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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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건 전부 매드 패러독스의 잘못이었다. 잘못 매드 패러독스가 다른 시공에 불시착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그 시공에 매드 패러독스가 아닌 ‘애드’가 존재하는 건 늘 있던 일이고, 그걸 지나치지 않고 구태여 찾아가 타임 패러독스를 발생시키는 건 매드 패러독스의 취미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방금까지 자신의 몸이 얼마나 고깃덩이와 유사하게
도미네이터의 연구실에는 시체가 두 구 있다. 한 구는 그의 뿌리를 만들어낸 씨앗. 영원히 벗지 못할 그의 껍데기. 더 없이 사랑하는… 그레이스. 다른 한 구는, 그와 정 반대의 것이다. 지독히 썩어버린 과실. 코를 찌르는 단내를 풍기며, 진득한 진액을 흩뿌리는 것. 그 걸음마다 시체의 향이 풍기고, 발걸음에 진득한 액체가 흔적처럼 뒤따른다. 그것은 발을
도미네이터와 매드 패러독스는, 서로를 잘 안다. 잘 안다고 확신했고, 전부 파악했다고 자신했다. 그렇기에, 둘은 계약에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어쩌면 그 모든 사고의 근원은, 둘이 같기 때문이다. 결코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매드 패러독스는, 기꺼이 도미네이터가 질색하는 어린 태를 버린다. 1조. 매드 패러독스는 도미네이터를 사랑한다
취조실의 오래된 전등이 점멸한다. 낡은 필라멘트 전구는 백색보다는 황색에 가까운 빛을 낸다. 구속복에 짓눌린 살인마는 전등을 바라본다. 눈에 붉은 곡선이 좋을 대로 새겨진다. 퀴퀴한 먼지 내음이 비강을 뒤덮는다. 낡아빠진 장소다. 새로운 거라고 해봐야, 한쪽씩 사이 좋게 의자에 채워진 수갑만 반짝인다. 쇠로 된 의자는 녹이 슬고 먼지가 뒤덮인 채다. 살인마
0월 12일, 27시 03분. 악마를 주웠다. 연구실 문 앞에서. 0월 13일, 01시 04분. 악마가 깨어났다. 그것은 나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발작처럼 11분 가량을 웃다가, 다시 몸을 웅크렸다. 허공에 흔들의자라도 있다는 것처럼, 아니면 요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것은 아이의 행동을 모방했다. 둥글게 만 몸을 흔들, 흔들. 허공에 둥둥 떠다니면
또 비다. 여름이니까, 자연스러운 일이다. 디셈블러는 익숙하게 길을 적시는 비를 바라본다. 한 방울, 두 방울. 툭 툭 보도블럭의 얼룩처럼 보이던 것은 어느덧 바닥의 채도를 전부 낮춰버린다. 시간에 맞지 않게 어두워진 바깥은 조만간 번개마저 칠 기세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면, 죄다 책에 코라도 박을 기세로 어깨도 웅크리고, 목도 숙이고. 아주 자는 것들도
페일 필그림은, 그러니까 노아 이벨른은. 미래를 원했다. 같은 시간의 고리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이 고리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했을. 어쩌면, 당연히 성공했을 미래의 자신을. 그건 종종 하는 생각의 연장선이었다. 언제나 반복되는 일상, 반복되는 도움. 반복되는 전투... 끝을 기약하지 못하는 반복에선, 망상이라 여겨질 법한 상상마저 하나의 도피가 되
"셀레스티아!" "아, 노아." "또 그거 보여줘. 응?" "정말~ 대가는 준비했고?" "당연하지." 셀레스티아 앞에서, 아니. 세상에서. 모르페우스는 언제나 노아였다. 자신만이 노아이기를 원했고, 그것이 옳다는 듯 구는 이 앞에서 반기를 드는 이는 흔치 않았다. 어린 티가 그득해보이는 노아를 위해 작은 배려 하나씩 쯤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이들이 주변에
쾅! 와장창쨍그랑… 적막을 깨부수는 소리는 늘 요란했다. 그러한 소음이 늘 마스터 마인드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었음은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자신의 보안을 뚫어낸 침입자가 경보조차 울리지 않았음은, 침입자의 정체를 명확히 하는 탓도 있었다. "또 뭐야?" "... 닥쳐봐." 간신히 한마디 뱉어낸 타임 트레이서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다. 울컥거리며 새어나오는
도미네이터는 성큼, 오버마인드의 영역에 들어선다. 익숙하다고 할 수는 없는 공간이지만, 낯설지만도 않은 공간이다. 오버마인드가 이 공간을 만들 때의 의도가, 도미네이터에게는 고스란히 줄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장 익숙하고도, 그리운. 우리가 편안히 쉴 수 있던 공간을 만들자. 그러한 의도를 읽을 수 있는 건, 그와 자신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미네이터는
"악!" 머리채가 잡혔다. 익숙한 일이다. 디셈블러의 머리가 유독 긴 것도 있지만, 그 머리를 잡아당길 만한 인간군상이 흔한 환경에 있는 것도 익숙해짐에 한 몫했을 테다. 아픈 놈들의 성질이 평소보다 더러워짐은 당연한 일이요, 전투의 열기로 예민해진 것들은 만만해보이는 의료인들에게 막대하기 십상이었다. 물론 잡히는 일에 익숙하다 해서 짜증이 나지 않는 것
쓰고 싶은 부분만 썼습니다. 그다지 읽을 만한 글은 아닙니다. 앞뒤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며 딱히 무언가의 수정, 추가 가능성은 낮습니다... 디아볼릭 에스퍼에겐 못된 버릇이 있었다. 하나는 아니고, 좀 많았지만. 여하튼, 개 중에서 노바 임퍼레이터가 가장 못 견뎌 하는 것은 차에 탈 적의 것이다. 에스퍼는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 오히
아저씨, 난 아저씨가 좋아. 채 말이 되지 못한 상념은 고백이 아니다. 그건, 그저. 존재하는 상념. 딱 그정도. 제 처지와 다를 것도 없는 부유물. 존재의 가치를 증명받지 못한 것. 내쉬는 숨결에 섞여 사라질 것이다. 내일이 오면 다시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혹은 등을 맞대고 전투할 것이고, 그 과정에 내 감정같은 건 끼어들 틈조차 없다. 당신이 날 사랑
야. … 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네가 하는 지랄은 아니겠지. 그런가. 자, 더 먹어. 진짜 지랄이다… 디아볼릭 에스퍼는 도축되기 직전의 짐승처럼 내장이 비워진 채, 가슴을-물리적으로- 활짝 열고 웃었다. 이거 봐. 내 심장이, 너를 향해 뛰고 있어. 양동이 위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로 잘도 말하는 구나. 머저리. 상냥하게 대해줘. 그렇게 굴면 도망칠
그것은 언젠가부터 내 곁에 자리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나소드의 제어에서 풀려난 순간부터? 혹은 약혼자와 동료를 모조리 잃던 순간부터였을까. 아니면, 그 이전부터 내 곁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있었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영역이다. 그가, 내가 인간으로서 존재하도록 도왔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것은 때로는 목소리였고, 손길이었으
https://youtu.be/Ee6cb5YAWkE 낭만이 사라진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글쎄, 달라질 게 있나? 호흡하고, 영양분을 섭취하고, 생장하고, 성장하면서. 살겠지. 어쩌면 그쪽이 더 진화한 개체일 지도 모르고. 네 생각은 그렇구나. 그 옛날, 아직 채 도로가 전부 아스팔트로 뒤덮이지 않고, 담에는 담쟁이 넝쿨과 꼬맹이들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