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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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시간 좀 있어요?” 혹시 어느 시대에 살다 오셨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싶어지는,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센스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멘트에 돌아볼 ‘아가씨’가 얼마나 될는지. 누군가는 잘못 걸렸다 속 졸이며 도망갈 테고, 누군가는 별꼴이야 흘겨볼 텐데. “어머, 좀이라면 얼마나?” 자못 도도한 눈을 들어 올렸지만, 입가에
"자." 밀런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건넸다. 앞면과 뒷면을 확인해봐도 별다른 로고는 인쇄되어 있지 않다. 혹시나 깜빡해서 영수증을 빼지 않았나 찾아봐도 흔적조차 없다. 하긴, 사기를 치려고 했다면 그 정도로 어설플 리 없긴 하지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종이가방 겉면을 세 번 훑어보고, 안을 빤히 들여다본 후에야 고개를 든 메이블이 새삼스럽다는 듯한
둥글납작한 초콜릿을 녹여 다른 모양으로 다시 굳혀내는 행위를 두고 '초콜릿을 만든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마는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다. 카카오를 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게 아니냐며 유치하게 따지고 들 나이도 아니고. 어떤 모양으로 굳혀서 어떤 재료를 입히고 어떻게 포장할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면 여간 귀찮고
대기실은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서늘한 공기가 맴돌았다. 커다란 도구가방이나 의상을 개미처럼 짊어진 스타일리스트들이 분주하게 대기실을 오락가락 지나다니는 사이, 메이크업을 받는 메이블만이 영상을 멈춰둔 것처럼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무대가 코앞이니 바쁜 건 어쩔 수 없고, 딱히 도와줄 생각은 없었지만 만약 좋은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대도
“후회 안 한다며?” “누가 한대요?” 나를 뭐로 보고. 그렇게 투덜거리듯 바라보는 메이블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밀런은 ‘뺨이 퉁퉁 부었네’따위의 문장을 놀림조로 읊어대며 키득거렸다. 저 얄미운 콧대를 콱 깨물어버리면 조용해지려나. 메이블이 그가 자랑으로 여기는 높은 콧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목을 울리던 밀런이 말한
츠키노 아이카는 자신이 아이돌을 동생으로 둔 사람이라는 사실에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하루네코 고등학교에서 스쿨아이돌로 활동을 시작한 동생의 유명세로 이름을 알린 카페가 점차 단골을 늘려가며 성황을 이루는 것도 좋았다. 돈은 옳다. 그래서 아이카는 동생을 나름 '복덩이'로서 잘 대해주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츠키노 아이카는 여느 집안의 남매와 별 다를 바
은주아가 열린 문 밖으로 세찬 빗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는게 아니라 양동이째로 쏟아붓는 것처럼 매섭다. 문이 사라지자 소리가 뚝 끊겨 대장간은 다시금 고요해진다. 그가 올 것을 알고 미리 음료를 골라 빼둔 배희신은 차게 식은 병을 건넸다. "웬일로 이 시간에 온다 했더니." "비가 오니까 움직이기 귀찮더라고요. 좀 그치면 갈게요." 익숙하게 공간을 가
짙은 어둠 속 푸르스름한 조명만이 옅게 깔린 공간은 바람 한 점 불지 않아도 팔뚝에 소름이 돋을 스산함을 자아낸다. 오로지 듣는 이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일념 하에 제작된 배경음이 심장을 두드릴 듯 낮게 울렸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잔뜩 긴장해 몸을 움츠린다. 다시 뒤로 돌아가고 싶을 쯤, 용기를 내어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으면 유난히 큰 발소리가 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