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Ζ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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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삶이 지루할 때 없나? “항상 같습니다.” 항상 지루하단 뜻이군? “무료하다고 하겠습니다.” 지루한 거나 무료한 거나 거기서 거기지. 나야 스스로 버렸다지만 자넨 종족 특성이니 더 고역이겠어.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학생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군. “…….” 현재를 직시하는 건 좋은 습관이지만, 배그렉 교수. 가끔은 과거와 미래도 생각해
그가 영원 징벌방에서 나흘 만에 살아 돌아왔다. 무너져 내리는 징벌방의 벽을 뒤로하고 그는 결국 푸른 용의 탑 기숙사로 돌아왔다. 푸른 용의 탑 5학년 볼라디 배그렉 선배가 해골 교장과 일주일 동안 혈투를 벌이고 교장을 잠시 제압하는 것에 성공한 것은 에인로가드 학생이라면 다들 아는 공공연한 영웅담이다. 그 후에 교장이 고대의 대마법을 이용해 교장실 전체
오수가 볼라디 학창 시절 이한한테 말해주는 게 보고 싶어요 전투광 뱀파이어의 전학파 기초과목만 골라듣는 젊은 시절은 과연 그랑덴 시의 후원자는 종종 불시에 만나봐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하는 법이다. 그게 바로 이 황금 같은 주말에 워다나즈가 해골 교장과 외출한 이유다. 이한은 붉게 노을 져 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입학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을
-이한 워다나즈 사망, 시신 수습 실패, 볼라디 배그렉 실종. 이게 무슨 일이냐? 오수 고나달테스는 드물게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라그린데 교수와 우레걸음 교수, 번개걸음 교수까지 갔는데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제국 동부 쪽에서 마취 물약에 들어가는 약초가 많이 발견되었다. 치유학파의 물약인 만큼 라그린테 교수가 확인하기로 했고, 연금
그런 말이 있다. 뱀파이어는 두 부류로 나뉜다고. 금발이면 미친놈으로, 흑발이면 우울증으로. 틀린 말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뱀파이어라는 종족은 대부분이 미쳤으며 동시에 우울증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들의 수명은 길고 쉽게 다치지 않는다. 친구를 아무리 사귄다 한들 그 친구는 언젠가 나이 들어 죽어갈 것이다. 아무리 자극을 찾아 헤매도 갈수록 익숙해져
“워다나즈 조교, 아니, 교수님 돌아오셨대!” “헉, 진짜? 나 막힌 연구 있었는데!” “지금 교장실에 계셔.” “뭐? 누가 돌아왔다고?” “워다나즈 선배. 아니, 교수님.” 후배들은 아직도 워다나즈의 호칭을 섞어 불렀다. 어느 학파에서는 선배로, 어느 수업에서는 조교로, 워다나즈의 수업에서는 교수로 있었으니 헷갈리는 일이야 당연했다. 워다나즈로서는 서
關, 친애하는 배그렉 교수님께. 전쟁이 일어났다. 제국에서는 드문 일이다. 오수 고나달테스와 볼라디 배그렉은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 언제쯤 돌아올 수 있겠소? “내년 초여름까진 돌아올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워다나즈는. “출정 전날 강의를 마치고 기말고사 대체 시험을 보겠습니다.”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오. “따라오려고 하면 막아주
後, 볼라디 배그렉의 등시판명 “쿠.” “오, 볼라디! 눈치가 정말 없구나. 어떻게 찾았어?” “마법은 몰래 흡연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넌 너무 딱딱해.” “다른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어떤가.” “정말이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화려한 차림의 환상마법사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직 삼키지 않은 연기를 내뱉었다. 볼라디 배그렉의 얼굴
배그렉 교수님께. 잘 지내시나요, 교수님. 저는 지금 여행을 왔습니다. 교수님이 좋아하시던 찻잎이 나는 곳입니다. 여기는 햇살이 참 맑습니다. 비 오는 날이 적어 산책하기에도 좋고요. 지금은 드물게도 비가 오는 중이라 실내에서 차를 마시며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편지에 찻잎을 동봉해 보낼 테니 교수님도 드셔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차보다 커피를 선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쪽이 혼자만 아니었더라면 차라리 전쟁에 가까울 것이다. 볼라디 배그렉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즐거워한다. 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혈향이 그의 코를 간지럽힌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를 손등으로 훔쳐 핥는다. 엘프 혼혈이었나. 그가 생각한다. 그 엘프. 차림으로 보면 그리 낮은 위치는 아니었을 텐데. 영양이 부족해 밍밍한 피라. 교
이한은 기분이 좋았다. 배그렉 교수가 오랜만에 이론 위주의 강의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극악의 말재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본인의 책을 짚어가며 설명하는 식이라 알아듣기 어렵지도 않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지금 강의를 위해 꺼낸 책이 단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배그렉 교수가 손으로 집필한 단 하나뿐인 교재. 덕분에 이한과 배그렉 교수는 책
이한 워다나즈. 제국 역사상 최악의 마법 범죄자. 지혜를 원한다는 이유로 눈을 버린 미치광이. 네놈의 마법에 휘말려 죽어간 제국민들이 얼마인지 알고 있으며, 네놈이 제국에 입힌 피해가 얼마인지 알고 있느냐! 워다나즈가 코웃음 쳤다. 검은 안대 위에 수놓아진 금빛 마법진이 오른눈을 대신하여 번쩍 빛났다. 미미르의 샘이여, 그대 역시 어리석군. 이깟 눈 하
“저녁 시간인데 이한은?” “아까 배그렉 업고 방으로 가던데?” “뭐?” “왜?” “설마 둘이 전투하다 배그렉이 죽은 거야?” “의외군. 전투에 있어서는 배그렉이 한 수 위 아니었어?” “…….” “그 자식, 요즘 혈마법 연구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마력 폭주 탓에 죽은 게 아닐까.”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한과 볼라디는 이한의 방에 얌전히
“환상 마법은 쓰레기다.” 강의실에서 나오던 볼라디가 불쑥 말을 꺼냈다. 또 시작이군. 쿠는 고개를 저었고, 이한은 볼라디의 옆구리를 쳤다. “왜 그러지?” “네가 강의 시작 후 몇 시간 만에 그 말을 하는지 내기했거든. 내가 졌어.” “쿠, 헛소리 마라. 볼라디 너도 말을 좀 가려서 하는 게 어떤가.” “왜지?” “그야 교수님의 분야를 무시하다니, 시
탈덕하면 연성을 내리는 습관이 있어 글 밑에 소장용 결제창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결제창 아래에는 마침표 하나가 찍혀 있습니다.
고통이란 무엇인가. 상처를 입으면 왜 고통을 느끼는가. 질병에 걸리면 왜 고통을 느끼는가. 어째서 고통을 느끼는 것인가. 상처를 입은 사람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아 상처가 악화되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병에 걸린 사람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아 병이 악화되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고통이란
쿵! 아르토가 크게 뛰어올랐다 추락한다. 쿵! 아르토가 다시 크게 뛰어올랐다 추락한다. 쿵! 바닥에 금이 간다. 쿵! 쩌적 갈라지기 시작한다. 쿵! 세상을 이루는 표면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린다. 추락한다! 모든 세계가 뒤틀린다. 박사는 일어난다. 바닥에 혹은 천장에 놓인 침대에서. 아니, 원래 벽면에 붙어있어야 했던가? 아침의 일과를 성실히 수행한 후
조명이 밝아진다. 아르토를 샅샅이 비추는 태양처럼. 아르토, 허공을 향해 손짓한다. 마치 자신의 극장에선 태양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무대가 어두워진다. 아르토가 암전에 숨어버린 것처럼. 태양을 잃은 해바라기가 힘을 잃는다. 고개가 땅으로 툭 떨어진다. 고흐의 해바라기 역시 빛을 잃고 시들어 간다. 아르토, 망설인다. 아르토, 망설인다... 아르토, 망
‘치료될 수 있을까?’ 박사가 스물세 번째로 전류를 흘려보내며 한 생각이다. 처음에는 눈에 보일 만큼 상태가 호전된 것이 보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아르토의 증세는 악화되어만 갔고 전류를 흘려보내도 더는 완화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아르토는 발작을 하고 있다. 전류가 아르토의 팔과 다리를 공중으로 솟구치게 만든다. 환상을
아르토는 연극의 본질을 찾고 싶다. 아르토의 손이 연극을 둘러싼 막을 뚫고 복부로 침범한다. 둥그런 구체의 본질을 꺼낸다. 아르토의 손이 본질의 내부로 다시 침범한다. 또다시 둥그런 구체의 본질을 꺼낸다. 본질의 본질을, 본질의 본질을 끄집어낸다. 더는 손을 넣지 못할 만큼 작아진 본질을 눈높이에서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건 어디에서 왔을까? 이건 무엇일까
그의 용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아르토를 치료하려면 고흐를 알아야 한다. 그는 고흐의 죽음을 용기라고 불렀다. 촛불에 손을 그을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귀를 자른 것을 세상에서의 탈피로 읽었으며 총으로 복부를 관통한 것을 용기라고 칭송했다. 어째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고흐를 동경하는 건가? 그러나 고흐를 동경한다기에는……. 앙토냉 아르토는 종
유채색의 화실. 또는 검은색의 극장. 고흐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린다. 아르토는 이곳에서 고흐를 만난다. 박사, 등장. 고흐. 당신은 정상적인 자연을 그려야 합니다. 아르토. 여긴 극장이 아닙니다. 당신도 배우가 아니고요. 박사님. 전 언제나 자연 그대로를 그리고 있어요. 박사님. 당신도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인정하세요. 고흐. 정신착란 증세가 악화
까아악 까악깍까악 까악깍깍깍 까아아악까악 까악까아악깍 까아악까아악깍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아르토! 철퍽 탁 스윽스윽 진정해요! 쾅 끼이익 탕탕 우당탕 가만히, 좀, 앉아봐요, 아르토! 아하하하! 아르토 제발! ... 그래요, 침착하게……. 스흡 하 하하! 아르토! 점심즈음에 하는 상담은 언제나 정신이 없다. 아르토의 광기가 하루 중 가장 치솟아 있을 때이며 육체가 가장 활성화되어 있을 시간이기도 하기에 그렇다. 다
앙토냉 아르토의 몸뚱이는 아주 앙상해 볼품이 없었다. 최소한의 근육과 살 위를 피부가 겨우 덮은 그 모습은 금방이라도 부러질듯해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으니. 그럼에도 그는 세상의 모든 것과 끊임없이 투쟁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온몸을 부딪쳤다. 마치 그의 뼈가 부러져도 상관없다는 듯이, 몸이 부서질 염려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아르토가 고흐에 대한 에세이를 발표한 지 사 년이 흘렀다. 그 말은 곧 아르토가 죽은 지 삼 년이 흘렀다는 뜻이다. 박사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그들을 이해해서 다시 만나 대화하고 싶었다. 아르토가 고흐를 만나 대화했듯, 자신도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을 돌렸다. 돌리고 또 돌렸다.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아르토
중력! 너희들은 중력이다! 우리가 날아오르지 못하도록 헐뜯고, 물어뜯고, 으르렁거리는 존재들! 박사는 그들을, 아르토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일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므로 그 부분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관습과 제도. 그 둘은 문명을 이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아니던가. 그걸 어째서 중력으
고흐의 자연은 단순한 초록색이 아니다. 그의 자연에는 옅은 연두색부터 진한 녹빛까지 온갖 초록색이 들어있으며, 붉은색과 노란색, 검은색, 파란색, 흰색, 보라색, 수천 수억 가지의 색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고흐의 붉은 자연을 보고 미쳤다고 말한다. 아르토는 고흐를 통해 자연을 다시 본다. 아르토의 자연은 잔혹하다. 포도주 대신 피로 적셔진 붉은
“박사님 의사 맞아요?” “무슨 뜻이죠.” 박사는 코끝에 걸쳐진 안경을 고쳐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환자들이라면 으레 그렇지만 이 환자는 정도가 더욱 심하다. 난데없이 가면의 의미를 묻질 않나, 물감이 망치라고 표현하질 않나. 이번에는 뭐, 의사가? “가운 입은 걸 못 봐서요.” “왜요. 보고 싶은가요? 당신은 의사 가운
“병을 치유하는 것은 범죄이다. 그것은 삶의 존재를 억압하는 것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병자이다.” - Artaud 앙토냉 아르토. 로데즈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 위험도가 가장 높고 까다로운 환자. 종종 원인불명의 액팅 아웃을 일으키며 발작과 실신의 빈도도 잦다. 하여 이 환자의 주치의는 Dr.L. 로데즈의 병원장이다. 1) 아르토의 대본 혹은 박사L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