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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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한번 더럽게 좋다. 아, 좋다 좋아! 누구 들으란 듯이 허공에 내지르고 나면 메아리 대신 찝찔한 흙 냄새가 되돌아온다. 죽어야 할 것들이 흙을 파고 기어 올라와 헤집어지는 냄새. 대기에 흩뿌려지는 피 냄새. 역겨운 비린내들을 죄다 덮어버릴 비 냄새. 비, 비가 온다. 김준구가 고개를 쳐들었다. 스멀스멀 먹구름이 끼더니 숨구멍 하나 없도록 회색이 들어
It is the day they come, to let us burn our will Never knew that we can see (yes, yes) Bury lives, Burden breaths, our hands will be cleaned Till the day their fate find us (Dear us, oh) 잊어 버린 그날들을
흰 꽃의 꿈이 파다하다 피어난 자리마다 흉터가 도드라진다 거친 파도 위로 봉긋 부어오른 하얗고 매끈한 흉터를 주워들어다 꽃 목에 두르거나 어항에 넣어두려하나 순백의 생화가 우리의 시작점이고 관상어가 우울의 수조에 빠져 숨어들 이불이고 손우물에 넣으면 돌멩이에 지나지 않는데 부수되 꺾지는 말아라 검은 뿌리가 흰 돌을 먹고 흰 꽃을 피워내게 두어라 안개가 걷
누르스름히 짓무른 꽃잎이 신에 밟히며 찐득해졌다. 보기 좋지 않은 갈빛 물이 밑창을 물들인다. 죽어 밟히는 봄을 향해 매미가 울어 제낀다. 어지러웠다. 많이 현기증이 났다. 궁에 흙바람이 일었고 ㄱ이 산 위서 내려다본 전경으로도 이 고을 저 고을 할 것 없이 난리통들인 게 통감되었다. 그 광경이 ㄱ에겐 딱히 어여쁘지 않았다. 이 꼴이 된 것이 얼마나 되었나
세상이 평화로운 것은 우리가 고되고 힘들 때 여러 발짝 물러나 있는 신이란 존재의 가호 덕이 아니다. 세상에 별일이 없는 것은 신을 섬기는 마음이든 신을 부정해 버린 마음이든지 간에 자기 나름대로 하루하루를 지탱해 나가고 있기 때문인 거다. 멀리 떨어지는 햇살 너머로 어둠이 천천히 내린다. 성야星夜처럼 작은 불빛이 도시에 번진다. 그 불빛이 휘감은 것은 무
사람들의 생각이야 질리도록 다르다지만, 첫눈에 대해서라면 모두 비슷한 낭만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대기가 흐린듯하더니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를 걷자니 문득 그 생각이 났다. 무감각해지도록 살을 에는 시린 공기에 무게 하나 없다는 듯 살랑이며 두꺼운 옷 위에 착지하는 추위의 꺼풀들. 얼어버릴까 두려워 꽁꽁 싸맨 겹겹의 옷들에 마치 따뜻하기라도 하
오만하고, 부도덕한, 연속되고 단절하는, 좌우지간 끊이지 않는 존재를 나는 무감각한다.쏟아지는 공,쏟아지는 공,흘러들어오는 구체의 덩어리감을 짓눌러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게 한다. 무너지는 불협과 핍진한 소음이, 오찬조 삶의 무게만큼 맥 없다.연체한 탄생이 속세에서 시들시들하도다.고루한 세계는 어서 빨리 져라.일러두건대 찬조는 인생의 굵직한 맥에서 거세되
딸칵, 딸칵. 동네 후줄근한 피씨방 안에 여느 때처럼 마우스 클릭 소리가 울렸다. 현란한 키보드 소리까지 곁들인 롤의 클릭소리와는 다른 이 느릿한 소음은, 남고생 여럿이 컴퓨터를 둘러싼 상태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리는 침묵은 기묘하기 짝이 없다. 햄, 아직이에요? 어, 일 분 후··· 1분, 이라는 답이 돌아오자마자 제각각
여름이었다, 또. 숨마다 날벌레가 들끓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 주름마다 악취가 고이는 계절이 끈적하게 발목을 낚아챈다. H는 멍하니 새하얀 불빛을 향해 바둥거리며 기어들어오는 갖가지 곤충을 바라본다. 꺾인 날개와 휜 다리로 미끄러운 타일 바닥을 방향도 없이 걷는 무리들. 그들이 힘겹게 넘은 경계선을 몇 인간이 성큼 내딛고 들어왔다. 악, 벌레! 무더운 공기
저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끊어지는 음절로, ARS 음성의 여성이 새된 높낮이에 물음을 실어 송출한다. 귀에서 떼어내면 그만큼 멀어지는 지직임은 구형 수화기며 납작한 우리의 폰으로 동일하게 전파를 보내고 나는 발이 차가워짐을 느낀다. 저, 건너편- 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응답 시간이 지나 기계가 도로 질문한다. 상냥한 고객 써비스의 실제
2022년 2월 20일 잘 자. 오후 11:34 2022년 2월 22일 오늘 날씨 좋더라. 오후 4:26 2022년 2월 25일 오늘 3시 강의 휴강이야. 그때 말하러 와도 돼. 오전 11:52 점심 챙겨 먹고. 오전 11:53 우리는 끊임없이 부딪친다는 죄로 사랑하는 벌을 받았네. 차라리 너와 죽도록 싸우고 싶어. 그 행동 하나하나에 질렸다고, 언성을 높
비가 오는 날이었다. 오전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는데 정오를 넘길 시점부터 스믈스믈 기어오는 구름에서 심상찮은 우르릉, 소리가 나더니 해가 반쯤 걸치니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데워진 아스팔트에 내려꽂는 음 도시를 감싼다. 사탄은 시간을 확인하고 커튼을 조금 젖혔다. 아파트 창문 너머 조그만 세상 온통 적셔지는 와중에 느지막한 오후의
루시퍼는 참는 것에 이골이 나 있었다. 자신을 억누르고 본능을 외면하는 일. 억울하게 여긴 적도 없었다, 그가 선택한 길이니까. 그의 선택은 디아볼로의 선택이자 데빌덤의 선택이었고 따라서 옳은 일이었다. 이번 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견이 개입할 수 있는 건도 아닌 게 문제였을까. 그쯤까지 가면 루시퍼는 의식적으로 사고를 멈춘다. 쓸모도 이익
지독한 몸살은 밀물처럼 손끝 하나하나까지 스며들었다. 처음엔 괜찮은 듯하다가, 먹잇감인지 아닌지 찔러보고는 삽시간에 잠식하는 무력감. 강하게 죄어드는 이 의지가, 이끄는 몸뚱이가 자꾸 발목을 잡는다. 쓰러져라, 쓰러져. 뒤늦게 감각하는 열기가 몽롱한 정신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고해준이 딱 싫어하는 기분이었다. 부유하는 의식, 헛것, 불분명한 사고. 고온에
여름이었다. 초여름, 이십여년 전 지어진 적당히 투박한 중교 2학년 B반의 전경이 나무 그늘에 어둑해져 있다. 활짝 연 창문 너머 햇빛 내리쬐는 운동장과 코모레비 내린 교실 안 지루한 낭송 소리의 구분선 확연하다. 더운 기운 감도는가 하니 선선한 바람 창문틀을 넘어오고, 그림자진 탁상이 서늘타가도 반팔 아래 살갗이 엉겨붙는다. 어깨부터 접어 넣어지는 허리께
사랑과 낭만의 순서들돌고 도는 어지러움을 향유하고똑바로 보게 된 후부터 사랑을 잃었다 나는 피곤한 눈에 피곤한 사람을 하고 애탈 듯 손을 뻗어다 고작 형체도 문드러진 너의 눈을 감긴다 떠도는 시대는 가고 흘러간다 자신을 속이며 부서져라 붙드는 때가 목을 잡고 놔주질 않아 vice versa 잊으면 죄가 되고 사랑을 잊은 나는 습기먹은 감정이 졸리지 않게 목
夢中夢 이제부터 일어나게될 모든 일을 귀띔해주겠노라. 사탄 눈을 뜨시옵고 하늘의 아이들이 목청 높여 피비린내 울음을 울었다. 억눌린 어둠이 마침내 천하를 물들이고 천사의 날개가 우매함에 불타리라. 잔인한 달의 말씀을 새겨 들으라 명함에도 거짓이 가엽고도 얄팍한 지성을 가리더라. 본디의 섭리가 뒤틀어지매 또 한 번의 혼돈이 도래하노니 인간의 아들은 귀기
찰칵. 오래된 카세트 플레이어에 B가 카세트 하나를 밀어넣는다. 금이 가고 테이프가 늘어진 카세트. 먼지 먹어 누래진 플라스틱 창 너머 톱니가 덜덜대며 돌아간다. B에게 어떠한 의미도 없는 음성이 재생된다. 기억이 회전한다. --- PLAY 삶은 붉구나. 그게 A의 첫 견해였다. 제 모든 걸 결정했던 거대한 존재들이 손끝에서 시들어간다. 통제는커녕 관여
https://null404.wixsite.com/lastyear 이파리의 군집에 이는 바람이 귓가를 스쳐간다. 손에 든 낡은 책의 페이지가 흩날린다. 정갈하게 인쇄된 페이지 넘버와 획마다 눌러쓴 글씨들이 뒤섞이며 파라락 넘어갔다. 귀퉁이가 다 해지고 헤집어져 찢어지는 표지에 지난 일 년간의 기록이라 휘갈긴 것에서는 구역질 나는 냄새가 났다. 너의 것이
그 멍청한 시선이.임이쥔은 멍청하단 표현이 기껍지도 고깝지도 않았다. 손에 쥔 옷자락의 천은 땀을 잘 흡수하고 미끄러지는 재질이었다. 자꾸 흩어지고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 빠져나가. 고개는 들 수 없었고 우는 대신 이쥔이는 네가 많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멍청하다. 그러면 불쌍하구나. 그 어떤 동요도 일지 않았다. 불쌍함은 그 정도였다. 말하자면 날이
통행용이 아닌 철재, 땅이 가늠되지 않는 드높은 곳에서 우리 겁먹지 않았다는 듯 걷는다. 가는 다리 서너 쌍 그을린 자국을 부르고 싶었다면 문신이라 명명했을 지도 몰랐다. 타투이스트 손이 꺼멓고 고의가 없다. 무시가 때로는 지금의 법이라고. 형태가 남은 구조물에 불 밝히고 온전한 통조림 때 낀 손톱으로 틱틱거린다. 대여섯의 숨결 어떤 것도 말을 하지 않고,
안녕히 주무세요, 선생님.그 말 전하고 돌아서는 매번이 제 유언이고 사인이었습니다. 불가피하게 마주한 뒷켠의 숨 없음이 그리도 서늘합디다. 수많은 일꾼 데려다 복도 닦게 하면서, 그렇게 한 번이라도 복도의 길이를 가늠해본 적은 있으십니까. 급하게 적습니다, 선생님. 멀미가 나고 삶이 아득할 때야 글이 써지는 것이 과연 선생님 말씀대로입니다. 깊이를 아셨는지
さようならナルキ 2017.3.23 사요나라 나루키¹, 달이 밝다. 언제나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너 나 눈 먼 것도 아니건만 이 말이 그리 목에 걸려 별이라도 따다 네 손끝에 걸어주고 아침 한가득 떠다 네 입술 축이게 해주어도 눈앞의 밝음에는 약속하듯 침묵했지. 창명愴冥 하다고 눈물이 난다고 눈이 부셔서 그렇다고 네가 아름다웠다고 오래도록 침묵했어. 알지
아침이 차마 부끄럼에 싸인다. 빛조각은 또 온다. 짙은 푸른색에 덤펑덤펑 뛰어들어 설탕유리처럼 녹아든다. 차, 차를 마시자.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엉긴 남색을 입술에 머금고, 삼켜버리는 거다. 응어리진 근처의 맥없는 액체는 턱 밑으로 주륵 떨어져버린다. 목 안에서 울컥이는 개새끼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 막고 불콰하게 웃자. 매끄러운 상아에 금이 치덕치덕 발린
시계바늘 위에 선터무니 없는 시간두 손으로 꼽을 수 없는흘러넘치는 나이우리를 비웃는투명하고, 순결한 분침내 발 아래에는네가 서 있네생기와 어리숙함으로 가득찬빛나는 악을 쥐고서둘 다의 손에 놓인예쁜 유리조각나를찔렀던 것찌를 것투영된어림새파란 나의 몸에서 새빨간 피가 떨어진다.너의 천진난만한 웃음처럼바늘 위에 진득하게 달라붙어내 피에 가려 난 네가 보이지 않는
https://dam0522.wixsite.com/testsentence/--c1bgs 바다가 있었다도시에는답지않은 한가와밤과 새벽은 있었다달아날 때 내가 달아날 때꽃과 같이 되어라 아이야흐드러지게 늘어진 꽃잎으로너를 감싸안고 저 바다를 건너라어리고 어려진 너의 목은새벽이슬과 다름없이 끊어져 나를 본다은은한 꽃방울이 터져너를 너를 숨막히게 하게그러려면 피
종 울리는 소리를 못 들었다.눈 뜨고 귀 듣고 입 말하고 피부로 불어오는 이 엄청난 바람이.그에 스쳐 가는, 간질거리는, 입때껏 없던 소중함이.몸속에 향긋한 공기를 좀 채워본다. 향료나 향수 대신으로.수백, 수천만 번 겪었을 나른과 가라앉는 이 느낌. 그때들처럼 이것도 피곤함인가, 아니면 나는 매일 자기 전 고비를 넘겼던가.바닥으로, 남빛 수렁 바다로 가라
미술관 안의 서늘 속에. 막 출구를 벗어났을 때, 갓 작은 세상의 따뜻함을 꽃 틔우는 소리처럼 새삼 감탄하는, 드문드문의 사람들 사이에서. 여럿이 몰려나와 커피나 주전부리를 시킨 요란벅적한 테이블 사이에서 막 감상에 젖어있을 때, 놓여있는 찻잔도 감성에 젖어 있었다. 조그마한 명화 조각이 그려진 찻잔의 조금 진한 차. 그냥 단순한 컵이 아닌 진짜 찻잔이었다
며칠 전부터 오기 시작한 장맛비는 아직도 창문을 거세게 때리고 있다. 물기진 창에는 바깥 불빛이 아롱아롱히 흔들린다. 물방울은 덩이 져서 주르륵 흘러내리고, 맺힌다. 딱 8월 1일이 된 자정, 멀리서 시계탑의 종이 열두 번째 종을 칠 때 누군가 내 방 창문을 두드렸었다. 1층도 아닌 맨 꼭대기라 천장도 지붕처럼 'ㅅ'자를 이루는, 쓸데없이 높아 날 한없이
『 사랑하는 K에게. K, 오랜만입니다. 당신을 잃어버린 후 꽤 오랜만이에요. 생각으로나, 이렇게 종이를 맞대는 것으로나 어느 쪽이든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다소 손이 떨려서 잉크가 번지는 것은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지금 비가 내리거든요. 얼마 전에 당신을 봤어요. 동네의 세탁소에서 그 큰 미닫이문을 열어두고
해는 원하든 원치 않든, 뜨기 마련이다. 간절히 빌어도 날은 밝고, 어제는 가고, 내일은 찾아온다. 가끔 그런 불변하는 것이 있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애를 쓰고 간절히 바라도 시간은 언제나 일정하게, 얌체 같은 소리, 재깍재깍, 소리처럼 재깍재깍 움직인다. 시간의 법칙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누가, 제멋대로 멈추고
안녕, 오랜만이야. 웬일로 전철을 탔어? 오후 세네 시, 한산한 전철 아무 데나 기대서 외출. 어딘가를 바쁘게 가고 있네.이 계단은 낯이 익어. 작년에 같이 걸었던 계단이었나. 바닥이 끓다시피 했던 정도의 눈 시린 아지랑이가 일렁이던 유월이었겠지. 너는 누군갈 찾으러 여길 왔었어. 또 거긴 내가 있었어. 반신반의한 믿음이 확신이 되고, 몇 발짝 내디뎠을 때