱씹었다. 나, 그 아이에게 제대로 대답해준 걸까. 유즈리하 양은— 스스로를 수단으로 삼고 있다. 적어도 내 인상으로는 확신에 가까웠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못하는 반푼이인 삶을 오래도 살아오면
우당탕.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면서 큰 소리가 났다. 갑작스럽게 현실로 내던져진 나는 둔중하게 몰려오는 통증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구겨져 있었다. 요 며칠 계속되는 불면 속에서 웬일로 깊이 잠들었나 싶더니 가장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의 꿈을 꿔버린 탓에, 지금 처박혀 있는 구석이 밀그램의 개인실이라는 걸 깨닫는 데 시간이 걸려 버려서
내가 강했다면 다른 자들이 다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었으니. 그래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진 않네. 아마 이든 덕분이겠지. 충분히 힐링했다면 다행이군. 꼭 줄 필요는 없다만 준다면 고맙네. 지금 줄만한게 없어서 미안하군. 자네 말대로 이든이 쉴 때는 여행을 가는 것도 나쁘지
정말 오랜만이군. 자네 말대로 나는 다른 곳을 여행하고 있었다만 요즘은 한곳에 정착해서 살고 있네.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지만 말이야. 확실히 그 섬에서의 일은 쉽게 잊긴 힘들겠지. 나도 한동안은 단련에 열중했을 정도니. 지금은 같은 일이 발생하면 더 빨리 끝낼 자신이 있네. 자네도 나아졌으면 하는군. 예민한 것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미안해, 내가 무력해서. 배신자 색출이 끝난 후, 호정과 소울 소사이어티의 재건부터 키사라기는 이상했다. 대장이 된 이후 부대장에게 제 일을 넘긴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대장에게 제 일을 넘기기도 했고, 멍하니 하늘을 보기도 했다. 여러모로 나태해진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키사라기가 4번대의 대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
2022. 11. 21 . . .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레프 중위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네요." 무력한 목소리가 주변을 울린다. 그 무엇도 적실 수 없을 메마른 소리는, 유독 악셀의 귀에만 끈덕지게 늘어졌다. 그는 저조차도 틀린 줄 몰랐던 거짓말을 뱉어낸 죄로 마지막이란 선고를 받는다. 어째서 후회는 반복되는 것인지. 마
2022. 11. 21 돌아간 고개. 화끈거리는 뺨. 흔들린 시야. 초점이 돌아오고서야, 분노와 실망으로 들끓던 머리가 진탕되고서야. 무엇인지 인지한다. 바닥에 닿은 머리가 통통 외따로 굴러가는 것만 같다. 입술을 잘근 깨문다. 터진 입안의 피를 삼켜내고 시선만 굴려 바라본다. "... 대체 왜. ... ... ... 내가 왜 그렇게 본다
2022. 11. 19 77% 군화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벽을 치고 다시 공명한다. 건들거리는, 어슬렁대는 걸음이 목적없이 움직이는것 같다가도, 시선은 곧게 뻗어 목적성을 담고 있었다. 물기가 가시지 않은 적색을 대충 털고,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걸어간다.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습관적으로 씹으며. 익숙하기도, 낯설기도한 문 앞에서야
2022.11.08 열린 창 안으로 들어오는 늦가을의 밤공기는 누군가에게는 선뜩함을, 누군가에게는 싸늘함을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 제게는 그저 봄바람의 살랑거림과 다를 바 없다 하더라도. 흐린 달은 미동없이 떠 있고,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까만 하늘 위로 흰 담배연기만 대신해 수놓아진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천천히 왼눈을 감으면, 조금 더 뿌
2022.11.02 눈앞의 이가 상관이니 자신의 행동이 명백한 상관 폭행에 해당하는 것임을 인지는 했다. 그래, 인지만 했다. 악셀의 불 같은 성미는 늘 그랬다. 인지, 판단 이전에 행동. 그리고 결과. 그 증거로 실적 이력만큼이나 화려한 징계 이력이 있었다. 참고 넘어가는 것은 외려 드문 일이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순전히 내켜서 넘어
흩날리는 눈발 속을 여자는 걷는다. 눈 밟는 소리도, 기척도 없다. 두툼한 겉옷 아래 이따금 나부끼는 흰 자락엔 붉은 자욱이 점점이 튀어 있다. 검은 장갑을 낀 손에 들린 칼날엔 피가 얼어붙어 간다. 흰 입김이 흘러나와 허공에 흩어진다. 유령이 아닌, 산 사람이다. 여자는 기억한다. 여자가 방랑 끝에 오래된 수도원에 도착했던 날도 눈이 내렸다. 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