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벽공기는 차가웠어 이슬은 시원했고 하늘은 아름다웠어. 너는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났었는데 아침은 쌀쌀했고 도보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지금 막 문을 연 가게들과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어. 늘 웃으며 내 장난을 받아주던 시간인데... 낮은 따뜻했지 사람들도 깨어나고 활기를 다시 찾았어. 일 땡땡이치고 나오면 늘 맛있는 음식을 해줬었는데 황혼이야 아름다
입김이 새하얗게 나오는 겨울,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겨울 하늘 아래로 아스팔트 도로가 길게 뻗어 있다. 가는 길은 하나, 오는 길도 하나.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직선의 두 도로가 서로 옆에 붙어 만들어진 이차선 도로. 도로 위 자동차에서 창문을 내리면, 시선 저 끝 멀리 바다가 보이는 도로다. 길게 뻗은 길 위로 하얀 차 한 대가 달려가고 있다
육지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에 바닷냄새가 실려 있다. 넘실대는 푸른 파도를 길잡이 삼아 작은 어선 여럿이 항구를 떠나고 있다. 만선을 기대하며 물살을 가르고 짠 바다향이 가득한 바람을 맞으며 나아간다. 하얀 갈매기 여러 마리가 날개를 펴고 부두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 낚싯대와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손이 바쁘다. 활기가 넘쳐나는 항구의 모습이다. 다만
사람들이 오가는 모퉁이에 햇빛이 잘 드는 작은 찻집이 있다. 이 찻집은 입구에 커튼을 친 작은 여러 개의 방이 있었는데, 한 남자가 그중 한 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이 남자의 푸른색 머리카락을 비추었다. 혼자 앉아 있는데도 차를 두 잔 주문하여 자신의 맞은편에 한 잔을 둔 것을 보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법 고
회의가 끝나고, 다들 각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라더는 덕개의 호위를 받으며 이미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뒤였고, 각별은 최종 회의를 위해 서류를 정리해두겠다며 서재로 갔다. 레지스탕스의 대표 두 명과 혁명단원 잠뜰은 국왕이 마련해준 마차에 올라탔다. 준비할 것이 많았다. 앞으로 닥쳐올 변화의 파도에 상황이 바삐 돌아갈 것이리라. 공룡은 왕비의 방에서
"왕실을 대표하는 짐이 단두대에 올라가는 건 어떻소?" "…!!" 찻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왕자의 손에 들려있던 흰 도자기 찻잔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고, 갈색 찻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돌아보지 못했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생글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는 국왕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잠뜰의 불안
푸른색의 고급진 무늬로 장식된 벽에 붉은 융단이 깔린 방, 이곳은 에투알의 왕비 엘레나가 지내던 방이다. 그녀가 세상을 뜬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방의 모습은 그녀가 떠난 그 날로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시간을 멈추어 둔 것 같은 그 방의 한 벽면에는, 벽 전부를 덮을 만큼 커다란 그림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갈색 머
미궁 완결 후, 이야기가 시작된 계기 미궁이 끝난 후 작중 인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뒷이야기를 상상해서 적어보는 것이 이번 합작의 주제였습니다. 본 글은 미궁 완결 시점 이후, 잠뜰이 탈출하고 연구시설이 박살 난 후 프로젝트 유출의 위기를 느낀 미스틱에서, 이전 AI core 정보 제공자들을 불러들여 계약서 내용을 모두 기억에서 도려냈을 거라는 추
-싱크홀 사건으로 무마...행방 모호.... -...정보누설 가능성은 적어.... 기억 조작은.... -...검증 필요...추가 확인 요망.... -그렇다면 D를- 안녕하세요, 덕개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Duckgae라고 써요. 아, 요즘 취업할 땐 영어이름이 꼭 있어야 한다더라고요. 현재 취업이 고민인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몇 달 전 조금 이상
검정으로 도시를 물들이는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생자들에게 안락한 잠을 선사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망자들에겐 밤이란 활동할 시간, 그들만을 위해 마련된 무대이다. 해광시의 소극장에 모여 사는 야괴들에게도 역시 그렇다.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건물 옥상에, 피리를 들고 있는 붉은 야괴가 서 있었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그는 멍하게 허
엘레나, 나의 기억은 여전히 그 계절 속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당신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전 회의를 마치고 그대를 만나고 싶었는데, 방에 없기에 궁인들에게 물었었어요. 그대가 몇 시간 전부터 도서관에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는 그대에게 책갈피로 선물해주기 위해 만들어두었던 압화를 종이에 감싸 그대를 만나러 갔지요.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누눙님 AU <DIE ALMOND > 3차 창작 https://nunungflo.postype.com/series/637897/die-almond 사람을 속이는 건 쉽다. 진심이라는 것은 웃음이라는 가면만으로도 손쉽게 가려지는 얄팍하고 보잘것없는 것이다. 속이는 상대가 어린 나이일수록 더욱 쉽다. 별거 아닌 조잡한 가면을 쓰더라도 상대는 고맙다며
여우 카페. 구미호 필립이 삼왕모의 명으로 인간계에 와서 차린 카페의 이름이었다. 이른 오전이었기에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잠뜰 씨는 조금 전에 나갔으니, 혼자 가게 준비나 할까. 오늘은 어떤 케이크를 먼저 구울지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바깥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가게 문 도어벨의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의뢰물품을 사무실에
에투알 국왕 공룡은 떨리는 마음으로 아내의 산실로 향했다. 신하에게서 이미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다.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로 물들고 있었다. 그러니 이 떨림은 그저, 사랑하는 아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낳아줬다는 기쁨에 의한 것일 거다.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이렷다. 공룡은 그렇게 믿으며 산실 앞에 섰다. 그를 알아본 문지기들이 인사를 올
엘레나는 왕성의 테라스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처럼 칠흑인 밤하늘엔 조그만 빛을 내는 별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기를 느끼는 것도 잠시, 곧 두툼한 무언가가 그녀의 어깨를 덮었다. "아직 밤에는 바람이 많이 차오, 왕비." "폐하." 부드럽게 울리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엘레나는 뒤를
다 함께 여행을 떠난 그 날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이별을 장식할 졸업식 날이 왔다. 공룡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교실 문을 열었다. 언제나 교탁에서 저들을 맞이해주던 그들의 선생님은, 졸업식에 오지 못했다. 공룡은 빈 교탁에서 애써 시선을 돌리고 자리로 향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제야 공룡도 제 책상 위에
Special thanks to 파트너 그림러 하양(@__White1_)님 "기사님, 저희 여기서 내려요!" 눈 덮인 산 아래에 시골 마을버스 한 대가 멈췄다. 오래된 차의 문이 열리고 다섯 명의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저마다 한껏 기대에 부푼 듯 큼지막한 가방을 하나씩 손에 든 채였다. 시골 버스가 떠나며 내뿜은 매연으로 잠시 모두 콜록거리다
그림자에서 숨죽이며 사는 우리는 빛을 하염없이 동경하기만 하였고 빛에서 사는 너희는 우리의 어둠을 결코 알 수 없으리라 도시는 어두운 밤에만 머물지만 빛나는 건물들에 사는 너희는 너희의 빛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를, 절대 알 수 없으리라. "청장님, 야괴가 출현했습니다!" 평화로운 저녁, 공룡은 경찰서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경찰관이
황혼기 1. 해가 지고 어스름해지는 무렵. 2. 사람의 생애나 나라의 운명 등이 한창인 고비를 지나 쇠퇴하여 종말에 이른 때. 깊은 밤이다. 잠뜰의 집에 머물던 봄의 신 수현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중간에 잠이 깨어 잠시 밤공기라도 쐬고자 나온 것이다. 하얗게 눈이 쌓인 마당에 서서 그는 겨울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뱉은 숨이 찬 밤공기를 맞
흑색 발걸음이 백색 계단을 밟았다. 흑색 퀸의 검은 머리칼이 그가 계단을 밟을 때마다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의 호박색 눈은, 오직 단 한 사람을 찾고 있는 듯 집요한 빛을 띠었다. 그는 지금 백색 킹을 찾고 있었다. 왕국에서 지내던 이들을, 언젠가부터 내다 버릴 장기말 정도로만 여기는 왕을 죽이러 가고 있던 것이다. 스러져가는 왕국을 과거의 행복했던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