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리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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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그 녀석을 보러 가는 게 아니니까! KC에서 배포하는 핼러윈 토큰이 갖고 싶을 뿐이니까, 그런 변명으로 오랜만에 발을 디딘 도미노쵸였다. 분장을 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익숙한 금발을 한눈에 알아채고, 쿠자쿠 마이는 화장이 번지진 않았는지 머리카락은 제대로 컬이 말려 있는지 허둥지둥 거울을 보았다. 첫 마디로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오
· 현재를 단언하지 마세요. 현재의 어떤 행동도 그 어떤 선택도 미래를 바꾸지 못합니다. · 오벨리스크의 거신병을 카이바 세토에게 전달하세요. 구울즈를 끌어내기 위한 가장 좋은 미끼가 될 것입니다. 실물 카드를 보여주기만 해도 배틀 시티는 개최되지만, 건네주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카드를 건네줄 때는 반드시 도미노 미술관에서 전해주세요. 석판
남자는 정말 최악의 존재다. 좋아했던 걸 쪽팔리게 하는 놈은 죽어야 한다. 덕질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트위터 3대 재난 문자 중 하나다. 이 트윗이 타임라인에 흘러 들어오면 ‘오늘도 누군가의 최애가 떠내려가는구나’라며 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그때는 몰랐다. 내 최애가 그 죽어야 하는 놈이 될 줄은. 세상에는 아직 안 터진 장르와 이미 터진 장
돈이 필요해요, 라는 말은 제로의 입버릇이나 마찬가지였다. 손톱을 찔러넣어 찢으면 피가 아니라 과즙이 흘러나올 예쁜 입술이 내뱉는 말치고는 지나치게 속물적이었으나, 제로는 설령 얼굴이 아깝다는 평을 듣는 한이 있어도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애초에 제로는 현대 사회 속 편견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외모지상주의에 휩쓸리지 않는 도덕적인 사람이
겨울에는 공기에서 겨울 특유의 향기가 났다. 반짝반짝 얼어붙은 공기가 차갑게 목 안을 훑고 내려가 폐에서 냉기를 활짝 펴면, 커다란 박하사탕을 힘차게 깨문 것처럼 입안을 가득 채우는 싸한 향기가 났다. 선배는 그것이 겨울의 향기라고 말했다. 네 개의 계절에서는 각각의 향기가 난다고, 그렇게 말하며 선배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사레가 들렸는지 켁켁거리며
히로유키는 아카기의 상처를 사랑한다. 그렇게 말하면 히로유키는 그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상처를 좋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사람을 변태로 몰아가지 마세요.”라며 시퍼런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러나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했든, 히로유키는 아카기의 상처를 사랑했다. 피부 위에 찍힌 점, 색이 죽은 흉터, 툭 튀어나온 손가락 마디. 단정하지 못해 결함
「이츠키이-!」 귀신 들린 마냥 풍경이 앞뒤로 마구 흔들리며 열렬한 소리를 냈다. 평소의 듣기 좋은 낭랑한 청음은 어디로 갔는지, 땡땡땡땡, 콕콕 쪼이는 고막보다도 풍경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폭음이었다. 아시야는 입을 꾹 다물고 아베노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베노도 답지 않게 기가 눌린 채 족자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으로 가리려고 했으나 덮어지지
나미는 무엇이든 잘 먹는다. 현대인이라면 하나쯤 갖고 있다는 알레르기에서도 용케 자유로웠고 편식은커녕 없어서 못 먹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한 성격 탓에 어린애 입맛, 요컨대 채소를 싫어하고 과자 종류를 좋아하리라 착각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오이는 물론 당근이나 풋고추를 쌈장에 푹 찍어 우적우적 씹어 먹는 것이 나미의 여름철 더위 나기 방법이었다. 이런
“내일 유성군을 볼 수 있대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툭 던진 말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불쾌함 가득한 저음에 “관심 없어”라고 일축되었을 한 마디. 아시야조차 인터넷 창 귀퉁이에 박혀 있던 뉴스를 읊었을 뿐, 이대로 깜빡 잊었다가 모레나 되어서야 사가에게 “어제 유성군 봤어?”라는 안부 인사에 떠올렸을 말.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다. 가족애, 친애, 우애, 성애 등. 누군가를 소중하고 생각하는 마음은 같지만, 애초에 이 감정들은 모두 성질이 다르다. 귤과 탱자가 다른 종인 것처럼 사랑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을 사랑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해버리는 것은 인류 최대의 태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터다. 정의되지 못한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 분류된
톡, 톡, 빗방울이 하나둘 창문에 흔적을 남기며 주르륵 미끄러졌다. 수업이 끝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창밖은 먹구름에 뒤덮여 벌써 밤이 온 것 같았다. 아오이는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기에 젖어 일렁거리는 교실 안에는 아오이 혼자였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는 탓에 하릴없이 교실을 지키고 있었으나 그것도 벌써
더위라는 여름의 잔재를 멀리 내쫓으려는 듯 서늘한 바람이 옷깃에 매달리며 소매 속으로 파고들었다. 소년은 그 냉기가 피부에 들러붙은 기분이 싫어 가볍게 팔을 젓는 것만으로 소맷부리에 달라붙은 가을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체감상으로는 조금만 움직여도 열기가 훅 올라오는 늦여름. 하지만 어느새 사계는 가을 1악장에 맞추어 활을 얹고 있었다. 한층 더 높이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은 소사라고 한다. 그 말이 왜 인제 와서 기억나는 것일까? 까마득한 옛날, 사춘기 시절에 읽었던 책에나 나올 법한 정보인데. 그때의 히카루는 변성기가 온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말수가 적었고, 존재 자체를 이유로 사람을 싫어했고, 야생동물을 흉내 내며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부끄러움에 못 이겨 얼굴이
무토 유우기의 생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천장의 얼룩을 다 세도 아직 자정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방 한구석에 둔 전자시계는 정오와 자정에 ‘삐빗’하는 소리를 내며 제 존재를 알리곤 했는데, 침대에 누울 즈음에야 생각이 났다. 정오는 물론 자정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진 탓에 한동안 잊고 있었다. 카이바 말로는 단 1초의 오
고요한 밤이었다. 거룩하지는 않은, 어떠한 기념도 아닌 날에서 어떠한 기념도 아닌 날로 넘어가는 어느 날 밤이었다. 유우기는 눈을 떴다. 맞닿은 눈꺼풀이 뭉근했으나 아침이 오고 창문을 열듯이 눈을 뜨자 시린 밤공기가 눈으로 들이쳤다.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두 손이 서로의 맥박을 재고 있었다. 유우기의 손목은 실체를 갖고 있었고, 파자마 밖으로 삐져나온
‘드디어 집에 왔어….’ 안도와 불안이 섞인 숨이 밤공기에 섞여 사라졌다.점점 커지는 고동은 곧 만날 하나뿐인 소중한 자매에 대한 기대인지, 혹은 이제 마주해야만 하는 이기심의 전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샛별은 잠시 숨을 고르고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영웅이 되었을 때 닻별이 선물로 준 회중시계였다. 장미 무늬가 새겨진 은빛 표면은 반들반들한 재질에 더
내 마음 너만이 아네. 가장자리가 연하게 부서지면서도 여전히 선명한 초여름의 햇살처럼, 이 부드럽고도 단호한 문장은 샛별과 닻별 쌍둥이의 탄생화인 연분홍 장미의 꽃말이다. 면사포 같은 포장지 안 한가득 퍼지는 싱그러움에 닻별은 얼굴을 살짝 파묻었다. 온화한 색깔만큼이나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닻별은 향기와 함께 묻어 나오는 향수를 깊이 들이
내 마음 너만이 아네, 라고 그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주인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목차부터 결말까지 정해진 순서를 무시한 채 장을 넘나는 것이 마음인데. 달은 15일이면 기울고 꽃은 10일이면 시든다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유형의 존재보다도 시간의 흐름이 빠른 탓에 기울기도 전에 만월을 띄우고 시들기도 전에 꽃 목을 베어버릴 터인데. 그러나 이 세
❄ 추운 거랑 더운 거 중에는 역시 추운 게 나아. 아이오나는 종종 그렇게 말했지만, 그 아이가 추위를 타는 일은 없었다. 루비나트가 털옷을 껴입고 불까지 피우고 있음에도, 아이오나는 반바지를 입은 채 눈 위를 걸어 다녔다. 그런 차림새로 잘도 돌아다니는구나. 루비나트가 비아냥을 섞어 말하면 아이오나는 저의를 눈치채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촤아아, 파도 밀려오는 소리가 꼭 아스팔트를 내달리는 타이어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나 이곳엔 코끝을 새까맣게 물들이는 익숙한 매연도, 굳이 피하지 않은 채 어깨를 부딪치며 걷는 인파도 없다. 겐타로는 손으로 눌러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모자 아래 짓눌렸던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나부꼈다. 뺨을 때리는 결이 무딘 가윗날처럼 따갑고 가려웠다. 겐타로는
높이 치켜든 검이 섬광과 같이 적을 꿰뚫고는 그대로 살갗을 갈라 베어버린다. 꽃잎처럼 흩어지는 핏방울이 더러운 것인 양 히어로는 갑주를 찬 팔을 들어 피가 튀는 것을 막았다. 거기까지 채 1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여 춤을 추는 듯 우아한 동작이었다. 윈드스토커는 그 모습을 쳐다보며 휘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여전히 무시무시하네.’ 비웃음 섞인
밤새 별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이 흐리더니 동이 트기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슬거리며 잘게 흩어진 빗방울은 아르젠타와 제레인트가 움직일 때마다 팔이며 다리에 들러붙었다. 딱히 비를 피할 이유는 없었지만, 피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겨우 몇 시간 쉬어간다 해도 케이어스의 조각들이 크게 잘못되거나 날뛸 리는 없었다. 비가 오니 잠시 쉬어간
단 한 순간의 맹점이었다. 샬롯의 손끝에서 퍼져나간 오로라 색깔 빛이 기사들 앞에 커튼처럼 드리워졌다. 빛으로 된 장막이 나풀거리며 펼쳐지는 모습은 한낮의 햇볕을 가득 쬐며 날리는 하얀 빨래, 혹은 꽃을 물고 날갯짓하는 흰 비둘기처럼 평화의 실체처럼 보였다. 프라우 레망은 제 앞에 굳어가는 보호막을 보고, 여기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은 G 선상의 아리아
사람은 어째서 자신 이외의 타인이 될 수 없을까? 사람은 어째서 타인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어떠한 이유로 개인은 각자 타고나는 재능이 다를까? 왜 감정은 단 하나의 요소로 이루어지지 않고 복합적으로 작용할까? 수많은 물음표가 그려졌으나 후쿠베는 한숨 한 번으로 모두 날려버렸다. 겨울 향을 덧입힌 씁쓸한 한숨. 질문이 있어도 대답은 없다. 데이터베이
차박차박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린아이의 흥겨운 콧소리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땅을 박차는, 익숙한 소리였다. 그 뒤로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따라붙었으나 경쾌한 행진곡의 주인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문 앞에 섰다. 문틈, 이마를 바닥에 찧지 않는다면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을 만큼 가느다란 그 틈으로 비릿한 냄새가 흘러들어오는 것만 같아 쟈쿠라이는
XX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방 같은 것은 창작물에나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형편 좋은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지, 본인 몰래 방으로 옮기는 게 가능한지는 둘째치더라도, 애초에 납치는 엄연한 범죄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유우기는 ‘나올 수 없는 방’이라는 설정을 현실과 동떨어진 ‘드립’으로만 수용해왔다. 유튜브나 트위터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체인이 너
전부 꿈이었구나.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생각이었다. 동시에 눈꼬리에 겨우 매달려 있던 눈물이 옆으로 흘러내렸다. 꿈에서 우는 동안 실제로도 울었던 모양이다. 유우기는 축축한 관자놀이며 눈가를 소매로 대강 닦아냈다. “무슨 일이야, 파트너?” 몸을 일으키자, 벽장에 기대어 있는 또 다른 유우기가 보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말을 덧붙였다. “자는
“모쿠바가 너에게 이것을 받았다고 했다.” 카이바 세토가 내민 것은 장난감 로봇이었다. 세계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장이라면 장난감 한두 개 정도는 갖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카이바의 손에 쥔 것은 달랐다. 싸구려 플라스틱이 반쯤 녹은 데다 흙먼지를 뒤집어써 색이 바랜, 조잡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결벽적일 만큼 새하얀 코트나 티끌
두 사람이 소파에 앉아 있을 때 유우기는 곧잘 카이바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원체 군살이 없는 데다 근육까지 탄탄하게 붙어 있어 썩 감촉이 좋진 않았다. 그렇게 투덜거리면 카이바는 “베개라면 침실에 있다”고 대꾸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유우기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주었다. 때로는 그의 커다란 손등을 유우기의 뺨에 가만히 대고 있기도 했다. 유우기
네 마지막 작별 인사는 생각보다 더욱 가증스러웠다. “분명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라고 네가 말했었지. 카이바 세토는 그렇게 회상했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최상층 레스토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유난히 느렸다. 통유리로 된 벽 너머 보이는 북극성은 그날따라 하얗게 빛났다. 유리에 비친 유우기는 약간은 들뜬
"사랑해, 라고 말하면 만족할 거야?" 유우기는 애써 웃으며 물었다. 문장의 형태는 의문이었으나, 약간 처지는 말꼬리와 평소보다 더욱 부드럽고 단 말투를 들으면, 상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애교임을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카이바는 팔짱을 낀 채 완고한 태도로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동생 같았다면 따듯한 홍차 속 금방 녹
요코님의 트윗의 3차창작입니다: https://x.com/bangmaware/status/1580595407536934912?s=20 눈동자는 마음의 창窓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대체 이 창 너머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카이바 세토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름이 돋는 것과 비슷한, 사고보다는 반사의 영역에 가까웠다. 자신이 온전한 주체로서
파티가 끝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샹들리에는 무지개색으로 빛을 흩뿌리며 텅 빈 파티 회장을 비추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창문으로는 달빛 한 줄기 들이치고 있지 않건만, 이곳만은 완연한 낮처럼 환했다. 그러나 고작 인공적인 빛으로 흉내만 냈을 뿐인 양지에는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 싸늘하게 식은 공기와 적막함만이 남아 있었다. 모
누구에게 기도하는 거야? 유우기의 물음에 카이바는 지그시 눈을 떴다. 밤이 걷히고 새파란 아침이 쏟아지는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아주 느릿한 움직임이었다. 그 행위로 나타난 것 역시 새파랬지만, 여명의 어렴풋한 온기를 품은 파랑과는 달랐다. 카이바는 시선만 움직여 유우기를 바라보았다. 햇볕에 타 거칠어진 피부와 조금은 다부진 표정의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