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우주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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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핀 리퀘 연성 아주 오래간만에 방해받지 않은 하루였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힐이 만든 크레이프로 아침을 먹고 햇볕을 쐬며 시시한 영화를 보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외출했다. 가까워진 크리스마스를 위해 거리는 색색의 조명으로 물들어있었다. 로맨틱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와 키스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나타샤 로마노프는 다가올 뜨거운 밤
* 스핀 리퀘 연성 마리아 힐은 완벽한 사람이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고, 다정했으며, 선을 지킬 줄 알았다. 마리아 힐을 처음 마주한 나타샤 로마노프는 처음에 그 모든 게 저를 전향시키기 위한 실드의 계략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실드에 완전히 정착하고도 달라지지 않은 힐의 태도는 나타샤가 힐을 경계하기 위해 충분했다.
BGM : Yesterday - the Beatles 유달리 적막한 밤이었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동이 트기 전부터 혹사한 몸을 침대에 파묻었다. 푹신한 침구도, 완벽하게 조절된 타워의 공기도, 몸을 감싸는 힐의 후드티도 그에게 안락함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몇 시간째 눈을 감고 있던 나타샤는 밀린 일이라도 하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 스핀 리퀘 연성 힐은 애인에게 오늘도 야근으로 데이트 시간에 맞춰 퇴근하지 못한다고 전화를 건 참이었다. 뻐근한 목덜미를 주무르며 전한 미안하다는 말에 진심으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애인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전화를 끊자,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나타샤가 힐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힐은 마른침을 삼켰다. 비단 나타샤가 입은 옷 때문만은 아니었다. 몸에
* 스핀 리퀘 연성 마리아 힐은 첫눈에 반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런 건 미디어에서 만들어 낸 또 다른 사랑에 대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어쩌다 한 번 그런 일을 겪는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게 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사랑은 이미 허상의 것이었다. 그런데, 첫눈에 반한다니, 그런 사랑이 그에게 찾아올 리가 만무했
* 스핀 리퀘 연성 긴 임무였다. 블랙위도우로서도 지구를 떠나 행한 임무는 처음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무사히 돌아올 수는 있을지 같은 인간적인 걱정은 무사히 지구에 도착하자 눈 녹듯 사라졌다. 떠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먼 거리 탓에 힐이 더 그리웠던 나타샤는 퀸젯이 착륙할 즈음에는 거의 제자리에서 통통거리고 있었다. 누구도 그 블랙위도
“말했잖아요, 힐. 그냥 같이 밥 먹은 것뿐이라고.” 달라진 호칭에 힐은 내뱉으려던 항변도 잊고 입을 꽉 다물었다. 일자로 펴진 입꼬리만이 힐의 상한 기분을 나타내었다. 다른 때라면 전전긍긍했을 나타샤도 오늘만큼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는지 팔짱을 끼고 힐을 노려보았다. 무슨 말이든 해보라는 것 같은 태도에 힐은 무표정을 가장하며 나타샤를 바라만 보았다.
1. 힐타샤 푸른 눈동자와 시선이 닿을 때면 가슴속에선 항상 폭죽이 터졌다. 힐과 눈이 마주칠 때면 도파민이며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이 마구잡이로 분출될 게 분명하니 꽤 직접적인 비유였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일평생 동안 사랑은 어린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힐과 함께 있을 때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그가 어디까지 이
산드라 프랜스키가 있다면 나타샤 로마노프를 불안하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를 납치하거나 위해를 가할 필요 없이 망치기 쉽지 않은 요리 재료와 주방만 있어도 나타샤의 머릿속에서 산드라의 집은 다양한 시나리오로 난장판이 되고는 했다. 물론 모든 시나리오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예측에 가까웠으므로, 브리핑을 듣다 산드라로부터 주말에 치즈를 만들겠다는 포
나타샤에게, 안녕, 나타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처음인 것 같네. 너를 붙잡고 이야기하는 걸 그렇게 좋아했는데, 왜 편지를 쓸 생각은 못 했을까. 너라면 세상을 구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답장을 써줬을 텐데. 그러면 다시 들여다보면서 너를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이 하나라도 늘었을 테고 말이야.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야. 사
마리아 힐은 함부로 증오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말에는 힘이 있다거나,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허황된 이야기를 믿는 건 아니었지만, 힐은 그 단어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 늘 조심스러웠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나 다름없는 아버지에게도 소리 내 해본 적 없을 정도로. 그런 그가 그 단어를 끊임없이 되뇌게 된 건 나타샤 로마노프의 공이 컸다.
* 커미션 “뭐야, 언니가 여기 왜 있어?” 소파에 반쯤 누워 책을 뒤적이던 나타샤 로마노프는 큰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리자 고개를 들었다. 그는 제게 겨눠진 총구에도 놀라기는커녕 가름끈까지 끼워 책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긴장감 없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 항복한다는 제스처를 취할 즘에는 옐레나 벨로바가 뽑았던 총은 이미 홀스터로 돌아가 있었다. “왜 있긴
끊임없이 증명하려 애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명제가 단 한 번도 참인 적 없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었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단 한 번도 마리아 힐만의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 딸이자, 자매이자, 영웅. 힐은 연인이라는 수식어가 네 번째에 오기라도 한다면 다행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세간의 추측과는 다르게 나타샤 로마노프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동료로서, 친구
마리아 힐과 나타샤 로마노프의 때아닌 놀이공원 데이트는 한 번도 관람차를 타본 적이 없다는 힐의 말에서 시작되었다. 온 본부의 요원이 다 들을 수 있게 ‘관람차를 한 번도 못 타봤다고요?’라고 되물은 나타샤는 이유를 해명 아닌 해명하기 위해 입을 뗀 힐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발언권을 박탈당한 힐은 나타샤가 두 사람 몫의 표를 사고 돌
마리아 힐은 본인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건 그와 같은 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임무를 나가기 전에 유서를 쓰거나, 유언장을 갱신해두는 건 군대에서도, 실드에서도 일상에 불과했다. 전우의 죽음은 이미 그의 한 부분이었고, 그들을 추모하는 건 언제나 살아남은 자의 몫이었다. 물론, 힐은 임무를 수행하다 죽는 건 영예로운 일이라
*ㅊ님 리퀘스트 현대 쿼런틴 AU 전 세계를 휩쓴 바이러스 때문에 집 안에서만 생활한 지 한 달, 나타샤는 지루함에 말라 죽어간다는 말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었다. 처음 며칠이야 그동안 못 쓴 휴가를 즐기는 셈 치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홈 데이트를 실컷 즐기며 보냈지만, 그것도 일주일이 한계였다. 미뤄두었던 집안일도 끝마친 지 오래다 못해 집 안 구석구석
묵직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자, 어두운 실내로 빛이 쏟아졌다. 얕은 잠에서 깬 마리아 힐은 무겁게만 느껴지는 몸을 옹송그렸다. 어제밤 혹은 오늘 새벽에 치른 정사의 흔적이 가득한 침대는 쾌적함과 거리가 멀었으나, 혹사당한 몸은 휴식을 요구했다. 어차피 이곳에 올 수 있는 사람은 나타샤 로마노프뿐이었다. 그는 얌전하게 기다리는 마리아 힐을 기꺼워하면 기꺼워
나타샤 로마노프는 그가 부국장실에 쳐들어가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부국장 직속 명령체계 아래에 있는 요원으로서 불편사항을 공식적인 루트로 제기하는 건 핑계 따위가 아니었다. 적어도 나타샤는 무거운 유리문을 열기까지는 그렇게 믿고 있었고, 화가 잔뜩 난 채로 부국장실에 들어서는 순간에는 힐이 직접 끼친 피해 사실과 근거, 예상 반박에 따른 재
나타샤는 생전 그의 과거를 장부에 적힌 붉은 글씨로 비유하고는 했다. 세상에 끼친 해악을 적어둔 장부가 존재한다면 제 것은 붉은 액체로 물들어 지나가는 곳마다 피를 뚝뚝 흘려댈 것이라고. 임무가 뜻대로 끝나지 않았거나, 보드카를 마신 새벽에는 어벤저스가 된 것은 그저 그 글씨를 조금이나마 지우기 위한 발버둥이라는 폄하가 따라붙었다. 그리고 마리아는, 유능한
타샤, 아직 당신의 애칭을 불러도 되는 건지, 로마노프라고 적거나 적어도 나타샤라고 적어야 하는 건 아닐지 한참을 고민했어요. 어차피 이기적인 사람이 된 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제 마음대로 적기로 했습니다. 우선, 당신에게 쓰는 첫 편지를 이렇게 낭비해서 미안합니다. 글재주도 없는 주제에 펜을 들게 된다면 조금 더 낭만적인 이유기를 바랐는데, 지금은
* <Last Wish>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나타샤에게 안녕 나타샤. 그곳은 평안한가요? 잘 지내고 있어요? 놀랍게도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찰나의 순간에 5년이 지나버렸다는 게 아직도 잘 믿기지 않지만, 그동안 목격한 많은 일 중에는 더 말이 안 되는 일도 있었으니 곧 적응될 거로 생각해요.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당신을 영웅이라고 불러요. 당신이
마리아에게 안녕, 마리아. 당신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이 시작부터 진부한 건 미안하게 생각해. 이어질 내용이 당신을 슬프게 만들게 분명한 것도. 그게 아주 먼 미래의 일이면 좋겠지만, 어쩐지 가까운 시일 내의 일일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임무 전에 이런 생각이 좋지 않은 건 알지만, 그동안 당신이 내가 쓴 편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이번에도 그
힐은 나타샤가 처음 사랑을 고백한 날을 떠올렸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한 나타샤의 눈동자는 흐지부지한 말과 다르게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힐은 곧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고, 긁어모은 용기를 다 소진해버린 나타샤는 억지로 웃으면서 지금 대답해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스파이치고 그의 거짓말은 신빙성이 전혀 없었다. 반짝이던
불쑥 마리아 힐의 사무실을 찾은 나타샤 로마노프는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커피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힐은 마지막으로 검토 중인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영혼 없이 고맙단 말을 중얼거렸다. 나타샤는 혀를 한 번 차고 본래의 용도보다 힐의 침대로 더 자주 쓰이고 있는 게 분명한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실 여유도 없는 지금 말을 걸어보았자,
처음으로 나타샤 로마노프가 이별을 고한 건, 마리아 힐의 악몽에서였다. 털어놓은 적 없는 흠집을 꾹꾹 밟아대는 말에 상처가 났지만, 힐은 그를 더 견디지 못해 떠나기로 한 나타샤를 탓할 수 없었다. 어차피 그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걸 늦게 안 건 나타샤 로마노프의 탓이 아니었다. 먹먹하게 목이 막혀오는 체념은 이미 익숙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
세상의 절반이 사라졌어도 우주의 법칙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구의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었고, 일 년은 여전히 365일이었으며, 우주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도움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건 나타샤 로마노프가 아침에 눈을 뜨는 유일한 이유였다. 세상은 아직 영웅을 필요로 한다는 것. 나타샤는 이제 그가 영웅이라 불려도 되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고민의 끝에
“정말 죽고 싶기라도 한 겁니까?” 힐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극히 사무적인 얼굴에는 한 자락의 감정도 드러나지 않아 자칫 심드렁한 것처럼도 보였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 사람에게 너무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나타샤 로마노프는 힐을 잘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는 마리아 힐의 냉소적인 태도가 걱정에서 비롯
“이게, 무슨… .” 경악에 찬 나타샤 로마노프와는 달리 불륜현장을 발각당한 마리아 힐은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한참을 나체로 엉겨있는 그의 여동생과 애인을 바라보던 나타샤는 성큼성큼 다가와 힐의 손목을 잡아채 일으켰다. “어린애가 치기로 부추겨도 당신은 말렸어야지!”
전쟁도, 상실도 없이 오직 축복만이 가득한 연회장에 들어선 옐레나 벨로바는 잘못된 장소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지구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어벤져스도 우주의 평화나 안온 따위는 잊은 듯 보였고, 다른 때라면 가장 먼저 그의 도착을 알아차렸을 나타샤 로마노프는 연회의 주인공으로서 세상에 근심은 없다는 것처럼 내내 웃고 행복해하기 바빴다. 옐레
“I told you, Boss. I’d die for you.” “Don’t be dramatic!” 페기는 그가 덧붙인, 레드룸에서 그렇게 극적으로 구는 걸 가르치기라도 하느냐는 말에 나타샤 로마노프의 표정이 굳은 건 보지 못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건 목숨을 버리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블랙 위도우는 다중작업에
옐레나, 네가 이 편지를 보았으면 좋겠다가도 영영 보지 못했으면 좋겠어. 네가 이걸 읽고 있다는 건 내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뜻일 테니까. 나는 아직 너와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약속을 미루면서 했던 다음에 하자는 말, 늘 진심이었어. 그런데 아주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더라고. 다음이라는 건 당연히 찾아오는 게 아닌데 말이야. 특히나 우리가 하는 일에서는
“이제 그만하자. 나 더는 못 하겠어. 젠장! 너는 내 동생이라고.” 높아진 언성과 다르게 나타샤 로마노프는 화를 낼 기운도 없이 지쳐있었다. 찰나의 순간 얼굴에서 묻어난 피로감 때문이었을까. 옐레나는 난데없는 이별통보에도 나타샤에게 다시 생각해보라며 매달리거나,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되레 화를 낼 수 없었다. “그게 다야?”
* 문체 압수 해시태그 (스킨십 삽질 금지, 한자어 적게 쓰기) 옐레나 벨로바는 제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나타샤의 환상을 보지 않은 것도 벌써 10년이었다. 나타샤 로마노프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반박해온 그였지만, 먼 우주 어딘가로 사라진 나타샤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옐레나는 다시 아무것도
멜리나 보스토코프가 기억하는 졸업식은 늘 겨울이었다. 혹한으로 유명한 나라의 겨울은 늘 뼈가 시리도록 추웠지만, 그와는 달리 처음으로 졸업을 맞이하는 아이를 마주할 때 척추를 타고 흐르는 오한은 겨울이 주는 달콤한 마비와는 달랐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과 약간의 자부심은 잘 정돈된 무표정 아래 숨어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