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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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가 파해갈 무렵 오스카 울스워터는 거의 모든 것에 진력이 나 있었다. 예의를 모르고 옷자락을 스쳐 지나가는 여러 얼굴 없는 손, 걸핏하면 발끝을 밟는 데뷔탕트들의 구둣발과 먹잇감을 찾아 눈을 굴리는 늙은이들… 무대 위에서 악사들이 오토마타처럼 반복해 연주하는 수십 가지의 무곡이 그 모든 광경에 무료함을 한층 더해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재미를 보지 못
전쟁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시대였다. 공장지대에서는 매캐한 스모그가 끊임없이 솟아났다. 노동자들은 똑같은 옷을 입고 거리를 꽉 채워 걸어 다녔다. 씻지 않은 아이들이 때를 묻히고 시궁쥐처럼 골목을 지배하고 있었다. 끼니를 챙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신이 없는 시대였다. 일요일에 교회의 종이 울리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이 기차역
그 남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호자를 대동하고 왔다. 뒷짐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수갑이라도 차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는 자유로운 상태였다. 이름은 요나스 아이흐만입니다. 독일에서는 줄리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겠군요.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옷깃에는 그가 미군 소속임을 알리는 배지가 붙어있었다. 문서에는 폴란드인이라고 적혀
가까이 오거라. 연병장에 몸소 선 조조는 하반신 의체를 갈아 끼운 모습이었다.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근 며칠 고생했다고 들었다. 말도 마세요. 세상이 빙빙 돌더라고요. 다들 대단도 하지, 이렇게 넓은 세상을 보면서 살아왔다니. 좋은 몸을 얻기 위해선 그만한 고난이 수반되는 법. 평범한 눈과는 다르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양팔을 쭉 뻗어 기
제 비위를 맞추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오스카는 기대 이하의 것에 미미한 짜증을 느꼈다. 열렬히 타오르는 감정은 금세 재가 되어 사라지건만 정작 얕은 불은 바람이 불어도 쉬이 꺼지지 않았다. 억누르기엔 미미하고 내버려 두기엔 속이 쓰리다. * ‘윌리엄이었나?’ 세간의 소문이란 소문은 전부 귀에 흘러 들어왔으나 오스카는 왜인지
클라디아스는 영광을 가리킨다. 윌리엄은 정복한 이의 이름이다. 한때 클라디아스는 그가 정복한 것에 제가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홀로 남은 영광은 무엇을 섬겨야하는가? * 어떤 것은 남겨두는 것이 맞다.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다. 클라디아스는 그 순간이 꼭 장면에 담긴 것 처럼 끊겼다고 생각했다. 말을 듣는 순간 클라디아스는 실수했던가, 하고 말았
언제까지 그렇게 누워 있을 겁니까? 식어빠진 차 향기가 났다. 호봉은 무거운 눈꺼풀을 슬쩍 들었다. 침상 앞 협탁에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 그제야 누군가 다가와 마시라며 차를 따라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게 아침이었던가. 노란 빛이 비스듬히 들이치는 걸 보아하니 아마 늦은 오후인 것 같았다. 식은땀에 젖은 몸이 무거웠다. 문을 열어젖힌 조비는 한
그날은 유난히 하늘이 흐렸고… 좀처럼 잠이 깨지 않는 불길한 날이었다. 낙양에서 밀려난 조조와 그의 군사들은 하염없이 북으로 유배당했다. 기실 유비가 유배형을 내리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갈 곳은 북방밖에 없었다. 추후에 좋은 전초지가 되어주리라고 생각했던 장성은 이제 등 뒤의 강이 되어 검게 넘실거리고 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우리는 죽음을
둥글게 말라붙은 소인들의 손. 서로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서로를 갈망하며 엉겨 붙은, 거죽이 벗겨진 붉은 손. 그 조그마한 손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나는 인간이 아니라 더 거대한 존재가 된 것 같다. 그들이 입을 모아 나를 부른다. 패를 뽑는 나의 손에 깃들고 싶다고 말한다. 천의의 손 같은 건 하등 관심이 없으므로 나는 그것을 바라볼 뿐 달리 응답하지
詩 歌 故 사연이 담긴 시와 노래… 줄여서 시 가 고 어디 출신? 청주 시골 부모님은? 나도 몰라 죽었는가? 그랬겠지… 허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기주로 떠났지… * 나 씨와 호봉은 술병과 잔을 사이에 둔 채 대면하여 앉아 있었다. 조금 전 낮 시장가를 돌아다닐 때에 슬그머니 접근한 나 씨가 동탁을 죽인 이야기를 해달라며 어찌나 귀찮게 굴던지 자기도
이기지 못한 사람은 어디로 갈 수 있습니까. 이기지 못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그의 면전에 돌려줄 대답이 없었다. 이 세상에 못 갈 곳은 어디도 없는 것 같아서. * 잠깐만, 기다려봐. 여관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호봉은 돌연 조비의 손목을 잡아챘다. 조비는 영문을 모르면서도 순순히 끌려 걸어왔다. 다만 기분만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그것을 무
사우나… 생각해 보니 가본 적이 없다. 뜨거워서 시원하다, 등을 지진다, 뭐 이런 이상한 표현들은 살아서 공감을 해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더위를 못 견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야 위의 기계가 고작 한증막 사우나에 맥을 못 추게 된다면 누군가 조조를 자는 사이에 한증막 사우나로 옮겨놨겠지. 하지만 솔직히 찬물 샤워
백신 개발이 박차를 가하고 안전지대가 확장되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숨 트일 곳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좀비는 더 이상 괴물이 아닌 보호 감찰의 대상으로 여겨졌고 사살보다 포획이 우선되었다. 일상적인 소음 같던 총성은 차츰 드물어졌다. 사람들은 좀비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이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걸 뒤늦게 상기해 냈는지 선전 방송이 나올 때마다 눈물을 훔쳤다
오후에는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경주가 있었다. 해가 하늘의 꼭대기에서 조금 기울었을 때 영지의 초입에 설치된 관중석에는 양산을 쓴 사람들이 가득했다. 관중석에는 앉지 못했지만 경주로를 따라 서 있는 평민들도 제법 있었다. 땅을 울리는 산발적인 말발굽 소리, 땅이 머금고 있는 열기와 그 위로 피어오르는 흙먼지 구름은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가슴 뛰게
허스트와 테베가 방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너나할 것 없이 심히 지친 상태였다. 비와 바닷바람에 흠뻑 젖은 몸은 쿡쿡 쑤셔왔고, 치렁치렁한 치맛자락은 걸을 때마다 다리 사이로 감겨들어 걸음을 유난히 무겁게 했다. 진심으로 무도회를 즐길 생각은 없었지만 막연하게나마 이 날이 나름 평화롭게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던가, 일련의 추격을 거치고 나니 고작 몇 시간
기차역에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남자아이 하나가 나와 있었다. 요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장 차림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에 몸에 맞지 않는 정장을 입고 있는 그 아이는 인파 사이에서 꼭 리암만큼이나 튀어 보였다. 그 남자애는 눈이 마주치자 자세를 바로 하고 리암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리암은 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그대로 지나쳐 기
오스카는 문득 잠에서 깨었다. 아마 익숙하지 않은 침구와 향기, 또 물기 어린 공기 따위가 그를 잠에서부터 이끌어낸 듯 싶었다. 외마디 숨을 내뱉으며 주위에 귀를 기울이면 차츰 빗줄기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위로 포근히 덮이는 차분한 숨소리. 어제는 날이 좋았다. 근 며칠 해밍턴의 관저에 머물고 있었는데 여가를 즐기기 위
한낮의 도시는 활기차다. 온화한 색의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화단에는 잎이 긴 꽃이 몇 촉이 심겨 있으며, 길거리에 나앉아 구걸하는 거지들 사이를 주민들이 산만하게 걸어 다닌다. 항구 도시기 때문에 종종 산 물고기와 죽은 생선의 비린내, 소금기 같은 것들이 바람을 타고 몰려온다. 다리를 지나 도시의 중심부로 가면 광장이 있는데 그곳엔
비키니 시티는 정말 살기 좋은가? : 미지의 세계, 해양 글을 어느 정도 써야 삼천 자가 되는 걸까? 살면서 제 손으로 긴 글을 쓸 일이 몇 없었던 페르디난드는 적다 보면 삼천 자가 되겠거니 하는 순진무구한 생각을 하며 손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한국대학교 해양학과 20****** 페르디난드… 해양의 이해 기말 보고서. 제목은 뭐로 하지? 감수성이 풍
고요한 가운데 비상등이 깜빡이는 소리만이 초침 소리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주정차 금지 구역에 차를 대고 있었기 때문에 이선일은 조금 초조했다. 데리러 온다고 했으니 적어도 건물 앞에는 나와서 서 있을 줄 알았더니 천락은 5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핸드폰을 슬쩍 뒤집어보면 시각은 오후 5시 37분. 분명 5시 반까지는 도로변에 나와서 서 있기로 했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마치 형제가 죽었던 그날처럼. 시한부 환자가 으레 그러하듯 라이오넬은 날이 갈수록 히스테릭해지고 있었다. 죽음으로 향하는 횡단 열차 속에서도 존엄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존심과 본능적 공포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창밖은 잿빛이었고 동행인 역시 그랬다. 때때로 마주치는 페르디트의 시선엔 감정이 없었다. 시
한 박자 늦게 깊은 잠에서부터 의식이 끌려 나오는 것을 느끼며 이선일은 눈을 떴다. 새벽보다도 한밤중에 가까운 방 안에서는 완전한 어둠과 인영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 아직 초점이 맞지 않는 시야로 간신히 알아본 뒷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당연한 이의 것이다. 견천락은 먼저 깨어 창문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선일은 그와 자신이 동시에 같은 이유로 잠을
표도르는 나쁘지 않은 동거인이지만 가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소리를 지를 때가 있었다.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거나 부수다가 부술 게 없어지면 대뜸 벽에 자기 머리를 박았다. 그는 본성이라느니 악질이라느니 온갖 공격적인 단어로 그것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그건 단순한 발작에 불과했다. 아주 가벼운 전조증상조차 실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표도르
오스카는 느슨한 시선을 들어 올린다. 낮은 조도와 가라앉은 숨소리로도 가려지지 않는 열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다. 힘들어 보이기에 숨을 트이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한 듯하다. 판단력이 흐려진 건 아무래도 부정할 수 없는 알코올의 탓이다. 술을 이렇게까지 마신 건 오랜만이다. 원래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늘 지나치지 않을 만큼만
그럴 수도 있다는 말과 확실히 그렇게 된다는 말은 무게부터 다르다. 예를 들어서 세상이 망할 수도 있다고 하면 대부분은 정신 나간 소리인 줄 알지만, 어떻게 망한다고까지 말해주면 꼭 믿는 사람이 있으니까. 정신을 차려 보니 온갖 사이트에서부터 뉴스에서까지 세상의 멸망에 대해 태평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의 이름이 붙어있는 종말론이 아닌 정해진 미래였
프린스턴이 태어났을 때를 기억한다. 리암이 태어났을 때 에이든은 겨우 두 살이었기 때문에 에이든의 기억 속 살아서 처음으로 본 아기는 막내 프린스턴이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빛을 본 그 애는 거짓말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리암도 그럴 때가 있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시절의 리암은 에이든의 어린 눈에도 귀여운 얼굴을 하고 두 살 터울의 형을 졸
아이작은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내내 소리 없는 호들갑을 떨었다. 삐딱하게 선 자세를 간간히 반대쪽으로 기울이기도 하고, 주머니 안에서 양손을 쉴새없이 부스럭거리며 쥐었다 펴기도 했다. 시끄러운 건 늘 그랬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남다르다. 눈을 한 번 흘기자 마주친 눈매가 뻔뻔하게 접혔다. "추워서 그래, 추워서." 확실히 손 꼽게
"완전 미친 새끼라니까." 그 즈음 차가 멈춰섰다. 쥰시키가 안전벨트를 풀고 뒷좌석으로 팔을 뻗어, 치엔은 만지작거리고 있던 묵직한 검을 빠르게 건네주었다. "귀에 딱지 앉겠군. 알겠대도." "혼내줘, 알겠지? 원만하게 해결해주지 마." "내리지 말고 있어." 고개를 끄덕인 쥰시키가 문을 열고 운전석에서 빠져나갔다. 그가 차 문을 닫고 뒤쪽으로 돌아,
사할린의 해풍은 사람의 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 해 동사자는 50명이 넘었다. 표도르 니콜라예비치 쿠즈네초프가 처음으로 새 옷을 선물 받았을 때는 막 열 살을 넘겼을 때쯤이었다. 원래라면 표도르는 지금쯤 학교에 들어가 그의 아버지 되는 니콜라이가 물려주어야 마땅한 몇 안 되는 재산 중 하나인 훤칠한 신장을 뽐내고 있었을 테지만, 표도르의 부
좆됐다. 시외버스가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5분 정도 멈춰있었을 때쯤에 구찬형은 그런 생각을 했다. 이미 만원인 버스를 보고 설마 싶던 게 슬슬 밀려드는 차들을 보며 확신으로 바뀌었다. 저녁 시간을 기다리는 게 자신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수능 끝나는 시간이 언제더라, 나 때는 5시였는데. 아니 왜 구승호는 갑자기 제2외국어를 본다고 해서 사람
지중해의 여름은 무더웠다. 햇빛이 닿는 곳마다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색채를 내뿜어댔다. 차가운 물줄기가 규칙적으로 솟구쳤다가 대리석에 곤두박질쳐 부서진다. 윈저는 얼굴을 얕게 찌푸린 채로 빛 알갱이 너머 일렁이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신기루처럼 시종 밝게 웃는 사람들 너머에 있는 푸른 나무의 그늘, 그곳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윈저를 마주 보고
피고인은 의술을 행하는 이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의술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를 탐구하였습니다. 또한 피고인은 살인을 저질러 그 시체를 부패스러운 행위에 사용하였습니다. 저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 시체를 죽인 살인범을 데려와 물어보시오. 피고인은 지금 유족들 앞에서 고인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의
잘 지냈니? 오랜만에 집에 와보니 우편함에 편지가 가득 쌓여있더라. 놀란 마음은 이해하지만 비어있는 집에다 그렇게 편지를 보낸 너도 참 대단하다. 다 읽으려면 시간을 좀 들여야겠어. 그간 편지하지 못한 건 미안해. 그에게 편지지를 달라고 하기가 부담스러웠거든. 생각해보면 친구한테 편지 한 번 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말이야. 그리우면 돌아가라는 소
이러면 안 돼… 넌 이상군이고 난 가이드 협회원이야… 이만 돌아가…… 싫어… 왜… 넌 나의 노예니까…… (이런 미친……) 파벨은 현기증에 큼직한 인쇄기를 짚었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참지 못하고 그 인쇄물들을 한 움큼 들었다가, 태우지도 찢지도 못하고 책장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나왔다. 피해를 막으러 온 만큼 사적 감정에 치우쳐 누군가의 인
계좌 사정보다 지갑 사정이 두둑한 블라디미르의 인생에는 그럴듯한 풍파가 없었다. 시꺼먼 정장을 입은 사내들에게 둘러싸여서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있어서는 모든 게 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갖고 있는 천부적인 재능에는 자신이 초래하는 일에 태생 관심이 없는 무심함 또한 포함이었다. 블라디미르
https://youtu.be/9om6HiaK_Ew?si=ychKy8uiJ061kifo 요람에서, 무덤까지. 파시아는 입 속으로 곱씹는다. 다시 눈을 감았다. 새로운 안식이 온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 매일같이 보는 시체도 아침에 일어나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어제도 나가서 시체를 태웠다는, 기억은 안 나지만 늘 하는
악몽 같던 나날의 끝을 기억한다. 힘겹게 잠들었던 어느 밤 자신을 깨우던 잡음, 미처 깨나지 못한 정신으로 이불을 걷어낼 때쯤 짙게 풍겨왔던 피비린내. 축축한 류드밀라의 손을 꼭 쥐고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미하일은 헛구역질을 했다. 게워낼 것도 없어 혀 끝에 도는 시큼한 맛이 고작이었으나 아연하게도 그리 불쾌한 감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급한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