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옅은, 모래사장 같은 색의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채 마치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않고 누워 있었기에, 지나가던 팔라딘은 걱정이 되어 그를 흔들었다. “저기, 저기요. 괜찮으십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그러나 남자는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그저 물풀마냥 이리저리 흔들렸다. 팔라딘은 그의 코 밑에, 잘 관리되어 반들반들해진 제 건틀릿을 들이밀었다. 옅은 숨으
*유혈, 고어 당신은 바닥에 떨어진 피를 일부러 밟으면서 천천히 걷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당신의 발을 따라 뒤로 긴긴 붉은 길이 이어질 것만 같지만, 사실 이 복도는 이미 발자국 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피들이 그득하다. 맨들맨들 하게 잘 관리된 대리석 위로 피가 고이지 못하고 흘러내린다. 내부에서 오직 이 혈흔만이 이질적이다. 여긴 고성이
!주의!: 고어한 장면이 많이 나오니 감상에 유의해 주십시오. 리우진 글 커미션Y님께 드림공백 포함 6,209자[2024.08.28.수] 료헤이가 더는 태양 아래 서지 못하게 된 지도 꽤 됐다. 하지만 그 사실이 그를 침울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태양의 수호자라는 이름 아래에서 그는 이제 태양이 자취를 감췄을 때 사냥했다. 그날 밤은 하늘이 맑고 하현달
후두둑. 풀숲 위로 선혈이 낭자하다. 그 가운데 선 검고 흰 것은 제 손을 더럽힌 붉은 것을 검은 혀를 내어 천천히 핥아올렸다. 비릿하구나. 가난한 이의 맛이 나. 그럼에도 생과 사는 이리도 선명하여서. 듣기 좋은 낮은 음색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는 파드득 경련하며 죽어가는 것을 무감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 때엔가 뱀이다! 라며 장난스레 외쳐
불행이 길었다. 무너지는 바닥에 남자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그는 귓가로 쏟아지는 비명에 신음하였다. 평범하고 긴 불행. 남자는 제 삶을 그리 평가하였다. 부친과 모친의 죽음, 한 차례의 전쟁. 그리고 한 번의 복수와 한 번의 자해. 겹쳐놓으니 드물게도 거대한 불행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불행의 특수성에 신음하지 않았다. 그를 무너뜨린 것은 한 번의 특수성
야. … 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네가 하는 지랄은 아니겠지. 그런가. 자, 더 먹어. 진짜 지랄이다… 디아볼릭 에스퍼는 도축되기 직전의 짐승처럼 내장이 비워진 채, 가슴을-물리적으로- 활짝 열고 웃었다. 이거 봐. 내 심장이, 너를 향해 뛰고 있어. 양동이 위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로 잘도 말하는 구나. 머저리. 상냥하게 대해줘. 그렇게 굴면 도망칠
“기스양키는 여왕이 지정한 개체만 재생산을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 바알스폰은 어떤 종족과도 번식할 수 있고 말이야. 그러면, 바알스폰과 기스양키 사이에서는 아이가 태어날 수 있나?” “무슨 질문이 그래?” 창백한 여자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는 ‘충동’이 제기한 생물학적 난제에 전혀 흥미가 없어 보였다. “나는 육종 전문가야. 유용한 생명체를 발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